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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당하지 않고, 지배하지 않고 ②
43년간 응축된 비명, 호소, 예언 같기도 한 작가의 목소리
김종익 | 2019-07-05 11:45:1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제주 4·3’의 진실을 향한 불굴의 투쟁, 허구로 현실을 기록해 온 43년, 『화산도』의 작가 김석범 선생이 『화산도』의 후편인 「해저에서海の底から」에서의 연재(2016. 10월~2019. 04월. 『世界』)를 끝내고 한 인터뷰 기사입니다.

작가의 말 가운데 “『화산도』에서 묘사한 역사 인식은, 현재 한국 역사가들의 인식보다도 선행” “해방 공간의 해방은 이제부터 커다란 과제”라는 말에 움찔하게 된다. 더욱이 “한국에서도 4·3 사건을 쓴 작가들은 있어요. 그 가운데 걸작도 있지만, 저에게 말하라고 하면, 김빠진 것이 많다”는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90대 중반의 연세에 여전히 벼리를 쥔 채 “지배당하지 않고, 지배하지 않는” 공동체를 꿈꾸는, 43년간 응축된 비명 같기도 하고, 호소 같기도 하고, 예언 같기도 한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 번역글은 분량이 길어 3편에 나누어 게재합니다 - 역자 주

지배당하지 않고, 지배하지 않고

인터뷰어
세키 마사노리關正則

인터뷰이
김석범

□ 빙빙 도는 이야기

- 대마도 에피소드는 이른바 김석범 문학의 출발점·원점이라고 해도 좋을 듯합니다. 『화산도』로 이어지는 거대한 소설의 끝이 현실의 김석범 문학의 시작이기도 하고요. 끝과 시작, 허구와 현실이 교차된 이상한 순환·圓環의 감각에 사로잡혔어요.

김석범
이 소설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거예요. 이방근이 남승지와 여동생에게 맡긴 뜻은, 자신은 죽고 이 혁명은 실패로 끝나지만, 혁명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두 사람이 되어서라도 끝내 살아가면서,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거예요. 저도 또한 4·3 사건이 올바로 검증되고 해결되지 않는 한, 몇 번이라도 쓸 겁니다.

제가 『화산도』를 쓰고 있던 무렵, 4·3 사건은 ‘현실’로 인정되고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허구로 현실을 쓴 것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조선이 해방되고, 그 3년 후에 4·3 사건이 일어나고, 남북으로 조선이 갈라졌어요. 그 3년간에 뭐가 일어난 것일까요. 우리는 대한민국 성립까지 3년간을 ‘해방 공간’이라고 하지만, 그 역사를 올바르게 검증하고 해결하지 않으면, 4·3 사건의 비극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화산도』를 쓰고 있던 당시는, 그 후의 역사를 예상도 할 수 없었어요. 그러나 이번 『해저에서』를 쓰고 있는 동안에도, 제가 써 온 것을 쫓아오듯이 역사가 부쩍 현실화되고 있어요. 그러나 진정한 역사는 지금도 해명되지 않고 있어요. 4·3 사건의 역사를, 한국 근대사에 정확히 복원, 기록한다는 데까지 진전되고 있지 않아요.

쓰는 일은 투쟁이에요. 4·3 사건이라는 50년간에 걸쳐서 말살되어 온 기억과 역사가 부활한 것은, 하나의 승리이지요. 저는 그 승리의 실현을 향해 소설을 계속 써 온 것이지요. 내부에서 알력이 일어나려고 하든, 변절자라고 듣든, 쓴다는 것은 투쟁인 거예요. 투쟁이 장기화되면, 작품도 장기화되어야 해요.

예를 들면, 오키나와에서 매우 힘든 상황이 계속되고 있어요. 그러나 그 투쟁은 오키나와 현민의 대다수가 짊어지고, 지지하고 있어요. 4·3 사건처럼 절망적인 투쟁은 아니에요. 오키나와 상황은 엄중하지만, 그 투쟁은, 오늘 내일에 괴멸해 버릴 그런 것은 아니지요. 새로운 미군 기지는 완성되지 않았고, 현민의 이 투쟁이 계속되는 한 완성될 수 없겠지요. 지금의 정권이 하는 짓은 너무 심해요. 그런데도 사람들이 하는 당연한 항의 행동조차, ‘과격’하다고 해요. 오키나와에서 정권이 하는 짓은, 정신적으로 말하면, 살인과 마찬가지예요. 해상에 보트를 내서 항의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과격’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테러를 가하는 것은 정권이 아닐까요. 저는, 헤노코 사람들처럼, 24시간 싸우고 있을 수는 없지만, 작품을 쓴다는 것은 투쟁이에요. 제가 이제까지 해 온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투쟁이지요.

