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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은 항쟁인가 반란인가?
김용택 | 2020-02-11 11:12:1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동족의 학살 명령을 거부한 군인의 저항은 명령불복종인가? 아니면 불의에 저항한 의거일까? 1948년 제주도민 학살동원 명령을 거부한 여수 순천의 14연대 얘기입니다. 제주 4·3항쟁은 ‘제주 4ㆍ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어 대통령의 사과와 위령비와 기념관 건립과 진실규명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주 4·3항쟁 저항민간인을 학살하기 위해 내린 동원명령을 거부했던 여수·순천사건은 사건 발생 72년이 지만 지금까지 ‘여순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조차 통과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여순사건이란 1948년 10월 19일부터 10월 27일까지 전남여수순천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 제주 4·3 민중항쟁의 진압 명령을 거부하다 14연대의 군인 2,000여 명이 중위 김지회, 상사 지창수 등 남로당 계열 군인을 중심이 되어 일으킨 항명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군인 180여 명, 경찰 74명, 행방불명자 825명, 국가공무원 피해 3,474명, 민간인 피해 11,131명의 희생된 되었습니다.

1948년 10월 19일 오전 7시경, 국방경비대 14연대는 제주 4.3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상부로부터 비상나팔소리에 휩싸였습니다. 지창수·김지회 등 좌익계 군인들은 동족의 학살에 참가할 수 없다며 제주도 출동을 거부하고 ‘친일파 처단’, ‘조국통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봉기를 일으킨 것입니다. 1948년 10월 19일 저녁 8시경, 14연대 지창수·김지회 등 일부 군인들은 무기고와 탄약고를 점령하고 비상나팔을 불어 연대 병력을 집결시킨 다음, 선동과 위협으로 봉기군에 동참하기를 독려했습니다. 이들은 곧 경찰서와 관공서를 장악하고 여수·순천을 순식간에 휩쓴 뒤 곧바로 벌교·보성·고흥·광양·구례 등 전라남도 동부 5개 지방을 장악, 10월 22일에는 곡성까지 점령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초기 진압작전에서 실패한 이승만 정부는 20일 미국 군사고문단 수뇌부 회의에서 광주에 ‘반란군토벌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계엄령을 선포, 사흘간의 교전 끝에 정부군은 25일 마침내 장갑차와 박격포, 항공기, 경비정 등을 동원, 여수를 포위해나갔고, 27일 진압에 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당시 여수를 빠져나간 봉기 세력들은 지리산 인근으로 흩어져 빨치산 활동을 전개하게 됩니다. 분이 풀리지 않은 정부군은 여수, 순천,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 노인, 어린아이 할 것 없이 거동이 불편한 사람까지 운동장으로 끌어내 ‘손가락질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인민대회 참가했다는 이유로, 완장을 찼다는 이유로, 머리를 짧게 깎았다는 이유로, 고무신을 신었다는 이유로, 군용 팬티를 입고 있었다는 이유로 형무소에 수감되거나 총살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 결과 진압 과정에서 봉기군과는 무관한 민간인들이 부지기 수로 희생당하고, 막대한 재산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확인된 사망자만 해도 무려 3400여 명, 행방불명자는 800여 명, 사망자는 1만 여 명에 달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미군의 협조로 진압에는 성공했지만 여순사건을 계기로 일부 지역에서 일어났던 유격투쟁과 빨치산 활동은 이듬해 초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제주의 소리’ 참고)

‘모든 동포들이여! 조선 인민의 아들인 우리는 우리 형제를 죽이는 것을 거부하고 제주도 출병을 거부한다. 우리는 조선 인민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싸우는 인민의 진정한 군대가 되려고 봉기했다. 친애하는 동포여! 우리는 조선 인민의 복리와 진정한 독립을 위해 싸울 것을 약속한다. 애국자들이여! 진실과 정의를 얻기 위한 애국적 봉기에 동참하라. 그리고 우리 인민과 독립을 위해 끝까지 싸우자.’ (제주 출동을 거부한 제주도출동거부병사위원회의 ‘애국 인민에게 호소함’ 격문)

“우리는 조선의 노동자. 농민의 아들이다. 우리는 우리들의 사명이 국토를 방위하고 인민의 권리와 행복을 위해서 신명을 바쳐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우리는 제주도 애국인민들을 무차별 학살하기 위하여 우리를 출동시키려는 작전에 조선 사람의 아들로서 조선 동포를 학살하는 것을 거부하고 조선 인민의 복리를 위하여 총궐기하였다. 동족상쟁 결사반대! 미군 즉시 철거… (1948. 11. 30 동아일보) 이승만 정부 수립 2개월 만에 일어난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승만은 일제시대 치안유지법을 부활시켜 자본주의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 단체의 활동을 규제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동족학살을 거부한 이 사건이 어떻게 반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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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불초자  2020년2월13일 01시41분    
당시 경찰은 일본경찰에 직간접으로 부역한 자들이 그 상부에서 하부까지 모두 장악한 탄탄한 친일조직이었습니다.
수뇌부가 친일파와 반공주의자들로 주류를 이루고 있었지만, 밑에는 좌익계열이 더 많았던 국방경비대(군대)와는 큰 대비를 이루었습니다. 당시 군대는 사상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남로당 좌익세포로 활동하는 군인들이 상당수 곳곳에 포진해 있었습니다.
한반도 이남을 점령한 미군정은 이를 거부하는 좌익세력의 움직임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이 땅을 경찰국가로 만들었으며, 그런 경찰에 칼빈, M1 소총, 통신 및 탈 것 등의 신식무기를 지급하였습니다. 이에 반해 (미국의 눈 밖에 난) 국방경비대는 기껏해야 일제의 99식이나 38식 소총, 몇 대의 탈 것 정도로, 군대라고 불릴 수도 없는 빈약한 모습이었으며, 화력면에서도 경찰과는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유만으로로, 군인들은 경찰과 앙숙지간이었고, 거리에서 둘이 맞붙게 되면 양쪽 모두 사생결단을 할 정도였습니다.
경찰은 국방경비대를 그들의 하부이자 보조조직으로 여기며, (군인의) 위법행위를 감시하고 처벌하는 것이 경찰의 임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 오만방자한 태도는 훗날 평범한 조선의 인민마저 곳곳에서 경찰에 저항하는 마중물로 작용하였습니다.
'여순 독립운동'은 조선 인민이 친일경찰과 괴뢰정권(미국)에 능욕을 당하는 것에 분개한 애족/애국 군인들의 피어린 봉기였습니다.
친일경찰들의 하부조직으로 낙익찍혀왔던 자신들의 아픔과 능욕에 대한 복수심도 있었겠지만, 반 년 전(1948년 5월 10일) 이미, 비열한 방법으로 외세와 이승만 정권에 의해 분단된 조국과, 그 속에서 신음하는 조선의 인민을 지키고 다시 갈라진 조국을 합쳐 세우려는 '항미 독립운동'의 시작이었습니다.
항일은 말해도 항미는 말하지 못하는 이 나라, 이것이 여순 독립운동의 군인/인민 지사들이 우리 후예들에게 말하고 싶은 외침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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