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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꿀 수 있는 100권의 책 41
손자병법, “싸우지 말고 이겨라, 싸우게 되면 빨리 끝내라”
김갑수 | 2018-01-07 12:17:3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손자병법, “싸우지 말고 이겨라, 싸우게 되면 빨리 끝내라”

병가는 전쟁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룬 학단이다. 병가의 비조는 흔히 손무(孫武)로 알고 있다. 손무는 우리가 익히 들은 바 있는 《손자병법》의 저자이다. 하지만 그는 신비에 싸여 있는 인물이며 실존 여부 자체도 불투명하다.

《손자병법》은 춘추시대 오왕 합려(闔閭)를 섬기던 손무(孙武)가 쓴 것으로 그동안 널리 알려졌으며, 한편 손무의 손자로써 전국시대 제(齐)의 전략가 손빈(孙臏)이 저자라는 설도 있었으나, 1972년 4월 은작산(银雀山) 한조(汉朝)의 무덤에서 발견된 죽간을 통해 손자병법과 손빈병법(孙臏兵法)이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연구 결과 손무의 기록이 손자병법의 원본이고, 손빈의 것은 제나라의 손빈병법이라는 것이 현재까지 주류 학계의 추정이다.”( 《중국 시사문화 사전》 )

손자병법에 대한 두 가지 오해가 있다. 먼저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 즉 ‘적을 알고 나를 알면 100번 싸워도 위험하지 않다’는 《손자병법》에서 가장 유명한 말이다. 이 말에 있듯이 사람들은 손자병법이 전쟁에서의 ‘앎’, 즉 지략을 중시한 책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손무는 이에 앞서 전쟁에서 선제적으로 중요한 것은 경제와 정치임을 분명히 해 두었다. 그는 “승리할 수 있는 군대는 먼저 승리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나서 싸움을 걸고 패배하는 군대는 먼저 싸움을 걸고 나서 승리를 구한다”라고 했다.

또한 그는 군주라고 해도 전쟁에 개입할 수 없는 세 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군대의 진퇴, 즉 전진과 후퇴 문제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둘은 군내 내부 사정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셋은 군대 내부의 인사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믿을 수 있는 장군을 뽑아 맡기되, 맡긴 뒤에는 지휘관에게 전쟁의 전권을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음으로 ‘병법’이라고 하니까 손무가 전쟁에 찬성하는 호전론자인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손무는 호전론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전쟁에 반대만 하는 반전론자도 아니다. 손무는 피할 수 없을 때, 즉 전쟁을 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게 될 상황이라면 전쟁을 해야 하고, 전쟁을 하게 될 경우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손무에게는 신전(愼戰)이라는 말이 적합하다. 전쟁을 삼가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다.

손무가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첫째 요인으로 꼽은 것은 ‘전쟁의 정당성’이다. 그는 나라가 아무리 크더라도 전쟁을 좋아하면 망한다고 단언한다. 또한 그는 전쟁 중에도 민생 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음으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전쟁에 대한 동양과 서양의 인식 차이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현대의 초강대국 미국은 전쟁을 벌였다 하면 상대국의 도시를 공격한다. 우리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을 알고 있으며, 미군의 이라크 바그다드 함락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최근 들어 군사 전문가들은 인구가 밀집해 있는 도시를 공격할 경우 불과 1시간 내로 100만 명 이상이 죽을 수 있다고 말한다.

《손자병법》에서는 공성전(攻城戰), 즉 적국의 도성을 함락시키는 전투를 최악의 병법으로 간주하여, 전투 이전에 승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손자병법》의 전쟁에는 3등급이 있다.

첫째, ‘벌모(伐謀)’가 최상의 것이다. 벌모는 적의 의도를 미리 읽고 사전 차단하는 것이다. 이것이 통하지 않으면 외교수단을 강구해서 적을 고립시켜 침략 의지나 저항 의지를 좌절시켜야 한다. 이것마저 안 되었을 때 최후로 전쟁을 선택해야 한다.

둘째, 전쟁이 선포되었을 때는 온전하게 승리를 확보하는 ‘전승(全勝)’을 목표로 한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부전승’은 전승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이다. 미국의 전쟁은 대부분 ‘전승’이 아닌 ‘완승(完勝)’을 추구한다.

