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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모든 국민이 함께 누리야 합니다
김용택 | 2021-02-16 09:06:0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자유조선’, 한국자유총연맹, 자유대학생연합, 자유청년연합, 자유수호변호사모임, 자유당, 자유민주연합, 자유선진당, 자유민주주의, 신자유주의… 우리나라에는 정당 이름에서부터 민주주의, 시민단체 이름 심지어는 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 별나게 자유라는 이름을 붙이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왜 이렇게 자유를 좋아할까? 독재자들이 민주니, 정의라는 가면을 즐겨 쓰듯이 그들도 그들만의 자유를 누리고 싶어서일까?

<자유란 무엇인가?>
 
자유란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하는 말로 영어에 ‘자유’를 뜻하는 Freedom과 liberty가 있다. ‘freedom’이 원래부터 타고난 자유의 상태를 뜻하는 용어라면 ‘liberty’는 정치적으로 획득한 자유를 의미한다. 자유란 ‘단순히 방종이 아닌 책임이 수반되는 권리 즉, Free보다는 Liberty라는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이런 자유에는 ‘개인이 타인의 간섭 없이 자신의 의도나 행동을 자신의 마음대로 혹은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자유’인 소극적 자유와 ‘국가 운영에 참여하거나 국가에 인간다운 생활을 요구할 수 있는 적극적인 자유’가 있다.

학문적으로 해석해도 자유란 ‘이런 것’이라는 명쾌한 해답에는 미흡한 느낌이다. 그런데 헌법에는 왜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명쾌한 답이 나온다. 우리 헌법 제 10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하는 자유가 아니라 모든 국민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기 위한 자유가 진정한 자유라는 의미다. 수구세력이나 자본이 원하는 지유란 나의 이익,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인권이나 존엄성은 관심의 대상도 아니라는 자유와는 거리가 멀다.
 
<자유는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free의 어원은 freogan인데 freogan의 뜻은 해방시키다, 즉 노예가 아니라는 뜻이다. 해방시키다란 말은 ‘무엇인가를 풀어주는 것을 표현하던 말’이었다. 그런데 이 말이 왜 ‘사랑하다’라는 의미이기도 했을까. 고대 그리스에서는 사랑은 철학이기도 했다. 사랑-이야기(philo-sophia)가 바로 철학이었다. Free라는 말을 풀어보면 ‘사랑하다’ 뿐만 아니라 ‘명예롭게 하다’라는 뜻도 있다. ‘명예(honor)’라는 말은 그렇게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 free란 이렇게 모든 국민의 기본권이요, 민주주의의 대헌장이요, 사랑을 노래한 서사시다. 모든 국민이 함께 누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참 자유를 누릴 수 있겠는가?
 
<자유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 때/나는 자유이다/땀 흘려 힘껏 일하지 않고서야/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이다/피 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야/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만인을 위해 내가 몸부림칠 때 나는 자유이다/피와 땀과 눈물을 나눠 흘리지 않고서야/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사람들은 맨날/겉으로는 자유여, 형제여, 동포여! 외쳐대면서도/안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도대체 무엇이 될 수 있단 말인가/제 자신을 속이고서.」
 
김남주시인이 노래하는 자유다. 헌법은 인간의 존엄성이나 자유와 평등이 소수나 개인이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누려야 할 가치라고 강조하고 있다. 자유가 소수 기득권을 위해 행사된다면 그것은 그들의 이익이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게 된다. 소수가 누리는 자유란 다수의 국민이 희생자가 되어야 한다. 행복을 독점하겠다는 사람들, 자유를 독점하려는 사람들로 수많은 사람들의 피흘려 싸워야 했다. 인간의 역사는 모든 국민의 존엄성과 자유와 평등을 지키기 위한 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모든 국민이 행복과 자유, 평등을 함께 누리는 길… 그것이 곧 인류애요, 사랑이요, 정의가 아닌가?
 
헌법이 실현하려는 자유는 사적(私的) 자유가 아니라 사회적 자유이다. 종교의 자유, 언론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는 개인적 자유가 아닌 사회적 자유다. 개인의 자유란 서로 충돌할 수 있기 때문에 공동체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가 무제한 허용될 수 없다. 모든 사람에게 무제한의 자유를 허용한다면 이 세상은 양육강식의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밀(J. S. Mill)은 ‘다른 사람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사회는 개인의 자유를 간섭할 수 없다’고 했다. 자유를 독점하겠다는 사람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사회적 자유가 아닌 개인적인 자유를 누리겠다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자유를 무제한 허용하면 민주주의는 어디서 찾을 것인가?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30&table=yt_kim&uid=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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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불초자  2021년2월17일 12시51분    
'나는 당신의 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말할 자유를 위해 싸우겠소!'

이 짦은 말 속에 진정한 자유의 선언이 담겨있다고 봅니다. 전자가 Freedom(행위의 자유)이라면 후자는 Liberty(행위의 자유를 위한 해방)일 것입니다.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자유로운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자본의 자유가 있는 세상은 아닐 것입니다. 물질 우선인 상태가 계속되면 결국 인간본성은 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의 자유가 떠오르지만, 이미 돈이 하늘인 세상에서는 그 또한 자본의 자유로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자유의 평등>이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혹자는 이를 공산화라고 하지만, 스탈린의 교조주의(획일화된 세상)와 대동세상을 구분하지 못한 탓이겠지요.
자유는 누구나 자유로울 수 있는 평등한 세상을 지향합니다. 평등한 세상에서 자유는 더욱 그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치고 꽃을 피어 열매를 맺습니다. 이 둘이 조화를 이루는 <자유의 평등한 세상>이 곧 민중이 염원하는 대동세상(인내천, 재세이화)일 것입니다.
이 대동세상이 인간을 넘어 자연만물에까지 확장한 것이 이상세계이며, 이 이상세계가 시공간을 초월해 존재와 차원 너머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이 종교가 추구하는 깨달음의 세계, 열반, 천국, 도의 세상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유와 평등이 조화를 잃고 깨지거나, 그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쏠리게 되면 종교적 이상세계와 우리의 대동세상도 존재하지 못합니다.
자유와 평등은 이처럼 서로 떨어져서는 우리 안에서 작동할 수 없는 한 가지입니다.
대동세상에서는 공동체 정신으로, 이상세계에서는 섭리로, 종교의 관점에서는 사랑과 자비로 현현합니다.
그래서 존재와 차원의 모든 근원을 들여다보면, 자유와 평등은 서로를 내어주면서 맥동하며 흘러가고 있습니다.

