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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꿀 수 있는 100권의 책 14
김갑수 | 2017-11-13 10:26:5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사다리 걷어차지 마”, 자본주의자의 신자유주의 비판

미국 발 경제 위기가 닥친 2008년 장하준 교수는 한미통화교환협정 체결에 대하여 “폭풍이 몰아치는데 우산 하나를 더 받친 격”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 말은 상당히 냉소적이다. 장 교수가 이렇게까지 심하게 말한 이유는 뭔가? 그의 말대로 한미통화교환협정은 미봉책에 불과했다. 미국은 이후 한국과의 통화교환협정을 폐기했다.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의 경제 파노라마』(부키, 2007)은 이런 의문을 해소해 주는 책이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국방부는 이 책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했다. 그런데 사실 이 책은 이미 한국의 베스트셀러였다. 또한 이 책은 미국에서도 널리 읽혀 아마존 순위 경제학 부문에서 2위, 국제 부문에서는 1위를 기록했다.

한국의 국방부는 왜 이 책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한 것일까? 다시 말해 국방부는 이 책의 어떤 점을 불온하다고 여긴 것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국방부가 제시하는 불온서적의 기준은 세 가지다. 첫째는 ‘친북 · 반정부’, 둘째는 ‘반미’, 셋째는 ‘반자본주의’다. 이 책은 경제학 학술서로서 친북 · 반정부 또는 반미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다. 아마 국방부는 이 책을 셋째 기준인 반자본주의 서적으로 간주한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대단히 자본주의적이다. 원래 저자인 장하준 교수는 자본주의를 철저히 신뢰하는 학자다. 그의 자본주의 신뢰에는 일면 과도한 면이 있다고 느껴질 정도다. 그는 경제 발전을 행복의 지상 과제처럼 여기는 학자로서 박정희의 경제 발전 모델을 높이 평가한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석사와 박사 공부를 마친 후 그곳 교수로 자리 잡은 이력에 걸맞게 그는 친자본주의적이다.

그렇다면 국방부는 왜 이 책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한 것일까? 그것은 이 책이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신자유주의가 곧 자본주의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보기에 아주 곤혹스럽거나 또는 괘씸하게 여겨질 터이다.

“사다리를 타고 정상에 오른 사람이 그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뒤를 이어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수단을 빼앗는 매우 교활한 방법이다.”

이것은 19세기 독일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한 말이다. 당시 자본주의 선진국이었던 영국이 경제 후진국 독일에 자유무역을 강요하는 것에 항의해서 한 말이다. 리스트는 영국을, 먼저 정상에 올라가 놓고 다른 사람은 오르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걷어차는 교활한 나라로 본 것이다.

장하준은 리스트의 말에 힌트를 얻어 역저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를 2002년에 발간한 바 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바로 이 『사다리 걷어차기』의 보충· 해설서적인 성격을 띠는 책이다.

예수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기록을 <누가서>에 남겨 놓고 있지만, 원래 사마리아인들은 유대교인들이 보기에 매우 교활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이었다. 책 제목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교활하고 이기적인 사람을 가리킨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체제하의 선진국들을 비유한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1980년대 이래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경제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들에 신자유주의를 강요해 왔다.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관세를 철폐하는 자유무역에 있다. 이것은 모든 나라가 같은 조건에서 무한 경쟁을 벌여야 경제가 발전한다는 논리다. 이를 위해 외국인 투자 유치, 민영화, 규제 철폐, 특허권 보호 등을 실시해야 한다.

경제 선진국들은 자유 경쟁을 해야 후진국들의 경제가 빨리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저자에 의하면 이것은 사탕발림으로 남을 눙치는 짓이다. 왜냐하면 미국이나 영국 같은 경제 선진국들도 초창기에는 철저히 보호무역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자유 경쟁을 체급을 무시한 복싱 경기에 비유한다. 로베르토 두란이 아무리 권투를 잘한다고 하더라고 무하마드 알리와 경기를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했다. 요컨대 자유무역은 불공정하기 짝이 없는 경기라는 것이다.

