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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홈 > 김갑수

역사를 바꿀 수 있는 100권의 책 (부록 편)
김갑수 | 2018-02-20 13:01:4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우리는 왜 쓰는가

《진보적 글쓰기》(김갑수 저)는 전혀 학구적이거나 이론적이지 않다. 일차적으로 좋은 글을 쓰고는 싶은데, 막상 자판 앞에 않으면 글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 책은 글을 성의 없이 쓰는 사람, 그리고 자기가 쓴 글에 대하여 근거 없이 자족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인류 역사에는 위대한 인물이 많이 있었다. 그들은 남달리 훌륭한 행적과 매혹적인 사상을 남겼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그들의 위대함을 다 말할 수는 없다. 만약 그들의 행적과 사상을 담아낼 수 있었던 정교한 문체가 없었더라면, 오늘날 인류는 그들을 위대한 인물로 기억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우리 삶의 의미는 언어를 통해 재현되고 전파될 때 비로소 공동체적 의미로 확장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일단 ‘나의 생각과 주장’을 ‘나의 문체’로 재현할 수 있어야 한다.

글쓰기는 다른 공부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당신은 먼저 자의식을 활짝 열어야 한다. 또한 엄격한 성실성과 유연한 수용성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 그래야 능률적으로 새것을 받아들여 새로운 창조를 이룰 수 있다. 그런데 새로운 창조일수록 합리나 논리로 무장되어야 비로소 공동체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다. 요컨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글로 자기 자신은 물론 공동체의 삶에 기여하는 글쓰기, 이래서 진보적 글쓰기라고 명명한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주변의 긴요한 가치들에 대해 짧은 글 위주의 글쓰기를 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가족, 친구, 물질, 사랑, 이상, 자존심 등이 그런 것들이다. 이때 동서양의 철학과 문학의 기본 개념을 함께 익히면 좋다. 다음으로는 약간 전문적인 사회과학 분야에 대한 글쓰기를 권한다. 이 경우 역시 일정한 양의 지식 습득이 병행되어야 한다. 다만 어느 경우든 필수적으로 함께 수련해야 할 것은 ‘표현의 정확성’과 ‘글의 레토릭’이다.

이 책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사람들이 정교하고 개성적인 문체를 소유하게 되기를 바란다. 나아가 사람들의 글쓰기가 사회를 개선하는 데 기여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무엇보다 글쓰기를 통해 내실 있고 생각이 깊은 사람으로 한 단계 성숙하는 계기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큰 보람이 될 것이다.

[‘진보적 글쓰기’에 숨어 있는 뜻]

한국 사회에서 진보라는 말처럼 곡해되는 용어도 드물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왜 하필 ‘진보적 글쓰기’냐고 의아해 하는 분도 있다. 글쓰기에도 진보, 보수가 따로 노는 것이냐? 하지만 이런 의문들은 전적으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사회는 대체로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를 이데올로기를 기준으로 하여 판별한다. 하지만 이것은 올바른 기준이 아니다. 이데올로기는 좌파냐 우파냐의 판별 기준일 따름이다. 좌파를 진보에, 우파를 보수의 개념에 등치시키는 것은 유럽의 관습이다. 진보냐 보수냐의 판별 기준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역사의식에 있다.

그렇다면 역사의식이란 무엇일까? 일단 역사에는 ‘기록으로서의 역사’와 ‘시간으로서의 역사’가 있다. 전자는 과거, 후자는 현재를 문제 삼는다. 전자, 즉 기록의 역사는 사실(史實)을 인식하는 것인데, 이는 당연히 정확해야 한다. 반면에 후자, 즉 시간으로서의 역사는 의미를 의식하는 것인데, 우리는 이를 가리켜 역사의식이라고 한다. 즉 ‘오늘의 시대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의 문제의식이 곧 역사의식이다.

역사의식은 나의 개인윤리를 공동체의 사회윤리와 근접시키려고 노력하는 정신이다. 개인윤리가 사회윤리와 유리되거나 어긋날 때, 비역사적인 인격이 형성된다. 이것은 대부분 위선과 이기주의의 양상을 띠고 나타난다. 따라서 개인윤리와 사회윤리를 따로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사회에 진보적인 기여를 하기란 매우 어렵다.