셋째, 불가피하게 전투가 개시되었을 때는 승리하든 패배하든 ‘속전(速戰)’으로 끝내야 한다. 속전이라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속전이 아니면 패전했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승전을 거두어도 피해가 많은 승리, 즉 ‘상처뿐인 영광’이 되기 십상이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다.”, 이것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Carl Phillip Gottlieb von Clausewitz, 1780~1831)가 《전쟁론》에서 한 말이다. 서양에서는 이 책을 최고의 병서로 친다. 그러나 《전쟁론》은 이보다 무려 2400년 전에 나온 《손자병법》에 비하면 현저히 철학적 고뇌가 없는 저작물이다.

《전쟁론》은 적의 투항보다는 적의 섬멸을 목적으로 하는 병법이다. 게다가 은근히 전쟁을 즐기는 듯한 ‘호전론’의 성격을 띠고 있다. 아무리 양보해서 말하더라도 전쟁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평화를 위한 것이라야 한다.

《손자병법》은 불가피한 상황의 전쟁론, 즉 ‘신전론(愼戰論)’이다. 그럼에도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이 병서의 최고 고전인 양 떠받들어지는 것은 아편전쟁 이후 200년 가까이 서양이 세계의 문화적 주도권을 잡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제갈공명의 칠종칠금(七縱七擒) 고사를 알고 있다. 제갈공명이 굴복하기 싫어하는 적장 맹획을 7번 잡았다가 7번 풀어 준 이야기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제갈공명은 맹획에게 진정한 승복을 받을 수 있었다.

제아무리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적에게 정신적인 승복을 얻어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별 의미가 없다. 미국과 전쟁해서 진 나라치고 미국에 정신적으로 승복한 나라가 있는가? 우선 미국은 더 이상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진정 불가피해서 일으킨 전쟁이라고 해도 미국은 《손자병법》에서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장자(莊子), 시대를 간파한 자유의지의 기인(1)

“《장자》는 인류 문화사에서 참 기이한 책 중의 하나이다. 《장자》가 그 모습을 드러낸 이래 그와 관련된 연구는 가히 도서관을 메울 만큼 넘쳐난다고 말할 수 있고 지금도 매해 수많은 연구 논문과 저술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장자는 도대체 왜 이처럼 엄청난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장자의 미학, 소요유》 저자 천왕헝)

장자는 인간 정신의 자유가 무엇인지를 탁월한 방법으로 밝힌 기인이다. 그는 인간의 본성이 자유라고 보았는데, 자유라는 말 대신 ‘소요유(逍遙游, 자유의 경지에서 한가롭게 노닐다)’를 썼다. 소요유는 장자의 첫 번째 장인데 사실 《장자》라는 책의 출발점이자 종작점이기도 하다.

‘인간들은 그 넓은 대지에 금을 그어 놓고 자기 땅이라고 하는데, 정작 그들은 이 대지의 맑은 대기와 청량한 이슬에 제대로 눈길 한 번 준 적이 없다.’

언젠가 읽은 어느 외국 소설의 한 구절이다. 이것은 짐승인 말(馬)이 소설의 화자가 되어 인간들의 땅 소유욕을 비판한 말이다. 이 말(馬)의 말마따나 ‘그 넓은 대지’를 진정으로 소유한 자는 인간일까 말일까?

장자는 진정 이 소설의 말처럼 살다 간 인간이다. 그는 1000호의 영지를 가진 사람이 소유한 나무 밭에서 말단 관리인으로 일하며 살았다고 한다. 《장자》에 따르면 그는 입에 풀칠하는 수준의 가난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는 진정으로 생을 즐길 줄 아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주관자였다.

사실 장자를 학문적으로 접근하면 다소의 실망과 혼선이 생긴다. 철저히 자연과 동화되기를 주장하는 그의 가르침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장자에 비해 현저히 현실적인 노자를 수용하기에도 벅찬 우리로서는 장자를 받아들이기가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다.

장자는 학문적인 것과는 별도로 실제의 삶으로만 볼 때, 제자백가 중 가장 언행이 일치된 실천적 삶을 산 인물이다. 그의 탈속적이고 기이한 삶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그는 단 한 번도 재물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송나라 사람 중에 조상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진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그런데 갈 때는 수레가 겨우 몇 대 뿐이었는데, 진왕에게 유세하고 돌아올 때는 100대의 수레를 몰고 왔다. 그는 장자를 만나 이것을 자랑했다.

