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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명칭에 담긴 허장성세와 일방성
[조선역사 에세이] 54 ‘광해군 띄우기’는 만선사관(滿鮮史觀)의 음모
김갑수 | 2017-01-11 12:30:2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명칭에 담긴 허장성세와 일방성
 [김갑수의 조선역사 에세이] - 54

정신승리법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중국 루쉰의 소설 『아큐정전』(阿Q正傳)에서 비롯된 말이다. 소설의 주인공 아큐’는 동네 깡패에게 얻어맞고는 “나는 아들한테 맞은 격이다. 아들뻘 되는 상대와는 싸워서 안 되는 것이니, 나는 패배한 것이 아니다”라고 자위한다.

이처럼 정신승리법은 싸움이나 전쟁 또는 논쟁 등에서 패배한 측이 자기 책임을 회피하고 패배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허장성세의 사고방식을 말한다. 이것은 일종의 자기 합리화를 통한 심리적 방어기제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1592년 일어난 임진왜란을 알고 있다. 말의 뜻은 ‘임진년에 왜가 일으킨 난동’이다. 그런데 임진왜란은 7년 동안이나 조선 전역을 고통과 혼란으로 몰아넣은 전쟁이었다. 일본은 이미 16세기 중엽부터 명의 책봉 체제에서 탈퇴하면서 명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 전쟁에는 명나라가 참전했으며, 명 참전의 후과로 누르하치의 후금이 만주에서 급부상하여 명에 도전했고 끝내 중원을 제패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어서 후금에서 이름을 바꾼 청은 아시아는 물론 세계 최강국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임진왜란이 남긴 파장은 넓고도 길었다.

임진왜란은 이른바 ‘동아시아판 세계대전’이었다. 그런데 ‘난동’이라니? 한국인들은 임진왜란의 후속전쟁도 정유재란(1597년)이라고 부른다. 물론 이런 용어들에는 무고한 나라를 침략하여 막심한 고통을 안긴 적국에 대한 원한과 적개심이 담겨 있다. 다시 말해서 감정적인 용어라는 것이다. 하지만 감정은 역사를 왜곡시키는 주범이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에서는 이 전쟁을 뭐라고 부를까? 먼저 중국의 공식 명칭은 ‘항왜원조전쟁(抗倭援助戰爭)’이다. 일본에 대항하여 조선을 도운 전쟁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도왔다’는 의미가 강조되기는 했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그렇게 부를 수도 있는 일이다.

이것은 중국이 20세기의 한국전쟁을 ‘항미원조전쟁’이라고 부르는 이치와 같다. 그래도 아무튼 두 명칭 모두 ‘시혜자’의 입장을 피력하는 용어인 것만은 틀림없다.

일본의 경우 과거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정벌’이라고 불렀다. ‘정벌’은 ‘죄 있는 무리를 무력으로서 치다’는 뜻이다. 이것은 터무니없는 명칭이다. 그러나 일본은 최근 들어 이 터무니없는 명칭을 바로잡았다.

요즘은 ‘분로쿠게이초전쟁’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분로쿠’와 ‘게이초’는 1592년부터 22년 동안 일본 천황이 사용했던 연호이다. 나름 객관적인 용어 같지만 ‘침략’이었다는 점은 숨기고 있다. 하지만 자기 나라의 침략 사실을 드러내면서까지 전쟁 명칭을 정하는 나라는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없다.

임진왜란을 가장 세련된 명칭으로 부르는 나라는 놀랍게도 조선(이북)이다. 조선에서는 이 전쟁을 ‘임진보국전쟁’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임진년 나라를 보위한 전쟁’이라는 뜻인데, 내가 보기에 이 용어가 가장 합리적이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말이 있다. 과거에 그렇게 불렀다고 해서 그 명칭을 성찰 없이 답습만 한다면 그것은 바른 역사관이 아니다.

공자는 『논어』에서 정치를 맡기면 무엇부터 하겠느냐는 질문에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正名)”라고 했다. 이 말은 그 이름(名)에 부합한 실제(實)가 있어야 그 이름이 제대로 성립한다는 뜻이다.

