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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다시 선정해야 한다.’
“가짜 독립운동가, 어림잡아도 100명 추정돼”
정운현 | 2018-10-04 11:54:1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역사비평>에 이 글을 쓴 게 1991년 가을이니 햇수로 벌써 27년이 지났다. 1988년 말부터 친일문제에 매료돼 하루 세끼 밥 먹는 것 말고는 내 머리 속은 온통 ‘친일파’로 가득 차 있었다. 내 월급의 절반을 털어서 인사동 고서점과 청계7~8가 고서점을 뒤지며 친일파 관련 자료를 사 모으던 때였다. 한 마디로 친일파에 미쳐서 반 정신줄을 놓고 살던 때였다.

필자가 <역사비평> 1991년 가을호에 기고한 글로 파장이 적지 않았다.

그 무렵부터 간간이 <월간 말> 등에 친일파 관련 글을 기고하면서 만나게 된 분들은 독립운동가나 그 후손들이었다. 친일파 얘기를 들으려면 이분들을 만나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독립운동가 한 분이 얘기 끝에 독립유공자 포상의 문제점을 들려줬다. 듣고 보니 놀라웠다. 그 이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문제를 취재하였는데 우연히 <역사비평> 편집장과 대화하다가 이 얘기가 나와서 1991년 가을호에 100매 분량의 글을 싣게 됐다. 당시 한겨레에서 문화면 톱기사로 보도하는 등 적잖은 반응이 있었다. 얼마 뒤에는 국회 국감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되기도 했다.

이후로도 나는 틈나는대로 일간지나 잡지 기고를 통해 독립유공자 선정(심사) 과정에서 빚어진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취재과정에서 보훈처와 대화할 기회를 가졌으나 단 한 번도 흔쾌히 응한 적이 없었고, 제대로 된 자료를 제공한 적도 없다. 그간 내가 모은 자료들은 유족들이나 다른 채널을 통해 입수한 것이다. 보훈처의 이런 행태는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공적심사 자료는 보훈처 담당자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주권자인 국민이나 유가족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공개해 보여야 하는 공적 기록이다. 보훈처는 이제라도 공적심사 자료를 마이크로필름, 혹은 PDF로 제작하여 공개하기 바란다. 투명한 행정은 보훈행정에 신뢰를 가져다 줄 것이다.

91년 가을호 <역사비평>에 글을 실은 후 수많은 독립유공자 및 그 유족들이 나를 찾아왔다. 그 많은 기자들 가운데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파온 기자는 필자 혼자가 아닌가 싶다. 그 중에서 아직도 잊히지 않는 분이 한 분 있다. 그 분은 조부의 독립투쟁 공적을 포상받기 위해 보훈처에 신청을 했다가 막판에 훈장을 빼앗겼다. 그의 조부 대신 포상을 받은 사람은 조부와 동명이인의 종친이었다. 관련 서류를 검토해보았더니 한 눈에 봐도 보훈처 공무원의 장난질 결과였다. 나는 이런 내용을 잡지에 기고했는데 바로잡아지지 않았다. 당시 그 후손의 나이는 60대 중반이었는데 어쩌면 한을 안고 타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일로 보훈처 담당자와 설전을 벌이는 등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나로선 국가조직인 보훈처를 이길 순 없었다.

지금 집필중인 책이 끝나면 해묵은 보따리를 꺼내 그 억울한 사연을 다시 살펴볼 작정이다..

(* 위 내용은 오늘자 오마이뉴스에 가짜 독립유공자 김정수 일가를 고발한 김세걸 선생 인터뷰실려서 이를 계기로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이후 방송사 두 군데서 인터뷰 요청을 해왔다. 김세걸 선생도 출연한다고 해서 응하기로 했다.)

