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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는 박정희 유진산 이철승을 따라가는가?
[칼럼] 편법과 힘으로 반대파를 제압한 정치인의 끝은 늘 비참했다
임두만 | 2018-01-14 11:21:2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969년 9월 14일 새벽 2시50분경, 당시 여당인 민주공화당은 앞서 9월 8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헌법개정안을 개헌에 반대하는 야당이 농성중인 국회 본회의장을 피해 국회 제3별관 특별회의실에서 제6차 본회의를 소집. 전격적으로 변칙 통과시켰다.

뒤늦게 본회의장이 아닌 별관에서 본회의가 진행된다는 소식을 들은 야당 의원들은 울분을 토로하며 극력 저항했으나 이효상 국회의장은 개헌안이 가결되었음을 선포했다. 이 개헌안은 공화당 소속의원을 비롯한 개헌안 발의 서명자 1백18명 전원과 무소속 김용태 의원 등 3명과 정우회의 양찬우 의원 등 모두 1백22명이 참석, 참석의원 전원이 가표를 던져 개헌통과선 1백14표를 넘었다.

▲ 1969년 9월 14일 3선개헌안이 통과된 뉴스를 보도한 당시 동아일보 1면. 자료 발췌 © 임두만

야당인 신민당은 앞서 자당 소속으로 3선 개헌에 찬성, 발의안에 서명했던 성낙현, 연주흠, 조흥만의 의원직을 상실시키기 위해 소속의원 47명 중 이들 3명을 제외한 44명을 제명하고 당을 해산시켰음에도 결국 박정희와 그의 하수인들의 3선 개헌을 막지 못했다.

당시의 정당법은 탈당하거나 정당이 해산되면 소속 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하도록 되어 있었다. 따라서 신민당은 당론과 다르게 중정의 회유에 넘어가 개헌안에 서명한 3명의 배신자 의원들에게서 의원직을 박탈시킬 수 있는 방법은 당의 해산 뿐이었으므로 이 방법을 쓴 것이다.

이에 당시 신민당은 전격적으로 소속의원 44명을 제명하고, 그 직후 유진오 당수 자택에서 긴급 전당대회를 개최 당을 해산시켰다. 따라서 당을 배신하고 개헌안에 찬성한 3명의 의원은 의원직을 즉시 상실했으며, 제명당한 44명은 무소속 의원이 되었다. 하지만 그랬음에도 부정한 권력자의 권력욕과 이를 따르는 하수인들은 갖은 편법을 동원하는 충성으로, 국가의 근간인 개헌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당시 개헌에 앞장 선 사람들은 누굴까? 그리고 그들의 정치적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

공식적으로 3선 개헌을 가장 먼저 입에서 뱉은 사람은 공화당 윤치영 의원이다. 1968년 1월 7일 공화당 당의장 서리 윤치영은 국회 상임위원장과 공화당 시도 지부장을 초대, 주관한 서울 명동의 한 경양식당 오찬 에서 “단군 이래의 민족의 위인인 박정희 대통령이 계속 집권하기 위해서는 개헌을 해야 하며, 헌법상의 대통령 연임 금지조항을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발언하므로 개헌론 물꼬를 텄다. 이는 직전해인 1967년 재선된 박정희가 3선을 노린다는 것을 알고 미리 충성한 것이다.

역사는 윤치영을 권력 해바라기로 기록하고 있다. 이승만에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에 이르기까지 독재와 군부에 충성한 그는 윤보선 전 대통령의 한 살 어린 삼촌인데 조카가 박정희와 대선에서 겨루고, 후일 유신정권에 저항, 옥고를 치렀음에도 박정희에 죽도록 충성했다.

그리고 이런 윤치영 발언 후 당시 여권의 개헌작전은 공개적이었다. 청와대 비서실장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김형욱, 공화당 4인방 ‘백남억, 길재호, 김성곤, 김진만’ 등이 ‘3선 개헌’ 추진 주동이었다. 김종필과 김종필 추종세력이 반대하자 국민복지회 사건으로 김용태 의원 등 김종필계 의원들을 처리하고, 김종필은 ‘자의반타의반’ 외유를 나가게 했다.

그러나 3선개헌 후 공화당 4인방 ‘백남억, 길재호, 김성곤, 김진만’ 등은 오치성 내무장관 해임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중정으로 끌려가 치도곤을 당했다. 김성곤은 트레이드 마크이던 카이젤 수염을 김형욱에게 뽑혔다는 설이 나올 정도로 극심한 고문을 당한 뒤 실각, 정치권 전면에서 사라졌다.