여섯 살 난 아들을 경쟁력을 키워준답시고 직업을 갖게 한다면 아이는 약삭빠른 구두닦이 소년이나 돈 잘 버는 행상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뇌수술을 하는 전문의나 핵물리학자가 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경제 후진국들은 어느 정도 경쟁력을 키울 때까지는 일정 기간 보호를 받아야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이치로 볼 때, 박정희가 한국 경제를 발전시킨 것은 독재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보호 무역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만약 한국이 일찍부터 자유무역시장에 노출되었더라면 삼성은 여전히 경공업 소비재 따위나 파는 후진 기업으로 머물러 있을 것이고, 현대는 아파트나 짓는 건설회사로 남아 있어야 했을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외국인 투자에 대해서도 정확한 실상을 제공한다. 스웨덴 식민지로 600년, 이어서 러시아 식민지로 100년을 보낸 핀란드 사람들은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1918년 이래 외국인을 멀리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한 국가이다. 결과 핀란드는 외국인 투자에 가장 많은 규제를 둔 나라였다. 핀란드는 유치산업(장래에는 성장이 기대되나 지금은 수준이 낮아 국가가 보호하지 않으면 국제 경쟁에서 견딜 수 없는 산업)을 철저히 보호했다.

핀란드가 외국인 투자를 어느 정도 허용하게 된 것은 1987년이었고, 전면적으로 자유화한 것은 1993년이었는데 이것은 유럽연합에 가입하기 위해서였다. 신자유주의자들의 말대로라면 이렇게 극단적인 외국인 배척 전략을 구사한 핀란드는 경제가 형편없이 추락했어야 한다. 하지만 핀란드의 경제는 괄목상대했다.

사실 여기까지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학자로서 웬만하면 할 수 있는 말이다. 이 책의 장점은 신자유주의의 원인과 결과를 명쾌하게 논증하고 있다는 데 있다. 저자는 신자유주의가 군사적 제국주의 또는 식민주의의 산물임을 밝힌다.

“아편전쟁은 한마디로 자칭 자유무역의 선도자가 자국의 마약 불법 거래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다른 나라에 전쟁을 선포한 것이었다. 이렇듯 첫 번째 세계화 시기(1870~1913)에 영국의 패권 하에 발전하고 있던 상품·사람·돈의 자유로운 이동은 대부분 시장의 힘이 아니라 군사력 덕분에 가능했다.” (P.48)

영국은 군사력으로 불평등조약인 난징조약을 맺어 중국과 (아편을 포함한) 자유무역은 물론 홍콩까지 얻게 되었다. 물론 1980년대 이후 강대국들은 군사력을 동원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그들이 신자유주의를 위해 동원한 무기는 무엇일까? 그 무기는 바로 IMF와 세계은행과 WTO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셋을 가리켜 ‘사악한 삼총사’라고 일컬었다.

이 책의 성과는 신자유주의가 후진국은 물론 이를 주장하는 선진국들에도 손해임을 입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제국주의에 의한 1차 자유 무역 기간(1870~1913)과 IMF 등을 내세운 최근의 자유 무역 기간(1980년~ 현재)에 이룬 경제 성장이 보호 무역 기간이었던 1950~1979년에 비해 약소국이건 강대국이건 훨씬 낮으며 금융위기나 외환 위기의 횟수도 단연 많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저자는 신자유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언제든 위기는 찾아오며 이럴 경우 신자유적인 미봉책으로는 결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저자가 한미통화교환협정을 ‘폭풍 속의 우산’으로 평가한 것은 이런 학문적 신념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자본주의자건 사회주의자건 한 번 읽어 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자가 사회주의자의 책을 외면해서는 안 되듯이 사회주의자라고 해서 자본주의자의 책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전자는 수구, 후자는 교조로 가는 지름길이다.


