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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길상면 선두리 수로(水路)의 꿈같은 풍경
가슴에 품은 만추의 마지막 비경, 마치 꿈속에서 본듯한 아득한 풍경…!
장유근 | 2015-11-17 13:37:0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강화도 길상면 선두리 수로(水路)의 꿈같은 풍경
-가슴에 품은 만추의 마지막 비경- 

마치 꿈속에서 본듯한 아득한 풍경…!
 
올해의 날씨는 예년에 비해 많이 달랐다. 해마다 겪는 크고 작은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하지 못하면서 전국은 가뭄에 허덕였다. 저수율이 바닥을 헤매고 있는 가운데 장맛비까지 시원스럽게 내리지 못했던 것. 어떤 싹수없는 녀석들은 가뭄과 홍수에 대비한다며 4대강을 마구 후벼 파더니, 정작 가뭄과 홍수때는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그래도 백성들은 녀석들을 애써 못 본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며 산다. 우리도 그 중 하나…!
 
지난 주말 자주 다니던 강화도를 두 번씩이나 연거푸 다녀왔다. 이유가 있었다. 긴 여정을 떠나기 전 강화도 갯벌을 카메라에 담아야 했다. 늘 우리곁에 있어줄 것만 같던 갯벌 조차 언제인가 다 후벼 팔지도 몰라 카메라에 담은 건 아니었다. 아내의 화폭에 마지막으로 그려질 주제가 갯벌이었다. 언제부터인가 텅빈 벌판에서 쉬쉬 바람소리는 내던 풍경을 그리고 싶다더니 마음이 바뀌었다.

지난 10월 초하루 동검도를 다녀오면서부터 갯벌을 가슴에 품은 것. 그땐 마른 바람이 갯벌을 할퀴고 지나 다녔다. 그런데 지난 주말 강화도의 날씨는 사뭇 달랐다. 오후 늦게부터 비가 오겠다던 일기예보와 달리 강화도에 상륙하자마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최첨단 기계를 하늘에 띄워놓고 분석을 해도 하늘은 가끔씩 엉뚱한 짓을 하는 것. 덕분에 평소 늘 지나치던 풍경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강화도 길상면 선두리 수로의 꿈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 것. 이랬다.

세상 참 좋아진 지 오래다. 필설로 주절주절 늘어놓아 본들 현장의 모습을 영상에 담는 것 보다 못한 세상이다. 사람들 마다 느낌은 다를 수 있겠지만 이날 마주친 선두리 수로의 모습은 최고였다. 만추의 수로에 바람까지 곁들이니 마치 먼 여정을 떠나는 마음을 대신해 준 것 같았다고나 할까. 무엇이든 '마지막'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면 비장한 각오를 하거나 왠지 모르게 슬퍼지는 것. 그래서 사람들은 마지막이란 표현 앞에서 머뭇거릴 수 밖에 없다. 한 손에 우산을 받쳐 들고 한 손에는 묵직한 카메라가 들려 있는데 뷰파인더 속에서 선두리 수로는 꿈을 꾸고 있었다.

선두리 수로는 삼랑성1에 안긴 전등사2로부터 자동차로 10분도 채 안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다. 강화초지대교를 건너 동막 해수욕장 방면으로 직진하면 선두리 포구에 금방 다다르는 것. 선두리 포구는 아는 사람들만(?) 찾아가는 명소이다. 요즘은 전어와 새우가 한창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은 갯벌이라고 했다. 갈 비가 추적추적 오시던 날 선두리 수로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선두리 수로는 선두리 포구를 마주하고 있고 수문을 굳게 잠그고 있었다. 그래서 화도면 벌판을 적시는 수로는 커다란 호수를 방불케 하는 것. 선두리 수로는 ‘싸가지들의 국고 파먹기’가 아니었다. 주지하다시피 화도면은 1706년 조선 숙종 때 강화유수 민진원의 간척사업으로 강화도에 연육되었다. 섬이 육지로 변한 것. 일제강점기 당시(1937년) 이름을 하도면(下道面)에서 화도면(華道面)으로 개칭했단다.(왜 그랬을까?)

단군 할아버지의 얼이 깃든 마니산(참성단)의 맥을 겨우 지키고 있는 게 선두리 수로이다. 물 한가운데 띄워둔 제단의 형상(水中山3)을 수로가 지키고 있는 것. 길정리 길정저수지에서 발원한 물이 망실지에 모이면 망실지에서 동과 서로 바다를 잇게 된다. 즉 선두리 수로는 후포항 선착장 쪽으로 이어지는 것. 단군 할아버지께옵서 겨우 숨을 쉴만한 숨통이 선두리 수로랄까.

지난 주말 이틀 동안 강화도를 돌아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했다. 꽤 오래전부터 들락거린 강화도는 마음의 고향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넉넉한 할배 품에 안긴듯한 아늑한 느낌이 들었던 곳. 단군 할아버지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4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다시 만난 강화도의 풍경은 삭막했다. 이제 대한민국은 더 이상 발 디딜 틈 조차 없는 것일까.

강화 일주도로를 따라가면 곳곳에 지어진 팬션과 카페와 개발의 흔적들. 강화도는 외부인과 터줏대감의 거래로 만신창으로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한민족의 정체성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며 비아냥거리는 듯한 모습들. 선두리 수로에 한 방울씩 맺히는 빗방울이 선조님들이 흘리시는 눈물인지 한동안 걸음을 붙들게 한다. 참 희한한 일이다. 비에 젖은 갯벌을 카메라에 담는 동안 달님이 내게 말했다.

“우리는 만나지도 못한 채 서로 그리워 하는 사이인가 봐요.”
(왜 그런 생각을...?)
“당신께 가까이 다가가 보려 애를 썼지만, 그때 마다 우린 멀어지곤 했죠.”
(언제 다녀가셨지요?...)

