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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규 전 대법원장의 10주기에 부쳐
정운현 | 2017-12-07 09:28:2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고인 8명에게 사형 확정판결을 내렸다. 13명의 대법원 판사(현 대법관) 가운데 이일규 판사 (대법원장 역임)만 소수의견을 냈다. ‘1, 2심 재판에 위법적 요인이 많으므로 다시 재판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실지로 이 사건의 경우 고문과 허위자백, 진술서 조작 등이 극심해 제대로 된 재판이라고 할 수 없었다. 당시 시국사범의 형량은 중앙정보부가 결정하였고, 법원은 형식적인 재판을 하던 시절이었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정액제 판결’이라고 비꼬았다.

고 이일규 전 대법원장

지난 12월 1일, 서초동 대법원 2층 중앙홀에서 이 전 대법원장의 10주기 추념식이 열렸다.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 소신 있는 판결을 내린, 강직한 판사로 불리는 이 전 대법원장을 추념하는 것은 후배법관들로선 당연한 일이다. 역대 대법원장이 여럿 있지만 다 같은 대법원장이 아니다. 우리가 존경하고 기억할만한 대법원장으로는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와 이일규 대법원장 정도뿐이다. 고결한 삶을 살면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분은 후세가 기억하고 본받아야 한다.

지난 2015년 ‘민청학련 사건’ 연루자 여정남의 평전을 출간한 바 있다. 여정남은 인혁당 사형수 8명과 함께 대법원 판결로 사형을 당했다. 평전 집필과정에서 인혁당 사건 관련 수사 및 재판자료, 대법원 판결문 등을 살펴보게 됐는데 그 때 이일규 전 대법관의 소수의견을 읽고 감동을 했던 기억이 난다. 다른 대법관들이 앵무새처럼 중정이 써준 판결문을 읊조릴 때 그는 ‘감히’ 소수의견을 낸 것이다. 보통사람의 용기로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여정남 평전> 가운데 이 대법관의 소수의견 부분을 여기 소개한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대법원은 공판조서나 피의자신문조서의 조작 의혹 제기에 대해서는 일체 인정하지 않았다. 연장선상에서 심리미진, 석방권 불행사, 공판중심주의 및 자유심증주의를 위배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심리미진으로 인한 사실오인의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원심과 1심이 위 서류(피의자신문조서 등) 등의 기재내용과 상반된 피고인들의 법정진술을 믿지 않았다 하여 자유심증주의의 남용이거나 공판중심주의의 위배라고 말할 수 없다” 등의 논지를 펴며 또 다시 “이유 없다”고 못 박았다.

끝으로 ‘양형의 부당함’을 주장한데 대해서는 “군법회의법 제432조에 규정된 상고이유에는 형사소송법 제383조 제4호와 같은 양형 부당을 상고이유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며 상고이유가 적법하지 못하다고 반박했다. 오히려 피고인들이 형사소송법의 법리를 오해했다고 주장했다. 재판관들은 해당 법조문과 공판조서, 피의자신문조서 등 부적절한 근거를 들이대며 번드레한 말장난을 늘어놓았다. 이들이 쏟아낸 말들은 유신헌법과 군법회의법 맹신자들의 궤변일 따름이었다.

물론 ‘소수의견’이 없진 않았다. 당시 재판에 참여했던 이일규(대법원장 역임) 대법원판사는 “항소심인 원심 판결은 검찰관의 공소사실의 진술도 없이 또 제1심에서의 신문과 중복된다 하여 피고인이 신문을 생략한다 하여 항소이유에 관한 변론만을 시행하여 결심하였는바 이는 공소사실에 대한 변론을 거뒀다고 할 수 없다”며 “피고인 임종대 등 17명에 관한 제1심의 양형이 부당하다 하여 제1심 판결을 파기하여 사실인정을 다시 하고 양형을 달리하는 판결을 하였으니 이는 변론 즉 사실심리를 아니하고 재판을 한 재판절차에 위법이 있다고 아니할 수 없고 이 위법은 재판의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 할 것이므로 이 부분 원심판결은 파기를 면할 수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요약하자면 항소심 재판에서 사실심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점, 몇몇 피고인들의 경우 형량이 변경된 점을 지적하며, 재판 절차에 문제가 있으니 원심을 파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수의견은 소수의견일 뿐 재판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대법원의 재판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여정남 평전>, 411~412)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1&table=wh_jung&uid=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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