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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항쟁에도 평등파와 자주파의 대립이 있었다
동학항쟁, 일본 침략 없었다면 혁명으로 승화됐을 것
김갑수 | 2017-01-02 12:47:0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동학항쟁에도 평등파와 자주파의 대립이 있었다
[김갑수의 조선역사 에세이] -49

“부인이 남편의 명을 따르지 아니하거든 정성을 다해 절하라. 온순한 말로 한 번 절하고 두 번 절하면 비록 도척의 악이라도 바람직하게 변하리라.”

“부녀자의 베 짜는 소리도 한울의 소리라. 어린아이도 한울님을 모셨으니 울리지 말라.”

위는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의 어록에서 뽑은 문장들이다. 최시형은 제자들이 휴식을 권유했을 때, “한울님이 쉬지 않는데 사람이 한울님이 주는 밥을 먹으면서 손이 놀고 있으면 한울님이 노하신다.”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과히 틀리거나 나쁜 말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이런 말들이 다소 상투적이고 치졸한 것으로 들린다. 이처럼 역사에서 이름은 크게 남겼는데 언행이 실속이 없을 경우 대체로 허명인 경우가 많다.

나는 갑오년 동학항쟁과 관련된 네 명의 인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먼저 나는 전봉준과 김개남은 세상 통념에 비해 훨씬 뛰어난 인물인 것에 반해, 최시형과 손병희는 알려진 것보다는 후진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이 중에서도 나는 최시형에 관해 완전히 새로운 평가를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유감스럽게도 최시형의 이름값은 허명이 크다는 것이다.

최시형은 동학시조 최제우의 계승자로서 교조신원운동을 통해 동학을 확산시킨 공로가 있다. 그가 잿더미가 된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구술로 복원한 것은 상찬 받아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역사적 인물을 평가할 때 이런 류의 실적보다는 그 사람의 인간성이나 능력을 더 중시하는 입장을 취한다.

동학군이 대패 궤멸한 것은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였다. 그것은 전쟁이 아니라 일방적인 학살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동학군의 패배는 처절한 것이었다. 동학에서는 북접과 남접의 내부 갈등이 격심했는데 북접의 지도자가 최시형이었고 남접의 지도자가 전봉준이었다.

전봉준 등이 일으킨 동학군 2차봉기의 기세는 실로 대단했다. 만약 그때 남북접이 힘을 모아 곧장 서울로 진격했더라면 농민군의 발길이 서울에까지 미쳤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그리하여 '척양척왜'의 깃발을 장안거리에 휘날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북접의 최시형은 끊임없이 남접을 경계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심지어 그는 삼례에 모여 있는 남접군을 토벌하라는 고절문을 써 붙이기도 했다.

“도로써 난을 지음은 불가한 일이다. 호남의 전봉준과 호서의 서장옥은 국가의 역적이요, 사문의 난적이라. 우리는 빨리 모여 이들을 공격하라.”

사실 북접군에게는 전투 능력이 거의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입으로만 이렇게 말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농민군의 진격이 20일 이상이나 지체되어 공주성을 관군에게 선점 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최시형 등은 충주에 주둔 중인 일본군 벌창소에 남접을 토벌해 달라는 건의서를 두 번이나 내기도 했다.

“남접의 무리는 망령되이 척화라 일컫고 무지한 교도들을 선동하여… 우리 북접을 끼고 봉기하려 했으나… 북접은 따르지 않았습니다. 남접이 사람을 많이 죽였습니다. 우리 북접은 죄를 짓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장차 우리는 남접을 성토하려고 합니다.” (『시천교역서』 626쪽 요약)

최시형 등의 북접이 남북접 합작에 동의한 것은 관군이 자기들을 남접과 달리 대우하지 않고 함께 토벌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안 이후였다.