‘검은 머리 미국인’과 ‘검은 피부 하얀 가면’

“동지들이여,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유럽을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지 않은가? 유럽이 다른 세계를 침략한 것도,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하고 인류의 5분의 4를 대상으로 노예제를 합법화한 것도 바로 그 정신, 즉 ‘유럽의 정신’이라는 명분에서였다... 그러므로 동지들이여, 유럽에 경의를 표하지 말자. 유럽에서 영향을 받은 국가, 제도, 사회는 창설하지 말자.”(프란츠 파농,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 중에서)

우리가 알듯이 프란츠 파농(1925-1961)은 프랑스 국적의 흑인 정신의학자 겸 알제리 ‘민족해방전선’의 투사였다. 그의 탈식민주의를 드러내는 유명한 대표작으로는 『검은 피부, 하얀 가면』(문학동네, 2014)이 있다. 참고로 이 책을 한국어로 최초 번역한 이는 ‘나의 칼, 나의 피’의 시인 김남주였다. 그는 남민전 사건으로 수배를 받아 쫒기는 증에 이 책을 번역했다.

한국의 자주세력은 고매한(?) 명분에도 불구하고 왜 약할까? 이것은 왜 우리는 자주통일을 이루지 못하는지의 고민으로 연결된다. 서구인들이 발명한 식민주의는 갈수록 교묘하고 주도면밀해지고 있다. 2차대전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 군이 자행한 침공과 폭격은 모두 비서구 국가를 대상으로 했다. 다시 말해 그들은 백인 정권이 들어서 있는 나라는 건드리지 않은 것이다. 덤으로 백인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비백인 정권이 들어서 있는 나라도 눈감아 준다.

작금 벌어지고 있는 미국에 의한 ‘조선(북) 악마화’는 제국주의 식민정치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프란츠 파농에 의하면, 지금도 지배적 관점에서 지속되고 있는 서구문명의 원천은 ‘노예와 피, 비서구의 흙과 땅’이며, ‘유럽의 복지와 진보는 흑인, 아랍인, 인도인, 황인종의 땀과 죽음을 토대로 건설된 것’이다.

파농은 탈식민주의적 문화 연구의 세계적인 이론가로 부상되어 있다. 여기서 ‘탈식민’이란 무엇인가? 탈식민은 자주의 전제조건이다. 요컨대 탈식민을 이루지 못하면 자주도 있을 수 없다. 이를 위해 우리는 서구중심의 제도, 문화, 정신 등을 한꺼번에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파농은 제국주의자들이 가장 선호하고 필요로 하는 식민지인은 ‘유럽을 배우고 닮음으로써 자신을 백인과 동일시하려는 비백인’이다. 요컨대 백인에 보다 가까이 문명화된 사람, 즉 서구중심주의에 감염되어 있는 유색인이다. 파농은 이런 유색인을 ‘자기 부정 또는 자기 소외’에 빠져 있는 비자주인으로 규정했다.

내가 조선시대 역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니까, 나에게 “조선시대로 돌아가겠다는 거냐?”고 반박을 해온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파농은 “‘독립을 원한다면 독립하여 암흑시대로 되돌아가라’고 위협하는 사람들에 맞서야 하며 ‘고유한 방식과 처절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또다시 식민보호를 요청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경고한다.

파농이 추구한 공동체는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니었다. 그가 사회주의보다 더 중시한 것은 자기의 옛것 즉 전통이었다. 그는 “진정한 탈식민화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중 양자택일이 아니라 스스로의 가치관, 자신만의 고유한 방법과 양식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거침없이 “유럽을 떠나라(버려라)”고 하면서 “유럽이 아닌 다른 곳에서 모색하라"고 외친 파농은, 파멸로 치닫는 민족국가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단지 이전의 식민지 모국’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여기서 파농이 말하는 ‘이전의 식민지 모국’은 우리에게 어디인가? 조선이 아닌가?

2차대전 이후 서구 식민지로부터 신생 독립한 나라는 50여 개국이나 된다. 이로써 제국주의 시대는 막을 내린 것 같았다. 그러나 제국주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부활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 알제리 혁명이었다.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견디지 못한 알제리 인민은 1954년부터 민족해방전선(FLN)을 조직하여 무장투쟁을 시작했다.

프랑스는 알제리 민족해방 세력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이미 인도차이나에서 패전의 쓴잔을 맛본 프랑스 일반 국민과 지식인들은 알제리를 탄압하는 프랑스 정부를 열광적으로 지지했다. 심지어 프랑스의 최고 지성이라는 알베르 카뮈까지도 알제리의 독립에 반대하는 이율배반을 노출했다.

