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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규 목사와 ‘노상예배’의 추억
목회자로서 시대의 아픔과 민중들의 고단한 삶을 외면하지 않았다
정운현 | 2016-08-23 13:31:1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980년대 중반 어느 해 8월 서울 중부경찰서 앞. 찌는 듯한 더위에도 불구하고 사오십 명의 사람들이 경찰서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었다. 그들의 한 손에는 성경이 들려 있었다. 시위대 앞에서는 60대 초반의 한 남자가 북을 치며 찬송가를 불렀다. “옳은 길 따르라 의(義)의 길을, 세계만민의 참된 길 이 길을 따라서 살기를…” 그는 서울 오장동 제일교회의 박형규 목사였다. 오장동은 냉면과 제일교회로 유명하다. 당시 김 목사는 제일교회 목사보다는 ‘길 위의 목사’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했다.

1959년 한국기독교장로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서울 공덕교회 부목사로 시무하던 박 목사가 ‘거리의 투사’로 변신하게 된 계기는 1960년 4.19혁명이었다. 경무대(청와대) 인근 궁정동에서 결혼식 주례를 마치고 나오던 그는 총소리와 함께 피 흘리는 학생들을 목격했다. 4.19 하루 전날 있은 반공청년단의 소위 ‘4.18 고대생 테러’였다. 훗날 그는 회고록에서 “들것에 실린 학생들이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십자가에서 피 흘리는 예수의 모습을 보았다”고 회고했다.

▲서울 중부경찰서 앞에서 ‘노상예배’를 드리는 박형규 목사와 교인들

박정희 군사독재 하에서 그는 불의와 부정부패에 맞서 민주투사로 나섰다. 1973년 4월에 있은 ‘남산 야외음악당 부활절 연합예배 사건’이 그 시작이었다. 한국 기독교 사상 진보-보수단체가 처음으로 연합예배를 가진 후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시위를 계획하였다. “선열의 피로 지킨 조국, 독재국가 웬말이냐” “서글픈 부활절, 통곡하는 민주주의” 등의 플랜카드와 시위 주도 혐의로 그는 권호경 목사 등과 함께 구속됐다. 이후 그는 내란음모죄, 긴급조치 위반, 집시법 위반 등의 죄목으로 6차례 투옥됐다.

박정희 정권 시절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던 그가 전두환 정권이라고 곱게 보일 리 없었다. 마침내 박 목사가 목회활동을 하고 있던 오장동 제일교회에 대한 파괴공작이 시작됐다. 전두환 정권은 그를 교회에서 쫓아내기 위해 신자들 간에 이간 책동을 벌였다. 1983년 8월, 이 교회의 장로 정 아무개 씨가 사소한 트집을 잡아 박 목사를 구타했다. 이 사건을 발단으로 신자 20여 명은 노골적인 예배방해와 교인들에 대한 폭력·구타를 일삼았다. 이듬해 9월에는 자칭 보안사요원 조동화 씨가 ‘개척신도’를 자처하는 폭력배들을 몰고 와 박 목사와 교인들을 60시간 동안 불법 감금하였다. 그러나 경찰은 교회 내부의 일이라고 방관하면서 개척신도 편을 들었다.

▲1975년 2월 15일 특사로 풀려난 박형규 목사가 환영나온 가족과 교인들에게 손을 들어 답하고 있다

결국 박 목사와 그를 따르는 교인들은 길거리로 쫓겨나고 말았다. 이들은 ‘정의와 평화를 위한 십자가 행진’을 하면서 노상예배를 올렸다. 전두환 정권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노상예배는 끈질기게 계속됐으며, 교인 수는 오히려 늘어났다. 노상예배에 참석했던 독일인 울리디 두크로우 목사는 “천장이 없으니 하늘이 천장이고, 벽이 없어 막힌 곳이 없으니 온 세계로 열려 있다. 서울제일교회는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다.”라고 말한 바 있다. 박 목사와 교인들이 무려 6년 동안 노상예배를 드린 중부경찰서 앞은 시대의 아픔을 나누는 광장이자 민주화운동의 현장이 되었다.

당시 노상예배에 더러 참석하곤 했던 김자동(88)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은 “날이 추우면 추우니까 사람들이 안 나올지 모르겠다 해서 가고 또 비가 오면 비가 오니까 사람들 안 나오겠구나 그럼 나라도 가봐야겠다 해서 나갔다. 그런데 알고 보니 다른 사람들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더러 있더라.”고 증언했다. 이따금씩 야당 지도자 김대중과 김영삼도 얼굴을 드러냈다. 노상예배가 끝나면 박 목사 일행과 함께 인근 중국집으로 가서 자장면으로 허기를 채우곤 했다.

‘민주화 운동의 대부’로 불린 박형규 목사가 지난 18일 9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그는 목회자로서 시대의 아픔과 민중들의 고단한 삶을 외면하지 않았다. 은퇴 후에는 민주주의 발전과 통일·평화운동에 여생을 바쳤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 <나의 믿음은 길 위에 있다>에서 “불의한 시대에 성직자가 감옥에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추모인파가 끊이지 않았다. 성자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하고픔이리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박형규 목사 빈소의 영정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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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궁정동 시바스리갈  2016년8월23일 16시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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