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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꿀 수 있는 100권의 책 40
한비자, “호랑이가 개를 복종시키는 두 가지 방법”
김갑수 | 2018-01-03 13:50:3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기록과 책의 나라, 조선의 명저 26권

“조선에서 자존심 상하면서도 감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책이 있다는 것이다.”

위는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침탈한 프랑스 해군 장교 주베르가 회고록에다 남긴 말이다. 조선은 기록의 왕국이자 책의 나라였다. 엄청난 기록과 우수한 명저들이 500년 내내 쉬지 않고 책으로 엮어져 나왔다.

최부의 《표해록》에 보면 중국 관리가 “당신은 참 독서를 많이 한 선비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무식하기가 짝이 없습니다.”라고 말한 기록이 있다. 자고로 중국의 학자들은 조선의 문명을 대단히 높게 평가했다. 나름 공부를 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조선을 얕잡아 본 것은 주로 공부가 적은 무장(武將)들이었다.

최근에는 이런 현상이 미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공부를 많이 한 미국의 학자들은 조선 문명의 수준에 감탄한다. 한국을 아래로 보는 것은 주로 장군들이다. 그리고 여전히 한국을 잘 모르면서 무시하는 부류는 유럽인과 러시아인이다.

조선의 명저들은 일단 양이 방대할 뿐 아니라 대부분이 한문으로 표기되었고 아직 제대로 번역되지도 않은 상태라서 우리가 그 책들을 온전히 통독할 수가 없다. 조선의 책에 비해 우리에게 긴요하지도 않고 딱히 수준도 높아 보이지 않는 유럽의 책들은 유명인 한 사람 당 수십 종씩이나 번역 출판되어 있는 오늘날 한국의 현실은 말 그대로 구차하고 비자주적인 모양주의의 단면을 여지없이 보여 준다.

《책으로 읽는 조선의 역사》는 조선 시대 500년 동안 최고의 책이라고 평가 받을 수 있는 26권의 책을 시대 순으로 배열하면서, 당대의 시대상과 저자 그리고 책의 핵심 내용과 의의를 적어 놓고 있는 책이다. 저자 신병주 교수가 지니고 있는 조선시대 역사관이 약간 구시대적이라는 점으로 인한 아쉬움도 있지만 그래도 조선의 최고 명저들을 한 눈에 소개받을 수 있는 충실한 책이라는 점에서 일독할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이 책은 조선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정도전의 조선경국전, 시대를 앞서간 국가통치규범인 경국대전, 당대 생활, 제도, 풍속, 인물 등을 다양하게 담은 성현의 용재총화, 국제 감각과 외교 역량이 응축된 대일외교 지침서 신숙주의 해동제국기, 500년 왕조의 국가공식기록인 조선왕조실록,

500년 전 조선 선비의 중국 표류견문기 최부의 표해록, 16세기 할아버지가 쓴 손자양육일기 양아록, 시골학자로서 당대 권력에 서릿발 같은 비판을 쏟아 담은 조식의 남명집, 명장 이순신이 친필로 기록한 난중일기, 420년 전 임진왜란 시기 양반의 진솔한 생활과 사회상이 담긴 오희문의 쇄미록,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임진왜란을 성찰한 유성룡의 징비록,

아 밖에 소설 박씨전과 홍길동전, 백과전서 지봉유설과 성호사설과 오주연문장전산고, 개혁 교과서 격인 반계수록, 인문지리지 택리지, 중국 기행록 열하일기, 당쟁의 역사 당의통략, 차별 철페와 평등주의를 담은 이향견문록과 규사,

끝으로 궁중문학으로 분류되는 계축일기와 한중록, 조선왕실의 행사 기록인 의궤, 조선왕조실록에 필적하는 사서 승정원일기와 일성록 등이 소개된다.

대표적인 예로 경국대전의 내용 중에서 오늘날에도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는 대목을 제시해 본다. 경국대전 형전에는 노비의 출산휴가 규정이 있다. 산모에게는 출산 전 30일, 출산 후 50일의 휴가를 주고 남편에게도 산후 15일의 휴가를 준다는 규정이다.

또한 재판에서 사형수에게는 삼복제(三覆制)를 규정했다. 초복, 재복, 삼복이라고 해서 1심은 일선 관청, 2심은 형조에서 판결한 후 의정부 보고, 3심은 왕에게 보고하고 의금부가 판결하도록 했다. 이런 삼복제가 신분 구별이 없이 백정이나 노비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그리고 이런 규정이 실제로 실행되었음을 실록에서 무수히 확인할 수 있다.

