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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보훈 가족의 비극
납북자 전몰자 가족 꼬리표 고통 이어져, 정중한 예우와 경제적 지원 따라야
정운현 | 2017-08-23 12:30:0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90년대 말 반민특위 증언집을 묶어낸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반민특위 관계자들이 더러 생존해 있어서 몇 분을 만날 수 있었다. 반민특위 총무과장(현 사무국장) 이원용 선생, 특경대장 이병창 선생, 서기 임영환 선생, 반민특위 출입기자를 지낸 조덕송·오소백 선생 등이 그분들로 이제는 모두 타계했다.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한 분을 더 소개받았는데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의 아들 김정육(현 83세) 선생이 주인공이다.

90년대 말에 엮어낸 졸저 <증언 반민특위- 잃어버린 기억의 보고서> 표지

이때 맺은 인연으로 간간이 김 선생님 근황을 살펴왔다. 최근 개막된 연극 반민특위(노경식 극본) 건으로 연락을 드렸다가 뜻밖에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작년에 열 시간에 걸친 심장수술을 받은 후 고통을 겪고 있는데다 설상가상으로 아드님마저 암 말기 선고를 받았다고 했다. 며칠 뒤 아드님이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문병 차 갔다가 김 선생님을 만나 뵈었는데 부자 모두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불행은 꼬리를 물고 온다고 했던가. 이 집안 3대에 걸쳐 고통이 이어지고 있었다.

1919년 도쿄 유학시절 ‘2.8독립선언’ 주동자 가운데 한 분인 김상덕 선생은 임시정부에서 문화부장(현 문화체육부 장관)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후 고향(경북 고령)에서 제헌국회 의원에 당선됐다. 반민특위 위원장으로 활동하던 그는 친일파 세력을 비호하던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수차 압력과 회유를 받았지만 끝내 굽히지 않았다. 1950년 한국전쟁 중에 다른 요인들과 함께 납북됐는데 이 집안의 비극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외아들 김정육 선생은 외갓집에 맡겨졌고, 이후 서울로 올라와 고학으로 대학을 마쳤으나 취직을 할 수가 없었다. ‘납북자 가족’이라는 꼬리표 때문이었다. 80년대 이후 이 문제가 해금되었으나 그때는 이미 50이 넘어 취업할 수도 없었다. 결국 김 선생은 막노동 등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고통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몇 년 전 아내가 신부전증으로 세상을 뜬 데 이어 이번엔 자신과 아들이 병고에 시달리고 있다. 작년에 대수술을 한 후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김 선생은 둘째 손주를 임신한 만삭의 며느리와 교대로 아들의 병실을 지키고 있다. 경제적 고통 또한 말할 것도 없다.

불편한 몸으로 아들 병간호를 하고 있는 김정육 선생님

예전에 살던 동네에 ‘파출소 할머니’로 불린 할머니가 한 분 계셨다. 결혼 직후 남편이 한국전쟁에 나가 전사한 후 외아들 하나를 키우며 90평생을 홀로 살아오신 ‘전몰자 가족’이다. 할머니는 재산도 없고 배움도 많지 않아 허드렛일을 하면서 보훈처에서 나오는 연금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파출소 할머니’라는 별명은 할머니가 한동안 동네 파출소에서 파출소 직원들 밥을 해주며 지낸 데서 비롯됐다.

그간 남편처럼 의지하던 아들이 수 년 전 사고로 세상을 뜨자 이번에는 손자를 의지하며 살고 있다. 손자 역시 배움이 짧아 변변한 직장도 없이 전국을 떠돌며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다. 10여 년 전 유방암 수술을 받은 할머니는 한동안은 별 탈 없이 지내왔으나 고령이 되면서 최근 들어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남편 없이 홀로 외아들을 키워온 지난날은 그렇다고쳐도 노후에까지 경제적, 육체적 고통이 끊이지 않는 것은 참으로 딱한 일이다. 현재 지하 단칸방(7평)에서 전세로 살고 있는데 최근 집주인이 보증금으로 2천만 원을 올려주든지 아니면 사라고 한다는데 현재 가진 돈은 방값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보훈가족이 어디 ‘파출소 할머니’ 뿐이랴?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독립유공자 등 국가유공자를 정성으로 예우하고 경제적으로도 잘 보살피겠다고 밝혔다. 응당한 얘기가 늦어도 한참 늦었다. 국민의식도 높아졌고,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보훈정책은 이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과거 정부는 연금 몇 푼 쥐어주면 그게 전부인 양 여겨온 점이 없지 않다. 특히 군사정권 하에서 독립유공자, 민주화 유공자들은 찬밥신세나 마찬가지였다.

보훈은 시혜 차원의 복지가 아니라 국가의 의무다. 특히 국가의 정체성과도 직결된 사안인 만큼 정중한 예우와 함께 그에 걸맞은 경제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나와선 안된다. 친일잔재 등 적폐 청산 차원에서라도 획기적인 보훈정책이 시급하다. 적어도 보훈분야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쌓길 바란다.


* 이 글은 21일자 <경남도민일보>에 실린 칼럼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1&table=wh_jung&uid=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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