“가짜 독립운동가, 어림잡아도 100명 추정돼”

父 김진성 묘비 보자마자 100% 가짜 확신
15년 간 매달 보훈 연금 타간 가짜 유족들
사기꾼 가족은 ‘떵떵’ 진짜 유공자는 ‘생활고’
잘못된 사례 더 있나? “가짜, 자격미달자 多”
60년대, 검증 더 쉬웠는데..브로커 있었을 것
“엄연한 ‘사기죄’ 전수조사해서 처벌해야”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김세걸(독립운동가 김진성 후손), 정운현 상지대 초빙 교수(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 사무처장)

해마다 현충일, 광복절 같은 국경일이 되면 우리는 독립운동가들의 거룩한 희생을 기리곤 하죠. 그런데 여러분, 독립운동가로 서훈을 받은 독립운동가 가운데 가짜가 섞여 있었다면 믿어지십니까? 독립운동과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 독립운동가의 공적을 가로채서 훈장을 받고 그 후손들은 연금까지 쭉 받아왔다면 이게 믿어지십니까?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이걸 밝혀낸 사람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인데요. 이걸 밝혀내고 인정받기까지 20년이 걸렸답니다. 독립운동가 김진성 선생의 아들 김세걸 씨 직접 연결을 해 보죠. 김세걸 선생님, 안녕하세요?

◆ 김세걸> 안녕하세요.

◇ 김현정> 아버님이 중국에서 활동을 하셨던 독립운동가이기 때문에 김세걸 선생님도 중국에서 태어나고 중국에서 자라고 그러셨다고요?

◆ 김세걸> 네.

◇ 김현정> 한국으로는 귀화를 언제 하셨어요?

◆ 김세걸> 97년 8월에 귀화했습니다.

◇ 김현정> 97년까지는 쭉 중국인이셨던 거네요?

◆ 김세걸> 네, 중국에서 교포로 있었습니다.

◇ 김현정> 거기서 보니까 의학 공부를 하셔서 의사로 생활을 하셨어요?
◆ 김세걸> 예, 의과 대학을 나오고 군의관으로 28년간 근무했습니다.

◇ 김현정> 군의관으로. 제가 듣기로는 독립운동가 김진성 선생. 그러니까 아버님의 마지막 유언이 '의사가 되어라.' 이런 유언을 남기셨다고요. 그래서 중국에서 그렇게 사시다가 아버지의 땅 고국으로 돌아와야겠다라고 생각을 한 게 97년. 그런데 중국에서 쭉 오래 사셨는데 고국에서 아버지의 공적을 가로챈 사람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 김세걸> 1992년쯤인데요. 친구들하고 노래방에 갔다가 우연하게 노래방 반주 화면에 김진성의 묘라는 묘비 영상이 떴어요. 김진성이라는 그 이름이 눈에 확 들어와요. 그래서 ‘아, 이거 우리 아버지 묘인데.’ 그때는 아예 제가 확신을 했어요. 그 감각이 그때는 참 이상했어요. 한국에서 유해가 없어도 그렇게 (현충원에)묘를 해 주지 않았나. 그런 것을 느꼈어요.

◇ 김현정> 잠깐만요. 아버님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어떻게 되신 거예요?

◆ 김세걸> 1932년에 나이 19살에 만주에 있는 항일단체 국민부 참사로 항일 운동을 하셨거든요. 이제 1961년에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는데 화장을 해가지고서 유해를 한국에서는 납골당이라고 하는 데, 그런 데에다가 보관했었죠.

◇ 김현정> 그러니까요. 아버님 독립운동가 김진성 선생은 중국에서 사시다가 61년에 돌아가시고 나서 중국 납골당에 버젓이 우리 아버지는 계시는데 화면에 현충원에 아버지 묘비명이 보인 거예요.

◆ 김세걸> 그래서 보훈처 선양국에 팩스를 넣어서 애국지사 묘역에 김진성의 묘가 저희 아버지 묘 아니냐 하고서 문의를 했죠. 그랬더니 이분은 ‘당신 부친과 동명이인입니다.’ 이렇게 답변이 온 거예요.