한국에서도 4·3 사건을 쓴 작가들은 있어요. 그 가운데 걸작도 있지만, 저에게 말하라고 하면, 김빠진 것이 많다는 겁니다. 왜냐고 하면, 피동, 그러니까 피해 이야기인 겁니다. 이렇게 당했다, 이렇게 참혹하다, 이렇게 불쌍하다는 피해 이야기인 겁니다. 그거로는 투쟁이 안 됩니다. 반대로 4·3 사건의 사실을 말살해 버려요. 4·3 사건을 지나서, 거기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미래로 이어질 수 있는 관점이 좀처럼 나오지 않아요.

- 『해저에서』에서는, 도망자인 두 명의 여성을 남승지가 이카이노의 집으로 데리고 돌아와서, 여동생 말순과 어머니가 맞이하는, 네 명의 여성이 서로 포옹하며 우는 장면에서 끝납니다. “울어, 울어라. 눈물이 그칠 때까지 우는 게 좋다, 울 만큼 울어. 울 수 없을 때까지 울어”라고 “울어”라는 말이 반복되는 대단히 인상적인 문장입니다. 4·3 사건으로부터 60주년 무렵에 김 선생이 하신 “슬픔의 자유라는 희열”이라는 말을 떠올렸어요. 그녀들도 이제부터 울 수조차 없는 삶을 살아야 하겠지요.

김석범
계속 살아간다는 것이야말로 투쟁인 겁니다. 살아 있으면, 가령 위장 전향을 해서라도, 반격할 기회는 반드시 생길 테니까요. 이방근은 죽을 각오를 숨기고 남승지를 일본으로 보내고 있었지만, 그러나 죽은 후에도 자신의 의지를 이어주리라는 희망을 의탁하고 있었던 거지요.

□ 원동력으로서의 ‘passion’

- 연재를 할 때의 『화산도』에서는 자살하지 않은 이방근이, 단행본으로 나올 때, 최후에 자살하는 것으로 ‘개작’되고 있어요. 왜 이방근은, 남승지와 유원을 도피시킨 후에 자살해야만 했던 것일까요.

김석범
『해저에서』의 시작은, 마치 논문 같은 서두가 되었어요. 소설로서는 많지 않은 처사지요. 1948년 가을부터, 제주도에서는 본격적인 학살이 시작되고 있어요. 먼저 처음에 학살과 고문이라는 잔혹한 현실을 사실로 쓰고, 그 후에 이방근이 ‘현해玄海’라는 다방에서 관덕정 광장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이어지는 거지요. 그 잔혹한 현실을 이방근이 어떻게 받아들였던가. 그 심리가 묘사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방근은 학살된 사람들의 일을 자신의 내면에서 풍경화하고 있어요. 그가 죽은 것은 1949년 6월이니까, 이 장면은 같은 해 1월 정도예요. 그리고 이번 『해저에서』의 최종회에서는, 일본으로 도피한 남승지가, 대마도로 건너갑니다. 이 장면 또한 논문처럼 사실 나열로 시작됩니다. 이방근이 관덕정 광장을 바라보는 장면과, 남승지의 대마도에서의 장면은 연결되어 있어요. 학살이라는 현실을,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라는 것이지요. 그것이 중요한 겁니다.

이 정경을 묘사하는 것은, 저 자신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반복하지만, 저는 역시 500명이라는 해상 학살 사건이 아무리 해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기도 하고, 동백꽃으로 그 영령들을 위무했지만, 역시 표면상의 일밖에 쓸 수 없는 듯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확한 사실을 알고 싶었어요. 사실을 알고, 제 내면에서 객관화하여, 소설에 쓰고 싶다고 생각했던 거지요.

이 분노 같은 마음은, 예술에서는 passion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는 것이죠. 그리스도의 수난도 또한 ‘passion’이라고 말하지요. 그것이 인간의 힘인 것이지요. 그 힘이 500명이라는 살해된 사람들의 장면에서도 나옵니다. 알아보고 있다가, 쓰고 있다가, 화가 나는 것은, 이 살해된 사람들의 개인 개인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기록으로도 남아 있지 않는다는 겁니다. 어쩔 도리가 없어요. 생존자의 증언 등을 읽고, 구체적으로 형상화해 가려고 하는 사람도 한국에는 거의 없어요. 정말로 화가 나는 일입니다.

