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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폼도 뻘거이 누가 뺄개이 아이라 칼까봐”
[보수선생전(傳)-11] 71년 대선서 영-호남 대결... 87년 대선 때 지역분할 고착
뒷북의 달인 | 2012-07-08 13:35:0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귀양과 유배에 따른 한풀이’ 이론은 더 말이 안된다. 이것도 ‘유배문화론’이라는 그럴 듯한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는데, 일단 뭐 조선조때의 귀양/유배지 통계부터 보는 것이 순서 아닐까?

통계에 따르면 『조선인명록』에 실린 사람 중 조선시대 340년간에 귀양살이를 한 사람 수는 700명인데 그 중 4분의 1인 178명이 전남에, 2명이 전북에서 유배생활을 했었다고 한다. 오오 꽤 많은 수 아니냐고? 훨씬 더 많은 수의 사람이 삼수, 갑산과 같은 함경도, 평안도 국경지역으로 갔고, 거제도를 비롯한 경상도 지역도 만만찮은 숫자를 차지한다.

이곳들이 유배지로 쓰인 것은 요는, ‘한양에서 멀어지는’ 것이 중요할 뿐, 동이든 서든 남이든 북이든 그리 썩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는 거다. 게다가 이 사람들이 일단 유배되면 한 곳에 계속 주구장창 머무는 것이 아니라, 평균 1년이 채 못 되어 이리 저리 옮겨가는 바람에 무슨 지역민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 후손이 뿌리를 내리고 이럴 계제가 아니었다. 유배문화론 역시 어불성설이다.  

6.25 때 참전율, 탈영율 어쩌고 하는 개소리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전쟁 당시, 사단 편제를 흐트러뜨리지 않은 거의 유일한 사단이라 할 한국군 1사단의 주력이 호남 출신들이었다는 얘기가, 이것 참, 이런 데서 이름 들먹거리기 싫은데, 백선엽의 회고록에도 나온다.
 
 













<그래, 쏴 주마.> 

‘하와이 필화 사건’은, ‘황색잡지 축에도 못 끼는 찌라시’에 시인인지 소설가인지 모를 어느 글쟁이가 배설물마냥 퍼질러 놓은 것일 뿐, 이 역시 지역주의의 어떠한 근거나 유래는 되지 못한다. 대표시집으로 이승만 찬가집 <우남찬가>를 내세운 작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과 편견, 근거를 알 수 없는 속설 따위를 나열해 놓은 저런 따위에 ‘글월 문(文)’자를 넣는 것도 아깝다.

 

 

 

 

 

 

<주의 : 읽고 나서 각자의 방식으로 안구를 정화하시오.>  

그러고 나면, 이제 남는 것은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 이후의 일이다.

당시, ‘40대 기수론’을 제창하여 세대교체 바람을 몰고 온 김영삼을 당내 경선에서 물리치고 단일 야당 신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김대중은, 3선개헌을 통해 세 번째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박정희와 맞서게 되었다.

영남 출신의 박정희와 호남 출신의 김대중이 격돌하는 대선의 특성상 선거 운동 과정에서 지역감정 선동이 극심했는데, 먼저, 김대중은 호남 소외론을 내세워 당시 상황적으로 발전이 더디던 호남 지역의 호응을 이끌어 내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중앙정보부가 조직적으로 자행한 선동 등에 의하여 영남의 ‘지역감정적 투표 행태’가 더욱 극심해졌다.

대선 당시 이효상 국회의장은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우리 영남인은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다"는 언급을 하였다. 이효상은 박정희 지지 찬조연설에서 "쌀밥에서 뉘가 섞이듯이 경상도에서 반대표가 나오면 안 된다. 경상도 사람 중에서 박대통령 안 찍는 자는 미친놈이다."라는 언급을 한 적이 있다.

또한 박정희 측에서는 "신라 대통령론"과 선거 3일전 호남에서 영남인의 물품을 불매하기로 했다는 내용의 허위전단을 뿌려 영남지역의 강한 지지를 이끌어 내었고, 이는 호남의 김대중 지지율에 비해 영남의 박정희 지지율이 더 압도적으로 높은 선거결과로도 나타났다.  

“그거는 헛말이 아이다. 전라도에 가모요, 롯데과자는 팔지도 않는다고. 부산 남바 붙은 차는 기름도 안 여 준다케. 전라도 하와이 고놈들이요, 지독한 놈들이라요.”

“선생님께서 전라도에 가셔서 겪으신 일인가요?”

“아이, 내사 전라도는 가 본 일이 없지마는 말이다..”

“예...”

보지 않고도 믿어야 할 일인가 보다. 