◇ 김현정> 동명이인인 것 같습니다. 당신 아버지가 아니라 다른 김진성 선생인 것 같습니다. 그럼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셨을 텐데.

◆ 김세걸> 그래도 믿어지지를 않았어요. 저희 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한 사람이니까 보훈처에서 인정해 달라고 그 목적으로 계속 보훈처에다가 요구를 했어요. 그러면서 수교가 된 다음에 93년에는 제가 정식적으로 포상 신청서도 보냈고. 그렇기 때문에 1995년 8.15 광복 50주년 때 정식적으로 저와 저희 어머님한테 광복 50주년 행사에 참가하라는 비행기 표와 초청장을 보내왔어요.

◇ 김현정> 그러면 현충원에 있었던 김진성. 거기에 묻혔던 김진성 씨가 가짜라는 건 도대체 어떻게 밝혀진 겁니까?

◆ 김세걸> 저희들이 진짜 독립운동가 김진성의 후손이라는 것이 보훈처에서는 인정이 됐죠, 95년 그때는. 그러나 국립묘지 그건 그대로 있었어요. 그게 가짜라는 건 제가 97년 8월에 귀화해서 국립묘지에 가서 확인을 한 거예요. 확실히 이게 잘못됐다는 것이 보훈처에서는 그때는 결론이 이미 났어요. 났지만 묘는 그대로 있었거든요. 현충원 거기 찾아갔죠. 거기 가서 168번 묘를 보니까 뒤에 사적은 다 아버지 사적이고 그런데 출생 연월일이나 이런 것 다른 건 왜곡돼서 그렇게 실리고. 그래서 이건 가짜다. 그러면서 보훈처에 찾아가서 ‘김진성의 보훈 기록을 보여주세요.’ 그러니까 보훈처에서는 ‘당신네들 이미 한국 국적 돼서 한국에 들어왔는데 뭘 또 요구하느냐.’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얼마나 정말 멸시당하는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 김현정> 진짜가 나타났으면 가짜를 제거해야죠.

◆ 김세걸> 93년에 신청한 후부터도 5년 동안은 가짜 묘 그대로 있었거든요.

◇ 김현정> 왜 그랬다고 답했습니까? 진짜가 나타났으면 가짜의 묘는 당연히 파묘를 하는 게 당연한 것인데 (보훈처는)왜 그냥 뒀다고 말을 해요?

◆ 김세걸> 자기네들도 '이거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네요.' 그러는 거예요.

◇ 김현정> 선생님, 그러면 그 묘가 파묘가 된 건 언제입니까?

◆ 김세걸> 98년.

◇ 김현정> 98년이 돼서야. 한 6년 걸린 거네요, 그러니까 그 사실을 알고 나서도. 그러면 아버지 행세를 한 그 가짜 독립운동가 유족이 그 긴 세월 동안 타간 보훈 연금. 그건 어떻게 됐습니까?

◆ 김세걸> 그때 보훈처의 기록을 보니까 1983년까지 매달 김재원이라는 김진성의 딸이 보훈 연금 타가면서 거기다 도장 찍은 것이 기록이 있어요.

◇ 김현정> 68년부터 83년까지.

◆ 김세걸> 그런데 후에 행방불명으로 사라졌다고 하면서 그때부터 보훈연금은 정지된 상태였죠.

◇ 김현정> 그러니까 회수는 못 했고 83년부터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었어요. 여기까지도 참 답답한데 현충원 묘역을 관리하는 관리자로부터 결정적인 제보 하나를 들으셨다고요, 그 무렵에.

◆ 김세걸> 예, 가서 보니까 저희 아버지 이름인데 뒤에는 조카라는 모르는 사람들의 이름이 있고 그래서 거기 묘 관리하는 그분한테 제가 한번 물어봤어요. ‘여기 이 묘에 제사 드리러 오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와서 여기 제사 지내고 저 위에도 가서 또 제사하더라. 김진성 묘비 뒤에 새긴 후손이 조카라고 돼 있어요.

