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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소설 혜주는 ‘19금’이다?
정운현 | 2016-12-03 08:53:4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사랑은 아름답다. 때론 위대하기조차 하다. 혹자는 ‘해서 안 될 사랑 없다’며 극단적 사랑론을 펴기도 한다. 사랑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살아 숨 쉬는 것들은 전부 사랑을 한다. 미물도, 길가의 들풀, 비탈에 선 나무들도 사랑을 한다. 사랑이 없으면 종족을 번식할 수 없다. 사람과 같은 고등생물은 그 이상의 사랑을 한다. 사랑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사랑을 통해 삶의 희열을 찾기도 한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사랑은 끝없는 신비”라고 말했다.

소설 ‘혜주’의 주 무대는 궁궐(경복궁)과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회운사(懷雲寺)라는 절이다. 이곳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등장인물들의 애정행각도 이곳에서 펼쳐진다. 이는 기본적으로 스토리 전개상 필요한 요소이기도 하거니와 ‘혜주’가 애정소설의 성격도 일부 가미된 것임을 의미한다. 민 상궁이 주도하는 방중술(房中術) 대목에 등장하는 내용들은 고전 성(性)의학 관련 기록을 뒤져 나름의 고증을 거쳤다.

혜주의 모친 순현왕후는 중전이 되기 전 사가(私家) 시절부터 회운사에 출입했다. 그 인연으로 입궐한 후에도 발길을 끊지 않았다. 불심도 컸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왕후는 회운사 주지 태허스님과 각별한 사이였다. 왕후는 사가 시절 중풍으로 쓰러져 의식불명인 부친의 완쾌를 비는 100일기도를 드리러 갔다가 너무 무리한 나머지 혼절하여 절에서 일주일간 휴식을 취한 적이 있다. 그때 왕후는 태허와 첫 통정(通情)을 했다. 이후 두 사람은 정인(情人)으로 지냈다.

순현왕후는 광조(光祖)와의 사이에 왕자 둘을 두었다. 그런데 두 왕자가 병으로 일찍 죽자 후사 문제가 대두됐다. 그런데 광조는 화류병(花柳病·성병)을 심하게 앓은 데다 순현왕후도 나이가 들어 둘 다 출산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두 사람은 고민 끝에 왕후의 집안 친척뻘인 민 상궁과 상의한 후 평소 자주 다니던 회운사의 주지 태허스님에게 ‘특별한 부탁’을 드렸다. 결국 민 상궁과 태허 사이에서 여아가 출생했는데 왕후가 이 아이를 데려다 공주로 삼았다.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 혜명공주(혜주)다.

 혜주는 민 상궁과 태허스님 사이에서 출생했다. 사진은 영화 ‘연화’의 한 장면

혜주의 생모인 민 상궁은 순현왕후의 심부름으로 회운사를 찾는 일이 잦았다. 그때마다 민 상궁은 태허와 밀회를 가졌다. 왕후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약점을 잡힌 상황에서 달리 어찌하지는 못했다. 그저 속만 태울 뿐이었다. 왕후는 회운사 불사(佛事)에 큰 도움을 주었고 이에 주지 태허스님은 회운사 뒤켠에 왕후 전용 숙소인 숭현각(崇賢閣)을 건립했다. 왕후는 회운사를 찾을 때는 이곳에서 며칠씩 쉬며 태허와 밀회를 가졌다. 그러나 실지로는 태허와 민 상궁의 밀회장소로 더 애용됐다.

한 해 전 봄날, 광조가 사냥을 나갔다가 절벽에서 굴러 사고를 당했다. 의식이 오락가락할 정도로 크게 다쳤다. 효심이 지극한 혜주는 회운사로 부친의 쾌유를 비는 기도를 하러 갔다. 그때 혜주를 수행해 회운사에 온 민 상궁은 늦은 밤 숭현각에서 태허와 몰래 만나 뜨거운 밤을 보냈다.

“소희,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소!”
“대사님 저두요!”

소희는 민 상궁이 입궐하기 전 사가에서 부르던 이름이었다.

“이게 얼마 만이오? 그새 계절이 두 번 바뀌었소.”
“날마다 대사님 생각에 제 가락지가 다 헐거워졌답니다.”