역사의 흐름을 들여다봐도,
자유의 이상세계를 현실에 그려내고자 하는 종교는 평등의 인위적 구현인 공산화에서 그 첫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초대교회 공동체의 모습은 함께 기도하고 수고하며, 가진 바를 모두 내어놓고 필요한 만큼 가져다 쓰는 공산주의 공동체였습니다. 이슬람 또한 그 출발은 공산주의 사회였고, 불교나 힌두교, 어떤 대중종교이든지 간에 첫 시작은 한 무리를 이루며 공동생산, 공동분배하며 살아가는 기초 신앙공동체가 그 기반을 닦았습니다.
신도들, 신봉자들이라고 하는 제도와 개념 자체가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면 이루어질 수 없는 공산의 요소입니다.
세상과 인간과 역사가 혼탁한 것도,
이 자유의 이념을 개인의 자유(자본의 자유)에만 국한해 각자의 영역을 구축해 울타리를 쌓은 결과입니다. 자유의 평등을 공론장의 밖으로 밀쳐내고, 이념의 색을 칠해 밀봉해버린 결과입니다.
조화와 균형이 깨지면 소란스러움이 일어납니다.
조화와 균형을 상실한 상태에서의 자유는 이미 자유가 아닙니다. 오늘날 자유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외면을 받는 이유입니다. 역시 균형을 상실한 상태에서 평등은 이념화되어 교조적이 되기 쉽습니다. 세상으로부터 평등이 획일화로 오해받는 배경입니다.

어떻게 하면 다시 이 조화와 균형을 찾아, 세상을 소란스러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요?
불행히 그 아픔을 가장 먼저 인지하고 사람들을 모아야할 언론은 제 기능과 역할을 다 한 지 오래입니다.
종교 역시 섬처럼 고립해 있거나, 속화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혼탁한 배경이고, 이런 혼란스러움과 혼탁함 속에 자유와 평등의 순환이 인간에 의해 무참히 깨져버린 자연마저 인류에게 최종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모든 현상을 동원해 강하게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인류 최대의 위기는 자유와 평등이 깨져버린 그 사실 자체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이를 감지하지 못하고, 오늘도 <경제와 발전>이 인류의 미래이자 역사의 전망인양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고통스럽게 흔들어내고 있습니다.

오늘 주식시장의 코스닥 지수는...
오늘 수도권 지역의 신규 아파트 물량이 대거 풀리면서...
오늘 코로나 감염증 예방접종이 시작되면서, 경제전문가들은 세계경제가 다시 살아날 것으로...

자유가 극단으로 뻗어간 것이 '경제'요, 평등이 밑으로 끝없이 추락하는 것이 투쟁입니다.
노사 간의 갈등, 국경분쟁, 인종갈등은 자유와 평등이 그 조화와 균형을 잃으면 어떻게 우리 앞에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천만다행히 우리의 댓글이 커나가면서 비로소 자유와 평등이 다시 서로를 내어줄 수 있는 공론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자유의 평등>을 화두로 드립니다! 우리 인류가 모일 때도 되었습니다.

(5) (-1)
 [2/2]   불초자  2021년2월17일 16시13분    
김용택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사회적 자유가 '자유'의 참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회적 자유가 안정되어 곳곳에서 흐르는 상태가 평등세상이겠지요.
자유를 평등으로 연결하지 못하면 그것은 자유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개인의 자유가 평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자유가 아닌 방종입니다.
방종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개인의 자유가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자유라면, 세상이 왜 그렇게 혼탄스럽고 혼란스러운지 조금은 납득이 갑니다.
세상의 질서를 지배해 온 미국이라는 나라가 추구하는 자유도 이 자유<자본의 자유>라는 사실을 어렵지않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자유'를 자유라고 부르고 싶다면 '사회적 자유'를 같이 넣어 익힐 수 있도록 우리 지식인 사회가 다시 자유의 참뜻을 세워주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개인의 자유가 사회적 자유로 흐르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방종입니다!
비참한 환경과 불우한 형편에서 뒹굴었던 사람도 부와 권력을 얻으면 변하는 것을 자주 봐왔습니다.
이처럼 개인의 자유<자본의 자유>를 강조하다보면 사회적 자유는 그를 변화시킬 힘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우리 사는 세상이 성공 신화와 권력과 물질로 가득차고 있는 배경입니다.
사회적 자유(평등세상)를 위해 싸우는 사람만이 자유를 알고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김남주 시인은 그것을 꿰둟어보고, 피맺힌 절규를 부르짖었습니다. 시인은 한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입니다. 그의 이 절규가 오늘에 닿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의 교과서에는 사회적 자유를 위해 싸우는 사람만이 자유를 알고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아이들을 위해 매우 바람직합니다.
개인의 자유에만 방점을 찍다보니, 사회적 자유가 존재하는지도 우리는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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