중정부장 김형욱은 나중에 미국으로 망명, 박정희 독재권력을 미 의회에서 진술하는 등 반항하다가 ‘설’에 의하면 파리에서 양계장 닭들을 분쇄하는 분쇄기에 갈려 시신이 처리되었다고 할 정도로 처참한 말년을 남겼다. 또 이후락은 박정희 사후 박찬총 등에게 정풍운동 대상으로 몰리다가 전두환에게 부정축재자로 몰려 전 재산을 환수 당하고 이후 언론에서 사라진 뒤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내가 지금 왜 이 이야기를 장황하게 쓰는가?

2018년 1월 12일 금요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당내 반대파의 극렬한 반발을 무릅쓰고 바른정당과 합당을 위한 전당대회 개최 건을 통과시키려고 당무회의를 열었다.

▲ 당무회의 사회석에서 최경환 의원의 비판을 받고 굳어진 안철수 대표의 표정. © 임두만

결과만 말하면 이 당무회의는 정원 75명 중 의결 정족수를 단 1명 넘긴 39명이 남아 전당대회 안건을 처리하고, 전당대회 대표당원 500명을 새로 추천하는 안까지 가결시켰다.

그런데 합당 반대파들은 이 안건이 전당대회 정족수를 채우기 위한 편법이라고 반발한다. 당권파는 “그렇지 않다”고 부인하지만 그 말을 믿는 것은 아마도 그들 뿐일 것이다.

안철수 대표의 이 같은 편법과 강경 합당 드라이브는 지금 김관영 사무총장이 뒤에서 받치고 있다. 그리고 김 총장 뒤로도 이태규 국민정책연구원장, 민주당 입당파인 이언주 의원, 안철수 경호대장 쯤으로 불리는 이동섭 의원 등 4인방과, 최명길 전 의원이 의원직 상실로 최고위원직을 사임하자 그 자리에 임명된 김중로 의원도 핵심으로 자리하고 있다.

김관영 의원은 전북 군산, 이언주 의원은 경기 광명을이 지역구다. 이태규 김중로 이동섭 의원은 비례대표..이들이 바른정당과 합당 후 어떤 대우를 받게 될지는 모른다. 2012년 진심캠프, 2014년 새정치연합, 2016년 국민의당이란 정치결사체 조직 당시 안 대표를 도왔던 사람들,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안철수의 방패막이가 되고 포탄이 되었던 사람들 중 지금 남은 이는 이태규 뿐이다.

총선은 앞으로도 2년이 넘게 남았다. 하지만 나는 이들에게 불법이 아니라고 강변하면서 편법임은 애써 외면한 힘의 강제를 동원했던 정치인들의 말로를 생각하라고 권하고 싶다. 사용자의 필요에 의해 쓰임 받고 버려지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위의 3선개헌 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신민당 총재 유진산은 1971년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 당선이 불투명하자 후보등록 막판 자신을 전국구로 돌려 공천한 뒤 후보명단을 선관위에 등록하는 ‘편법’을 저지른  ‘진산파동’을 일으킨다. 신민당은 쑥대밭이 되었으며 선거를 일사분란하게 치를 수도 없게 만들었다. 이후 결국 신민당은 유진산의 이 악수로 인해 두 개로 쪼개지는 전당대회가 열리는 ‘엉망진창’ 당이 되었다.

즉 진산파동으로 당권을 잃은 유진산이 1972년의 전당대회를 맞아 당수로 롤백하려고 당시 범주류이던 고홍문, 김영삼, 이철승, 정해영, 신도환 등 이른바 진산 사단만으로 일반적 전당대회를 치른 것이다. 이들은 당시 유진산을 반대, 김홍일 당수를 밀고 있던 김대중 양일동 등 반대파들의 대회장 입장을 깡패들을 동원하여 막은 뒤 시민회관에서 전당대회를 열어 유진산을 총재로 뽑았다.

이에 김홍일 측은 이 전당대회를 인정할 수 없다면서 다음 날인 27일 효창동에서 김홍일ㆍ김대중ㆍ양일동계가 참석하여 다른 전당대회를 열고 김홍일을 당수로 뽑았다.

당은 하나인데 전당대회는 두 번 당수도 2명, 김홍일은 이후 유진산 총재 직무정지가처분을 신청하고 법통을 주장했으며, 유진산은 유진산대로 합법성을 주장하는 야당부재 사태를 연출하다가 두 달 후 10월 유신으로 국회해산과 정치활동의 중지라는 날벼락을 맞게 되었다. 그리고 유진산은 2년여를 살다가 1974년 사망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진산파동과 당권욕의 화신이었다는 평가 뿐이다. 김영삼을 제외한 이철승 정혜영 신도환 등은 위키백과에 그나마 기록되어 있으나 국민들에겐 남은 게 없다.