비단 임진왜란뿐 아니다. 병자호란도 그렇다. ‘6.25전쟁’은 또 어떤가. 이것은 6월 25일 시점을 강조하며 북의 침공을 어필하기 위한 명칭이다. 전쟁 명칭을 개시일의 숫자로 정하는 사례 역시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없다.

옛날에는 ‘6.25동란’이라고 했다. 이것은 ‘6.25 + 임진왜란식’ 명칭이다. 한때는 ‘6.25사변’이라고도 했다. 사변이라면 을미사변이 떠오른다. 을미사변은 1895년 일본의 칼잡이들이 조선의 대궐에 난입하여 왕비를 시해한 변란이다.

6.25전쟁을 영어로는 ‘Korean War’이라고 한다. 그런데 Korea에도 South가 있고 North가 있다. 따라서 ‘Korean’을 ‘한국’, 또는 ‘조선’으로 번역하여 ‘한국전쟁’ 또는 ‘조선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양자 모두 일방적이다.

한국의 학자들은 대부분 ‘한국전쟁’이라고 부르며 이것이 적합한 명칭인 것처럼 주장한다. 예컨대 박태균 같은 이가 그렇다. 박명림도 한국전쟁 명칭을 사용한다. 특히 박태균은 ‘베트남전쟁’에 빗대어 ‘한국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하는데, 이것은 뻔하게 허술한 주장이다. 베트남이야 통일국가의 명칭이지만 ‘한국’은 분단국가의 일방적 명칭이 아닌가?

참으로 이름 붙이기가 어려운 전쟁이다. 이것은 이 전쟁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혹시 나더러 이름을 붙이라고 하면, ‘동아시아3년전쟁’쯤으로 하고 싶다. 좀 긴 것이 단점이다. 만약 통일이 되어 국호가 새로 정해진다면 이 전쟁을 ‘정명’하는 어려움도 해소될 것이다. 역시 모든 것에서 ‘통일’이 약이다.

[부언] ‘북한’, ‘남한’이라는 명칭도 일방적이다. 심지어 종북을 자처하는(?) 사람 중에서도 북한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북한’, ‘남한’은 ‘북조선’, ‘남조선’처럼 일방적이다. ‘조선’과 '한국'이 개별적인 정식 명칭이고 ‘이북’과 ‘이남’이 구분 명칭으로서 타당하다.


‘광해군 띄우기’는 만선사관(滿鮮史觀)의 음모

임금이 죽은 뒤 종묘에 신위를 모실 때 드리는 존호(尊號)를 묘호(廟號)라고 한다. 묘호에는 ‘종’이나 ‘조’가 붙는다. 그런데 조선국 임금 27명 중에서 묘호가 붙지 않은 이가 둘 있는데 연산군과 광해군이다. 우리가 알듯이 단종도 원래는 노산군이었는데 끈질긴 역사바로세우기 공정 끝에 숙종 때 단종으로 복위되었다.

연산군이 복위되지 않은 이유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조선인들은 연산군을 끝내 왕으로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광해군은 왜 복위되지 않은 것일까? 오늘의 한국인에게 광해군에 대한 평가를 물으면 10중 7,8은 ‘괜찮은 왕’이었다고 답한다. 그리고 대부분 그 이유로 광해군의 ‘실리외교’를 든다.

2000년 <역사비평사>에서 나온 한명기의 저서로 『광해군 – 탁월한 외교정책을 펼친 군주』가 있다. 2008년에는 KBS에서 <한국사 전(傳)>을 방영했는데, 제목이 ‘고독한 왕의 투쟁 광해군’이었다. 제목만 보아도 광해군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음을 미루어 알 수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역사를 기술하는 사관이 있었다. 조선시대의 사관들은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엄정한 역사의식을 가진 학자들이었다. 그들은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했을 뿐 아니라 주관적이고 대담한 논평도 가했다. 논평의 대상이 왕이라고 해서 특별히 잘 보아주는 일도 거의 없었다. 위대한 『조선왕조실록』은 그들에 의해 기술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은 결코 만만한 역사물이 아니다. 훗날 조선총독부에 의해 기술된 조선 말기를 제외한 <순조실록>까지는 대단히 엄정하게 기술되었다. 그런데 ‘연산군실록’과 함께 ‘광해군실록’은 없다. 대신 <연산군일기>와 <광해군일기>가 있을 따름이다.

