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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위세, 뱀의 행동
안중근의「동양평화론」을 접하고
강기석 | 2019-08-05 07:22:1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뜻있는 시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으고 서울대 안재원 교수를 초빙해 펴낸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 비판정본을 한 권 얻었다.
안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의 ‘극동평화론’을 논박하기 위해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저술했는데 미처 다 완성하지 못하고 처형당했다

이토의 ‘극동평화론’은 한 마디로 “일본은 평화를 지향하고 한국은 일본과 한 가족처럼 됐기 때문에 걱정이 없는데 지나(중국의 멸칭)가 평화를 관리할 능력이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중국을 포위하고 견제하려는 최근 미 일의 전략적 의도와 흡사하다.

반면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일본이 용과 호랑이의 위세로 어찌 뱀과 고양이의 행동을 일삼는가?”고 개탄하며 “한 중 일 3국이 서로를 대등한 국가로 인정하고, 이웃 국가에 대한 침략과 영토 확장을 시도하지 않으며, 서로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공영을 위해 노력하자”는 것이다.
3국이 ‘평화회’를 조직하고, 3국 공동의 은행을 설립하고 공동화폐를 발행하며, 3국 공동의 군대를 창설하며 각기 이웃 나라의 말을 교육하고, 조선과 청(국)은 일본의 지도를 받아 상공업 발전을 도모하며, 로마 교황을 방문해 서로 협력을 맹세하고 세계인의 신용을 얻자는 것이다.

나는 한-일 간, 또는 시야를 넓혀 동북아 전체를 둘러싼 갈등의 소용돌이가 심각한 최근 상황에서 이런 귀한 책이 출간되고 내 손에까지 들어 온 것이 범상한 일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솔직히 나는 안 의사가 「동양평화론」에서 주장한 내용의 요체는 얼추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직접 전체를 읽어보지는 못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더구나 원래 안 의사가 한문으로 저술한 것이 원본은 없어지고 일본인들이 일본식 한자로 필사한 것 밖에 남아있지 않은데다 그것을 번역하는 과정에서도 너무나 많은 탈자 오자 번역오류 등이 발생했기 때문에 그것들을 모두 바로 잡은 이 책의 가치는 대단히 크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읽다보니 이토 히로부미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48p~49p)

“한국 사람들은 위대하다. 자네도 알고 있다. 한국의 역사를 보면 그들이 우리보다 더 뛰어났던 때도 있었다. 이런 역사를 놓고 보건데 그들이 스스로 정부를 세워서 나라를 이끌어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들은 우리보다 결코 열등하지 않다. 오늘의 상황에 대해서 그들을 탓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들 정부의 탓이다. 만약 정부가 제대로 운영된다면, 능력있는 사람들은 결코 부족하지 않고 넘칠 것이다.“(다키 가즈히로, 2014 「이토 히로부미-일본의 초대 총리, 그리고 메이지 헌법의 아버지」 190p)

하물며 조선 침략을 진두지휘한 원흉이 조선인들을 이리 평가했는데, 오늘날 자신이 한국인이면서 스스로를 비하하고 일본을 흠모하며 앞장 서 옹호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한당 사람들이야 원래 면면히 '그런 정부'를 이어 온 이들이어서 그러려니 하지만, 내가 힘들여 애써 지적하는 것은 바로 조중동이다.


(덧붙이는 글: 안중근의 호소)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 비판정본(‘독도 도서관친구들’ 펴냄)을 마저 읽다보니 전감(前鑑)’ 5번째 단락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청일전쟁에서 중국이 진 이유를 논한 후, 바로 일본이 이길 수 있었던 이유를 말하는 것이다.
마치 1백20년 후의 우리 후손에게 경종의 호통을 치는 듯하다. 어쩌면 간절하게 호소하는 건지도 모른다.

“일본은 유신 이후로 민족이 화목하지 않고 다툼이 그치지 않았다.
하지만 외교상의 다툼이 시작된 뒤에는
동족끼리 싸우다가도 하루아침에 화해하였으며,
뒤섞여 연합을 이루고 한 덩어리의 애국당을 이루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승전가를 올릴 수 있었으니,
이것이 이른바 ‘친절한 바깥사람이 다투는 형제만 못하다’는 것이다.”

(日本維新以來, 民族不睦, 競爭不息矣,
及其外交競爭, 旣生之後,
同室操戈之變, 一朝和解,
混成聯合, 作成一塊愛國黨,
故如是秦凱者矣,
此所謂, ‘親切之外人, 不如競爭之兄弟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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