“무릇 자네처럼 궁벽한 마을의 좁고 지저분한 골목에서, 곤궁하게 짚신이나 짜면서 겨우 입에 풀칠하는 식으로, 비쩍 마른 목덜미에 누렇게 뜬 얼굴을 하고 사는 것은 내가 잘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단 한 번에 만승대국의 군주를 깨우쳐 주고, 따르는 수레가 100대나 되게 하는 것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다.”

이에 장자가 초연히 질책하기를, “진왕이 병이 나 의원을 부르면 통상 종기를 터뜨리고 부스럼을 없애는 자는 수레 1대, 치질을 핥는 자는 수레 5대를 얻는다. 치료 부위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많은 수레를 얻는다. 그대 또한 진왕의 치질을 핥아준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무슨 수로 하사 받은 수레가 그토록 많다는 말인가? 당장 이곳을 떠나도록 하라.”

당시 수레 1만 대면 왕, 1천 대면 제후의 신분에 해당되었다. 수레 1백 대면 장관급의 성공을 한 셈이었다. 장자는 짚신을 짜서 생계를 유지했지만 비굴하게 부귀영화를 누릴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장자는 자존심이 하늘을 찌를 정도였으며, 자기 앞에서 허튼 수작을 하는 사이비들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는 고매하면서도 신랄하게 엿 먹이는 레토릭을 구사할 줄 알았다.

한번은 장자가 친구 혜시를 만나러 양나라에 간 적이 있다. 당시 혜시는 양나라의 재상으로 있었다. 그런데 혜시 주변에서 말하기를, “장자가 오면 필시 그대의 재상 자리를 빼앗을 것이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에 현혹된 혜시는 군사를 풀어 장자를 체포해 오라고 령을 내렸다.

이 소식을 들은 장자는 스스로 혜시를 찾아가 말했다. “남쪽에 원추라는 이름의 새가 있는데 그대는 아는가? 원추는 남해에서 날아올라 북해로 날아가는데, 오동나무가 아니면 머물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고, 예천(醴泉, 단물이 솟는 샘)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 마침 솔개가 썩은 쥐 한 마리를 얻게 되었다. 솔개는 원추가 자기 옆을 지나가게 되자 썩은 쥐를 빼앗길까 두려워 위를 올려다보며 ‘꽥’ 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대도 재상 자리가 걱정돼 나에게 ‘꽥’ 하고 소리를 지른 것인가?”

장자가 남을 혼내 준 이야기는 10여 개가 더 있다. 그렇다면 장자는 왜 이토록 신랄하게 그것도 예외를 허용치 않고 즉석에서 혼내 준 것일까?

남쪽 바다에 숙(儵)이라고 하는 왕과 북쪽 바다에 홀(忽)이라고 하는 왕, 가운데 땅에 혼돈(混沌)이라고 하는 왕이 있었다. 숙과 홀은 때때로 혼돈의 땅에서 만났다. 혼돈은 그들을 잘 대접했다. 이에 숙과 홀은 혼돈의 은덕에 보답하고자 의논했다.

“사람들은 모두 일곱 개의 구멍이 있다. 그것으로 보고 듣고 먹고 숨을 쉬는데, 이 분에게만 없으니 구멍을 뚫어 주자.”
그들은 하루에 구멍 하나씩을 내 주었다. 그러자 7일째 되는 날 혼돈은 죽어 버렸다.
- 《장자》, 〈응제왕〉 편

이 이야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논의하자면 별의별 해석이 다 나올 것이다. 이럴 경우에는 아주 단순하게 말하는 것이 하나의 유용한 방법이 될 수가 있다. 이 이야기는 외물과, 외물을 인식하는 인간의 감각조차도 모두 ‘인위’이며, 인간은 이 인위로 인해 망해 버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이 이야기에는 장자 특유의 ‘무위 철학’이 압축되어 있는 것이다.

《장자》의 다른 이야기를 하나 더 읽어 보자.

저 먼 북쪽 깊고 어두운 바다에 곤(鯤)이라는 커다란 물고기가 사는데, 이 물고기가 새로 변하여 하늘로 솟구쳐 날아오르면 대붕(大鵬)이라는 새가 된다고 한다. 이 물고기와 새는 너무나 커서 그 크기가 수천 리고, 대붕이 되어 날아오르는 높이만 해도 구만 리나 된다고 한다.(《장자》, 〈소요유〉 편)

이 이야기는 ‘연작(제비와 참새)이 어찌 대붕의 뜻을 알리요’라는 말의 출전이다. 여기서 대붕의 비상(飛上)은 인간의 극한적인 정신적 자유를 표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대붕에는 인간 장자의 캐릭터가 투사되어 있기도 하다. 이처럼 그는 ‘탈 인간’을 원망(願望)한 인간이었다. 그렇다면 장자의 눈에 비친 세상 사람들은 모두 연작에 지나지 않았을 터이다.