이것은 사관들이 끝내 연산과 함께 광해를 왕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사관들은 철저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무려 243년 간이나 노력을 기울여 노산군을 단종으로 복위시킨 당사자들이다.

‘연산’은 ‘많이 놀았던 임금’, ‘노산’은 어리석은 임금‘이라는 뜻이다. 한편 ‘광해’는 ‘제 정신이 아닌 임금’이라는 뜻을 함축한다. 우리 조상들은 왜 이토록 광해군에게 혹독한 평가를 내렸을까? 반면 오늘의 한국인들은 광해군에게 왜 그리도 후한 점수를 주고 있는 것일까?

몇 년 전에 <광해>라는 영화가 있었다. 영화에서도 광해는 어김없이 수구 기득권 세력에게 소외당한 나머지 ‘반정에 의해 부당하게 쫓겨 난 임금’으로 그려졌다. 엉뚱한 이야기 같지만 문재인은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영화 속의 광해가 꼭 노무현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한국의 역사를 지배하는 것은 사극 영화 아니면 사극 드라마인 것 같다. 그리고 이것들의 배후에는 거의 다 식민사관이 잠복되어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광해군에 대한 <실록>의 기존 평가가 뒤집히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였다.

식민사학자로서 조선사편수회 간사였던 일본인 이바나 이와키치가 있다. 그가 최초로 광해군을 ‘실용주의 외교로 백성들에게 은택을 입힌 군주’라고 해석하면서 확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또 다른 식민사학자 도리야마 기이치 등도 여기에 적극 동조했다.

그들은 왜 광해군 띄우기에 나선 것일까? 식민사관의 주요 항목으로는 타율성론, 정체성론, 당파성론, 지리적 숙명론 등이 있다. 모두가 하나같이 허구적 조작들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욱 터무니없는 것으로 ‘대동아주의’라는 게 있다. 대동아주의는 일본과 만주와 조선이 같은 뿌리라는 역사적 조작이다.

‘일선동체론’은 일본과 조선이 한 몸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만선(滿鮮)일체론’도 만들어졌다. 일제의 만주 침략이 시작된 1931년 직후의 일이다. 만선일체를 주장하는 사관을 만선사관이라고 한다. 만주와 조선을 일체화하려면 청나라를 띄워주어야 한다.

광해군은 일방적으로 명을 우대하지 않고 시종일관 명과 청 사이에서 기회주의적인 외교 행태를 보였다. 광해군은 외교에는 사술(邪術)이 필요하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기도 했다. 문제는 그의 외교가 국가의 실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실리를 위한 것이라는 데에 있었다.

더욱이 명분을 저버린 광해군의 어설픈 실리 추구는 매번 명과 청에게 동시에 들키어 양쪽으로부터 모두 의심을 산 나머지 손해만 입었다. 명분과 실리는 따로 가는 것이 아니다. 아니 따로 갈 수 없는 것이다. ‘실리를 염두에 두는 명분 추구’라는 말도 옳지 않다. 명분과 실리는 동시에 가야 하는 것이다. 명분 없는 실리도, 실리 없는 명분도 둘 다 가당치 않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광해군은 내치에서 최악인 군주였다. 마찬가지로 내치 없이 외치 없고 외치 없이 내치 없다. 광해군은 인조반정에 의해 축출되었다. ‘반정(反正)’이란 말 그대로 정상으로 되돌아간다는 뜻이다.

# 광해군에 대한 논의는 다음에 또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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