과거는 현재를 기준으로 하여 평가해야 더욱 큰 가치를 갖는다. 현재적 의미를 띠지 않는 과거의 가치는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현재는 과거를 근거로 하여 파악되어야 한다. 과거와 연계되지 않는 현재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보란 무엇일까? 서구 개념의 진보란 세상이 갈수록 좋아진다는 믿음, 즉 역사는 발전한다는 낙관주의적 문명발전론에 근거한다. 그런데 역사가 발전만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역사는 단지 ‘변화’할 따름이다. 역사는 발전할 수도 있고 후퇴할 수도 있다.

역사는 무조건 발전한다는 믿음, 이것은 진보적 사고가 아니다. 내가 주체가 되어 역사를 좋게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노력하는 것이 진보다. 이러한 신념과 노력은 고전적인 용어 법고창신(法古創新)과도 상통한다. 이는 곧 옛것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고, 새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을 잃지 않는다는 인식이다. 이 책 제목 ‘진보적 글쓰기’에는 이런 뜻이 담겨 있다.

[무능한 필자, 가장 불우한 경우]

글쓰기라는 것이 마치 자기의 숙명이나 되는 것처럼 말하는 작가가 있다. 심지어 글쓰기는 자기의 종교라고 말하는 작가도 있다. 이런 말들에는 대체로 멍청한 착각이나 위선적인 자기 과대가 들어 있다.

글쓰기란 특정 인간의 숙명도 아닐뿐더러 종교는 더욱 아니다. 글쓰기는 개인의 선택일 따름이다. 그런데 글을 직업 삼는 것, 즉 전업적인 글쓰기는 몇 가지 상실을 초래한다. 건강과 경제와 친구다. 그러나 취미로 하는 글쓰기는 다르다. 이것은 글 쓰는 이의 삶을 정확하고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현대에 들어 글쓰기는 유별난 일이 아닌 것이 되었다. 누구나 글을 쓰고 남에게 보일 수가 있다. 그런데 사실 유능한 필자가 되는 것보다는 유능한 독자가 되는 것이 더 행복하다. 가장 불우한 경우는 무능한 필자가 되는 것이다. 무능한 필자는 자기는 물론 타인에게까지 피해를 준다.

[네거티브의 방식]

좋은 글의 요건을 다 갖춘 글을 쓰기는 불가능하다. 여기에서 ‘좋은 글쓰기’의 문제와 관련해서 긴요한 힌트 하나를 도출할 수가 있다. 막상 글을 쓰려고 앉았는데 의욕과는 달리 처음부터 막막하다든지, 한두 줄 쓰고 나니 더 이상 글이 나가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이럴 경우 지나치게 ‘좋은 글’을 쓰려는 욕심이 앞섰기 때문인 수가 많다.

실제로 시중의 글쓰기 교본이나 글쓰기 강좌의 경우 대부분 ‘좋은 글쓰기’의 문제에 과도한 비중을 둔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결코 글 실력이 붙지 않는다. 글쓰기 공부는 철저히 네거티브 방식으로 해야 한다. 다시 말해 좋은 글을 쓰려고 노력하지 말고, 나쁜 글을 안 쓰려고 노력하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어떤 성격의 글을 주로 쓰는 것이 좋을지를 생각해 보자. 저자는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글을 주로 쓴다. 그러다 보니 유감을 표시하는 분들이 있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많고, 같은 값이면 긍정적인 면을 보는 것이 더 나을 텐데, 왜 당신은 썼다 하면 냅다 신랄한 비판의 소리만 내는지 의문을 갖는 분이 있다는 것이다. 개중에는 심지어 훈계하려 하고 핀잔까지 하는 분도 있다.

일단 우리 역사와 현실에 실제로는 부정적 인물인데 오히려 긍정적 인물로 미화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런데 부정적 인물이 미화되면 긍정적 인물이 소외된다. 공정하지 못하다. 역사의 왜곡이란 기실 인물에 대한 왜곡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정적인 글을 많이 쓴다는 방침은 저자의 인생관과 관련된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유학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그는 ‘내가 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면 남에게 시키지 않음(己所不欲勿施於人, 기소불욕물시어인)’을 실행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얼핏 보아 이 말은 매우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삶의 자세를 권장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부정적인 글을 긍정한다.

반면에 저자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말은 《바이블》에 있는 황금률이라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말, 이 말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실천을 강조한다. 한편 버나드 쇼 같은 사람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지 마라. 나와 남은 취향이 다르니까.”라고 말함으로써, 이 황금률이 지니는 억압의 논리를 풍자했다.

저자는 자신이 여간해서 읽지 않을뿐더러, 남에게 읽지 말라고 권하는 책이 세 종류 있다. 위인전과 자기계발서와 베스트셀러이다. 이 책들의 진실성과 가치는 따로 논의하더라도, 일단 사람이 타인을 본받으려고 노력하다 보면 자기 정체성을 잃고 부자연스러워지기가 쉽다.