▲ 1972년 헌정을 중단시킨 박정희 대통령의 비상사태선포 소식을 담은 경향신문 발췌   
 
이철승은 1976년 범서방파 김태촌을 동원한 신민당 각목전당대회로 당권을 잡았다. 깡패들이 각목을 들고 김영삼 계와 그 지지당원들의 전당 대회장 입장을 원천봉쇄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당권을 잡은 이후 ‘참여하의 민주주의’라며 박정희 유신에 헙조, 낮에는 야당 밤에는 여당이란 별칭을 들었다. 한때 김대중 김영삼 이철승이라는 신민당 40대 기수 중 1인으로 날렸으며, 국회의원 8선이란 찬란한 명예가 있으나 우리 정치사에서 이철승을 정치지도자로 기록하거나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전두환 권력이 보호했다는 민한당 총재 유치송, 내각제 밀실 합의롤 노리다가 말년을 더럽힌 이민우, 이들에게 동조하면서 당권의 권력을 조금이나마 맛보려 했던 이택희 이택돈 홍사덕, 이들은 지금 모두 한때 찬란했던 자신의 이름을 더럽히고 정치권 어디에도 명함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안철수, 그러나 안철수는 박정희도 유진산도 이철승도 유치송도 이민우도 따라갈 수 없는 미천한 경력의 정치인이며 그들이 이끌던 정당에 비하면 국민의당은 말 그대로 조족지혈이다. 그런데 안철수는 지금 앞서 내가 거론한 정치지도자들의 나쁜 점만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오늘 당무회의 사회석에서 보여 준 그의 표정은 정치 5년의 재선의원으로선 볼 수 없는 탐욕이 서려있었다.

그는 과연 지금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래서 그는 당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미래를 향한 담대한 변화의 길에 우리가 함께 서있다. 대한민국의 정치를 바꾸고 대한민국의 새 역사를 만든다는 사명을 가져주시기 바란다”고 말한 것일까?

하지만, 그는 반대파의 항의에 밀려 이 모두발언도 다 마치지 못했다. 그리고도 그는 당당하다. 그래서 당무위 회의가 끝난 뒤 “대한민국 정당사에 이렇게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된 사례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자평했다. 웃을 수도 없는 코멘트다.

이후 합당 반대파인 국민의당지키기운동본부 최경환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안 대표는 밀실 최고위, 밀실 당무위를 긴급 소집해 보수 대야합 추진 불법 전당대회를 일방적으로 의결했다”며 “당원의 분노는 결국 개혁신당 창당의 열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는 도도히 흐른다. 정치인은 가도 기록은 남는다. 2018년 벽두에 벌어지고 있는 ‘국민의당 사태’와 안철수도 이 역사의 기록을 피할 수 없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격언을 생각해야 한다. 일방통행, 독재, 등의 비판을 받으면서도 ‘이것이 정치발전을 위한 길’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인지, 그는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한다. 편법과 힘으로 반대파를 제압한 정치인의 끝은 늘 비참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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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민폐  2018년1월14일 19시27분    
자한당,국당,바당 종자들 이땅에서 주권자인 국민들이 지지철화와 선택으로 퇴치시켜야
그래도 이땅 쬐끔은 사람사는세상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것

본질중의 본질 국민의식,기반을 이야기하는것이다.
그래서 아시다시피
임선생은 많이 비난하엿지만 이명박양정권에대한 비난에 앞서 나,우리에대해 각성 과 자성을
촉구하엿다

새정치.정치개혁.혁신 ,다당제등 그아무리 좋은말로 치장 포장하여도
다들
국민보다는
지들 이익위해 쇼하는것

나,우리 세금가지고 저들은 저푸른초원위에서 잘뛰어놀고있다
밥값 못하는저들
그 기반
국민들이 스스로 거두어 들여야



(67) (-45)
 [2/2]   칠수점꽤  2018년1월15일 10시05분    
대통병에 단단히 걸린 칠수를 보면서 참 답답하여 몇자 적어본다. 칠수는 양김처럼 결기도 없고 철학도 없고 오직 돈 몇푼 가졌다고 거만떨면서 안키호테 행세를 하고 있다. 인간시대에 나온 약사처럼 라오스에 다니며 가난한자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사람이 먼저 되어야한다. 나는 참으로 불쌍한 자들을 몇사람보고있다. 재산 23조가지고 공짜 태니스만치는 쥐바기와 100억대 재산 가지고 물려줄 자손하나 없으면서도 기부한푼 안하는 콧수염 교수나 천국을 외치며 수조원숨기고 미국에 집을 20채나 자진 조용기부부들이다. 나는 기초연금으로 살지만 위에 지적한 자들이 참으로 가련하고 불쌍해보인다
(50)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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