□ 학살자의 살해라는 딜레마를 둘러싸고 

- ‘passion’이라는 의미에서, 이방근이 자살하는 산천단으로 가는 길을 “십자가로의 길”이라고 쓰셨네요. 이방근의 죽음을 예수의 죽음에 비견하실 생각이 있었던 건가요.

김석범
남승지가 이방근의 일주기에서, 스님의 염불을 들으면서, 지루함을 느끼고 조는 장면에서, 이방근의 환상이 나왔지요. 언덕 위에 십자가가 있고 거기에 이방근이 매달려져 있어요. 거기에는 말하자면 죄도 없는 데 희생이 된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중첩되어 있어요. 이방근은 산천단 언덕에 죽을 작정으로 갔어요. 그는 무엇을 위해 죽은 걸까, 그것은 작가인 저로서도 알 수 없는 거지요.

이방근이 서울에 있는 문난설과 전화를 하는 장면에서, 이방근을 사모하는 난설이 아이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심중에 그 아이는 살인자의 아이라고 느끼는 거지요. 만약 자신이 서울로 가서 문난설과 맺어져도,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거지요. 가령 정의를 위한 살인이었다고 해도, 그건 자신과 함께 하는 것은, 문난설은 살인자와 함께 있다는 게 되어요.

그 후, 한대용과 남승지가, 지금까지 비밀로 해 왔지만, 이방근은 사람을 죽였다고 유원에게 전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유원은 그것은 살인이 아니라고 부정하지요. 그녀는, 만약 어머니가 살아 있다면, 이방근은 사람을 죽이지 않았을 거라고 해요. 유원에게 일찍 죽었던 어머니는 신처럼 중요한 존재였기 때문이에요. 유원 입장에서 본다면, 이방근이 죽인 정세용은 변절자이고, 죽여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방근은 문난설에게 그 점을 말할 수 없어요. 역시 자신이 살인자라는 자각이 있기 때문이지요. 가령 고백하고 부부가 되었다고 해도, 역시 뒷맛이 개운하지 않는 것이 계속 죽을 때까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는 문난설이 있는 서울로 결국 가지 않았어요. 이방근은 사람을 죽임으로써 자신도 자살하지만, 남승지는, 죽인 만큼, 자신들이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해요. 저로서는 알 수 없는 거지만.  

- 이토록 무고한 인민들이 살해된 상황을 만든 장본인으로 정세용이 있었던 겁니다. 그를 죽였기 때문이라고 해도, 왜 이방근이 죽어야만 했던가.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는 아니지만, 정의를 위해서라면 살인도 부정하지 않는다, 살인을 정당화할 논리는 있지요. 不正義에 대해 분노하며 죽여 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데도 이방근은 살인자로서 자살해야만 했던 걸까요.

김석범
저 자신도, 정세용 같은 인간은 몇 번이나 죽여도 좋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저였다면 좀 더 빨리 죽였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이상한 것으로, 만약 저 자신이 이방근이었다고 한다면, 라고 생각했을 때, 정세용이 설령 열 번 죽여도 좋은 놈이었다고 해도, 그래도 사람을 죽였다는 행위, 아내가 있고, 부모가 있으며, 자식이 있다, 역시 산 인간의 생명을 빼앗았다는 죄 의식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방근이 정세용을 칼로 푹 찔러 죽였다고 해요. 칼로 푹 찌르고, 빼고, 그때 피가 줄줄 나오겠지요. 그 감각은 칼을 통해 자신에게 전달될 거예요. 이방근의 손에는 그 신체적인 감각이 계속 남아 있는 겁니다. 권총의 방아쇠를 당길 뿐인 감각은 아닌 거지요.  