◇ 김현정> 그러면 그분이 조카예요, 진짜로? 아버님의 조카예요?

◆ 김세걸> 전혀 모르는 사람이죠. 저희 아버지는 조카가 없어요.

◇ 김현정> 조카가 아예 없어요?

◆ 김세걸> 네. 그런데 그 위에도 또 가서 제사 지내더라. 그래서 거기 가보니까 181번 김정수의 묘 뒤에 이제 후손으로 남긴 건 아들이라고 되어 있어요. 여기는 아들이고 저기는 조카고. 이거 아마 한 집안일 거다 하면서 독립유공자 공훈록에서 김정수를 검색해서 보니까 독립운동을 했는데 공적이 동아일보 35년 몇 월 며칠(자 기사), 그게 근거라고 나와 있어요.

◇ 김현정> 지금 들으시는 분들이 너무 복잡하실 것 같은데 제가 잠깐 정리를 해 보자면 그러니까 가짜 김진성이죠. 가짜 김진성 묘비에 후손으로 적힌 건 조카 이름이 적혀 있고 그 조카가 김진성 묘 뒤에 김정수라는 독립운동가 묘에는 아들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가짜 후손이 와서 여기는 조카라고 하고 여기는 아들이라고 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신 거군요? 그때부터 그 가짜 집안에 대해 조사를 하신 거예요? 추적을 하신 거예요?

◆ 김세걸> 그래서 김정수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 김현정> 김진성, 그러니까 가짜 김진성 묘 뒤에 김정수라는 독립운동가는 또 누구길래 저기 있는가라고 조사를 시작하셨더니.

◆ 김세걸> 사실 여기는 조카고 저기 아들이면 김정수하고 김진성은 형제간이 될 거 아니에요.

◇ 김현정> 그렇죠. 기록상은 그렇게 되는 거였죠.

◆ 김세걸> 그래서 김정수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하고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98년 4월달부터 독립 공훈록에 김정수 소개가 나오는데 그 공적 근거가 동아일보 1935년 몇 월이라고 있어요. 그래서 중앙 도서관에 가서 그 동아일보를 제가 찾았어요.

◇ 김현정> 예전 기록을 다 뒤졌어요. 그랬더니.

◆ 김세걸> 동아일보에 나온 거 보니까 거기에는 김정범이라고 되어 있어요.

◇ 김현정> 같은 공적을 가진 사람이?

◆ 김세걸> 여기에는 전혀 김정수라는 그 이름이, 글자가 없어요. 이 세 글자가 없어요.

◇ 김현정> 그러니까 여러분, 보훈처에서 독립운동가를 그냥 아무나 인정해 주는 게 아니라 동아일보, 당시 매일신보 이런 언론에 기사가 실렸던 걸 바탕으로 근거를 해서 인정을 해 주는데 근거라고 되어 있는 그 날짜 기사를 가서 찾아보니 김정수라는 사람은 없고 김정범이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똑같은 공적을 가진.

◆ 김세걸> 보훈처에서는 ‘김정수가 이전에 김정범이라는 가명을 썼다.’ 이렇게 말했다는 거예요.

◇ 김현정> 그러니까 그 가족들이 속일 때?

◆ 김세걸> 네. 이 가문을 보게 되면 한국에서도 정말 드문 범죄 가문이거든요. 3대, 다섯 사람이 다 지금 가짜 독립 유공자로 등록이 돼 있고.

◇ 김현정> 사기꾼 가족이네요.

◆ 김세걸> 김정수의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 이 두 분은 1963년에 건국훈장을 받았어요. 63년에 건국훈장 받고서 이렇게 보니까 정말 괜찮네. 68년에 김진성, 김정수, 김병식 이렇게 세 사람을 또 유공자로, 다른 사람의 공적을 자기들이 이용해서 신청했어요. 이렇게 두 번에 걸쳐서 3대 다섯 사람이 독립 유공자로 된 거죠.