우여곡절 끝에 대회전이 시작되었고 최시형과 손병희 등은 적군이 나타나기도 전에 몸을 피했다. 이후 동학군은 궤멸되었고 전봉준 등은 체포되어 사형을 당했다.

놀랍게도 최시형이 가장 잘한 일은 은신과 도망이었다. 평생을 보따리 하나만 둘러메고 도망만 다닌 ‘보따리 최’ 최시형은 훗날 치악산에서 체포되어 역모죄가 아닌 좌도난정의 죄목으로 교수형에 처해졌는데, 이때 그의 나이 72세였다.

“사람이 곧 한울이요 한울이 곧 사람이니 사람밖에 한울이 없고 한울밖에 사람이 없다.”

최시형의 ‘인내천’ 법설은 과히 틀리거나 나쁜 것은 아닌지만 여전히 공소한 메아리만 울리고 있을 뿐이다. 동학 후학들이라면 이것을 더 정교하게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 아닌가? 후세 보완이 따르지 않는다면 역사는 언젠가 최시형을 한갓 나약한 종교인이요, 기회주의적인 진보로 평가하게 될 것이다.


동학항쟁, 일본 침략 없었다면 혁명으로 승화됐을 것

갑오년 동학항쟁의 전개 과정은 크게 4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제1기는 고부 봉기다. 고부 군수 조병갑의 횡포와 착취가 농민 항쟁의 불을 당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조병갑의 횡포와 착취를 보다 못한 전봉준은 1,000여 명의 농민군을 이끌고 관아를 습격하여 군수를 내쫓고 아전들을 징벌한 뒤 농민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그 뒤 더 이상의 행동을 취하지 않은 채 10일 만에 해산했다.(1894년)

제2기는 동학항쟁의 절정기라고 할 수 있다. 고부에서 일어난 민란의 영향을 받은 동학도들이 전봉준, 김개남 등의 지도 아래 고부와 태인을 중심으로 들고 일어섰다. 이들은 보국안민(輔國安民), 제폭구민(除暴救民)의 기치를 내걸었다. 고부 지역에 머물렀던 제1기와는 달리, 고부와 태인에서 봉기하여 황토현 싸움에서 관군을 물리치고 정읍 고창 함평 장성 등을 공략한 다음, 전주까지 점령했다. 포접제를 활용하여 지역과 지역을 연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각지의 동학도들이 연계하여 봉기할 수 있었다.

제3기는 동학 농민군이 정부와 전주 화약을 맺고, 전라도 53군에 일종의 민정기관인 집강소를 설치하여 치안과 행정을 맡아보면서 자신들이 제시한 폐정 개혁안을 실천에 옮긴 시기이다. 하지만 정부는 전주 화약에서 동학도들에게 약속한 것과 같은 개혁을 이행하지 못했다. 정부는 이미 동학 농민군을 무력으로 진압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청에 파병을 요청했다. 이에 청군이 조선에 파병되었고 톈진조약에 따라 일본군도 조선에 들어왔다. 이것은 청일전쟁으로 비화되었다.

제4기는 청일전쟁에서 승세를 잡은 일본이 조선에 대한 내정 간섭을 강화해 나가자, 이에 대항하여 대규모로 동학 농민군이 다시 일어난 시기이다. 일본의 본격적인 침략에 맞서 동학의 기치 아래 모인 농민군이 또다시 일어난 것이다. 논산에 집결한 동학 농민군은 공주 우금치에서 관군과 일본군을 상대로 대격전을 벌였다.

그러나 농민들이 근대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을 이기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전봉준 등 지도자들이 체포되고 동학항쟁은 실패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동학항쟁이 실패로 끝난 뒤에도 농촌의 도처에서 농민 부대의 반정부적인 활동은 계속되었는데, 장흥 대접주 이방언의 최후항쟁이 대표적이었다. 역사에 가정은 덧없는 것이지만 외세 일본의 침략이 없었더라면 동학항쟁은 필경 혁명으로 승화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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