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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 시대의 신뢰의 본질
사회가 위험할수록 가상공간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
김홍열 | 2015-12-16 16:40:5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강연하는 ‘위험사회’ 울리히 벡 교수 사진출처: 연합뉴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벡의 저서 「위험사회」 가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그만큼 현대 사회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독일 카를스루 대학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도대체 안전한 곳이 없다. 보이는 곳이나 보이지 않는 곳이나 우리를 둘러싼 공간 모두 다 위험하다. 위험은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계급과 상관없이 ‘민주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위험사회」를 계속 읽다 보면 신약성서의 마지막 권인요한계시록을 읽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모든 환난이 종식될 것이라는 믿음이라도 있었지만 울리히벡의 처방은 진단에 비해 무척이나 허약해 보인다.

“나의 해답은, 하위 정치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장하고 법적으로 보호함으로써 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본질적인 기본 조건에는 강하고 독립적인 법정뿐만 아니라 강하고 독립적인 언론매체가 다른 전제들과 함께 확실히 포함된다. “(P357)

사회학자답게 지극히 현실적인 처방전이다. 정치의 복원, 독립적인 사법체계와 언론매체가 대안이다. 사실 더 이상 쓸 카드도 없다. 혁명을 제외하고는 적절한 답이 없다. 혁명조차도 자본주의에 포섭되었기 때문에 유효한 카드가 아니다.

그럼 이제 조금 다른 차원에서 현대사회의 위험성을 이겨낼 방안을 찾아 보자. 그 출발점 중의 하나가 신뢰다. 신뢰는 추상명사가 아니다. 역사적이고 사회적 개념이다. 신뢰에 대한 근대적 질문은 토머스홉스가 먼저 시작했다. 홉스는 모든 사람의 능력이 같아지면서 같은 목표를 추구하게 되지만 모두가 그것을 얻을 수는 없어 상호 불신이 생겨나고 불신에서 투쟁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저서「리바이어던」에서 그는 이 불신을 해결하기 위해서 자신의 권리를 국가/사회에 양도하고 대신 주권을 얻는 사회계약을 주장했다. 신뢰의 회복은 사회계약에 의해 가능하다고 보았다. 홉스의 이런 주장은 뒤르켐과베버, 짐멜에 의해 확장되었고 현대에 들어와 대부분의 사회 철학자들의 중요 연구 주제로 부각된다. 특히 루만은 신뢰 현상을 소통의 관점에서 이론화하고 그 이론적 프레임을 마련한 사회학자다.

이제 질문을 던져 보자. 신뢰는 왜 중요하며, 그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는 유명한 학자들의 이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원론적인 답은 할 수 있다. 우선 첫째로 적정한 신뢰가 없다면 사회는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신뢰는 시간과의 불협화음을 공간 안에서 해결하려는 개인적이며 사회적인 행위다. 이렇게 중요한 신뢰의 본질은 무엇인가.신뢰는 법과 같이 사회계약의 한 형태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개념적으로 파악하자면 이미 만들어진 어떤 고정적 실체가 아니라 유동적이며 불안정한 액체 같은 상태다. 신뢰는 구체적 실체 없이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하나의 흐름이다. 최근 신뢰가 소통의 관점에서 재해석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 이제 신뢰를 정보사회학적 관점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해 보자. 신뢰는 기본적으로 시간에 대한 질문이다. 그리고 그 답을 공간 안에서 찾고자 하는 노력이다. 공간은 늘 변해왔다. 홉스가 사회계약을 통해 불신을 해결하자고 했을 때 그 공간은 초기 자본주의 공간이었고 자유주의가 형성되기 시작한 공간이었다. 자본주의 이전 군주제는 우호적인 공간을 제공했지만, 상호간의 투쟁이 시작된 자본주의 공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약속이 필요했다. 이 약속은 비교적 오랜 시간 지켜져 왔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첨예화되고 계급 간 갈등이 일방적으로 자본 측에 유리하게 전개되면서 사회적 약속은 자본과 결탁한 국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운영될 때가 많았다. 자신의 노동으로 자신이 생존하기 힘든 상황이 되고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우리 모두는 이 자본주의 공간을 벗어날 수 없다. 울리히벡의「위험사회」는 이런 절망에 대한 객관적 보고서다.

절망이 깊어지면서 신뢰가 다시 절박한 주제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현실 자본주의 공간에서는 신뢰가 제 자리를 찾기 힘들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공간이 필요하다. 그 가능성을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만들어낸 가상공간이보여주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조금씩 가상 공간에 빠져들었고 그 안에서 희망을 찾기 시작했다. 희망이 사회적 신뢰로 온전히 연결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최소한 일시적 위안은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위안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유비쿼터스 환경과 모바일 플랫폼은 언제 어디서나 내가,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계속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 사회에 대한 불신이 커질수록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더 집착하게 된다.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지하철 안의 풍경이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런 풍경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SNS는 신뢰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고 그 대가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SNS의 비즈니스 모델은 상품이나 서비스가 아니다. 서로 연결시켜 주고 네트워크 안에 있게 해주는 대가로 고객들에게 자발적 비용을 부담시키고 있다.

가상 공간에서 새로운 신뢰가 형성될지 그렇지 않을지 아직은 모른다. 가상 공간 자체가 계속 확장, 변화되고 있는 하나의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가상공간이 자본주의 공간과는 다른 공간으로 우리에게 나타날지 아니면 자본주의에 포섭되어 자본주의 공간이 될지 현재로서는 판단하기 힘들다. 단지 하나, 사회가 위험할수록 그리고 대안이 요원할수록 사람들은 가상공간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을 받게 된다. 정치, 사법, 언론, 종교 등 기존 시스템에 의한 신뢰는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드니 이제 신뢰는 연결에서 출발해서 네트워크 안에서 존재한다.

김홍열 (성공회대 겸임교수. 정보사회학)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31&table=hy_kim&uid=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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