프랑스는 50만의 군대를 파견하여 30만 명의 알제리 인민을 강제 이주시켰고 100만 명을 투옥했으며 100만 명을 살상하는 만행을 자행했다. 그러나 알제리 인민은 이에 굴하지 않고 영용한 투쟁을 계속했다. 이에 따라 불안해진 나머지 종전을 요구하는 세계 여론이 비등해졌다.

알제리 인민의 자주적인 무장혁명투쟁은 제3세계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환기했고 그들의 해방투쟁을 자극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프란츠 파농(Frantz Fanon)은 수 세기 동안 ‘무지와 야만’의 먹칠을 당해오던 비유럽 유색인민들에게 새로운 자주의식을 각성시켰다.
특히 그는 『검은 피부 하얀 가면(Peau noire, masques blancs)』을 저술하여 무의식중에 식민화된 비유럽 지식인들의 비굴성과 이중심리를 꼬집었다.

1. 흑인과 언어
2. 유색인 여성과 백인 남성
3. 유색인 남성과 백인 여성
4. 식민지인의 종속 콤플렉스
5. 흑인의 실제 경험
6. 검둥이와 정신병리학
7. 검둥이와 인정(認定)

7장으로 구성된 이 책 중 오늘의 우리에게 가장 긴요한 장은 4장과 6장이다. 나는 서구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모양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인 바가 있다. 파농에 의하면 모양주의자는 정신병리학적으로 분석해야 치료가 가능하다.

박근혜 정권 초기에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으로 내정된 김종훈이 있었다. 우리는 그를 가리켜 ‘검은머리 미국인’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검은 머리 미국인’을 낙마시킨 것은 이석기 의원이었다. 당시 이석기 의원은 페이스북에, "박근혜 당선인이 미래창조과학부장관으로 내정한 김종훈 후보자,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 떠올랐습니다.“라고 말했다. ’검은 머리 미국인‘은 바로 프란츠 파농이 말한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의 한국식 버전이 아니겠는가?


“옛것은 오늘을 위해, 서양 것은 중국을 위해 쓴다”

“남이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그를 건드리지 않는다. 남이 나를 건드리면 나도 반드시 그를 건드린다.”(人不犯我 我不犯人 人若犯我 我必犯人)

마오쩌둥이 남긴 유명한 말이다. 이보다 더 유명한 말을 하나 더 소개한다.

“적이 전진하면 우리는 물러나고 적이 주둔하면 우리는 교란하고 적이 피로해지면 우리는 공격하고 적이 물러나면 우리는 추격한다.”(敵進我退 敵駐我擾 敵疲我打 敵退我追)

언어는 혁명과 정치의 도구이자 무기다. 사상은 언어에 의해서만 바로설 수 있으며, 좋은 언어에 의거해야 인민을 향해 나아가고 인민을 인도할 수 있다.

1965년 9월 마오쩌뚱은 중앙 서기처 서기 후차오무(胡喬木)의 문장을 고쳐 주면서, 진부한 어휘를 쓰지 말고 “신조어를 만들어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마오는 “만약 어떤 글이나 연설이 생기라고는 하나도 없이 언제나 ‘학생과 같은 말투’로만 쓴다면 그 무미건조함과 보기흉한 꼴이 뜨내기와 흡사하지 않겠는가?”라고 힐책했다.

내가 최근 ‘모양주의(대책 없이 서양의 것을 추종하는 심리)’, ‘이봉건씨’(조선을 ‘이씨봉건’이라고 비하하는 아저씨) 등의 말을 만들어 쓰니까 나를 경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말이라는 것은 무수히 신생, 성장, 사멸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하나 더 실토하자면, 왕년에 ‘어쭈구리’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내가 아는 한 이 말을 나보다 먼저 쓴 사람은 없다.)

혁명을 꿈꾸거나 정치를 하려는 분들에게 『정치가의 언격』(후쑹타오 저, 흐름출판, 2017)을 권한다. 이 책은 중국을 움직였던 마오쩌뚱의 언어 전략을 분석하면서, 혁명가와 정치가는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앞에 있듯이 마오는 ‘기발한 신조어’의 제작사였다. 그의 말은 간단명료하면서도 주제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마오가 만들어 유행시킨 기발한 말로 ‘양모’가 있다. 이 말은 음모의 상대어로 쓰인 것이다. 마오는 1949년 3월 13일 제7기 2중전회에서 교조주의를 반대하는 정풍운동을 거론할 때 이 말을 썼다.