《장자》 〈추수〉 편에 있는 다른 이야기 하나를 더 읽어 보자. 하루는 장자가 호젓한 강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이때 두 사람이 풀숲을 헤치며 다가왔다. 그들은 초나라 왕이 보낸 대부들이었다.

“왕께서 선생님의 학식과 인품을 높이 치하시면서 중책을 내려 정치를 맡기고 싶어 하십니다.”

장자는 손에 쥐었던 낚싯대를 놓으며 말했다. “초는 신구(神龜)라는 3천년 묶은 거북이 등딱지를 묘당 안에 모시고 있다고 들었소. 듣건대 왕은 그것을 비단 천으로 싸서 호화로운 상자 안에 소중히 받들어 모신다 하더군. 그런데 그 거북이가 죽어서 그와 같이 소중하게 여기는 등뼈가 되기를 바라겠소, 아니면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끌고 다니기를 바라겠소?”

두 대부는 “차라리 살아서 꼬리를 진흙 속에 끄는 것을 바라겠지요.”라고 대답했다. 장자가 그 말을 받아 말했다. “그럼 돌아가시오. 나도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며 살겠소.”

공자는 도가 없는 시대에 부귀해지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장자는 시대를 간파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 자신이 시대와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설령 벼슬을 해서 뜻을 펼치려고 해도 기만적인 정치현실과 정치모리배들의 협잡으로 뜻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통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자, 죽음을 초극한 소통의 달인 (2)

흔히 ‘노장철학’이라고 하여 장자는 노자와 함께 묶어 논의되어 왔다. 노자와 장자는 공히 ‘무위’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이것은 피상적인 분류라고 보는 것이 지배적이다. 기원 전 1세기 사마천이 《사기》를 저술하면서 〈노자한비열전〉을 두어 노자를 법가인 한비자와 함께 묶어 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사마천이 노자의 ‘무위’가 장자의 ‘무위’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노자의 무위는 치국을 위한 방법론으로써 ‘무위지치(無爲之治)’의 성격을 갖는다. 반면 장자의 무위는 치국과는 무관한 개인적 우주관일 따름이다.

장자는 치국의 도를 언급한 적이 없다. 그는 치국에 관심을 기울이는 정치가들과 학자들을 단지 비난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장자를 제자백가에 포함시키는 것 자체에도 무리가 있다. 제자백가의 개념 속에는 ‘치국의 도를 추구한 사상가’라는 뜻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장자가 치국에 관심이 없었다는 증거도 없다. 그 역시 제자를 이끌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 나름 제후를 만나 유세도 했다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그의 천하주유는 다른 제자백가처럼 현실정치에 참여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세속의 가치에 얽매여 자신의 타고난 삶을 해치는 어리석은 인간들을 깨우쳐 주려 한 것으로 보인다.

장자는 세인들의 어리석은 모습을 목격할 때마다 특유의 비꼬는 말투로 사정없이 조롱, 조소하며 비난을 퍼부었다. 그의 비난 대상은 주로 당대 주류를 차지하던 유가와 묵가들이었다. 물론 조롱과 조소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을 터이다. 장자의 조롱과 조소에는 도저히 구제할 수 없는 인간 세상을 안타깝게 여기는 연민이 짙게 배어 있었다.

장자는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조차 특유의 조롱과 조소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부인이 죽었을 때도 문상 온 사람들 앞에서 철퍼덕 두 다리를 펴고 앉아 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물론 이것은 죽음을 슬퍼하는, 또는 슬픈 체하는 사람들을 조롱하기 위한 위악적 행동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장자의 눈에는 자기도 곧 죽을 거면서 타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이 우스워 보였던 것이다.

장자에게 인간의 죽음이란 사계절의 순환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놀라운 것은 장자가 자기 부인의 죽음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죽음에까지도 철저히 자기 우주관을 적용하며 달관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장자는 임종하면서 제자들에게 자기 시신을 산에다 아무렇게나 던져 놓으라고 일렀다. “나는 천지를 관곽으로 삼고, 해와 달을 한 쌍의 구슬로 삼고, 밤하늘의 별을 옥으로 삼고, 만물을 저승길의 선물로 삼을 것이다. 이 정도면 내 장례에 필요한 도구가 다 갖춰진 것이 아니냐? 이에 무엇을 더하려 하는가?”