◇ 김현정> 세상에, 그러면 ‘사실 우리 조상이 독립운동가인데 가명을 써서 이렇게 된 거다.’ 이렇게 하면서 이게 다 통했단 말이에요?

◆ 김세걸> 예.

◇ 김현정> 가짜 독립운동가 몇 명을 만든 거예요, 이 사기꾼 가족이?

◆ 김세걸> 다섯 사람.

◇ 김현정> 다섯 사람을 만든 거예요? 그러면 연금을 5명분을 다 타간 거예요?

◆ 김세걸> 그렇죠.

◇ 김현정> 서훈도 다 받고?

◆ 김세걸> 예. 또 다 3등급이에요. 건국훈장 독립장. 사실 유관순 열사하고 동등한 그런 급으로. 범죄도 이거 보통 범죄가 아니에요. 그래서 정말 저는 갈 때마다 분노하고 억울하고 그랬죠.

◇ 김현정> 서훈이 지금 다 취소되기는 됐습니까, 5명?

◆ 김세걸> 네. 김진성은 1995년 전에 서훈이 취소됐죠.

◇ 김현정> 나머지 4명은.

◆ 김세걸> 2018년 8월 15일에 문재인 대통령이 사인을 해서 서훈이 취소됐습니다.

◇ 김현정> 그때 돼서야.

◆ 김세걸> 4명이 서훈 취소됐습니다.

◇ 김현정> 그러면 그 김정수의 후손들. 그러니까 아직 어디에 있는지 행방도 모르는 건가요?

◆ 김세걸> 아니요. 그때 98년에 행방도 다 찾았어요. 은평구에 살고 있고.

◇ 김현정> 그러면 가짜 독립 유공자 가족 찾았으면 처벌을 해야 되잖아요.

◆ 김세걸> 2015년에 와서 보훈 연금을 정지했어요. 가짜라는 것을 보훈처에서는 조사를 안 했어요. 전혀 안 했어요.

◇ 김현정> 선생님, 은평구에 살고 있어요, 그 가족들이?

◆ 김세걸> 예.

◇ 김현정> 어떻게 살고 있던가요?

◆ 김세걸> 아파트. 뭐... 떵떵거리면서 잘살았겠죠.

◇ 김현정> 떵떵거리면서. 그러면 이제는 이 사건이 명확해졌으니까 다 취소도 됐고 이런 상태니까 지금이라도 그 사람들을 처벌할 수는 없는 건가요?

◆ 김세걸> 사실 법적으로 처벌을 받아야 돼요. 그 묘 뒤에 쓴 것 보면 '3대가 빛나라.' 이렇게 하면서 얼마나 떵떵거리면서 잘살았겠어요? 저희들은 그런 범죄 집안 때문에 마땅히 일찍이 인정을 받아서 하루라도 좀 일찍이 한국에 귀화했으면 이런 처지가 안 됐죠. 오자마자 IMF 되고 동생들 다 반지하에서 살면서 생활고에 시달리고 그랬어요.

◇ 김현정> 누구는 그렇게 사는데 가짜 독립 유공자 가족은 떵떵거리면서 3대가 살고 있다는 것. 이걸 보는 게 참 기막히셨을 것 같은데. 선생님, 이걸 밝혀내기까지, 그러니까 취소가 완전히 되기까지 20년이 걸린 셈이에요.

◆ 김세걸> 20년 걸렸죠.

◇ 김현정> 20년 동안 이 과정을 쭉 지켜보시면서 어떤 점이 제일 울화통이 터지셨습니까?

◆ 김세걸> 처음에는 정말 아버지가 내 나라라고 젊은 나이에 정말 사형까지 받고. (침묵) 서대문 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면서 21살, 22살 이런 나이에 하루하루를 보냈을 아버지를 생각하면 정말 울분을 참지 못하겠고. 그런데 내 나라라고 이렇게 와서 보니까 이게 정말 나라인가. 보훈처의 그 사람들은 하나의 책임감도 없는 그런 모습이고 저희들을 대하는 것이 거의 ‘중국에서 온 놈들.’ 이런 멸시를 당한 걸 생각하면 정말 분노했어요, 그때.