영어에 ‘네거티비즘(negativism)’이라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을 하고자 할 때 그 일로 인해 생기는 긍정적 효과보다 남에게 미치는 부정적 결과를 더 고려하는 태도이다. 긍정적 효과만을 내세우게 되면 다른 사람을 억압하게 되고 피해를 주게 된다. 바로 이 네거티비즘은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가장 중시했던 가치관이다.

긍정적 인물을 본받으려고 하는 것보다는 부정적 인물을 통해 교훈을 얻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의 태도가 바람직하다. 사람을 쉽게 존경하지 말아야 한다. 마음에 들면 좋아하고 지지하면 되는 것이지, 존경까지 할 필요는 없다. 만약 내가 존경하던 사람이 차후에 변하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사실 세상에서 유명한 사람 중에 우리가 존경할 만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유력한 놈들은 모두 야비하다.” 이것은 보들레르의 말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저자는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글쓰기를 주로 한다는 것이다.

[글쓰기가 주는 유용함]

말을 잘하는 사람은 글도 잘 써야 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말은 잘하지만 글은 잘 못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은 잘 못 하더라도 글은 아주 잘 쓰는 사람도 있다.

사실 말과 글이 실제로 완벽하게 일치하는 경우는 없다. 말하기와 달리 글쓰기에는 변별적인 속성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은 누구나 말을 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글을 쓰며 살아가는 사람은 인류 전체에서 소수 비율밖에는 되지 않는다. 말은 엄마의 혀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습득되지만 글은 따로 학습, 수련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말은 한 번 발설된 후에는 소멸한다. 반면에 글은 오래도록 남는다.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자기가 한 말을 녹음했다가 들어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글을 쓴 사람은 자기가 쓴 글을 최소 한 번 이상은 읽어 본다. 여기에 ‘말하는 것’이 갖지 못하는 ‘글 쓰는 것’의 유용함이 있다. 요컨대 글을 쓰게 되면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현대인에게 부족한 점이 있다면 곧 자기성찰이 아닐까?

또한 글은 말에 비해 오래 남기도 하지만, 사전에 준비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점에서 말과 또 다른 속성을 갖는다. 글을 쓰기 위해 사전에 준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는 곧 독서나 사색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글쓰기의 또 다른 의의가 있다. 결국 글을 쓴다는 것은 곧 사람의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식민사관의 핵은 조선 역사 왜곡에 있다

일제의 식민사관과 진보주의의 유물사관에 공통점이 크다면 펄쩍 뛰는 반응을 보일 진보주의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진보주의자들의 조선사관이 식민사관과 유사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1. 조선은 봉건사회였다.
2. 조선 건국은 혁명이 아니라 반란이자 쿠데타였다.
3. 조선 지식인은 대부분이 모화사대주의였다.
4. 중국에 조공을 한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나 다름없었다.
5. 유학, 특히 조선 성리학은 역사 발전을 정체시켰다.
6. 조선은 임진왜란 때 망했어야 할 나라이다.
7. 조선의 정치가들은 허구 한 날 당파싸움을 일삼았다.
8. 세종, 이순신, 실학자들 말고 조선 역사에는 자랑거리가 별로 없다.
9. 조선은 남존여비, 계급차별의 지독한 신분사회였다.
10.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했지만 조선은 근대화를 하지 못해서 망했다.

이상은 조선 역사에 대한 세간의 10가지 통념이다. 《진짜조선역사》(김갑수 저)는 바로 이런 통념들을 교정하는 데 치중한 책이다.

‘불편한 진실’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는 진실은 불편한 것이라는 전제가 들어 있다. 그런데 정말 진실은 불편한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정작 불편한 것은 ‘편견과 강변’이다. 우리 역사에서 편견과 강변의 대부분은 ‘근대주의’에서 비롯된다.

나는 유럽의 근대사관을 ‘보편적인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인류 역사는 원시공산사회 - 노예제사회 – 봉건사회 - 자본주의사회를 거쳐 공산사회로 나아간다고 했다. 이것을 우리 역사에 최초로 적용시킨 사람이 백남운(白南雲)이었다. 그는 일본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8.15 이후 북으로 가서 북조선 역사학계의 원로가 되었다. 백남운은 고조선을 원시공산사회, 삼국시대를 노예제사회, 통일신라 이후부터 조선시대까지를 일률적으로 봉건사회로 규정했으며, 일제 강점기를 ‘이식자본주의’ 시대로 이해했다.

