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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하면 6.25지, 그거 아니면 현충일이고”
[보수선생전(傳)-7] 그해 6월, 부산
뒷북의 달인 | 2012-06-21 10:09:3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한참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흘러, 어느덧 저녁 때가 되었다.

“어르신, 시장하시지 않으십니까? 저녁이나 같이 하시지요.”
“응? 뭐... 내는 괘안타(괜찮다)... 와? 고만 할라꼬?”
“아뇨, 이야기가 더 길어질 것 같으니 식사라도 하시면서 하시지요.”
“음... 저녁이라...”

왜 고민을 하실까?

“일어나시죠. 저희가 대접하겠습니다. 요 앞에 자갈치 회센터에 누님 가게가 있어요.”
“뭐.. 그라믄.. 가 볼까..”

선생은 못 이기는 척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났다.

카페에서 큰 길 하나를 건너면 바로 자갈치였다.

듬성한 행렬 중간에서 천천히 걸어가는 선생의 뒷모습을 본다.

등은 약간 굽었지만 아직 꼿꼿한 자세다.

날이 저물고 이제 제법 혼잡해진 지하도 계단을 걸어 내려가던 선생이 뒤를 돌아본다.

“이 봐라. 이기 문제라꼬. 도대체가 이래가 되겠나.”
“네? 뭐가... 말인가요?”
“사회의식이요, 이래가 안된다꼬요. 이기 말이지. 질서가 이래가 될 말이가.”
“... 아...”
“우측통행을 하라카믄 와 안 하노 말이다. 정부에서 시기모 시기는 대로(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말이재. 말로 안들으요.”

선생은 지금 지하도 안, 무정부상태의 도도한 흐름 속에 서 있었다.

“우측통행이 백분 더 과학적이고 안전하다케. 그런 거로 알아서 연구를 해가 딱 국민들보고 시기는 줄 모르고 말이다.”

그래요, 그런 좋은 걸 왜 지금까지 (무려 81년동안) 놔뒀을까요.

그보다, 그런 걸 꼭 지켜야 하는 건가요?

“일본 같으모 택도 없다. 오데 이런 기 있노.”

글쎄요 전 일본을 안 가 봐서.

보수선생은 지하상가를 걷다가 또 한 번 눈살을 모았다.

선생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거기엔 또각또각 구두소리도 경쾌하게 걸어오는 아가씨 두엇이 있었다.

일찍 찾아온 더위 때문인지, 다른 무엇 때문인지 그녀들의 옷은 더 얇고, 더 짧아져 있었는데, 선생은 찌푸린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저것들이 대학생인지, 공장띠긴지, 술집여잔지...쯧쯧쯧...”

선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짧은 문장 속에 얼마나 많은 편견과 오해가 들어 있는가.

“가스나들이 저래 다리며 가슴이며 훤~하이 다 드러내놓고 다니모 우짜자는 긴지...”
“고맙죠.”

개념없이 끼어든 누군가를 흘겨보았다. 다행히 선생은 듣지 못했다.

“저라이 성폭행이니 뭐이니 하는 일이 자꼬 생기는 기라.”

글쎄, 과연 그럴까요.

물론 여자들에게 단정한 옷차림을 요구하는 것이 그런 범죄를 줄일 수 있을 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더 중요하게 해야 할 것은 남자들에게 남의 몸에 함부로 손을 못 대도록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요.

계단을 올라와 길 건너편의 지상으로 나왔다. 선생은 두리번 두리번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중얼 하더니 뭔가를 찾는 눈치다.

“아하, 저기 롯데백화점이구나. 시청자리였는데 저기가 저래됐네. 그런데...”
“뭐 찾는 거라도 있으세요, 어르신?”
“어... 내가 지하철 꽁짜라꼬 천날만날 땅 밑으로만 댕기이끼네 요 위에는 오랜만에 와본다. 그런데 와 그기 안 보이노?”
“뭐 말씀이십니까?”
“아.. 요 어데 파출소가 하나 안 있었나?”
“남포파출소 말이군요. 지금은 없어지고 관광안내소가 들어섰습니다. 이 자립니다.”

부산 남포파출소

 

 

 

 

 

 

 

 

남포파출소.

1987년 6월, 그 뜨거운 여름을 보냈던 사람들은, 그 건물이 그저 건물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리라. 80년대만 해도 이곳, 중구 남포동과 중앙동 일대야말로 '민주화 투쟁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었다. 당시엔 지금의 원도심이 부산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부산시청은 물론 미문화원까지 이 일대에 몰려 있어 시위지로서는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87년 6월항쟁 때, 부산의 대학생들과 넥타이 부대들은 날마다 남포동 일대에 모였으며 이들은 다른 행정기관보다 경찰기관인 남포지구대를 주로 공격했다. 당시 시위는 지금보다 훨씬 격한 모습을 띠고 있어 매일 같이 남포지구대엔 돌과 화염병이 날아왔으며, 결국 6월 민주항쟁 중 남포지구대는 불에 타버리고 말았다.