김세걸 씨의 가족사진

◇ 김현정> 그랬군요. 정부 기관에 한 번 실망했고 또 가짜 독립 유공자 사기꾼 가족에게도 실망하고 이래저래 조국에 대해서 실망했던 나날들이셨단 말씀이에요. 20년 추적 끝에 이제야 아버지 명예는 회복이 됐습니다마는 저는 제대로 처벌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분노가 되고요. 좀 더 명명백백하게 그 당시에 도대체 이런 일들이 어떻게 벌어졌던 건지에 대해서 진상 규명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 김세걸> 감사합니다.

◇ 김현정> 독립운동가 김진성 선생의 아들 김세걸 선생님을 만나봤습니다. 저는 이런 얘기를 들으면서 과연 이게 김진성 선생만의 사례였을까? 가짜 독립운동가 가족이 이들뿐이었을까. 의혹이 생깁니다. 전문가를 만나보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을 지내신 분이죠. 상지대학교 정운현 초빙 교수 연결돼 있습니다. 정운현 선생님, 안녕하세요?

◆ 정운현> 안녕하십니까.

◇ 김현정> 참 가짜 명품, 가짜 뉴스만 문제인 줄 알았더니 가짜 독립운동가 또 가짜 유족까지 있는 줄 저는 몰랐어요.

◆ 정운현> 현실이 그렇습니다.

◇ 김현정> 이런 사례가 더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세요?

◆ 정운현> 우선 꼭 가짜만은 아닙니다마는 우선 이번 김정수처럼 남의 공적을 가로챈 완벽한 가짜가 있고요. 그다음으로는 동명이인에 대한 포상 또 형평에 어긋난 포상 또 자격 미달자에게 포상한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 김현정> 동명이인에 대한 포상이라는 건 무슨 말이죠?

◆ 정운현> 두 사람을 두 번 포상한 경우죠. 홍길동이라는 사람에게 포상하고 이름이 같은 또 다른 엉뚱한 홍길동에게 또 포상하는 경우죠.

◇ 김현정> 홍길동이라는 독립운동가가 실제로 있어요. 그런데 다른 유족이 '우리 아버지 홍길동도 독립 유공자요' 하면서 가짜 공적을 가지고 오면 그것도 인정을 해 준 경우?

◆ 정운현> 대개는 가짜가 먼저 포상을 받았죠. 그리고 나중에 진짜가 나타났죠.

◇ 김현정> 그런 식이군요. 그런 경우도 있고.

◆ 정운현> 이런 식으로 문제가 있는 부분이 어림잡아 100명 정도는 돼 보이는데요. 1980년 국보위 시절에 실제로 문제의 인물 100명 정도를 당국에서 조사한 적도 있습니다.

◇ 김현정> 그래요. 차근차근 보겠습니다. 맨 처음에 이 포상, 훈장을 수여하고 포상을 하기 시작한 게 박정희 정권 때인데 1960년대 애초에는 제대로 걸러내기가 어려웠던 건가요?

◆ 정운현> 꼭 그런 것만은 아니죠. 그 당시만 하더라도 해방 직후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일제시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심사위원 중에 친일 경력자들이 있다든지 또 조사가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충 포상한 경우가 더러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거기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죠.

◇ 김현정> 그리고 제가 이건 제 추측입니다마는 중국 땅에서 독립운동을 한 분들이 많이 계시잖아요. 러시아에 가서 하신 분도 있고 몽골에 가서 하신 분도 있고. 그 유족들은 거기에 그대로 남아 있는 거예요. 그분들은 사시느라고 정신이 없는 상황이고… 이 상황에서, ‘국내에 브로커들이 활개쳤다’ 저는 이런 소문을 들은 적이 있는데 가능성이 있습니까?

