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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절의 달인
강기석 | 2019-05-08 13:15:0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언론계에는 기수 문화라는 것이 있어서 1년 사이 입사자들도 선후배 관계가 엄격하다. 같은 기수이면 서너 살 나이 차가 있어도 ‘야, 자’ 하기 일쑤고 나이 적은 선배에게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붙여야 했다. 또 지금처럼은 아니겠지만, 옛날에도 언론사 입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런데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지 얼마 안 되는 80년대 초반 경향신문에 느닷없이 얼굴 모르는 나이든 이들이 한꺼번에 입사하는 바람에 이 기수 문화에 대혼란이 왔다. 학벌들도 좋아 대부분 서울대 출신이었다.

당연히 먼저 입사한 나이 적은 선배들이 불편할 수 밖에 없었는데 내 경우 이들이 운동권 출신들로 박정희 유신 정권 때 고초를 겪었던 인물들이라는 소리를 풍문으로 듣고 내가 오히려 이들을 선배 대접 해야겠다고 결심했었다. 당시 내가 들은 풍문은 전두환 정권이 과거 대학 운동권 출신들을 대거 경향신문, MBC, KBS, 서울신문 등 관영언론에 특채하는 회유책을 썼다는 것이다.

당시 MBC는 완전히 정권에 예속된 철저한 관영언론이었다. MBC의 사훈이 ‘음수사원(飮水思源)’이었는데, ‘음수사원’이란 물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서 흘러오는 건지(주인이 누구인지)를 명심하라는 이야기이고, 당시 MBC 주인은 정수장학재단이었고, 정수장학재단의 ‘정’은 박정희, ‘수’는 육영수(박정희 부인)라는 이름들에서 따온 것이다.

박정희 부부가 죽은 후 정수장학재단은 주인없는 재산이 됐고, 주인없는 재산은 당연히 정권의 전리품으로 여겨졌고, 당시 정권은 전두환이 장악하고 있었으므로, 당연히 MBC 기자들은 기사를 쓸 때 전두환을 먼저 염두에 두라는 말씀이었다.

경향신문은 전두환의 언론통폐합 조처로 인해 MBC로부터 떨어져 나왔지만 MBC 못지않게, 아니면 더 심각하게 어용이었다. 청와대 홍보수석하던 사람이 사장으로 내려올 정도였다. 이때 대거 입성(?)한 후배이면서 선배이고, 선배이면서 후배인 운동권 출신들을 내가 나이 따지지 않고 존경하기로 한 것은 전두환 정권이 이들의 견결한 투쟁력을 높이 사고, 이들에게 가한 고통을 보상하기 위해 휘하 관영언론사에 특채시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어리석은 착각은 얼마 가지 않았다. 이들 중 몇이 사회부로 배속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흉측한 기획기사들을 양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학생들의 민주화 투쟁을 시뻘겋게 물들인 80년대 대표적인 ‘혐오기사 시리즈’ 「대학가의 음영」이 그 때 이들이 합작해 생산한 작품이다. 이들이 관영언론에 특채된 것은 투쟁의 보상이 아니라 변절의 대가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때 즈음해 심재철이 MBC에 입사했다. MBC와 경향은 이미 다른 회사가 됐으므로 나는 그의 입사 경위를 잘 모른다. 하지만 당시 심처럼 내로라하는 대학 운동권 출신들은 대부분 공장에 가거나 지하에 숨어 운동을 계속하다가 잡혀 고문당하거나 감옥에 갇혔고 아주 형편이 좋은 경우 유학을 가거나 야당 의원 보좌관이 됐다.

그런 심재철이 요즘 유시민을 극심하게 공격하고 있는 모양이다. 홍준표처럼 (어디서 얻었는지 모르는 자술서라는) 종이쪽을 흔들어 대며 이미 확정된 80년대 역사까지 왜곡해가며 수구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심 의원의 주장은 한마디로 헛소리며, 유 작가와 동급으로 주목 받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심재철은 새삼 인기에 연연하거나 주목받고 싶어 할 사람이 아니다. 세상에는 자기 자신의 상처를 헤집고 고통을 자초하면서까지 남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방해하려는 악인들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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