회운사 주지 태허에게는 무극이라는 상좌가 있었다. 혜주보다 두 살 많은 열일곱으로 어느덧 총각 티가 완연했다. 그런데 그런 무극을 대하는 민 상궁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하루는 무극이 태허의 명으로 싸리나무를 하러 산엘 가는데 민 상궁이 막무가내로 따라나섰다. 산꼭대기서 머루를 따다가 두 사람은 뜻밖에 야합(野合)을 하게 되는데 이는 민 상궁이 주도한 일이었다. 장차 있을 모종의 대사에 앞서 민 상궁이 일종의 ‘시험’을 한 셈이다.

 광조에 이어 왕위에 오른 혜주. 사진은 드라마 ‘선덕여왕’의 한 장면

민 상궁은 혜주의 보모상궁이자 생모였다. 광조가 죽자 혜주는 열다섯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이미 혼인을 했을 나이였으니 광조가 병석에 있는 바람에 무기한 연기되었다. 게다가 광조가 죽은 후에는 3년상 때문에 최소 3년간은 혼인을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여왕이고 보니 결혼 자체가 쉽지도 않았다. 결국 민 상궁은 묘안을 하나 생각해 냈다. 즉위 이듬해 봄 어느 날, 난초꽃을 넣은 물에 혜주를 목욕을 시킨 후 민 상궁이 작심하고 말을 꺼냈다.

전하! 혼인을 하는 대신 정인(情人)을 하나 두시옵소서!”
“정인? 가슴에 묻어둬야 하는 정인은 너무 아파!”
“아니옵니다. 곁에 두시면 괜찮사옵니다.”
“곁에 둔다고?”

민 상궁은 짝이 없는 혜주에게 정인을 하나 두라고 권하면서 무극을 추천하였다. 민 상궁이 태허를 국사(國師)로, 무극을 좌별직으로 추천한 것은 순전히 자신의 소생인 혜주를 위해서였다. 민 상궁의 제안에 혜주는 마음이 흔들렸다. 그리고 무극이 싫지는 않았다. 건전한 육신을 가진데다 충성심이 높고 누구보다도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혜주는 회운사에서 세 차례나 무극의 등에 업혔던 기억을 떠올리자 가슴이 떨렸다. 결국 혜주는 민 상궁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때부터 민 상궁은 본격적으로 무극에게 방중술(房中術)을 가르쳤다. 본인이 즐기고자 함이 아니라 ‘딸’ 혜주를 위해서였다. 모보상궁은 왕자나 공주들의 양육은 물론이요, 적절한 나이가 되면 요샛말로 성교육도 담당했다. 왕실에서 후손을 생산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 일을 맡다 보니 민 상궁은 고금의 방중술에 두루 밝았다. 민 상궁은 단순히 이론교육만이 아니라 자신의 몸뚱아리를 실습대상으로 기꺼이 바쳤다. 실습에 앞서 민 상궁이 이론교육에 나섰다.

“중국의 고전 성(性) 의학서인 ‘옥방지요(玉房指要)’에서 이화위귀(以和爲貴)라고 했습니다. 이는 남녀가 화합하여 서로 귀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 ‘화(和)’란 상대에게 매달리지도 상대를 매다는 것도 아닌 서로 얽히는 것으로, 둘로 나뉘어 있으면서도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남녀가 교합(交合)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이치인 것이지요.”

민 상궁의 ‘강의’는 계속됐다.

“남녀의 교합은 몸보다 먼저 마음을 여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이 열리면 몸도 저절로 열리는 법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대칭으로 존재하다가도 교감을 할 경우 둘은 곧 하나가 되고 맙니다. 이는 서로 대칭한 하늘과 땅이 비[雨]로써 교감한 후 하나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남녀의 교합은 순서와 절차를 지켜야만 혼연일체가 될 수 있으며 그럴 때만이 쾌감이 극에 달할 수 있습니다.”

“현녀경(玄女經)에 이르길, ‘무릇 교접을 하고자 함에 있어서 남자가 사지(四至)를 거쳐서 여자를 구기(九氣)에 이르게 해야 하는 것이 도리’라고 했습니다. 여자가 구기에 이르는 과정에서 오징(五徵)과 오욕(五欲)을 거쳐 십동(十動)을 나타내는 것이 보통입니다... 남녀의 교합은 한없이 부드러우면서도 때론 성난 파도와 같이 거칠고 격정적이어야 합니다.”

