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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주군의 목을 죈 ‘3인방’의 배신
정운현 | 2016-12-05 12:53:4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권력자의 측근들은 평소 주군(主君)에게 ‘입속의 혀’처럼 군다. 그러나 주군이 권력을 잃게 되면 배신하는 것도 흔한 일이다. 의리를 저버린 탓이다. 더러는 자신이 살기 위해 반대편에 서서 그간 모셔온 주군을 위험에 빠뜨리기도 한다. 그럴 경우 측근들은 주군에게 치명적인 존재가 되기 십상이다. 누구보다도 실권한 권력자의 비리나 약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혜주를 파멸시킨 사람도, 박근혜를 궁지로 몬 사람도 모두 최측근들이었다.

혜주는 민 상궁과 회운사 승려 무극, 술객 노천을 최측근으로 두고 있었다. 궐내에서 이들은 ‘3인방’으로 불렸다. 최측근 가운데 한 사람이자 끝까지 혜주 곁을 지킨 사람은 민 상궁이었다. 민 상궁은 혜주의 양육을 담당한 보모상궁 출신이자 생모였다. 어릴 적부터 혜주를 보살펴온 민 상궁은 혜주의 전부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왕위에 오른 혜주에게 무극을 정인(情人)으로 소개시켜준 사람도 바로 민 상궁이었다. 민 상궁은 혜주에게 사실상 어머니 노릇을 했다.

그런 혜주도 여자의 질투심은 어쩌지 못했다. 광조가 죽고 나서 회운사에서 49재를 지냈다. 49재에 참석한 순현왕후는 옛 정인인 주지 태허스님과 숭현각에서 정을 나누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민 상궁은 질투심이 끌어 올랐다. 혜주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민 상궁은 태허스님과 교합을 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연인관계가 되었다. 결국 세 사람은 3각 관계였던 셈이다. 평소 순현왕후에게 서운한 감정이 많았던 민 상궁은 둘의 밀회를 문제 삼아 왕후를 궐에서 쫓아낼 작정이었다.

회운사에서 광조 49재를 마치고 궐로 돌아온 민 상궁은 휘하의 나인에게 서찰 하나를 써주었다. 수신자는 민 상궁의 외가 친척뻘인 홍문관 이(李) 교리. 그는 당시 궐내 야당 격인 북파 소속이었다. 이 교리는 이 서찰을 읽어본 후 북파의 수장이던 우의정 김성조를 찾아갔다. 서찰의 내용을 전해들은 김성조는 급히 수뇌부 회의를 소집했다. 북파는 왕후와 남파를 궁지로 몰 수 있는 호재라며 반색을 하고는 남파와 비밀협상을 하였다. 결론은 양측이 서로 이익이 되는 선에서 정치협상으로 마무리되었다. 혜주는 이런 사실은 알지 못했으나 자칫하면 왕위에 오르지 못할 수도 있었다.

 사찰에서 한 고승의 49재를 지내고 있는 모습

물리적으로 민 상궁이 혜주와 제일 가까웠다면 무극은 심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이였다. 좌별직 무극은 혜주의 신변경호 책임자이자 정인이었다. 혜주가 회운사를 드나들면서부터 마음을 의탁하였고, 궐에 들어온 이후로는 여러 날 밤을 같이 지낸 사이였다. 특히 무극은 혜주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는 순현왕후, 태허, 민 상궁 등 네 명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측근 중에서도 최측근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무극은 ‘문고리 권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 본디 승려 출신인데다 그의 성정이 권력 같은 것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무극이 궐로 들어온 것은 민 상궁의 ‘제안’ 때문이었다. 민 상궁은 왕위에 오른 혜주에게 말벗이 하나 필요하다고 보고 무극을 점찍었다. 민 상궁은 혜주와 무극의 스승인 태허스님을 동원해 이를 성사시켰다. 이들의 요청 때문에 할 수 없이 궐로 들어온 무극은 마음 한 구석에서는 혜주를 곁에서 지켜주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 후 민 상궁은 혜주에게 정인을 만들어주기로 하고 무극을 적임자로 지목했다. 다행히 혜주는 이에 동의하였고, 무극 역시 크게 반대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궐내에서 사랑을 나누다가 소문이 나자 궐 밖의 무극 거처에서 몰래 만나곤 했다.

