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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선생전(傳)-2] 마침내 ‘보수선생’을 만나다
올해 78세의 평범한 이웃집 할아버지... 손자에게 트위터 배워 ‘애국전사’로 데뷔
뒷북의 달인 | 2012-06-03 19:33:0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트위터에서 ‘보수선생’을 찾아낸 것은 어떻게 보면 우연에 가까운 일이었다. 4·11 총선 이후, 집단 멘붕사태에 빠진 트위터 세계에서 누군가가 이런 글을 읽었다고 한다.

사필귀정입니다부산지역총선결과는종북좌파세력을척결하겠다는자유민주주의수호애국시민들의승리입니다체제전복세력이발붙일곳은이제아무데도없읍니다(실제로도 이렇게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다)

플픽의 태극기, 자칭 애국 보수라는 자기소개, 글의 내용, 오래된 맞춤법, 어쩌면 이 사람에게서 우리가 찾는 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퍼뜩 머리를 스쳤다.

처음에 모임 사람들에게 보수선생을 인터뷰하자는 말을 했을 때, 많은 반대에 부딪힌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아저씨를 왜? 그 사람이 시민의 대표나 보수의 아이콘이라도 되나?”
“조갑제, 김진도 아니고, 변희재, 전원책, 아니 하다못해 강재천도 아니고 굳이 왜 그 아저씨를?”

물론 이 사람은 보수를 대표하는 논객도 아니고, 이 지역의 정치인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그런 사람들의 마음이 아니지 않은가. 평범한 부산 시민, 그 중에서도 보수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사람, 그들이 왜 줄곧 여당을 지지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이런 식으로 멤버들을 하나하나 설득했다. 그런 과정을 거친 후, 어렵사리 보수선생과 연락을 취해, 실제 만난 것은 한 달여가 지난 뒤였다.

부산의 옛 중심가, 남포동 거리에 멤버 중 한 사람이 운영하는 카페가 있다. 거기서 처음 ‘보수선생’을 만났을 때의 첫 인상은, 그냥 ‘할아버지’였다.

지하철 역 대합실이나, 동네 약수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그런 노인.

포마드를 바른 흰 머리, 알이 두꺼운 안경, 검버섯이 약간 피어오른 얼굴, 주름져 늘어진 목, 허름한 점퍼와 배까지 올라온 양복바지, 어울리지 않는 운동화.... 그 외에 눈에 띄는 것은 유달리 크고 거친 손과 왼손약지에 끼워져 있는 굵은 반지 정도였다.

글머리에 소개했듯이 첫 대화로 족보를 따져본 ‘보수선생’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간단한 질문부터 먼저 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은 올해 춘추가 어떻게 되십니까?”
“1935년생 돼지띠, 올래(올해) 칠십여덜이요.”
“저희가 연로하신 선생님을 수고롭게 이렇게 만나 뵙자고 한 것은, 이번 총선에 대해서 몇 가지 여쭙고 싶어서입니다. 혹시 트위터에 이러한 글을 올린 적이 있으신지요.”
“있지. 뭐 그기 잘못 됐나?”
“아뇨 아뇨, 저희는 그저 이번 총선 결과를 낳은 부산의 민심, 그 일면을 선생님을 통해서 알아보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그럼, 우선 선생님께서 살아오신 생애에 대해 간략히 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이야기를 시작한 ‘보수선생’의 생애는 대략 이러했다.

‘보수선생’은 1935년, 일제강점기에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태어나서부터 그리 넉넉하지 않았던 살림은, 선생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선생의 아버지가 앓아눕게 되면서 더욱 기울었다고 한다. 갑자기 어려워진 형편에 선생은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어린 나이에도 조선공사(지금의 한진중공업)에서 사환으로 일을 시작,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그 뒤로도 철사공장, 전구공장 등을 돌며 ‘안 해본 고생이 없는’ 청소년기를 보냈다고 한다.

“지금 여기서 보일란가 모르겠는데, 저 영도다리 안 있소? 영도다리캉 내캉 동갑이라요.”

사실, 영도다리는 1934년 11월에 완공되었으니, 선생보다 한 살 위다. 그 정도야 애교 아닌가.

“그 다리가 억수로 튼튼하다케. 요새 수리하는지 철거하는지 한다꼬 뜯어봤다 카지요? 아직 까딱 없다케. 왜놈들이 놓을 때 땐땐하이 놨거든. 우리가 마 일제 치하에 압박과 설움을 받았지마는, 왜놈들한테 배울 거는 배와야 된다꼬.”

현실 속의 영도다리와 일본이라는 나라는 선생이 알고 있는 것과 제법 많이 다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생에게 있어서 영도다리는 그저 다리 이상의 무엇이었고, 일본이라는 나라는 아직도 경외의 대상인 것 같았다. 

가난, 가난, 지독한 가난. 그러나 선생은 그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려 했다. 일하는 틈틈이 한 공부로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지역의 사립고등학교 야간부에 입학, 그야말로 주경야독의 나날을 보냈다.