이에 제자들이 걱정하며 말하기를, “저희는 까마귀나 솔개가 선생님의 시신을 뜯어먹을까 두렵습니다.”

“풍장을 하면 위에서 까마귀와 솔개의 먹이가 되고, 매장을 하면 밑에서 땅강아지나 개미의 먹이가 된다. 저쪽 것을 빼앗아 이쪽에 주고자 하면 이는 아무래도 불공평한 게 아니냐? 사람들은 죄다 눈으로 확인하는 것만 진실이라고 믿는 인위의 어리석음에 빠져 있다. 모두 외물에서 그 공을 찾고 있으니 이 또한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장자는 이런 말을 남기고 죽었다. 그의 장례가 어떻게 치러졌는지를 알려 주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이로부터 2300년이 지나 한국의 한 시인은 아래와 같은 시를 세상에 발표한다.

내 세상 뜨면 풍장 시켜 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중략)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白金)조차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다오
바람을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
- 〈풍장(風葬)〉, 황동규

우리는 흔히 광장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쉽게 친해진다. 같은 당원, 같은 노조원의 경우라면 더욱 더 가까운 사이인 줄로 안다. 하지만 ‘촛불’에도 분열이 있고 당과 조합에서도 갈등과 알력이 발생한다. 이것은 다른 사회적 만남이나 진배없다. 왜 그런 것일까? 이에 관해 장자에게 한 수 지도를 받아보자.

서주(西周)시대만 해도 140개의 소국이 옹기종기 살아갔지만 동주의 춘추시대를 거쳐 전국시대에 이르면서 7개 강대국으로 정리되었다. 각 나라는 망하느냐 살아남느냐의 갈림길에서 부국강병을 추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에 따라 국가는 이전의 부족사회 단계와 비교할 수 없는 강한 권력을 행사하면서 백성에게 새로운 의무를 부과했다.

물이 부족한 웅덩이에서 물고기는 서로 부딪히며 팔딱거리지만 넓은 바다 속에서는 타자를 상관하지 않고 헤엄칠 수 있다.

“웅덩이의 물이 마르면 물고기는 살기 위해서 팔딱팔딱 거리며 땅위에 달라붙어서 서로 촉촉한 물기를 끼얹어 주고 물거품으로 적셔 준다. 이것은 물고기가 넓은 강과 호수에서 서로 부딪히지 않으면서 지내는 것보다 못하다. 역사적으로 요를 성군이라 예찬하고 걸을 폭군이라 비방했다. 이것은 서로를 잊어버리고 변화의 도와 더불어 바뀌어 가는 것보다 못하다.”(《장자》, 〈대종사〉 편)

장자는 가뭄이 심한 여름날 바깥나들이를 했다. 그는 길을 걷다가 웅덩이의 물이 말라 물고기들이 서로 몸을 비비며 숨을 헐떡거리는 장면을 보았다. 그는 물고기가 살려고 아등바등 하는 모습에서 강한 나라를 만드느라 경쟁하면서 고통으로 신음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읽어냈다.

넓은 강이나 호수 그리고 바다에서는 물고기들이 이럴 필요가 없다. 그 속에서는 오히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야지 서로 가까이 다가간다면 불편해진다. 넓은 물의 물고기는 타자에 의지하지 않고 각자 생태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 즉 남이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내가 알 바가 전혀 아닌 것이다.

우리는 소통에는 의존이 있어야 하고 연대에는 간섭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장자는 어떤 목적을 위해 서로 강하게 의존하거나 서로 간섭하는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장자는 연대와 소통의 광장을 거부하고 단절과 고독의 움막으로 들어가려 했던 것일까?

우리가 진정한 연대와 소통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장자의 말 중에서 ‘망(忘)’과 ‘화도(化道)’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물고기건 사람이건 타자와 관계를 맺으면 그 사이에 교류와 기억이 생기게 된다. 이를 통해서 서로의 관계는 첫 만남처럼 되지 않고 관계의 지속이라는 관성을 띠게 된다. 이런 관성이 진정한 소통과 연대를 오히려 해치는 것이다.