이론 강의가 끝나자 실습 차례가 됐다. 민 상궁을 등불의 심지를 줄이고는 자신의 옷을 훌훌 벗어던졌다. 그리고는 무극에게도 옷을 벗으라고 했다. 이윽고 두 사람 모두 알몸이 되었다. 희미한 등불 아래서 민 상궁의 벗은 몸을 보자 무극은 회운사 뒷산에서 있었던 야합이 떠올랐다. 무극은 어느새 양대(陽臺·남자의 성기)가 쇠말뚝처럼 단단해졌다.

“이제 제 몸 위로 올라오십시오. 천천히 그리고 아주 부드럽게…. 그리고 이제껏 제가 가르쳐 드린 대로 한번 해보십시오!”

 신라시대의 성애(性愛) 토우

무극은 이후로도 몇 차례 더 민 상궁을 만나 방중술을 익혔다. 전희(前戱)의 기술, 각종 체위 활용법, 정기(精氣) 강화법, 양생술 등이 그것이다. 궁궐은 물론이요, 일반 사가에서도 학동들이 논어를 마치고 사춘기에 이를 때면 보정(保情)이라는 것을 가르쳤다. 말하자면 남녀의 이치를 가르쳐 성인이 되는 길을 알려준 것인데 요즘으로 치자면 성교육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려서부터 절에서 자란 무극이 그런 걸 알 리가 없었다. 무극으로서는 그저 놀랍고 신기한 체험이었다.

이후로 혜주와 무극은 궐내에서 밀애를 나눴다. 이 사실이 괴벽보를 통해 소문이 나자 궐밖에 무극의 비밀 거처를 정해 몰래 만나곤 했다. 심지어 두물섬 물난리로 주민들이 수장 위기에 놓여 있을 때도 혜주는 병을 핑계로 휴가를 내 회운사에서 무극과 애정행각을 벌였다. 5일간 머무는 동안 혜주는 내금위장(현 경호실장)에게 어떤 보고도 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렀다. 혜주는 무극과의 사랑놀음에 푹 빠져 있었다. 마치 귀신에 홀린 듯, 마약에 중독이라도 된 듯 했다.

그런 둘 사이를 갈라놓은 것은 술객 노천이었다. 하루는 노천이 위로 차 무극의 거처를 찾았다. 노천은 자하문 밖에 있는 단골 주막집으로 무극을 데려가 술을 대접한 후 그곳 주모를 소개했다. 이후 노천은 간간이 주막집을 찾아 주모와 객고를 풀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혜주가 무극의 거처를 찾았다가 헛걸음을 하였다. 격노한 혜주는 의금부 군졸을 시켜 무극의 당일 행적을 알아냈다. 그 일로 무극은 혜주로부터 ‘팽’ 당하였다. 이는 노천이 무극을 혜주에게서 떼어내기 위한 고도의 술책이었다.

졸지에 ‘님’을 잃은 혜주는 깊은 방황에 빠져들었다. 게다가 두물섬 수몰사고, 장질부사(장티푸스) 역병 등으로 궐 안팎에 크고 작은 일이 잇달아 터졌다. 그럴 때마다 혜주는 허둥지둥 대며 감당을 하지 못했다. 대면보고가 없어진지 오래된 데다 혜주를 가까이 하려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노천 말고는 궐내에서 자문 받을 사람도, 말상대도 없었다. 그러자 노천의 위세는 갈수록 더 커졌고, 국사(國事)는 노천의 한 마디에 모두 결정되다시피 했다. 조선은 술객 노천의 나라나 마찬가지였다.