“정풍운동은 동지들의 후각을 발전시켰고 교조주의 시장을 축소시켰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음모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음모가 아니라 양모다.”

이 책에는 촌철살인과 같은 마오의 어록 88가지가 분석되어 있다.

‘싸우는 즐거움’으로 시작되는 이 책에는 ‘총대와 붓대’, ‘지부를 중대에 건설하다’, ‘3대 기율과 8항 주의사항’, ‘작은 불씨가 들판을 태운다’, ‘반란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 ‘정풍’, ‘인민을 위해 복무하다’, ‘종이 호랑이’, ‘백화제방’, ‘꼬리를 내리고 사람이 되다’, ‘대자보’, ‘화강암 대가리’, ‘마르크스와 진시황을 합치자’, ‘반쪽 하늘(여자) ’스님이 우산을 쓰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려 하고 처녀는 시집가려 한다’ ‘상제를 만나러 간다’ ‘사인방’, ‘열심히 공부하면 나날이 향상된다’ 등.... 이 모두가 현대 인류에게 회자되는 언어들이다.

마오는 심오한 뜻은 쉽게 설명하고 미묘한 뜻은 비유를 들어 표현했다. 그는 ‘세계를 울리는 단어’, ‘사람을 끌어올리는 단어’, ‘사상을 맑게 씻어주는 단어’,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알려주는 단어’, ‘인생을 놀이로 여길 줄 아는 사람의 단어’를 써야 한다고 말했다.

1958년 1월 마오는 ‘불량한 기풍’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공작방법 60조를 만들어 “언어 표현에 정확성, 선명성, 생동성이라는 세 가지 특징을 갖추어야 한다”고 하면서, “현재 대부분 문건의 결점은 사장(詞章, 문장과 시가)을 이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그는 진부한 언어의 문건은 아무리 애를 써도 얻는 게 없는 ’큰 재앙‘과 같은 것이라고 혹독히 말했다.

마오가 출중한 시인이라는 것은 잊히는 수가 많다. 마오는 내가 보기에 세계적 수준에 비추어 손색이 없는 시를 10여 편 남겼다.

1935년 대장정의 막바지에 마오가 백두산 높이의 해발 2,928미터(그 전에 4,900미터 자진산도 넘었다) 류판산을 가볍게 넘으며 남긴 시가 있다.

하늘은 높고 구름은 평온한데
남으로 기러기 떼 아득히 날아가네
장성에 오르지 못하면 어찌 장부라 하리요
손으로 꼽아보니 예까지 2만 리
높은 류판산에 붉은 깃발 휘날리는데
오늘 내 손에 밧줄을 쥐었으니
언제인가 창룡을 잡지 못하리.

시에서 ‘밧줄’은 한나라 장군 종군이 남월을 정벌하면서 황제에게 밧줄을 내려주시면 남월의 왕을 묶어 오겠다고 말한 데에서 연유한다. 마지막 ‘창룡’은 중국 고대 전설에 나오는 나쁜 무리 즉 장제스와 국민당군을 비유한다. 특히 이 시에서 ‘장성에 오르지 못하면 어찌 장부라 하리요(不到長成非好漢)’는 오늘날 베이징 만리장성의 홍보 슬로건이 되어 성벽에 큰 글씨로 붙어 있다.

낡은 정치세력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는 과정은 언어의 쇠락과 실패에서 먼저 나타나며 새로운 정치세력이 흥기하는 과정 역시 언어에서 그 역량을 보여 준다. 즉 언어의 적합성을 보기만 하면 누가 누구를 이길지 알게 된다.(477쪽)

끝으로 마오쩌둥의 어록은 대부분 매혹적이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특히 좋아하는 문장 하나를 소개한다.

“옛것은 오늘을 위해 쓰고 서양의 것은 중국을 위해 쓴다.”(古爲今用 洋爲中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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