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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이야기 - ①
공자와 <사기>에 대하여
김갑수 | 2018-05-14 08:34:4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공자와 <사기>에 대하여

청도에서 기차를 타고 황하와 함께 태산을 우러러보며 대지를 달리다 보면 연주에 이르는데 그곳에 대성(大聖)의 고향 곡부가 있다. 그런데 곡부에 있는 공자의 유적들은 모두 한참 후대인 명·청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은 <논어>가 그렇듯이 공자에 얽힌 무성한 정보들이 후대에 적지 않은 가감첨삭이 있었으리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공자의 삶을 전달하는 가장 권위 있는 저작물로는 사마천의 <사기>가 꼽힌다. 공자에 관한 엄청난 양의 저작물들이 모두 <사기> 속에 있는 <공자세가>를 원형으로 출발한다. 여기에서 세가란 제후를 의미한다.

<사기>는 위대한 저서이다. 서구에는 논증의 체계를 구비한 실증적인 최초 역사서로 기본(Edward Gibbon, 1737-1794)의 <로마제국흥망사>가 있다. 그런데 사마천의 <사기>는 이 책보다 무려 18세기나 앞선 기전 1세기 초엽의 저작물이다.

역사서가 논증적이면서 동시에 실증적이라는 것은 다른 말로 바꾸면 ‘주관을 위한 객관적 서술’의 수준을 달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을 서양말로 하면 ‘히스토리오그라피(Historiographie)가 된다. 그렇다면 <사기>는 이미 기전에 달성된 인류 최초의 히스토리오그라피이다.

역사 서술의 정통 방법론이라는 기전체는 본기와 열전을 합성한 어휘이다. 따라서 <사기>의 주축은 당연히 <본기>와 <열전>이 된다. 본기는 제왕의 역사이고 열전은 인물의 전기이다. 그런데 사마천은 제왕을 지탱케 하는 제후 반열에 공자를 넣었다. 일개 포의서생(布衣書生)에 지나지 않았던 공자를 제후 반열에 올린 것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파격이었을 것이다.

물론 제왕이나 제후라고 해서 보편적인 인간의 격이 높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내가 <사기>를 썼다면 공자를 담담히 열전 편에 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대의 관점은 달랐으리라고 본다. 사마천은 제왕 진승을 제후로 격하시켜 넣기도 했다. 이런 사실들은 그만큼 사기의 주관성이 뚜렷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볼 때 위대한 저서치고 주관적 파격이 많다는 것을 다시 실감케 한다.

유방은 한나라 고조이다. 초나라 패왕 항우를 사면초가(四面楚歌)로 해하성에서 격파한 유방은 기원전 2세기경의 인물이다. 그는 제왕으로서 공자의 묘에 참배를 했다고 한다. 이것으로 보아 공자는 일찍부터 대성으로 자리 매김 되었던 것 같다. 그로부터 1세기 후의 사람인 사마천이 공자를 제후 편에 넣는 파격을 감행한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과도 관련이 있다. 이런 점에서 또한 완전한 주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위대한 역사서들의 조작성

보통 픽션이라고 하면 거짓으로 꾸며진 이야기를 말한다. 그러므로 현대소설을 픽션이라 하는 것이다. 픽션과 대조되는 말로 논픽션이 있다. 논픽션이라고 하면 수기나 전기 또는 역사를 가리킨다. 사람들은 논픽션이라고 하면 당연히 실화인 줄 안다.

그러나 논픽션이야말로 픽션보다도 오히려 허구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사람들은 픽션을 읽을 때 애초부터 픽션인 줄 알고 대한다. 홍길동이나 히스클립을 실제 인물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공자나 예수는 실존 인물로 믿는다.

그러므로 그들을 기록해 놓은 <사기>나 <복음서>의 내용은 거의 사실인 줄 알고 읽는다. 그런데 사실인 줄 알고 읽는 책에 허구가 끼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조작물이 된다. 고도의 사기꾼일수록 사기꾼의 이미지를 전혀 풍기지 않는 이치와 비슷한 것이다. 그러므로 소설은 허구이지만 역사나 전기는 ‘조작’이라는 삐딱한 말에도 마땅히 일리가 있다.

<사기>를 저술한 사마천은 공자보다 무려 400년 뒤의 사람이다. 그가 아무리 치밀하고 정직하다고 한들 어찌 공자의 삶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기술할 수 있었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마천은 해석되었던 사료를 재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논어한글역주>의 저자 김용옥은 <사기>나 <복음서> 같은 위대한 역사서들의 후대 조작설을 주장하는데 당연히 나는 그의 주장에 공감한다.