인간은 살아 있고, 살인도 물론 인간이 살아 있기에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렇기 때문에 살인은 인류의 금기인 겁니다. 인간의 본능은, 역시 살아서 목숨을 지키려고 하는 데 있어요. 죽인다는 것은, 거기에 반하는 일이죠. 이방근은 어떻게 해도, 거기에 걸려 버린 것이 아닐까 해요. 정세용은 죽여서 당연한 남자였을지도 모르는데, 죽여서 뭐가 나쁜 건가라고 할 때, 어떻게 해서도 이유를 찾아낼 수 없어요. 어머니가 살아 있다면 죽이지 않았다, 라는 것도, 역시 거짓말이 되고요. 왜냐하면, 어머니가 없었다면 죽인다, 라는 게 되니까. 역시 죽일 만하니까 죽인 거예요. 그리고 이방근도 자살했어요. 자살이라는 것은 자신을 죽이는 거니까요.

- 유원은 이방근을, 제주도 도민을 위한 희생이었다고 하고 있어요. 한라산에 봉헌된 ‘희생양’이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김석범
제주도 한라산에는 산신이 있다고 회자되고 있는데, 옛날에는 정상의 화구호火口湖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었어요. 겨울은 조난을 당하는 희생자도 많아서, 산기슭의 산천단에 제단을 설치하고, 거기서 산신을 모셨던 겁니다. 제주도에서는 매우 신성하게 여기는 장소 가운데 한 곳이지요. 지금은 말라 버린 듯하지만, 예전에는 20미터나 되는 듯한 여덟 그루의 커다란 신목이 있었어요.

이방근이 굳이 거기로 가서 죽는다는 것은, 제주도 도민 학살이 이루어진 가운데, 자신도 또한 죽일 만한 남자였다고 하지만, 사람을 죽였다, 그래서 자신도 또한 그 장소에서 죽음으로, 산신에게 자신을 바친다는 거지요. 그런 의미에서의, 희생양이지요. 십자가 이미지도 같은 의미예요. 골고다 언덕은, 로마 제국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을 죽이는 곳이었지만, 동시에 성지이기도 하기 때문에, 산천단도, 십자가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성지였어요. 그 제단이 있는 장소에서 이방근은 죽는 겁니다. 그에게 죽을 장소라면 거기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여동생 유원의 말은 맞았어요. 그건 오누이 사이의 직감적인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 『화산도』의 속편인 『땅속의 태양』과 『해저에서』를 읽고 있으면, 이방근의 죽음을 너무 슬퍼하여, 작가도 본래는 자신이 창조한 이방근이라는 영웅을 살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느낌이 듭니다. 김 선생도 본래는 이방근을 죽이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요. 단행본 출판에 즈음하여 편집자와 다투면서 울며 이방근의 자살을 결정했다고 들었습니다.

김석범

그런 일은 있어요. 제가 얼마나 울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그 상태에서 그가 어떻게 살 수 있겠어요. 제 멋대로 이방근을 움직일 수 있다면 죽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움직일 수 없었던 거지요. 이방근의 죽음은 영원한 주제예요. 예를 들면 제가 젊은 시절에 영향을 받았던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서도, 죽음의 문제, 자살의 문제는 반복해 나오지요. 20세기는 혁명의 시대로, 살인과 죽음은 보편적인 주제였으니까요.

- 이방근의 죽음에 관한 두 명의 여성도 대조적이었어요. 산천단에서 이방근의 유체를 등에 지고 성내까지 내려온 부엌이는 너무나 인상적이에요. 부엌이는 제주도 대지로 내려와서 이방근을 애도하고, 지적이고 도회적인 문난설은, 그 장소에 시비를 세워 이른바 문학적으로 이방근을 애도합니다.

김석범
부엌이는 대지인 거죠. 속마음을 말하면, 이방근은 자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거예요. 그의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방근은, 사람과 친하게 지내지만, 동시에 반드시 사람과 거리를 두는 인간이었어요. 거리를 두지 않았던 사람은, 여동생과 남승지 둘 뿐. 그는 매우 고독했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무의식 속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있는 거지요. 여동생도 또한 어머니를 신성시하고 있으며, 어머니를 괴롭힌 아버지를 절대 용서하지 않아요. 어쨌든, 이방근은, 부엌이에게는 고개를 들지 못했어요. 이방근이 부엌이의 치마 아래로 기어들어가 못된 장난을 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런 짓 애들이나 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어머니처럼 응석 부리고 있는 거예요. 그것을 부엌이도 알고 있고요. 부엌이는 무서워요(웃음). 뭔가 줏대가 있다고 할까, 정말 곰인가 뭔가 같은 강함이 있어요. 그녀는 바로 인민 그 자체예요. <계속>


지배당하지 않고, 지배하지 않고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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