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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홍석경 著 <산딸나무와 터키여행>(문화의힘 펴냄)
터키여행에서 칠보무늬 뿌리를 캔 금속공학자
정운현 | 2017-10-11 10:51:3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박성진 교수가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에 내정됐다가 중도에 사퇴한 이유는 창조과학회 활동 경력과 왜곡된 역사관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 과정에서 과학계 인사들의 반발이 컸는데, 마치 이공계 사람들은 역사에는 무지해도 된다는 식의 박 교수 발언이 이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는 지적도 있다.

이공계 출신도 사람 나름이다. 내가 아는 홍석경 선생은 완전히 딴판이다. 홍 선생은 금속공학 전공자(금속공학박사)이며, 반도체 전문가다. 그러나 홍 선생은 한국 근현대사는 물론 우리 역사 전반에 대해 아주 박식하다. 내가 홍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수년 전 효사모(효창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행사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홍 선생은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해 독립운동가들에 대해서도 두루 잘 알고 있었으며, 효사모 활동 등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에도 적극 참여하는 그런 분이다.

홍석경 저 <산딸나무와 터키여행> 표지

달포 전에 홍 선생이 <산딸나무와 터키여행> (문화의힘 펴냄)을 보내왔다. 차일피일 미루다 이번 추석연휴 때 짬짬이 겨우 다 읽었다. 한 마디로 이 책은 터키 여행기다. 그러나 단순히 먹고 놀기 위해 찾아간 그런 여행의 기록이 아니다. 놀랍게도 이 책에서는 터키여행을 통해 우리 전통미술인 고려청자의 칠보무늬 뿌리를 추적하고 있다. 그 나름의 미술에 대한 식견에 탄복을 금할 수가 없었다. 특히 한 쪽당 최소 1매 이상의, 현지에서 홍 선생이 찍은 사진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평소 홍 선생의 버킷리스트 1번은 고대문명의 발상지이자 교차로였던 그리스와 터키 여행이었다고 한다. 지난 2015년 가을 그는 아내와 함께 이 두 곳을 한 달간 여행했다. 이 책은 그때의 여행기록이다. 그는 두 곳 여러 지역의 고대 건축물에 흠뻑 매료됐다. 특히 고대 로마 유적인 하드리아누스의 문 옆에 활짝 핀 무궁화 꽃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경탄해 마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터키 여행에서는 그간 우리 고려청자의 전통 문양으로만 알고 있었던 칠보무늬(문양)가 사실은 고대 로마제국에서 널리 사용됐으며, 이후 비잔틴 제국의 석굴사원 문양으로 흔히 사용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무심히 바라보았다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었을 것을 그는 캐치해낸 것이다. 그는 두 지역과 한반도가 지리적으로 8천 킬로미터 가량 떨어져 있지만 두 지역 간에 문명교류가 있었을 걸로 추정했다.

여행을 다녀온 후 홍 선생은 약 1년여에 걸쳐 칠보문양 뿌리 추적에 나섰다. 그 결과 칠보문양은 인류 최초 청동기 문명 가운데 하나인 인더스 계곡 문명인이 빚은 채색토기가 원형임을 밝혀냈다. 그런데 그 생김새는 칠보문양과는 전혀 다른 열십 자(+) 모양의 꽃무늬였다. 그는 십자형 꽃잎 연속무늬를 왜 칠보무늬로 부르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는 이 정체불명의 칠보무늬를 ‘십자형 꽃잎(사방연속) 무늬’라고 부르기로 했다)

고대 로마 모자이크의 십자형 꽃무늬

로마 모자이크와 고려청자의 산딸나무 꽃무늬

그 꽃무늬는 마치 우리나라 야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딸나무 꽃과 너무도 흡사했다. 그래서 그는 한국 미술사학계에서 칠보무늬라고 부르는 이 문양에 ‘산딸나무 꽃무늬’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는 자신의 이런 주장이 미술사학계의 검증을 통해 이름이 바로잡혀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관련이 있는 얘기를 하나 더 소개하면, 제일 마지막 장에 ‘월정사 석조인물상은 누구인가’ 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글이 실려 있다. 터키 이스탄불의 하기아 소피아 성당을 방문했을 때 그는 그 유명한 디시스 또는 데이시스로 불리는 성화(聖畵)를 구경했다. 이 그림은 최후의 심판 때 예수님에게 인간의 죄를 사면해 달라고 간청하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홍 선생은 이 그림을 보면서 고려 불교 문화유산으로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에 있는 팔각 9층석탑과 그 앞에 있는 석조인물상을 떠올렸다고 한다. 월정사 석조인물상에 관한 문헌기록이나 명문(銘文)이 남아 있지 않아 조성배경 등을 자세히 알 수는 없다. 홍 선생은 한쪽 무릎을 땅에 꿇고 무언가 ‘간청’하는 듯한 모습의 석조인물상은 하기아 소피아 성당의 성화, 예수님에게 인간의 구원을 간청하는 세례 요한을 그린 디시스와 똑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기아 소피아 성당의 ‘최후의 만찬’ 성화

월정사 석조인물상. 왼쪽은 오리지널, 오른쪽은 모조품

하나 덧붙일 것은 무릎을 꿇고 탑(붓다)을 향해 합장하며 설법을 간청하는 석조인물상이 보살이 아니라 범천(사함파티 브라흐마)로 판단된다고 했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석조인물상은 ‘석조보살좌상’이 아니라 ‘석조범천권청설법상(石造梵天勸請說法像)’이나 ‘석조범천권청전법륜상(石造梵天勸請轉法輪像)’으로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오리지널 석조인물상은 월정사 박물관에 보관중이며, 석탑 앞에는 모조품이 전시돼 있다. 홍 선생은 모조품에는 부처님의 간절함이 보이지 않는다며 이는 석탑과 석상의 조형원리를 모르기 때문에 그냥 예쁘게만 조각한 때문이라고 한다. 월정사의 가람 배치는 범천상-석탑(비로자나불)-적광전(비로자나불)이 일직선상에 놓이는 구도라고 홍 선생은 주장했다.

에필로그에서 홍 선생은 “세계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제국의 흥망성쇠에 관심이 많은데 요즘에 특히 관심 갖고 있는 것은 제국의 멸망 원인”이라며 못다 한 문명 발상이 여행을 기약했다. 반도체 전문가가 발로 뛰어 보고 듣고서 들려주는 터키여행. 엔간한 인문학 강좌 열 번 듣는 것보다 알차고 유익했다. 그만의 독특한 역사관이나 심미안은 이 책의 백미라고 하겠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1&table=wh_jung&uid=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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