이것이야말로 편견이고 강변 아닌가? 8.15 이후 북의 역사학자들 역시 남처럼 경성제국대학 사학과 출신이 주류였는데, 그들 역시 큰 틀에서 백남운의 마르크스주의 사관을 계승했다.

백남운의 시대 구분은 근시안적이다. 특히 통일신라와 고려와 조선시대 1,200년 이상을 봉건사회로 퉁 쳐버린 것은 편견이자 강변이다. 바로 이러니까 14세기 조선의 위대한 역성혁명을 부정하게 되고 조선 역사를 왜곡, 폄하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진보주의자들도 대체로 이와 비슷한 조선사관을 가지고 있다.

“눈 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노무현)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은 노무현의 이 언명을 멋진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노무현의 이 언명에는 다소 무모한 역사 인식이 개입되어 있다. 노무현은 제국주의 침략 이전의 조선 역사를 제국주의 침략이 만들어 낸 근·현대의 저열한 역사와 무작정 일맥상통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일제침공기 역사의 특수성을 놓쳤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많은 독서를 한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그의 독서는 사회과학과 현대사 일부에 치중된 것처럼 보인다. 요컨대 인문학과 근대사 특히 조선 역사에 대한 독서와 사색이 적었던 것이다.

이런 부작용은 한국의 지식인들이 대북 문제가 끼어들면 순식간에 객관성을 잃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도 일제침공기 역사와 조선 역사에 대한 정확한 성찰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무 근거도 없이 이북을 타자화한다. 그러나 일제침공기와 조선의 역사를 제대로 알면 조선(북)이 얼마나 우리와 불가분의 관계인지를 저절로 체득하게 된다. 조선시대의 진정한 가치를 덮어둔 채 서구의 근대적 가치만 편중되게 중시하니까 ‘반북진보’라는 기형적 지식인이 생산되는 것이다.

근대주의사관은 진보사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가 진보사관을 부정하는 이유는 진보사관이 크게 보아 ‘예정설’의 범주에 들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예정설을 수용하지 않는다. 역사란 ‘진보’하는 게 아니라 ‘변화’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흔히 역사를 움직이는 데에는 몇 가지 힘이 있다고 한다. 도덕, 대중심리, 계급투쟁 등이 대표적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누락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연’이다. 역사는 ‘우연과 필연’이 절충 또는 얼크러져서 진행된다. 역사 역시 물리학적 법칙 내에서 진행하는 것이다. 역사가 우연과 필연의 절충이라면 그것은 개연이고 확률일 따름이다.

따라서 나는 인류 역사를 보편화할 수 있는 사관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을 물리학 언어로 바꾸면 ‘역사에는 방정식이 없다’가 된다. 근대주의는 식민사관과 함께 ‘범凡 식민주의’라는 주장은 정당하다. 바로 이것을 정시하지 않으면 우리는 자주적으로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의 길로 나아가기가 어렵다. 다시 강조하거나와 불편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편견과 강변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이다. 지금의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는 조선 역사를 공부하기 전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문제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기에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본다.

- 우리는 조선 사람인가 대한 사람인가? 즉 우리의 정체성은 조선과 대한 중 어느 것과 더 닮아 있는가?
- 대관절 ‘근대’라는 것은 무엇이며 지금 어디에 있는가? 정말 지금의 우리는 그토록 희구하던 근대에 살고 있는 것인가?
- 근대가 있다손 치더라도 조선이 언제 ‘근대’ 하겠다고 원한 적이 있던가?
-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실상 서구 종속화가 아닌가?
- 남들은 근대를 향해 갈 때 조선은 과연 정체나 퇴보를 감수하기만 한 시간이었나?
- 조선 500년의 문명에 근대를 우회하거나 추월할 수 있는 ‘모종의 길(道)’이 숨어 있지는 않았을까?

[조선에 대해 ‘진보’가 더 몽매하다]

독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삼봉의 조선 개국은 삼봉이 꿈꿔왔던 민본세상과는 아주 거리가 먼 민중의 삶 따윈 안중에도 두지 않은 권력자들의 골육상쟁의 아귀다툼뿐인 추악하고 타락한 왕조로 전락되어 버리지 않았나요?”