두 사람의 애정전선에 금이 간 것은 술객 노천 때문이었다. 괴벽보 때문에 할 수 없이 궐에서 쫓겨난 무극은 인왕산 인수암에 홀로 머물며 간간이 혜주를 몰래 만났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우별직 노천이 위로 차 인수암으로 무극을 찾아왔다. 얘기 끝에 노천은 무극에게 자하문 밖에 있는 자신의 단골 주막집으로 데려가 술을 대접했다. 여기서 무극은 주막집 여주인과 정분이 나 자주 드나들었는데 이 사실이 발각돼 혜주에게서 내처졌다. 임금인 혜주로서도 참기 어려웠겠지만 몸과 마음을 바친 무극 입장에서도 서운한 건 마찬가지였다.

짐을 싸서 고향으로 가던 무극은 도중에 좌의정 김성조의 부름을 받았다. 김성조는 무극에게 위로의 말과 함께 “대체 어디서 그런 씨가 나왔는지…”라면서 단설형 등 혜주의 폭정을 비난했다. 그 자리에 동석했던 호조판서 김병돈은 “항간에는 주상이 선왕의 씨가 아니라는 소문이 있다”며 혜주의 출생배경에 의혹을 제기했다. 단설형 얘기가 나오자 순간 무극도 치를 떨었다. 죄인의 목숨을 거둬가는 것은 몰라도 세상에 작두로 사람의 혀를 자르다니. 무극은 그간 가슴 속에 품어왔던 혜주의 출생의 비밀을 폭로하기로 마음먹었다.

“여러분 앞에서 소승이 한 가지 고백할 것이 있사옵니다. 주상전하는 선왕 전하의 소생이 아니옵니다.”
“예? 그럴 리가요? 그게 사실이요?”
“분명한 사실이옵니다. 주상전하는 제 은사이신 태허스님과 민 상궁의 소생이옵니다. 두 분이 회운사 숭현각에서 밀담을 나누시면서 ‘우리 혜명이’라고 얘기하시는 걸 소승이 똑똑히 들은 적이 있사옵니다. 그리고 언젠가 민 상궁이 제게 직접 그런 얘기를 한 적도 있사옵니다. 부처님께 맹세하는 바입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혜주의 즉위는 원천무효가 된다. 혜주의 성씨는 전주이씨가 아니기 때문이다. 혜주의 출생 비밀은 가히 태풍 급이었다. 혜주가 신료들로부터 탄핵을 당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바로 출생의 비밀이었다. 혜주 탄핵 상소가 의정부에 올라가 임시조회가 긴급소집 되자 무극은 조회에 출석하여 증언을 하기도 했다. 혜주의 최측근인 무극이 주군의 등에 칼을 꽂은 셈이다. 무극의 폭로에 이어 나머지 세 사람-민 상궁, 대비(순현왕후), 태허스님 등도 모두 조회에 끌려나와 혜주 출생의 비밀을 결국 자백하고 말았다. 

 거사일은 사월 초파일, 혜주가 회운사 연등행사에 가는 날로 잡았다. 사진은 초파일 절에서 연등을 내건 모습

‘3인방’ 가운데 남은 사람 우별직 노천. 그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노천은 반정(反正·쿠데타)에 직접 가담해 중책을 맡았다. 혜주 즉위 4년차 되던 해인 을유년, 좌의정 김성조 등은 모종의 거사를 모의하였다. 그 시작은 정월 초닷새 날 열린 시회(詩會)였다. 신년맞이 시회 모임을 빙자하여 모인 자리에는 북파 사람들도 대거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4월 초파일을 거사일로 잡고 혜주가 회운사 연등회 법회에 가는 길에 도중에 습격해 신병을 확보하기로 했다. 노천이 맡은 임무는 혜주가 연등회에 꼭 참석토록 유도하고 이날 혜주의 행렬을 최소화시키는 것이었다.