15세기에 편찬된 족보에는 재산상속이 균등분할로 이루어졌음이 확인되며 자녀는 남녀 구분 없이 출생 순으로 기록되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또한 조선시대의 공무원 범죄 중에서 가장 수치스럽게 인식된 것은 뇌물죄였다. 뇌물을 받은 관리 즉 장리(贓吏)는 후손까지 공직 임용을 차단하고 과거 응시 자격까지 박탈함으로써 부정부패를 엄정히 방지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던 것이다. 이 외에도 과거 1차 합격자를 인구수에 따라 지역적으로 안배했다는 점도 오늘날 새겨서 볼 내용이다.


한비자, “호랑이가 개를 복종시키는 두 가지 방법” (1)

“알지 못하면서 말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이고 알고 있으면서 말하지 않는 것은 충성스럽지 못한 것이다.”(한비자)

김원중 번역본 《한비자》는 한국에서 출간된 한비자 중에서 가장 방대한 내용을 충실하게 담은 책이다. 세속에 영합하지 않은 책으로서 초역 18년째 40쇄 이상을 찍은 것은 이 책이 스테디셀러로서의 위치를 점했다는 것을 알려 준다. 이 책은 문장이 간결, 명확하여 가독성이 좋다. 조금 두꺼운 것(960쪽) 말고는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큰 장점이다.

제자백가들은 대체로 중국 역사상의 옛 성인을 내세워 자기들의 학설을 펼쳤다. 예컨대 공자는 왕도정치의 현자 주 문왕과 주공을, 묵자는 치수사업으로 유명한 우 임금을, 맹자는 성군 요순 을, 도가는 복희씨와 신농씨를 전범으로 삼았다.

하지만 한비자는 변화한 시대의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았다. 이를 위해서는 고인을 따르기만 하는 태도를 떨쳐 버리고 새로운 청치사상을 만들어 실전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호랑이가 개를 복종시키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라고 했는데, 하나는 법(法)이고 다른 하나는 덕(德)이다.

한비자는 법가를 집대성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상앙의 법, 신불해의 술(術), 신도의 세(勢)를 통합하여 법가 사상을 완성시켰다. 한비자는 역사의 진화를 반영하지 않는 유가를 통렬히 비판했다. 그는 시종일관 덕치만을 주장하는 공맹의 태도를 수주대토(守株待兎, 밭 갈러 가지 않고 토끼가 나무 그루터기에 와서 부딪혀 주기만을 기다람)하는 농부에 비유했다.

이 글에서는 한비자를 중심으로 법가 사상에 대한 개괄적 논의를 하고자 한다.

전국시대(BC 403~221)는 춘추시대의 진(晉)나라가 한(韓), 위(魏), 조(趙) 세 나라로 분열되고 주나라 천자가 세 나라의 실체를 인정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천하는 7패(七覇), 즉 진(秦), 초(楚), 제(齊), 한, 위, 조, 연(燕)으로 갈라진다. 이렇다 보니 이 시대에는 다른 나라에게 망하지 않고 살아남는 것만이 중요했다. 요컨대 자기 보존의 논리가 전국시대의 시대정신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진나라는 여섯 나라를 멸하고 통일을 이루어냈다. 이로써 약 220년에 걸친 분열과 투쟁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이에 따라 분열시대가 아닌 통일시대의 새로운 시대정신이 요구되었다. 전국시대는 자기 보존의 논리를 우선시했지만 통일 제국을 이룬 진은 당장의 재분열을 막기 위해서라도 공공성을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공사(公私) 개념은 전국시대 말기에 급부상한 주제였다. 전국시대는 결국 사(私)들의 전쟁이었고 새롭게 등장한 통일 국가는 사(私)들의 재분열을 예방하기 위해서 공(公)의 영역을 확장해야 했다.

‘사(私)’ 자는 원래 사(厶)로 쓰이다가 나중에 화(禾)와 결합해서 뒤에 나온 글자라고 한다. 화(禾), 즉 벼 재배가 시작된 이후에 사(厶)와 결합된 것으로 보인다. 사(厶)는 일정한 테두리를 두르는 모양을 나타낸다. ‘공(公)’은 지배자와 관련되는 공간을 가리키는 데 반해 ‘사’는 나와 남을 구분하는 일정한 테두리 안의 영역을 가리킨다.