<참고> 김용옥이 말하는 <누가서>의 조작성

사람들은 예수가 베들레헴의 말구유간에서 태어난 것으로 믿고 있다. 그리고 그 오지의 말구유간에 진귀한 선물을 들고 경배했다는 동방박사의 뜬금없음과 정체 불명성을 굳이 의식하는 일은 없다. 예수는 갈릴리 나사렛 사람인데, 갈릴리 바다 북단에 있는 가버나움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예수가 태어났다는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의 근교로서 갈릴리에서 사막과 초원을 사이로 두고 천릿길이 넘는 위치에 있다. 그런데 마리아는 왜 베들레헴에까지 가서 이른바 원정 출산을 했을까?

<누가서>의 저자는 이 의문에 설득력 있는 답을 내고 있다. <누가서>의 저자에 따르면 예수가 태어난 해에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명에 의해 총호구조사가 실시되었다고 한다.

- 이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명을 내어 천하로 다 호적 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 첫 번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다 호적 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예수의 생부) 요셉도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고향인) 베들레헴이라 하는 동네로 정혼한 마리와와 함께 올라가서....(누가 2:1~5)

정혼이라고 하면 결혼하기로 약정하는 약혼 정도의 뜻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이미 마리아는 만삭의 몸이었다. 만삭의 임부를 대동하고 광야 천릿길을 건너 베들레헴에 간 것은 그곳이 요셉의 고향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요셉의 고향이 왜 베들레헴인지에 대해서도 해명이 없다.

김용옥은 이 기록의 조작성을 실증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로마의 식민지 호구조사는 예수 탄생을 전후한 시점에서는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예수가 헤롯왕의 치세 기간에 태어났다면 그것은 반드시 BC 4년 이전의 사건이 되어야 한다. 왜냐면 헤롯왕의 재임 기간은 BC 37~ BC 4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헤롯의 치세 기간에 구레뇨(퀴리니우스)가 수리아(시리아)총독이 된 적도 없다.

요컨대 예수의 베들레헴 원정 출산은 조작된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서>의 저자는 왜 이런 조작을 감행했을까? 예수를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도록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다윗의 후손으로 만들어 혈통의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골리앗을 무너뜨린 목동이자 훗날 영웅인 다윗의 고향이 바로 베들레헴이다.


위대한 고전을 믿어야 하는가

공자는 예수와 달리 처녀 잉태로 태어나지도 않았고 한 번 죽은 후 다시 살아나지도 않았다. <사기>의 공자세가에는 초자연적인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다. 옛날이야기에서 흔히 있을 법한 괴력난신(怪力亂神)이 전혀 없다. 요컨대 사마천이 말하는 공자의 삶은 예수에 비해 현저히 상식적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마천의 공자세가가 공자에 관한 진실만을 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지극히 순진한 발상이다. 위대한 인물에 관한 기술에는 어김없이 신화적 요소가 개입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다만 당대 농경사회 중국인들의 삶의 양식은 사막과 광야의 유대 유목민들처럼 어떤 초자연적인 사태에 관한 믿음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사마천의 공자세가는 공자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아니다. 사기 이전의 저작들인 <묵자> <맹자> <장자> <순자> <열자> <예기> 등 거의 모든 저작물에는 공자에 관한 언급이 있다. 이것으로 보아 당대 제자백가들에게 공자는 최대의 관심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제자백가들은 공자를 일방적으로 두둔하지는 않는다. 예찬하기도 하고 추앙하기도 하지만 비판하는 내용도 있고 반대하는 주장도 있다. 묵자는 공자를 성토했고 장자는 공자를 희화했다. 요컨대 당대의 최고 지식인들이었던 제자백가들은 공자라는 선구적인 인물을 놓고 진지하고 격렬한 토론을 벌인 것이다.

이러는 과정에서 공자의 삶에는 더욱 많은 가감첨삭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공자에 관한 정보들에는 의외로 많은 픽션이 있는 것이다. 사마천은 작은 픽션들, 즉 공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단편소설들을 모아 큰 픽션 즉 공자 장편소설을 만든 것이고 이것이 바로 <공자세가>이다.

공자세가의 조작성은 벌써 제목에서부터 나타난다. 벼슬하지 않은 포의서생 공자를 일약 제후로 올려 세가 편에 넣은 사실부터가 명백한 조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문득 이런 말이 떠오른다. “책에 적혀 있는 것을 모두 믿을 바에야 차라리 나는 모든 책을 버리겠다.”


공자를 존경해야 하는가

공자는 세속적 관점에서 매우 천한 신분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노인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10대 소녀였다. 공자는 그의 아버지가 아들을 얻기 위하여 여자를 구해 ‘야합’한 결과의 소생이다.

