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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7·4남북공동성명 발표 46주년입니다
김용택 | 2018-07-04 10:39:1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 쌍방은 다음과 같은 조국통일원칙들에 합의를 보았다.

첫째,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둘째,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하여야 한다.

셋째, 사상과 이념·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

2. 쌍방은 남북사이의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 서로 상대방을 중상 비방하지 않으며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무장도발을 하지 않으며 불의의 군사적 충돌사건을 방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하였다.

3. 쌍방은 끊어졌던 민족적 연계를 회복하며 서로의 이해를 증진시키고 자주적 평화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남북사이에 다방면적인 제반교류를 실시하기로 합의하였다.

4. 쌍방은 지금 온 민족의 거대한 기대속에 진행되고 있는 남북적십자회담이 하루빨리 성사되도록 적극 협조하는데 합의하였다.

5. 쌍방은 돌발적 군사사고를 방지하고 남북사이에 제기되는 문제들을 직접, 신속 정확히 처리하기 위하여 서울과 평양 사이에 상설 직통전화를 놓기로 합의하였다.

6. 쌍방은 이러한 합의사항을 추진시킴과 함께 남북사이의 제반문제를 개선 해결하며 또 합의된 조국통일원칙에 기초하여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이후락 부장과 김영주 부장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남북조절위원회를 구성·운영하기로 합의하였다.

7. 쌍방은 이상의 합의사항이 조국통일을 일일천추로 갈망하는 온 겨레의 한결같은 염원에 부합된다고 확신하면서 이 합의사항을 성실히 이행할 것을 온 민족 앞에 엄숙히 약속한다.

서로 상부의 뜻을 받들어

이 후 락 김 영 주

오늘은 1972년 7월 4일 정오, 당시 박정희의 제3공화국 당시의 대한민국과 김일성의 북한이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이 공동성명이 발표된 지 46년째 맞는 날이다. 핵폭탄의 위력도 이보다 더 클 수 없었다. 사람들은 방송을 들으면서도 잘 못 들을 것이 아닌지 자기 귀를 의심했다. 꽁꽁 얼어붙은 한반도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믿어지지 않아서다. 1948년 남북이 분단된 지 34년. 서로가 적이 되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이 같던 남과 북이 이런 성명서가 나올 것이라는 것을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세계정세는 “서방에서는 핵무기 이외의 공격에 대해서는 당사국이 1차적 방위책임을 진다”는 닉슨 독트린이 발표되고 공산주의 진영에서는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프라하의 봄, “사회주의가 위험에 처했다고 판단되면 어느 사회주의 국가든 개입할 권리가 있다”는 브레즈네프 독트린이 발표되는가 하면, 1969년 중소 국경 분쟁으로 중.소간에 국경 협정이 체결되고 그 여파로 중국은 미국과의 수교하는 등의 국제정세가 요동치고 있었다.

한편 남한에서는 전태일 열사 분신 사건 등으로 대내적 위기에 봉착하고, 북측은 1971년 중국의 유엔 가입하는 등의 변화의 물결이 밀려 왔다. 한반도에서는 미군의 부분 철수, 미·중의 화해 무드로 양국과 동맹관계에 있던 남북이 변화하는 국제정치 환경에 적응할 필요성이 대두되자 북측의 제의에 남측이 호응함으로써 1971년 9월 20일 비밀리에 남북 적십자회담 개최→이후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문제 협의를 위해 1972년 5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평양을 방문하고 뒤이어 박성철 제2부수상 서울 답방 7월 4일 12시에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게 된다.

7.4 공동성명은 ▲외세의존과 외세간섭 없는 자주적 해결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는 평화적 방법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한 민족 대단결의 조국통일 3대원칙이다. 분쟁과 대립의 남북관계가 민족의 화해와 단합, 조국통일로 나가는 공동의 이정표를 만들어 거족적 통일운동에 함께 나설 수 있다는 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공동선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4.19혁명정부를 뒤엎고 집권한 박정희가 왜 남북통일을 위한 7.4공동성명을 발표했을까? 박정희가 민족의 장래를 위한 철학을 가지고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지 않았다는 것은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1972년 유신헌법을 만들었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는 집권하자 말자 1962년 12월 26일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개헌을 주도 5차개헌을 통과시킨다. 1967년 5월 재선에 성공한 박정희는 기존의 3선 금지조항을 폐지하고 대통령의 재임을 3회까지 가능하게 해 ‘3선 개헌안’을 날치기로 국회를 통과시킨다. 6차 개헌을 통해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된 박정희는 국회 해산, 정당 활동 금지 등 비상계엄조치로 헌정이 중단된 상황에서 1인 장기집권체제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7차 개헌, ‘유신헌법’을 만들어 종신대통령으로서 권력기반을 강화 한다.

유신헌법 치하의 대한민국은 그야 말로 공포정치 그 자체였다. 학교는 동족이 원수라며 6.25가 되면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이라는 노래를 가르치고 반공 글짓기, 표어 포스트며 그리기 대회와 반공웅변대회를 열고 국기에 대한 맹세로 국가주의 충성을 강요당해야 했다. 동네 골목이며 전봇대에는 ‘수상하면 다시 보고 의심나면 신고하자’는 간첩신고 포스트며 간첩신고요령이 나붙고 교련과목을 신설, 여학교 학생들에게까지 제식훈련과 교련검열 행사를 치르기도 했다.

1972년 박정희가 추진한 7.4남북공동성명이란 민족의 장래를 위한 애국심에서 나온 결과가 아니었다. 그 해 10월 17일, 계엄과 국회해산 및 헌법정지와 같은 비상조치를 해놓고 10월 유신을 단행함으로써 그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비록 7.4남북공동성명은 박정희가 유신헌법을 만들어 장기집권의 야망을 채우기 위한 극약처방이기는 하지만 남북이 분단되지 24년 만에 맺은 최초의 합의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냉전체제를 종식시킨 긴장완화라는데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특히 24년간 적대관계에 있던 남북이 상호중상비방과 무력도발의 금지, 다방면에 걸친 교류를 실시하겠다는 약속은 남북관계의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었다는데 역사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30&table=yt_kim&uid=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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