제자백가 중에서 한비는 공과 사의 문제를 가장 진지하게 탐구했다. 그는 “스스로 뺑 둘러 에워싸는 것을 사라고 하고, 그런 사를 등지는 것을 공이라 한다.”라는 창힐(蒼頡, 한자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인물)의 견해를 수용했다.

춘추시대의 초기 법가들은 국가가 군주 중심의 중앙집권적 관료국가를 수립하여 부국강병을 이루면 최강대국을 만들 수 있으리라고 보았다. 하지만 초기 법가들의 낙관적인 기대에도 불구하고 부국강병 노선은 강대국의 꿈을 실현시켜 주지 못했다. 한비는 후기 법가 중에서 부국강병이 왜 강대국의 실현을 가져오지 못하는지를 가장 심각하게 연구했다. 결과 한비는 부국강병과 강대국의 괴리를 두 가지 면에서 설명했다.

첫째, 군주와 귀족이 협력하지 않는다면 중앙집권적 관료국가는 권력의 새로운 각축장이 된다.
둘째, 부국강병을 이루어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하더라고 이익은 군주 중심의 국가에 집중되지 않고 전쟁을 지휘한 장군에게 집중되어 그들이 새로운 특권층으로 권력을 차지하게 된다.

이런 분석에 의거하여 한비는 귀족의 사적 권력을 압도하는 군주의 공적 권력을 통해서 강대국의 실현, 즉 통일 국가의 도래에 대비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서 군주 중심의 ‘공(公)’은 자기 정당성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요컨대 군주의 공이 사(私)들의 것에 비해 우위를 차지한다는 힘의 측면만이 아니라, 사들보다 질적으로 우월한 성격을 가져야 했다.

여불위(? ~ BC 235) 전국시대 말기 진나라의 정치가로서 장양왕 때 승상이 되었고 이후 최고의 상국(相國)이 되었으나 태후의 간통사건에 연루되어 자살한 인물이다. 그는 한비의 공사개념을 보다 구체화하여 세계를 공천하(公天下)와 사천하(私天下)의 틀로 양분하여 논의했다. 그는 ‘군주의 공은 더욱 철저히 사와 구분되어야 할 뿐 아니라 단순한 공을 뛰어넘어 공공성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말하기를,

“옛날 뛰어난 성왕이 세상을 다스릴 때 반드시 공공성을 우선시했다. 공공성이 확보되면 세상이 평화로워진다. 평화는 공공성으로부터 생겨난다. 옛날의 기록을 살펴보면 천하를 얻은 자가 많은데, 그들은 공공성으로 천하를 차지했고 편파성으로 천하를 잃었다. 합당한 군주의 등장은 공공성에서 생겨난다....천하는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것이다. 제때 내리는 이슬과 비는 한 사물을 편애하지 않고 만인의 리더는 특정인을 편들지 않는다.”

여불위는 세상의 질서와 무질서, 혼란과 통일이 바로 공공성에서 갈린다고 보았다. 여불위는 공공성을 존중하지 않는 선공후사(先公後私)의 논리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알려주었다. 왜냐하면 정치 지도자는 공공성을 도외시하고 선공후사의 논리를 통해 자신의 사익을 공익으로 포장하고 자신의 편파성을 공정성으로 둔갑시키기 때문이다.

법가의 핵심은 왕패지변, 즉 공과 사의 영역 구분에 있다. 《한비자》의 전편을 관통하는 핵심 요지를 한 마디로 말하면 ‘공사지변’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정치와 종교의 영역을 구분한 것에 대비된다.

법치는 공정한 신상필벌로 구체화된다. 중국 역사상 신상필벌에 철저했던 군주 중 하나로 삼국시대의 조조(曹操, 155~220)가 꼽힌다. 하지만 왕패지변을 이루기 위해서는 법치 외에도 세치(勢治)와 술치(術治)가 함께 동원되어야 한다.