공자의 이름은 구(丘), 우리말로 언덕이라는 뜻이다. 그의 부모가 이구산에서 빌어 그를 낳았다고 해서 이름을 구라 했다는 의견도 있고 이마가 돌산처럼 생겨서 붙인 이름이라는 주장도 있다. 공자의 아들 이름은 리(鯉), 잉어라는 뜻이다. 공자가 아들을 낳았다고 하니까 누군가가 산후 보양을 위해 선물한 잉어를 보고 즉석에서 지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사기>에는 당대의 국군(國君)이었던 노나라 소공이 사신을 보내 잉어를 선물했다고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예수에게 경배한 동방박사 이야기처럼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무당의 아들이며 무명의 시골 청년이었던 공자에게 국군이 출산 선물을 보냈다는 것부터가 공자를 신화화하기 위한 조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공자가 이혼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당대 이혼이란 협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일방적으로 남자가 여자를 내쫓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내쫒긴 여자가 죽자 아들 리(잉어)가 슬피 울었다. 공자는 슬피 우는 아들 리를 나무란다. 만약 내쫓은 부인이 아니라면 곡을 하는 아들을 나무랐을 리가 없다.

또한 나중에 아들 리도 이혼한다. 쫓겨난 리의 부인은 위나라에 가서 서 씨와 재혼한다. 공교롭게도 또 리의 부인이 죽자 이번에는 공자의 손자 자사가 슬피 운다. 그러자 공 씨의 문중인들이 자사에게 주의를 준다.

“서 씨가 죽었는데 어찌 공 씨 사당에서 곡을 합니까?”

그러자 공자의 손자 자사는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더니 자기 집으로 가 몰래 울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공자의 손자 자사도 이혼한다. 그리고 똑같이 자사의 부인이 죽자 이번에는 자사의 아들 즉 공자의 증손자 자상이 아예 곡도 하지 않는다. 주변사람들이 자사에게 “너무 매정하지 않는가?” 라고 말하자 이번에는 자사가 아들을 두둔한다.

“그 여자는 내 마누라가 아니므로 자상의 어머니도 아니다. 그러니 곡할 필요도 없다.”

3대에 걸쳐 부인을 내쫓은 남자들. 그리고 옛 여인이 죽자 그 여인에 대한 감정을 옹졸하게 표출한 남자들, 그들이 누구란 말인가? 바로 공자와 그의 후손들이다. 손자 자사는 그 위대한 저서 <중용>의 저자이다.

이것으로 보아 공자 패밀리는 찌질이(?)의 집단 같아도 보인다. 좋게 말해 희로애락을 절제하지 못하는 범상한 인간들이었다. 우리보다 하등 나을 거라고는 없는 수준이다.

이로써 볼 때, 세칭 위대하다고 하는 인간들이라고 해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들의 신화를 벗겨내고 그들의 스캔들을 폭로하여 그들을 저속화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그러나 조작되는 신화로 그들을 터무니없이 전인적으로 오해하는 것보다는 단연 건강한 일이다.

“사람을 존경하지 말라.”

이것은 내 삶의 좌우명 중 하나이다. 미상불 사람이 사람을 존경(받들어 공경)한다는 것은 이성의 일부를 허물기 시작하는 것이다.


위대한 탄생에는 신의 저주가 숨어 있다?

공자의 아버지는 늙은 군인이었다. 공자의 어머니는 이름도 알 수 없는 무녀(巫女)였다. 늙은 군인은 아들을 얻기 위해 비천한 신분의 무녀를 사서 동침을 했다. 그래서 사마천은 공자의 탄생에 ‘야합’이라는 용어를 썼다.

한편 예수는 공자보다 더 비천한 출생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미혼모이다. 예수는 냄새나는 마구간에서 탯줄을 끊었다. 외경 <야보고서>에는 마리아가 창녀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또한 2세기 말의 이방인 철학자 켈수스는 마리아의 상대역은 로마 보병이었다고 주장했다. 아무튼 예수가 사생아라는 김용옥의 발언은 합리적이다.

이런 점으로 보아 위대한 탄생에는 으레 신의 저주가 숨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나는 그런 주장이 합리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비정상적인 출생은 그 사람에게 정상적인 삶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정상적으로 살아보아야 남들은 그를 정상으로 인정하지 않을 터이기 때문이다.

남이 그렇게 보지 않더라도 당사자 자신은 뭔가 결핍감과 불운감을 느끼며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그 사람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범상치 않은 삶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부정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일부 예외의 경우 그 사람은 아주 비범한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예수가 그랬을 것이고 공자 또한 비슷한 경우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독창적이고 매혹적인 주장이라고 해서 언제나 정당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위대한 탄생에 신의 저주가 숨어 있다’는 주장은, 위대한 탄생에는 신의 축복이 점지된다는 주장이나 진배없이 근거 없는 것이라고 본다. 위대한 탄생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위대한 삶은 가능하다는 것이 나의 관점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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