날이 갈수록 혜주는 성화가 늘고 군소리에 심지어 욕지거리까지 해댔다. 혼자 밤늦게 침전에서 술을 마시기도 하고 경연이나 조회를 거르기 일쑤였다. 며칠씩 침전에서 두문불출하기도 했다. 얼마 뒤부터는 불면증이 심해 몇날 며칠씩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마약의 일종인 양귀비를 더러 입에 대기도 했다. 더러 정신착란을 일으켜 사람을 혼동하기도 했다. 궐에는 웃음이 사라지고 긴장감이 팽배했다. 그 무렵부터 남·북파는 은밀히 궐 밖에서 만나 모종의 거사를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400여 년을 훌쩍 건너 뛰어 2016년 박근혜 시대로 와보자.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인 박근혜 대통령을 둘러싼 ‘괴소문’ 가운데 하나는 애정문제다. 냉정히 말해 미혼인 박 대통령은 누구와도 사랑을 할 자유(혹은 권리)가 있다. 아차하면 그와 결혼하면 그만이다. 문제는 ‘상대’다. 혜주의 상대가 회운사 승려 무극이었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상대는 사이비교주로 알려진 고 최태민 씨로 소문나 있다. 최 씨는 박 대통령보다 40살이나 연상이다. 보편적인 남녀관계라고 보기는 어렵다. 두 사람을 두고 어떤 이는 “영적인 부부”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보다 한 발 더 들어간 ‘심각한’ 주장도 있다. 근년에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버시바우 전 주한미국대사의 보고서에 따르면, “최태민 목사는 젊은 시절 박근혜 후보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통제했던 사람이란 루머가 파다하다”고 미국정부에 보고하였다. 또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은 ‘손석희 시선집중’(2007.8.17.)에 출연해 “최태민과 박근혜 관계를 낱낱이 드러내면 온 국민이 경악할 것”이라고 폭로한 바 있다. 물론 최-박 두 사람이 실지로 어떤 관계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저 괴이한 소문만 무성할 따름이다.

 1976년 박정희 대통령(왼쪽)이 대한구국선교단 야간진료센터를 방문해 최태민 총재(오른쪽)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가운데는 박근혜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

박 대통령은 최 씨의 사위 정윤회(최순실 전 남편) 씨와의 염문설도 논란이 됐었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의 ‘7시간 미스터리’를 두고 두 사람이 모처에서 애정행각을 벌였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는 그 시각에 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모종의 시술(혹은 투약)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새로 제기되고 있다. 물론 청와대는 대변인을 통해 “사고 당일 7시간 동안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정상 집무를 봤다”고 반박했으나 당일 박 대통령의 구체적인 행적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

비단 이 뿐만이 아니다. 박 대통령과 오랜 친분을 쌓은 사이이자 ‘최순실 게이트’의 장본인인 최순실 씨 역시 입방아에 올랐다. 최 씨와 친분이 깊은 전직 펜싱 국가대표 출신의 고영태 씨는 서울 강남의 호스트 바 출신으로 언론에 보도됐다. 두 사람은 20년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서로 반말을 하고 지냈다고 하는 걸로 봐 보통사이가 아닌 것 같다. 국가대표 금메달리스트인 A씨는 10월말 jtbc 보도에서 “최 씨가 부르면 언제나 출장을 나오는 5명의 남성 접대부가 있었다.”고 폭로해 충격을 던졌다.

궐내에 정인을 두고 밀애를 즐긴 혜주. 둘의 애정행각은 결국 혜주의 비극적 종말을 자초하는 단초가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을 둘러싼 구구한 애정 논란 또한 마찬가지다. 심지어 그가 대통령으로서 이끄는 국정에조차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제기된 박 대통령의 ‘출산의혹설’은 혜주의 출생의 비밀과도 묘하게 겹친다. 혜주가 파멸한 결정타는 광조의 씨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만약 박 대통령에게 숨겨둔 아이라도 있다면 그 역시 엄청난 파문을 몰고 올 것이다.

사랑은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특히 남녀의 교합은 지극히 자연스런 이치이며 삶을 살아가는 활력소이기도 하다. 성(性·sex)이 아름답고 품위가 있으려면 존귀한 자세로 사랑에 임해야 한다.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숭고한 사랑이 3류 스캔들로 치부되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청춘들이여! 어떤 시련과 고난 앞에서도 사랑만큼은 포기해서는 안된다. 수정처럼 맑게,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뜨겁게 사랑해야 한다. 성은 서로 간에 교감의 극치를 이루어내는 것이며, 나아가 사회적 에너지로 승화하는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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