8·15 광복, 6·25 동란이라는 격동기를 같은 시기에 겪었지만, 선생은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질칠 수밖에 없는 청소년기를 지내야 했다.

“휴전하고 얼마 안돼가 군에 입대를 하게 됩니다. 그때는 군대 가면 다 죽는다 그랬어요.”
“그 당시면 휴전이 정말 글자 그대로 전쟁을 잠시 쉬는 것 같은 분위기였겠네요.”
“말이라꼬 하나. 무섭기도 억수로 무서웠지만, 고생도 고생도... 요즘 군대는 군대도 아이라요. 우째됐든동 밥은 안 굶는다 아이가.”
“군인들에게는 그래도 국가에서 보급이 나왔을 텐데도 형편이 많이 어려웠나보네요.”
“어려운 정도가 아니지. 내 얘기를 해보까요? 하루는 내가 마침 배식조가 됐어. 취사반에서 내무반으로 이런 도라무깡(드럼통) 반 짤란 통에다가 내무원들 묵을 밥을 퍼가 둘이서 어깨에 메고 온다꼬. 그래 둘이 지고 오다가 어디 막사 뒤에 안보이는 데 가서 몰래 막 퍼묵었지. 반찬이 어데 있고 숟가락이 어데 있노? 맨손으로 맨밥을 막 퍼묵었다꼬. 그래가 내무반에 가니 밥이 모자랄 거 아이요? 죽도록 맞았지. 그란데, 맞아도 좋더라꼬. 배는 안 고팠으이끼네.”
“아무래도 전쟁으로 모든 것이 황폐화 되다 보니...”
“전쟁 중에도 그랬고, 끝나고도 그랬고... 지금 생각해보믄요, 미군 아이랐으몬 우리는 다 굶어죽었다꼬. 구호물자로 다 묵고 살았는기라. 지끔 젊은 사람들은 그런 거를 모르지요? 미국이 우리를 살맀다꼬.”

군복무를 마친 선생은, 지인으로부터 그 성실성을 인정받아 어느 해운회사에 일자리를 얻게 된다. 그리하여 30여년, 그야말로 부지런히 일만 하며 살아왔다. 그간 결혼도 하고, 아이도 얻고, 작으나마 자기 집도 하나 살 수 있었다.

세월은 흘러, 회사에서 정년퇴직한 선생의 행보는 일견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참으로 씁쓸한 것이었다. 퇴직금과 적금을 가지고 조그만 자영업을 시작했으나, 보기 좋게 말아먹고 말았다. 이후, 당장의 호구지책과 자식의 학비마련을 위하여 주유소 아르바이트, 아파트 경비 같은 일을 또 해야만 했다.

“그것도 10년 전 일이고, 지끔은 집에서 놉니다.”

옅은 웃음을 띠면서 말을 마친 선생에게 누군가 물었다.

“트위터는 어떻게 하시게 된 겁니까?”
“아, 그거는 우리 손지다테(손자에게) 갤키돌라 캐쓰요.(가르쳐 달라고 했어요) 내가 쫌 필요한 일이 있어서.”
“필요한 일이요?... 어떤?...”
“그게 머냐카믄...”

‘보수선생’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자네들도 아다시피, 지끔 우리나라에 종북좌파가 얼매나 많노 말이다. 아주 막 드글드글한다꼬. 그란데 내 약수터에 가가 들으이 이거 머 핸드폰 하고 인터넷에 그런 기 더 많다케. 글타케서 우리 대한민국이 완전 뺄개이(빨갱이) 세상이 돼뿟느냐... 하몬 그거는 또 아인기라. 침묵하는 대다수 선량한 국민들은 옳은 정신머리를 가 있다꼬. 그란데 일부! 일~부 소수 불순분자들이 트위터라든가 인터넷이라든가 이런데서 선동질을 하고 있으이, 우리 같은 사람이 너무 가만 있으모 그놈들이 막 활개를 친다 말이오. 그래서 마 이 진정한 민심을 올바로 전달해주는 목소리를 내자... 마 그래 생각을 했지.”

벌써 느낌이 온다.

“종북좌파....라면 어떤 사람들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누가 짐짓 물어보자, 보수선생은 쥐고 온 조선일보 신문을 테이블 위에 탁 하고 내려놓았다.

“자네들은 신문도 안 읽나? 하기사 요즘 젊은 사람들은 신문을 잘 안 읽어요. 천날만날 테레비나 보고, 인터넷만 하재. 자 봐라, 오늘자 조선일보 1면에 뭐라 나와 있는지.”

선생이 펼친 신문 1면에는, 당시 연일 보수언론의 1면 첫머리를 장식하던,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 관한 기사가 역시나 대문짝만하게 나 있었다. 선생은 신문 곳곳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말했다.

“봐라, 통합진보당! 응? 경기동부! 주사파! 여기도 보래, NL! 종북! 이기 이기 다 뺄개이라!”

선생의 눈에는 어느덧 번들번들 광채가 나고 목에는 핏대가 올랐다. 잠시 동안 우리 중 누구도 말을 할 수 없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9&table=back_book&uid=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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