이러한 지역주의의 흐름은, 이 이야기를 하게 된 계기이기도 한, 6월 항쟁 직후인 1987년의 제13대 대통령선거에도 이어졌다.

이 선거의 후보는 집권 민주정의당의 노태우와 야당의 이른바 ‘3김’으로 통일민주당의 김영삼, 평화민주당의 김대중,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 외에 4명의 군소후보(이 중 백기완 선생 지못미ㅠㅠ) 등 8명이었는데, 단연 관심은 첫 네명, 즉 이른바 ‘1노3김’에 쏠렸다. 

군복을 양복으로 갈아입었을 뿐, 전두환과 전혀 다를 것 없는 인생을 살아온 주제에 “이제는 안정입니다!”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자칭 ‘보통사람’ 노태우. 

그 노태우와 전두환의 신군부 세력에 의해 축출된, 그래서 무슨 낯짝으로 출마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궁금할 따름인, 유신세력의 잔당 김종필.

오랜 세월 동안 그들,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함께 싸워 왔으며, 그들을 끝장낼 절호의 기회를 맞았지만, 보수선생의 표현대로 ‘차려준 밥상도 못먹고 뒤엎은 쪼다같은 새끼들’ 김대중과 김영삼. 

이들에게는 모두 ‘비빌 언덕’, ‘믿는 구석’인 자신들의 근거지역이 있었다.

노태우는 경북·대구를, 김영삼은 부산·경남을, 김대중은 호남, 김종필은 충청을 중심으로 표를 모아 갔다. 당연히, 지역대결이 될 수밖에 없었다.

노태우와 김영삼이 호남유세에서 달걀과 돌 세례를 받고 유세를 중단하는 불상사가 일어나는 등 선거는 사상 유례없이 지역대결로 치달았다. 플라스틱 방패로 날아드는 계란을 막아내던 노태우의 경호원들과, 빈볼 아닌 빈스톤^^;;;에 비명을 지르던 김영삼의 모습은 내 기억에도 선명하다.

후보 단일화에 실패한 김영삼에 대한 반응은 그렇다 치고, 노태우는.... 글쎄다. 80년 광주는 고작 7년전의 일이었다. 김대중이라고 해서 영남 유세를 무사히 마칠 리 만무했다. 각 언론, 특히 방송사는 그런 장면을 주요뉴스에 올려 신나게 틀어댔고, 그 결과로 각 후보의 지지자들, 그리고 그 지역 사람들 간에 생긴 증오의 골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이런 걸 준비해 간 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얘기겠지?> 

“그라고 보이 자네는 고향이 어데고?”

“아, 저는 부산 토박이입니다.”

“부모님은?” “부모님도 마찬가지죠. 아버지는 동래에서 태어나셨고, 어머니는 저기 어디냐... 재송동...”

“그래, 나는 혹시 자네가 전라도 사람인가 싶어서 물어봤다. 여 있는 사람들 중에 누가 있는지는 몰라도, 하이튼 전라도 사람들은 상종을 하모 안돼요. 내가 우리 아들다테도, 여자를 알아가 결혼을 할 때, 다른 거는 다 괜찮은데 전라도 여자는 안된다켔다카이.”

예, 예, 그러시겠죠.

“그것들은요, 또 즈그끼리는 윽수로 똘똘 뭉치요. 그런 말 못 들었나, 우리 나라에서 절대 건드리면 안되는 조직이 해병대 전우회, 호남향우회, 또 하나는 뭐라카드라... 이자뿐는데 하이튼 그렇다 안 카드나. 넘들다테는 배신해도요, 즈그끼리는 단결하는 기 무섭다카이.”

“그런가요?”

“그라모! 자네들은 뭐 부산에 한나라당 투표율이 몇프로니 어쩌니 하지마는, 광주는 어떻노? 거는 99프로 아이가? 와 그런 거는 말로 안하노 말이다. 그라고, 가들이 단합을 잘한다카는 거는 야구만 봐도 안다.”

“야구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아 옛날에 해태 기억 안 나나? 야구가 단체운동 아이가. 전라도놈들이 그런 거는 사실 무섭게 잘한다꼬. 니나 내나 부산놈들 맨추로 허리벙~하이 안 그렇고.”

하긴, 전성기의 해태타이거즈는 정말 무서운 팀이었다.

술을 마신 선생의 머리와 혀는 약간씩 탈선하고 있었다.

“유니폼도 참말로 뭐같이 뻘~거이 해가꼬... 누가 뺄개이 아이라 칼까봐 말이다.”

그러게.

이 빨갱이 새끼들 같으니라고.(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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