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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넌 친일파다”
강기석 | 2019-07-29 14:58:0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며칠 전 경향신문에 실린 칼럼 하나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

‘그래, 나는 친일파다’라는 타이틀을 건 이 칼럼은 “강제 징용공 문제에 대해 (한-일 누가 옳은 지) 판단이 어렵기는 하지만, 이걸 빌미로 경제전쟁을 시작한 일본은 치졸하다“는 전제를 깔기는 했다.

그러나 곧 “안타까운 것은 (문재인)정부가 이 문제 해결에 그다지 성의를 보이지 않는 것 같다는 점”이라면서 징용공 문제는 “대법원 판결을 둘러싼 해석의 문제니 얼마든지 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일본음식점 주인은 텅 빈 가게를 보면서 눈물짓고, 여행업계에도 비상이 걸렸고, 기업들은 부품을 수입 못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으니 정부는 이 사태를 정권 지지율 올리는 데 이용하거나 (쓸데없는) 자존심만 세우려 하지 말고 협상에 나서라는 것이다.

이 칼럼을 쓴 서민 교수는 엄혹한 박근혜 시절에 그나마 상식적인 판단력을 앞세워 재미있는 글쓰기로 성가를 높였던, 나름 ‘진보적 지식인’으로 분류됐던 인물 아닌가.

내가 더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대표적 진보언론으로 꼽히고 있는 경향신문에서 이 칼럼을 읽어야 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류의 칼럼이 조중동 같은 수구매국 언론을 연일 도배질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으나 적어도 경향, 한겨레 같은 신문에 실려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래, 나는 친일파다’라는 도발적 제목에서 경향신문까지 포획한 지식 권력의 오만이 풀풀 풍긴다.

1940년 프랑스가 나치에 점령당하면서 프랑스는 드골을 중심으로 한 ‘자유 프랑스’ 망명정부와 1차대전의 영웅 페탱 원수를 수반으로 한 ‘비시 프랑스’ 괴뢰정부로 갈렸다.

‘비시 프랑스’가 세워진 배경 역시전쟁에서 진 전 정권에 대한 미움이 컸고 ‘패전국으로서 물자가 부족해 배급제도가 시행될 정도이고, 국민들이 언제 전쟁터에 동원될지 모르는 위기 상황‘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막강한 독일에 맞서기 보다는 나치와 협조해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생각이었다.

페탱이 보기에 ‘자유 프랑스’는 몽상가들의 집단이고 자신이 이끄는 ‘비시 프랑스’야 말로 독일이 전 유럽을 장악한 뒤 프랑스를 제대로 된 국가로 재건하기 위한 발판이었다. 그리고 새 국가의 가치는 ‘자유, 평등, 박애’가 아니라 ‘노동, 가족, 조국’이어야 했다.

이것이 다른 나라도 아닌 프랑스-대혁명의 나라, 나폴레옹이 마음만 내키면 몇 번이고 독일을 휘저었던 나라, 불과 20여 년 전에 독일을 이겨 막대한 배상금을 받아낸 나라, 자존심 강한 문화와 철학의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독일에 패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완벽하게 40년(1905~1945), 실질적으로 100년 이상 일본의 영향력 아래 놓여 온 나라에서 서민 교수처럼 생각하고 서민 교수처럼 글을 쓰는 지식인, 언론인들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결코 용납은 못 하겠고, 화가 치미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더구나 글 말미에 내세운, 협상이 아니라 항쟁의 결과 전 국토와 인민의 생명이 무자비하게 유린된 787년 전, 몽골의 고려 침공의 예는 더욱 화를 돋운다.

서 교수는 이런 예를 들면서

“이번 경제전쟁이 일본보다 우리에게 더 큰 손해를 입힐 것은 확실” 하므로 “정부가 자존심을 잠시 접어두고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면 1905년, 1910년, 구 한말 고위 벼슬아치들이 일본 제국주의 세력에 저항하지 않고 협상(굴복)한 대가로 조선이 40년 동안 더 큰 피해를 입지 않고 제대로 대접을 받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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