계획대로 초파일 오전 혜주는 노천의 호위를 받으며 회운사로 향했다. 중도에 혜주가 탄 마차가 아차산에 다다를 무렵 복면을 한 한 무리의 괴한들이 나타나 마차를 습격하였다. 마차를 호위하던 내금위 군사들은 칼솜씨가 뛰어난 괴한들에 의해 대다수 현장에서 피살되었다. 괴한들은 미리 준비한 의금부 군졸 복장으로 갈아입고 혜주가 탄 마차를 이끌고 궐로 되돌아왔다. 경복궁에 도착하자 노천은 군졸들에게 혜주를 즉각 침전에 연금시키라고 명했다. 노천의 배신 또한 무극의 폭로에 못지않았다.

거사 과정에서 배신자가 한 사람 더 있었다. 궐 안팎의 군권을 쥔 병조판서 남호연이었다. 그는 원래 북파 출신이었는데 노천의 회유로 혜주 사람이 되면서 병조판서로 승진한 인물로 그는 시세(時勢)에 밝은 사람이었다. 북파의 2인자이자 거사의 핵심인물인 호조판서 김병돈이 그를 찾아가 자리보전을 약속하며 회유하자 남호연은 쉽게 넘어왔다. 거사 당일 남호연은 최소한의 병력만 남겨두고는 궐내의 병력 전체를 이끌고 인왕산으로 체력단련을 나갔다. 남호연 덕분에 무혈쿠데타가 가능했다. 이 공로로 남호연은 혜주의 후임 덕종이 즉위한 후에도 유일하게 유임되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측근을 두고 있었다.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 등이 그들이다. 박 대통령은 이들 외에도 청와대 비서실의 수석비서관, 장·차관, 새누리당 국회의원 중에서도 ‘3인방’을 여럿 두고 있었다. 3인방 가운데 우별직 무극이 혜주를 정인으로 삼았다면 새누리당의 친박계 몇몇 의원들은 박 대통령을 ‘누님’이라고 부르며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최고 권력자에게 문제가 없을 때는 이런 관계가 유지된다.

최근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소위 ‘최순실 게이트’(일명 ‘박근혜 게이트’)가 터진 후 측근들이 법의 심판대에 올랐다. ‘문고리 3인방’ 가운데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은 이미 구속됐다. 최순실에게 청와대 문서를 임의로 유출한 혐의 등이다. 3인방 가운데 이재만, 안봉근 두 사람도 검찰 조사를 받았는데 조만간 이들도 구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3인방’은 박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한 초기부터 측근으로 활동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누구보다도 박 대통령의 ‘과거’를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장차 이들의 입에서 ‘폭탄발언’이 터져 나올 수도 있다.

검찰의 ‘최순실 게이트’ 수사는 박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조사를 거부하자 검찰은 “계속 수사를 거부할 경우 검찰이 지금까지 확보한 비리혐의를 모두 공개하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박 정권의 마지막 버팀목이던 검찰도 사실상 박 대통령과의 결별을 통고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그간 권력의 시녀라는 비난을 사온 검찰이 제 살길을 찾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둘 가운데 어느 것이든 상관없다. 그간 검찰의 행태로 보자면 180도 입장이 바뀐 것만은 분명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유죄 혐의 물증을 제공한 셈이 된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과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검찰은 20일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박 대통령이 최순실 등 3인과 ‘공모’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이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 데는 확실한 물증을 확보했다는 얘기다. 알려진 바로는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의 다이어리와 정호성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가 결정적인 물증이라고 한다. 안 전 수석의 다이어리와 업무수첩, 정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에는 박 대통령의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황이 여럿 담겨 있다고 한다. 즉, 두 사람이 박 대통령과 최순실 사이에서 심부름을 했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은 이제 우스갯말로 ‘빼박캔트’ 신세가 됐다.