법가의 최고 실천자는 마오쩌둥(2)

마오쩌둥은 대장정과 연안시절 소련 유학파인 이른바 ‘28인의 볼셰비키’와의 노선투쟁에서 세치술을 구사했다. 28인의 볼셰비키는 1920~1935년 기간 모스크바 중산대학에 유학한 왕명, 박고, 왕가상 등이다. 그들은 겉으로 내세우는 것과는 달리 여전히 도시중심의 레닌혁명 노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마오는 그들을 제압하기 위해서 세(勢)를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오는 프랑스 유학파의 우두머리인 저우언라이(周恩来)를 적극 끌어들였다. 유학파 수장인 저우언라이가 마오를 적극 지원하고 나서자 다른 유학파들의 도전이 사라지게 되었다. 이것은 세치술을 요긴하게 활용한 것이다.

마오가 신중국 창업 이후 문화대혁명 때 사용한 것은 술치였다. 창업 이후 처음으로 마오의 권위에 도전한 사람은 류사오치(刘少奇)였다. 류는 자본주의적 요소를 성급하게 도입하면서 마오의 노선을 깎아 내렸다. 술치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군주가 자기의 심중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마오는 류사오치를 볼 때마다 겉으로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칼을 갈았다. 이른바 소리장도(笑裏藏刀), 즉 ‘앞에서는 웃지만 속에 칼을 감추다’의 전형이었다.

마오는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고 부인 장칭(江青)을 비롯한 4인방을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는 배후에서 다 조종했다. 류사오치는 홍위병들에 의해 끌려 내려지는 순간까지도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고 한다. 류사오치에 이어 홍위병들의 광란을 진압하는 데 주도적이었던 린뱌오(林彪) 역시 마오의 술치술에 걸려 패주하다가 죽었다.

이처럼 마오는 법가의 통치술인 도치와 법치와 세치와 술치를 적시에 절묘하게 구사하여 불세출의 패자(覇者)가 될 수 있었다. 이것은 무려 2300년 전 상앙의 법치, 신불해의 술치, 신도의 세치, 그리고 이 셋을 집대성한 한비자의 법가까지 섭렵한 마오의 남다른 면학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공자가 마오의 시대에 구경을 왔더라면 마오의 호학(好學, 공부를 좋아함) 하나만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1940년대 사천대학의 리쫑우(李宗吾) 교수는 “노자의 도치와 한비자의 법치가 동전의 양면처럼 같다.”는 놀라운 주장을 펼쳤다. 이로부터 그는 ‘후흑구국(厚黑救國)’을 제창하고 나섰다. 이 말은 직역하면 ‘두꺼운 낯가죽과 시꺼먼 속마음’이 된다. 그는 후훅구국으로 무장해서 서구열강의 침탈로부터 중국을 구해내자고 역설했다. 마오는 리쫑우의 후흑구국론을 탐독했다고 한다.

법가는 법(法), 술(術), 세(勢)를 융합하여 최상의 단계인 도치(道治)를 추구하는 치국론이다. 중국 고전 전문가 신동준은 법가의 네 가지 치술을 모두 겸비한 가장 탁월한 군주로 마오쩌둥을 꼽는다.

마오쩌둥이 장제스를 제압하고 신중화제국의 창업주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한(비)자의 4대 통치술을 활용한 덕분이었다. 노자 사상에서 차용한 도치술은 외세와 군벌에 신음하는 인민들에게 새로운 세상의 도래에 대한 희망을 안겨 주었다. 마르크시즘에 입각한 공산사회에 대한 환상이 그것이다. 이는 대동세계와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것이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마오의 법치술은 민폐를 엄금하는 홍군의 군율로 구체화되었다. 이른바 3대 규율과 8항주의(八項注意)가 그것이었다.

[3대 규율]
1. 명령에 신속하게 복종하라.
2. 인민으로부터 바늘 하나, 실 한 오라기도 받지 않는다.
3. 일체의 노획품은 공공의 것으로 한다.

[8항주의]
1. 정중한 언행
2. 공정한 매물(買物)
3. 빌린 것 필히 반환
4. 파손 기물 변상
5. 농작물 안 밟기
6. 구타 욕설 금지
7. 아녀자 존중
8. 포로 학대 금지

제자백가 중에서 공자와 맹자의 사상은 ‘인의론’이다. 인의론에 입각한 왕도정치는 난세가 아닌 치세에 적합한 논리다. 마오에게 쫓겨 섬으로 달아난 장제스(蔣介石)는 걸핏하면 ‘인의’를 내세웠다. 실력이 받치지 못하는 인의정치는 나약하다. 그리고 위선적인 인의정치만큼 해로운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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