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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3가 ‘지중해다방’을 기억하며
정운현 | 2017-07-25 15:24:0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경북대 운동권의 중추적 인물이었던 여정남은 1973년 12월 24일 서울행 기차를 탔다. 그가 상경한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경북대에서 장기간 투쟁하다보니 신상이 노출돼 활동하는데 지장이 많았다. 게다가 동료이자 선배인 이재문과의 ‘격돌’ 건으로 말이 많아 더 이상 대구에서 활동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서울과 대구의 혁신계 선배들은 논의 끝에 정남을 서울로 올려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의 서울행은 사전 준비가 필요했다. 대구 혁신계의 대부 격인 서도원은 정남을 지도할 ‘서울선생’으로 이수병을 추천했다. 그리고는 당시 이수병이 강사로 있던 종로 삼락일어학원으로 찾아가 만나 보라고 하면서 이수병의 인상착의를 일러주었다.

그런데 그가 상경한 때가 하필 연말이어서 학원이 강의를 하지 않아 이수병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새해(74년) 들어 1월 4일 첫 개강수업을 듣고 나오던 정남은 우연히 계단에서 이수병을 만났다. 두 사람은 학원 건물 지하에 있는 야자수다방으로 자리를 옮겨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는 1월 7일 오후 2시에 이곳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정남은 서울지역 혁신계 선배들을 만나는 한편, 서울지역 대학 운동권의 중심인물인 이철, 유인태 등과도 접촉을 시작했다. 상경 후 석 달 보름간 그는 유인태를 지속적으로 만났다. 73년 12월 30일 첫 만남 이후 이듬해 4월 14일 정남의 신설동 하숙집에서 검거를 피해 뿔뿔이 흩어질 때까지.

만남의 장소는 주로 다방이었다. 낙원동 123다방, 서대문 재회다실, 종로2가 몽쁘디 다방, 휘경동 휘경다실, 다동 호수다방 등. 두 사람은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만나다가 ‘4.3’이 가까워지면서 거의 매일 만났다. 당시 정남은 서울-대구-부산을 오가며 대학가의 전국적 규모의 ‘4.3 투쟁’ 준비에 바빴다...”
- <청년 여정남과 박정희 시대>(정운현 저, 다락방, 2015)에서 발췌

▲졸저 <청년 여정남과 박정희 시대> 표지

1972년 10월 박정희가 ‘유신’을 선포하자 야당과 대학가에서는 유신반대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당시 대학가는 서울지역은 서울대를 중심으로 고려대, 성균관대, 이화여대가 주축이었으며, 지방에서는 경북대를 필두로 부산대, 전남대가 합세하였다. 이들을 연결하는 축은 경북대 운동권의 핵심인 여정남 (呂正男, 경북대 정외과 62학번)이었다.

여정남은 대구지역에서 활동하던 혁신계 (소위 ‘재야’ 세력의 뿌리)와도 인연을 맺고 있었다. 1974년 소위 ‘민청학련사건’에 연루돼 체포된 그는 이들의 배후세력으로 불린 소위 ‘인혁당 재건위사건’에도 연루됐다. 그는 ‘인혁당 사형수’ 8명에 포함돼 31세의 나이로 서도원, 이수병 등과 함께 서대문형무소 사형장에서 생을 마감했다.

요즘은 만남의 장소가 다양하지만 당시만 해도 술집 아니면 다방이었다. 위에서 거론한 곳 이외에도 이들은 종로구 청진동 삼락일어학원 지하 야자수다방, 종로3가 지중해다방, 식당으로는 서울시청 뒤 용금옥(추어탕집)을 자주 이용하곤 했다. 서울대 운동권 출신의 장기표는 “당시 광화문 일대의 다방에서 살다시피 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며칠 전, 친구를 만나러 종로3가에 들렀다. 하도 날이 더워 땀이나 식힐 곳을 찾다가 우연히 대로변 지하다방으로 들어갔다. 등받이가 높직한 70년대 다방 풍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고객들도 전부 7, 80대 어르신들이었다. 다방커피 한 잔을 마시며 땀을 식힌 후 나오다가 우연히 상호가 눈에 들어왔다.

지중해다방.

50대 초반의 여주인에게 다방이 생긴 지 얼마나 됐느냐고 물어보았다. 그의 말로는 50년은 넘었다고 들었다고 했다. 70년대 중반에도 존재했었으니 족히 50년은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이름조차 잊히고 말았지만 한 때는 운동권 청년들의 비밀 아지트였던 셈이다. 이렇게라도 몇 자 기록해두면 혹 훗날 누군가에게 요긴하게 쓰일지도 모르겠다.

▲‘지중해다방’ 입구

▲종로3가 대로변에 있는 ‘지중해다방’. 과거 운동권 학생들의 만남의 장소였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1&table=wh_jung&uid=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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