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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사와 개화, 제국주의 침략기 지식인들의 방황
[김갑수의 조선역사 에세이] - 45
김갑수 | 2016-12-27 08:39:5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척사와 개화, 제국주의 침략기 지식인들의 방황
[김갑수의 조선역사 에세이] - 45

벼슬도 싫다마는 명예도 싫어
정든 땅 언덕 위에 초가집 짓고
낮이면 밭에 나가 길쌈을 매고
밤이면 사랑방에 새끼 꼬면서
새들이 우는 속을 알아 보련다

서울이 좋다지만 나는야 싫어 (후략, 나훈아 노래 ‘물방아 도는 내력’)

19세기 제국주의의 침탈과 함께 가톨릭이 확산되고 서구문물이 도래하자 조선의 전통적 가치들은 폄하되고 이에 따라 유학적 명분론도 힘을 잃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세도가문 안동김씨 중에서도 가톨릭 신자가 적지 않게 나왔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건순과 김백순은 안동김씨로서 가톨릭 신자가 되었는데, 김건순은 병자호란 때 척화파의 선봉이었던 김상헌의 봉사손(제사를 맡아 받드는 자손)이고 김백순은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에서 화약에 불을 질러 장렬하게 자결한 김상용(김상헌의 형)의 후손이다.

우리는 세도정치가일수록 유학적 명분에 집착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대체로 세도정치가일수록 전통적인 자주정신이 약했다. 이는 마치 현대의 수구독재자일수록 비전통적, 비자주적이라는 사실과 맥락이 닿는 대목이다.

정통 유림들의 눈에 당대의 위정자들은 하나같이 천박해 보였다. 득세한 지식인들은 문리에 어둡고 실력도 없으면서 틈만 나면 유학의 흠집이나 찾으려는 소인배들처럼 보인 것이다. 이에 따라 정통 지식인 중에서는 ‘도가 없는 나라에서는 출사하지 않는다’는 공자의 가르침을 따라 현실참여를 기피하는 경향이 확산되었다.

“사우(士友)들의 힘이 쇠락해 산으로 피하고 고루해지는 것이 날로 심해졌다. 도(道)를 바라는 마음은 있지만 깨우칠 여지가 없어졌다.”

이것은 1825년 전라도 학자 하백원이 지인에게 쓴 편짓글의 일부이다. 당대 지식인의 상심과 방황이 읽힌다. 19세기 제국주의가 침탈하고 세도정치가 발호하던 시절, 이런 지식인들은 부지기수로 나타났다. 예나 지금이나 참다운 지식인은 낙백하고 사이비 지식인이 판치는 것은 망국의 징조 가운데 하나이다.

오희상은 정통 유학자로서 홍문관 대제학을 역임한 오재순의 아들인데, 정조 대에 조정에 초빙되어 출사했지만 세도정치가 이루어지자 벼슬을 버리고 산림에 묻혀 공부에만 정진하면서 일체의 초빙에 응하지 않았다.

홍직필은 17세 때 산림학자 박윤원을 찾아가 배움을 청한 이후 경전 공부에만 전념했다. 그는 정계에도 인맥이 닿아 문하에 고관자제가 많이 출입했지만 출사하지 않고 오희상과 우정을 나누며 학문에만 정진했다.

그는 제자들에게 과거를 통한 벼슬살이는 욕이 될 뿐이라고 하면서, 그러니 두문불출하고 독서와 수양에만 진력하고 부지런히 농사지으며 어버이를 섬길 뿐 세상사에는 관여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이항로는 처음에는 정계진출에 뜻이 있어 과거에 응시했지만 낙방하자 고향인 경기도 양평에서 학당을 열어 후진 양성에 전념하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의 학문적 영향력은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송달수 역시 송시열의 8대손으로 충청도 지방에서 수많은 후학을 양성했다.

이처럼 재야학계를 주도한 지식인들은 세도정국에 비판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그들은 국세가 날로 위태로워지고 민생이 도탄에 빠졌다고 세도가들을 비판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벼슬에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하지만 그들의 뜻은 고답적이긴 했어도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어두웠고 지나친 화이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는 말이 있다. 맹자의 고향인 추나라와 공자의 고향인 노나라를 뜻하는데, 이는 당시 유림들이 많았던 영남지방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오희상은 황사영백서사건이 발발하고 영남지방까지 가톨릭이 전파되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황사영백서사건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고 있다. 가톨릭 신자 황사영이 북경의 가톨릭 주교에게 보낸 편지에서, 포교의 자유를 허용치 않는 조선에 군함을 보내 조선조정을 응징해달라고 한 사건이다.

이것은 종교를 빙자하여 외세를 불러들이는 저질의 국가반역 행위였다. 홍직필은 이 사건에 대해 “서양도적을 불러들여 나라를 바치려고 한 대역행위”라고 비난하면서, 앞으로도 황사영 같은 자들이 얼마든지 또 나타날 것이라고 예고했다.

마침내 19세기 중반 들어 서양 선박들이 조선반도 해안 전역에 걸쳐 침탈해 오자 지식인들은 본격적으로 척사론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척사론의 선봉장은 이항로였다. 그는 1836년에 쓴 ‘논양교지화’(서양종교의 화를 논함)에서 서양 오랑캐들의 침략을 격렬히 성토했다.

하지만 서양에 대한 지식인들의 입장은 제각각이었다. 그들은 척사파와 개화파로 갈렸고 중간적 입장인 동도서기파도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나 당대 지식인들의 주종은 이 글 앞의 가요처럼 벼슬과 서울을 멀리하는 현실도피적 삶을 지향한 것이 사실이다. 그들에게는 침몰하는 역사를 견인할 만한 어떤 힘과 방편도 없었다.

[사진] 19세기 서양 선박들의 출현, 전국 해안에 걸쳐 무려 30회 이상의 무단 침범이 도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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