충격적인 질문이었다. 이 글은 세 가지 점에서 나를 놀라게 했다. 첫째는 그동안 조선을 디스 하는 반응을 왕왕 보긴 했지만, 이토록 격렬한 표현, “권력자들의 골육상쟁의 아귀다툼뿐인 추악하고 타락한 왕조”식으로 조선을 비하한 글은 처음이었다. 둘째는 이 글에 담긴 확신성이었다. 셋째는 이 글을 다신 분이 ‘진보당에서 근무했음’이라고 해놓은 프로필이었다. 다음 글을 읽어 보자.

“조선시대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은 1960~1970년대 학계의 문제의식과 비슷하다. 나도 그 무렵에는 그런 시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공부한 결과 크게 달라졌다. 나뿐 아니라 지금 국사학계의 전반적인 연구 흐름이 크게 바뀌었다.”

이것은 서울대 국사학과 한영우 명예교수의 말이다. 참고로 한영우 교수는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국사학자이다. 한영우 교수보다 조선을 더욱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오항녕 교수는 저서 <조선의 힘>에서 조선 문명을 위대하게 만든 것들로, 문치주의, 조선왕조실록, 경국대전 등 헌법과 강상, 대동법, 조선 성리학, 선비들의 역사정신 등을 꼽는다.

하버드대학의 투웨이밍 교수는 식민사관에서 공리공론이라고 치부하는 조선의 사단칠정론 논쟁을 “세계 철학사상 빛나는 형이상학 논쟁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 언어문화학을 전공한 페스트라이쉬 전 일리노이대 교수는, “선비 정신은 개인적 차원에서는 도덕적 삶과 학문적 성취에 대한 의지와 행동으로, 사회적 차원에서는 수준 높은 공동체 의식을 유지하면서도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로, 국가적 차원에서는 평화적 국제 질서를 지지하는 태도로 나타난다.”고 했다.

사실 이런 외국인들의 말을 인용하는 것부터 계면쩍은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학벌 없는 비전공자인 나의 말을 좀처럼 신뢰하려 하지 않는다. 내친 김에 내가 생각하는 조선이 위대한 이유 몇 가지를 두서없이 들겠다.

- 조선은 전제왕권, 봉건국가가 아닌 민본중앙집권제였다.
- 통치형태는 군신협의체로서 오늘날의 입헌군주제와 비슷했다.
- 조선의 기록문화 수준은 세계 제1이었다.
- 조선은 중국, 일본에 비해 학자 수가 훨씬 많았다.(비율 면에서)
- 조선은 붕당정치가 활발했을 때 부패가 가장 적었고 붕당이 없어지자 일당독재와 세도정치가 등장했다.
- 조선의 신분제도는 세계적으로 유연했고 신분차별도 적었으며 신분 이동 또한 일본이나 유럽에 비해 훨씬 활발했다.
- 조선의 토지제도는 토지공유제(공개념)를 추구했다.
- 조선의 남존여비 정도는 세계적으로 약했다. 7거지악은 식민사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신 3불거(不去)가 있었는데, 여자가 혼인 후 3년 부모상을 치렀거나, 혼인 후 남자의 집안이 부귀해졌거나, 여자가 갈 곳이 없을 경우 이혼이나 별거를 할 수 없었다.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한국은 문화적인 지속성이 단연 눈에 띈다. 한국 문화를 볼 때 지속적인 습관이나 길게 잘 갈 수 있는 멋있는 문화에 많은 매력을 느꼈다.”고 하면서, “아쉬운 점은 바로 한국인들이 일제강점기 교육 때문에 조선왕조나 그전의 전통문화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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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민폐  2018년2월20일 15시14분    
우리이니 마음대로하소서

갑수님의 거 알수없는 깊고 깊은 뜻보다
이 단순 무지몽매한 현실적 힘만이
역사를 바꾸는 동력이되는것
왜냐구
이리되면 누가 시키지도 않앗는데 문재인정부에 권력이 줄을서고
이게 지속되고 영속성 보장될 가능성보이면
시스템의변화
나아가
사회 질서 역사의 실질적 변화을 이끌어 낼수있기에 그러하다

gm 공장 폐쇄문재을 예로들어볼까 요
여기에 거 무슨 보수,진보 시각을 갖다붙혀보아야 허망한일이고
발등의 불 이일을 우째해야 할까요
지난 현대,대우,쌍용 사태 시간의역사속에서 우린 이미 그 역사을알고있다
우리 이니 마음대로하소서
그 결정내려지면 신뢰하고
여기에 압도적으로 온힘을 모아 주어야한다는것

시간의 역사속에서
진정 배워야 할것들은
바로 이런것들이 아릴까
(4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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