달님의 고백을 알아차린 건 수로에서 등을 돌린 직후였다. 그곳엔 갯벌이 저만치 멀리 펼쳐져 있었다. 달님은 밀물을 타고 뭍으로 다가왔지만 다시 썰물을 타고 저만치 가 버리고 말았다. 그런 세월이 억만겁에 억만 겁. 달님이 다녀간 흔적은 갯벌 위에 촉촉히 젖은 채 작은 도랑을 만들어 두었다. 밤에는 은구슬을 낮에는 일곱빛깔에 일곱을 더하거나 곱한 빛깔로 수 놓은 곳. 그 갯벌 위로 바람과 비가 마구 흩날렸다.


1.삼랑성-일명 정족산성이라고도 한다. 성을 쌓은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단군이 세 아들에게 성을 쌓게하고 이름을 삼랑성이라 했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보인다. 처음에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는데 삼국시대에 이르러 그 위에 막돌을 맞추어가며 쌓았고 성체 안에는 막돌을 채운 튼튼한 석성으로 축조되었으며,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보강되었다. 성안에는 전등사는 물로 고려시대에는 가궐, 조선 시대에는 사고와 선원 보각이 있었다. 현종 1년(1600년)에 마니산에 사고(史庫)를 옮겨 세우고 실록(實錄)을 감추어 보관한 일로 유명하다. 1866년 병인양요 때 이 성을 침략한 프랑스 군을 양헌수 장군의 병사들이 물리쳐 이속에 보관된 《조선왕조실록》과 왕실 족보인 《선원보》를 지켰다. 1976년에 남문인 종해루를 원형대로 복원했다.<위키백과>

2.전등사-고구려 소수림왕 11년인 381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현존하는 한국의 사찰 중 가장 역사가 길다. 아도화상이 처음 절을 지을 때는 진종사(眞宗寺)로 명명했다. 고려 고종 46년인 1259년에 진종사 경내에 가궐을 지은 것으로 다시 기록에 등장한다. 고려는 1232년부터 1270년 사이 강화도에 임시 도읍을 정했다. 1266년 진종사는 크게 중창되었으며, 충렬왕 8년인 1282년 충렬왕의 왕비 정화궁주가 진종사에 시주한 것을 계기로 전등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전등은 ‘불법(佛法)의 등불을 전한다’는 뜻으로, 법맥을 받아 잇는 것을 뜻한다. 고려 왕실은 전등사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계속해서 중수가 이루어졌으나, 조선 광해군 대에 이르러 화재로 건물이 소실되어 1621년 재건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마니산 사고가 병자호란으로 훼손된데다 효종 4년(1653년) 화재로 소실되자 1660년 전등사 경내에 정족산 사고를 설치하고 실록을 보관하게 하였다. 정족산 사고는 적장산, 오대산, 태백산과 함께 조선 후기의 실록 보관소가 되었다. 1707년, 강화 유수였던 황흠은 사고를 고쳐 짓고, 다시 별관을 지어 취향당이라 이름하였다. 그때부터 정족산 사고는 실록은 물론 왕실의 문서까지 보관하는 보사권봉소로 정해졌다. 1726년에는 영조가 직접 전등사를 방문해 ‘취향당’ 편액을 내렸고, 1749년에는 영조가 시주한 목재를 사용해 전등사를 중수하였다. 한때 한용운과 만공의 상좌인 춘성이 주지로 근무하기도 했다.

3.수중산-《단군세기(檀君世紀)》에는 “……이 분이 단군이다. ……제천단을 쌓고(강화도 마니산에 있음.) 삼랑성(三郎城)을 쌓으시다(성이 강화 전등산에 있고 세 아들을 보내어 쌓았기 때문에 삼랑이라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 《수산집 修山集》의 〈동사 東史〉에는 “제천단은 강화도 마니산에 있으니, 단군이 혈구(穴口:강화의 옛이름)의 바다와 마니산 언덕에 성을 돌리어 쌓고 단을 만들어서 제천단이라 이름하였다. 단은 높이가 17척인데 돌로 쌓아 위는 네모나고 아래는 둥글다. 위의 네모는 각 변이 6자 6치요 아래는 둘레가 60자이다. 혹자에 의하면 마니는 강과 바다의 모퉁이라, 땅이 따로 동떨어지고 깨끗하며 고요하여 신명(神明)의 집이 된다. 그러므로 제터를 닦아 한얼님께 제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은 음(陰)을 좋아하고 땅은 양(陽)을 귀하게 여기므로 제단은 반드시 수중산(水中山)에 만드는 것이요, 위가 네모나고 아래가 둥근 것은 하늘과 땅의 뜻을 세운 것이다.” <위키백과>

4.삼랑성-일명 정족산성이라고도 한다. 성을 쌓은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단군이 세 아들에게 성을 쌓게하고 이름을 삼랑성이라 했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보인다. 처음에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는데 삼국시대에 이르러 그 위에 막돌을 맞추어가며 쌓았고 성체 안에는 막돌을 채운 튼튼한 석성으로 축조되었으며,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보강되었다. 성안에는 전등사는 물로 고려시대에는 가궐, 조선 시대에는 사고와 선원 보각이 있었다. 현종 1년(1600년)에 마니산에 사고(史庫)를 옮겨 세우고 실록(實錄)을 감추어 보관한 일로 유명하다. 1866년 병인양요 때 이 성을 침략한 프랑스 군을 양헌수 장군의 병사들이 물리쳐 이속에 보관된 《조선왕조실록》과 왕실 족보인 《선원보》를 지켰다. 1976년에 남문인 종해루를 원형대로 복원했다.<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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