너무 과격한 것 아니었냐고? 글쎄.

아무 저항도 할 수 없는 상태의 여성에게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고문을 한다거나,

 

 

 

 

 

 

'용의자' 도 아닌 '참고인'인 대학생을 고문해 죽이고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따위의 말을 한다거나,

 

 

 

 

 

 

 


실탄이나 다름없는, 아니 어쩌면 더 위험할 지도 모르는 최루탄을 시위대에 직격시켜
결국 누군가가 죽는다면,

 

 

 

 

 

 

 



그것이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내 누이, 내 동생, 내 친구에게 벌어진 일이라면?
그리고 곧 나에게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면,
그때도 저런 반응을 과격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뭐 아무튼 격렬한 시위로 파출소는 불타버렸다.
그 뒤엔 어떻게 되었을까?

정부는 얼마 뒤 불에 타버린 남포파출소를 '토치카형'으로 새로 지어 저 윗사진에 나오는 대로의 모습을 갖췄다. 1개 파출소의 연면적만 220㎡. 지하1층에서 지상3층까지 빨간 벽돌로 두껍게 벽을 만들었고, 2~3층 창문의 크기는 얇고 길게 설계됐다. 중세시대 요새를 닮은 남포파출소는 시위대의 화염병과 돌멩이에도 끄떡없도록 만들어졌던 것이다.

축성술에 남다른 재주를 가졌다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수원성 공심돈을 설계한 정약용이 울고 갈 일이다. 시위대의 공격을 막겠다는 실용적인 의도도 있었겠지만, '절대 네놈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겠다'는 단호한(-_-;;;) 의지도 엿보인다.

그 덕분인지 새로 지어진 남포파출소는 그 후에도 격한 시위가 이어졌지만 웬만한 공격에는 흠집이 남지 않았다. 그러나 5공 정부가 무너지고 시위도 줄어들자 남포파출소는 '군림하던 정부의 상징물'로 흉물처럼 자리를 지키게 됐다. 결국 2008년 2월, 경찰 역시 '봉사하는 민중의 지팡이'로서의 이미지에 부합되지 않던 이 요새를 폐쇄하게 됐다.

곳곳에 있는 역사와 시대를 옆으로 하고 식당에 들어와서, 소주 몇병과 생선회 몇접시를 앞에 놓고 젓가락을 들었다.

"어허이, 보래, 자네 젓가락 잡은 손 한번 보자."

그럴 줄 알았어. 그냥 넘어갈 리가 없지.

보수선생은 일행 중, 유독 젓가락질이 서툰 한 사람을 콕 집어 불렀다.

"자네는 어느 나라 사람이고? 아니 멫살인데 젓가락을 그따구로..."
"... 너 밥상에 불만있냐?"

선생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로 누군가 이죽거렸다. 못 들은 것이 분명한 선생은 훈계를 계속했다.

"우리 아들은요, 젓가락질로 할 수 있을 때까지 방바닥에서 밥을 묵읐다. 조선사람이라카믄 젓가락질은 올키 해야 되는기라."

선생은 그 뒤에도, 요즘 회는 자연산이라 해도 전부 양식 같다느니, 요즘 소주는 순해서 소주도 아니라느니 하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한참 뒤에야, 나는 아까 남포파출소가 화제가 되었을 때 떠올랐던 질문을 보수선생에게 할 수 있었다.

"어르신, 어르신은 6월, 하면 어떤 날이 먼저 떠오르십니까?"
"6월은 6.25지."

그러시겠죠.

"그것 말고는요?"
"그거 아니면 현충일이지."

초지일관.

"네, 물론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지요. 그런데, 아까 남포파출소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87년 6월에는 민주항쟁이 아주 치열했지 않습니까? 어르신은 그때, 기억나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87년? 87년이면 언제고?"
"제5공화국, 그러니까 전두환 정권 말기입니다."
"아, 그라고 보이 6.29선언 말인가베."
"예, 6.10항쟁 얘깁니다."

한 사건을 놓고도 이렇게 우리는 생각하는 것이 달랐다.

우리는 그 뜨거웠던 여름의 시작, 불붙었던 그날을 떠올렸고,

선생은 항쟁의 끝, 저들의 항복선언(사실은 그것을 위장한 술책)이 있던 날을 떠올렸다.

(계속)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9&table=back_book&uid=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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