◆ 정운현> 어디서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가능성이 매우 높고요. 제가 확인을 하지는 못했지만 얘기는 저도 사실은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돈거래가 오가고 그런 과정에서 대상자가 바뀌거나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그런 비리가 제법 있었다고 제가 취재하는 과정에서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사실은. 이런 이야기는 전화로 처음 밝히네요.

◇ 김현정> 그렇군요. 독립운동가 홍길동 선생이 중국에서 활동하다가 돌아가셨어요. 그 유족들은 정말 가난한 상황에서 하루하루 먹고살기 힘들어서, 한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챙길 여력도 없는 사이에 한국 땅에서는 브로커들이 돈을 받고 홍길동 선생의 가짜 유족을 만들어서 이들이 연금 타고 훈장 탈 수 있게 주선해 주는, 이런 것들이 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가능성까지는 보신 거군요, 정 선생님께서.

◆ 정운현> 저는 그런 얘기를 유족들이 더러더러 하는 얘기를 취재 과정에서 들은 경우가 여러 차례 있습니다.

◇ 김현정> 여러 차례 있습니까. 더 이상은 어떻게 정부에서 혹은 경찰에서 밝혀내기는 어려웠던 걸까요?

◆ 정운현> 이미 시간이 좀 지났어요. 당시 실무자들도 많이 바뀐 것 같고요. 또 그런 얘기를 문서 같은 게 없이 뒷거래된 것이어서 증거를 확보한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 김현정> 이번 김진성 선생의 유족. 앞서 인터뷰한 김세걸 씨 같은 경우에는 유족이 스스로 나서서 이걸 밝혀내고 확인까지 받는 데 한 20년 걸렸답니다. 보훈처는 왜 나서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걸까요?

◆ 정운현> 우선 생각해 보십시오. 가짜 문제가 발생한다면 보훈처는 자기들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해야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이걸 쉬쉬하거나 결국 이런저런 얘기로 뭉개거나 하면서 20년을 끌어온 것이죠. 이번 가짜 김정수 건은 정말 하늘이 도와서 우연하게 어찌 보면 발견된 것인데요. 따져 보면 이런 경우가 없지 않을 것이고요. 그래서 저도 또는 어떤 단체에서도 전수 조사를 요구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 김현정> 그렇군요. 아무튼 뒤늦게라도 이 100% 가짜 사기꾼은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어디 사는 누구인지까지 알았는데도 지금 처벌은 어려운 겁니까?

◆ 정운현> 왜 어렵겠습니까? 분명히 일종의 사기죄 아닙니까? 그게 보훈처 공무원하고 짰든 안 짰든요. 엉터리 아닙니까? 당연히 거기에 대해서는 형사법에도 저촉이 될 테고요. 또는 서훈법에도 따져보면 문제가 있을 것이고요. 그리고 그 유족들의 주소나 이런 것들을 보훈처에서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에 연금을 주고 있었지 않습니까?

◇ 김현정> (연금을) 줬기 때문에.

◆ 정운현> 그리고 어디 숨었다고 하더라도 경찰이나 그런 데에서 파악하려고 하면 못 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일반 어디 여관방에 숨은 범인도 다 잡아내는데요. 일단 사법당국의 도움을 받더라도 보훈처에서 의지를 가지고 당사자들 찾아내서 후속 조치를 취해야 할 것 입니다.

◇ 김현정> 여러분, 오늘 상당히 충격적인 뉴스였습니다. 저는 들으면서 내내 분노가 끓어오르는 걸 참기가 어려울 정도인데요.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생각해 볼 문제네요. 정운현 교수님, 고맙습니다.

◆ 정운현> 고맙습니다.

◇ 김현정> 상지대학교 정운현 초빙교수였습니다. (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

출처: https://news.v.daum.net/v/20181002094202525?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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