과거 전직 대통령과 관련된 사건에서 측근들은 모든 책임을 혼자 뒤집어 쓴 경우가 적지 않았다. 물론 이런 행동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만은 없다. 범죄수사를 방해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의리’를 들며 동정하는 여론이 일기도 했다. 한 예로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호한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 그런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이번 ‘최순실 게이트’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들이 외려 대통령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인상을 주고 있다. 물론 그럴만한 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보기 나름으로는 대통령을 ‘배신’했다고 할 수 있다.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이 그 첫 번째 인물이다. 안 전 수석은 대기업들에게 미르·K스포츠재단에 774억 원을 출연하도록 압박한 혐의 등으로 구속됐는데 검찰 조사에서 박 대통령에 대해 ‘섭섭함’을 토로했다고 한다. 그는 “대통령 말씀을 듣고 재단 모금을 위해 열심히 뛰었는데 최순실이 뒤에 있을 줄은 몰랐다”며 “최 씨의 잘못까지 내가 책임질 순 없지 않으냐”고 진술했다고 한다. 안 전 수석은 “최순실을 아느냐?”는 질문에 대해 “모른다.”고 잘라 말했다. 어쩌면 이 말이 사실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가 대통령에게 섭섭한 생각을 가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안 전 수석은 대학교수 출신으로 평소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그의 다이어리, 수첩 등에는 대통령의 전화 지시를 실시간으로 깨알같이 받아 적은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 가운데는 대통령의 지시사항은 물론 실제 집행결과까지도 꼼꼼히 기록돼 있다고 한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박 대통령의 범죄 혐의를 입증하는 데 확신을 갖고 대면조사를 압박해 왔다. 측근의 성실한 업무태도가 결과적으로는 대통령의 목을 죄는 꼴이 됐다. 안 전 수석이 문제의 다이어리 등을 파기하지 않고 검찰에 제공한 것은 ‘섭섭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3인방 가운데 한 사람인 정호성 전 비서관도 마찬가지다. 정 전 비서관은 검찰 조사에서 “대통령 지시로 문건을 최순실 씨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평소 입이 무거워 ‘자물통’이라고 불린 그였으나 검찰이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증거물 앞에서는 손을 들었다. 대통령 지시사항을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 집에 보관해둔 휴대전화 녹음파일에서 문제의 내용이 발견된 것이다. 결국 정호성도 대통령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 셈이 됐다. 그는 검찰 조사 때 여러 차례 울었다고 한다. 자신의 휴대폰에서 대통령에게 불리한 증거가 나올까 걱정해서였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배신자가 된 셈이다. 

 조원동 전 경제수석(왼쪽)과 김종 전 문체부 2차관

‘최순실 게이트’의 피해자 가운데는 기업인도 포함돼 있다.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2013년 말 손경식 당시 CJ그룹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의 뜻”이라며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조 전 수석은 “좀 빨리 가시는 게 좋겠다. 수사까지 안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압박’ 이후 이 부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이다. 조 전 수석은 검찰조사에서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시켜서 이 부회장의 퇴진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에게 직권남용 혐의를 추가할 수 있는 정황 하나가 추가된 셈이다.

‘최순실 게이트’ 수사는 이제 초반부라고 할 수 있다. 사건의 장본인인 최순실 씨와 대통령 측근 몇 사람이 검찰조사를 받은 데 불과하다. 조사 과정에서 누구 입에서 어떤 말이 튀어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자기방어를 위해 폭탄발언을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김종 전 문체부 2차관은 검찰 조사에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소개로 최순실을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김 전 실장은 박 정권의 최고 배후실세로 꼽히는 인물로 그간 “최순실을 모른다.”고 주장해왔다. 검찰과 특검의 수사과정에서 장차 배신자가 나올 가능성은 매우 높다.

혜주시대 최고 실세이자 종국에는 혜주를 파멸시킨 노천과 무극. ‘최순실 게이트’ 정국에서 과연 누가 노천과 무극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1&table=wh_jung&uid=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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