장자는 관계를 갖더라도 관계에서 생기는 것을 모두 잊으라(忘)고 했다. 예컨대 내가 어제 한 사람을 길에서 보고 오늘 또 봤다고 하자. 보통은 “어제 보고 오늘 또 보네요. 우린 서로 인연인가 봅니다.”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게 나온다. 만남의 반복이 ‘인연’으로 묶이게 되는 것이다.

장자는 타자와 인연으로 묶는 것을 반대한다. 장자에 의하면 ‘나’는 어제 한 사람을 보고 오늘 한 사람을 본 것이다. 어제의 그 사람과 오늘의 이 사람은 같은 사람이 아니어야 한다. 즉 나는 같은 사람을 두 번 본 것이 아니다.

이로써 사람은 서로에 대해 인연으로 묶이는 것이 아니라 늘 처음처럼 낯선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람의 사이는 손님의 관계로 있을 뿐이다. 우리는 손님에게 뭘 요구하지 않고 환대한다. 손님에게 나와 같은 생각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렇게 우리가 손님으로 남아 있을 때 부담도 없고 간섭도 없이 진정한 소통과 연대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장자가 말하는 ‘화도(化道)’다. 일찍이 공자는 가까이 하면 불손해지고 멀리 하면 원망하는 사람들을 경계하라고 일렀다. 또한 공자는 “군자는 화합하지만 같아지지는 않는다(和而不同, 화이부동).”라고도 했다. 사람은 각자 제 갈 길을 그때그때 다르게 가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서로에게 동화(同化)나 합일을 요구하지 않는다. 장자가 추구하는 나라는 타인과 서로 손님으로 만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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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민폐  2018년1월7일 20시07분    
확신범

지피지기없이 맹종 추종의 영역이다
세상사 나의 우리의이익위해 맹종 추종 할수있지요
그러나 남의이익위해 도구 불쏘시게로 이용당하는 놀아나는 꼭두각시 되지말라는것

대표적으로
빨갱이 장사에 이용당하는
자한당류 , 안보는 보수라 말하는 유승민,안철수류 과들에게 놀아나는 우리 개,돼지들이다
장사하는 저들 주체들이야 지지와 표로 재미좀 보겟지만
놀아나는 이땅 개,돼지들은 꼭두각시 그이상 그이하도 아니다

진실의길에서조차도
내보기에 놀아나는 꼭두각시들이 적지않아 보인다
생각의차이라는 변은 그져 이빨삼치기이고 등신 꼴갑떠는것 떠는것

지피지기
적을알고 나를 아는것
나,우리의 공동선 이익위해 말이다
(63) (-38)
 [2/2]   모비드엔젤  2018년1월7일 21시46분    
도대체 뭔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좀 쉽게 써라
(64)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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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도 1인미디어와 조선일보, 또...
                                                 
학교자치 반대하면서 민주적인 학...
                                                 
6.12 조미회담과 6.13 선거를 예측...
                                                 
왜 당신은 계란을 바위에 던지시나...
                                                 
공기업 적자, 정치인-자본-관료의 ...
                                                 
美 국무부, 3차 남북정상회담에 “...
                                                 
한반도에서 유엔 헌장 정신을 구현...
                                                 
천안함 ‘1번 어뢰’ 에 감긴 철사...
                                                 
대한항공의 성장, ‘관피아’의 전...
                                                 
문대통령, 15만 北주민 향해 “함...
                                                 
기자들이 비웃었던 문재인 대통령...
                                                 
천안함의 진실을 지킨 사람들과 박...
                                                 
‘들러리’의 추억
                                                 
전성기
                                                 
[이정랑의 고전소통] 벌불천열(罰...
                                                 
유권자, 즉 국민이 ‘단일화’를 ...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기자회견...
                                                 
“근혜를 보면 그 아부지를 생각한...
                                                 
[오영수 시]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
2662 천안함 ‘1번 어뢰’ 에 감긴 철사...
2370 조선일보 기자가 왜곡한 文 대통령...
2286 손석희 앵커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
2229 김부선 김영환의 이재명 공격, 언...
1865 OECD 경제보고서로 밝혀진 충격적...
1696 국회의원 나리들… 하늘이 부끄럽...
1530 친문계, 김진표 대표-전해철 사무...
1496 기자들이 비웃었던 문재인 대통령...
1443 친위쿠데타 의심됐던 소름 돋는 그...
1365 [여인철의 음악카페] 김희숙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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