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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 ③
김종익 | 2016-03-23 14:03:5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이 글은, 『세카이』 3월호에 실린 글을 중역한 것이다. 일본어 제목은 ‘負け戰’이다. 그러니까 ‘패배하는 싸움’ ‘지는 전쟁’ ‘패전’ 정도의 의미이다. 나는 ‘패전’으로 옮겼다.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반도, 강대국에게 민족의 운명을 의탁한 한반도, 전쟁 경험이 권력 투쟁의 도구로 이용되고 그 도구가 강력하게 현실을 규정하는 한반도, 그 땅에 사는 자들에게 그녀(그녀들)이 묻는다. 너희는 전쟁이 뭔지 아느냐고… 이 번역글은 분량이 길어 4편에 나누어 게재합니다 - 역자 주


패전 - 2015년 노벨 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Svetlana Alexievich
1948년 우크라이나 출생. 국립 벨라루스 대학 졸업 후, 저널리스트 길을 걸었다. 민중의 시선에  서서, 전쟁 영웅 신화를 허물어 버리고, 국가의 압박에 계속 저항하며 집필 활동을 이어왔다. 이 글은 2015년 12월 8일, 스톡홀름의 스웨덴 아카데미에서 행한 수상 기념 강연을 완역한 것이다. 국내에 번역된 저작으로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세컨드 핸드 타임』『체르노빌 목소리』 등이 있다.

1989년

나는 카불에 있다. 이미 전쟁에 관한 따위는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진짜 전쟁터에 있다. 『프라우다』 신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우리는 형제인 아프가니스탄 민족이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을 돕는 것이다’라고.
어디를 가도 군인, 전쟁 물자. 전시인 것이다.

어제는 전쟁터에 데리고 가지 않았다.
“호텔에서 대기해 주세요, 아가씨, 뭔 일이 있으면 내가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호텔에 머물며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용감히 싸우며 위험에 처해 있는 모습을 엿보다니 어딘가 부도덕한 점이 있다고. 여기에 와서 벌써 2주째가 되었지만, 전쟁이라는 것은 남자의 본성이 만들어낸 것으로,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전쟁은 일상성을 띠고 있고 그것은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기관총, 지뢰, 전차 같은 무기가 아름답다는 것은 발견이었다. 인간은, 어떻게 하면 보다 능숙하게 타인을 죽일 수 있을까 다양하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진리와 미를 둘러싼 영원한 논의. 새로운 이탈리아제 지뢰를 구경했을 때, 내 ‘여자다운’ 반응을 말하면, “아름답다. 왜 아름다운 것일까?”라는 것이었다. 군사적인 설명은 정확하게 이루어졌다. 이 지뢰 위에 올라가거나, 이런 식으로 밟거나 하면…이런 각도에서…그렇게 하면, 인간은 양동이 반 정도의 살점밖에 남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이상한 일’이 예사로운 ‘정상적인 일’처럼 이야기된다. 전쟁이니까요, 라는 인상으로…. 불가항력으로 죽었어도, 명운이 다해 죽지 않고 타인에게 살해되어 사람이 죽어 넘어진 광경을 보고도, 아무도 정신이 이상해지거나 하지 않는 것이다.

‘검은 튤립’(전사자를 납관한 아연으로 만든 관을 조국으로 옮기는 비행기를 이르는 말)이 화물을 적재하는 곳을 보았다. 유체에는, 1940년대 승마 바지 같은 낡은 군복을 입힌 것이 많았지만, 그런 군복이라 해도 고루 보급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병사끼리 얘기하고 있다.
“냉장실에 또 새로운 유체가 반입되었다. 부패한 멧돼지에서 나는 그런 냄새가 난다.”
이 일을 쓰도록 하자. 나라에서는 믿어 주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나라 신문이 쓰는 사건이라고 하면, 소비에트 병사가 심은 ‘우정의 가로수길’ 정도이니까.

젊은이들과 이야기하면, 많은 젊은이들이 지원해서 왔다고 한다. 대부분이 지식인 가정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교사, 의사, 사서. 간단히 말하면, 교양 있는 가정이라는 사실. 모두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을 돕고 싶다고 진심으로 원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에 관해 조소하고 있다. 공항 구석에 아연 관이 몇 백 개 나란히 놓여 있고, 햇볕을 쬐어서 신비하게 빛나고 있는 장소를 알려 주었다. 나를 수행하던 장교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내 관 역시 저기에 나란히 있을지도 모른다. 저기에 섞여서…나는 여기서 도대체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 거죠?”
이렇게 말하고 곧바로 자신의 말에 깜짝 놀라 “이 말은 쓰지 말아 주세요”라고 했다.

밤이다, 꿈에 죽은 자가 나왔다. 모두 놀란 얼굴을 하고 있다.
“내가 죽었다고? 나는 정말 죽은 걸까?”
아프가니스탄의 비전투원인 일반 시민을 위한 병원을 간호사들과 방문했다. 아이들 선물로 장난감, 초콜릿, 과자를 가지고 갔다. 나는 곰 인형 다섯 개 쯤. 병원에 도착. 긴 가건물에서, 전원, 침구라고 해봤자 모포밖에 없다. 아이를 안은 젊은 아프가니스탄 여성이 혼자서 내 쪽으로 와서, 뭔가 말하고 싶어 했다. 10년 동안 여기서는 누구나 러시아 말을 조금은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아이에게 장난감을 주자, 아이는 이빨로 잡았다.
“어째서 이빨로?”
내가 놀라서 물었더니, 여성은 아이의 자그마한 몸에서 모포를 벗겨 보였다. 소년에게는 양손이 모두 없었다.
“당신들 러시아인이 폭격한 탓이랍니다.”
누군가가 내 몸을 받쳐 주었다. 쓰러졌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다연장grad’ 로켓포가 아프가니스탄 마을을 구멍투성이의 황무지로 바꿔 놓은 것을 나는 보았다. 마을만큼이나 길게 이어지는 묘지에도 갔다. 묘지 한가운데쯤에서 나이든 아프가니스탄 여자가 울부짖고 있다. 민스크 교외의 어떤 마을 광경이 떠올랐다. 집으로 아연 관이 들어왔을 때, 어머니가 울부짖었다. 그것은 인간의 비명도 동물의 포효 소리도 아닌…카불의 묘지에서 들은 이 소리와 똑같았었다.
정직하게 말하면, 나는 곧바로 벗어났던 것은 아니다. 내 책의 등장인물들과 성실히 대면하고 있었고, 그들도 나를 믿어 주었다. 각자 자기 나름의 자유에 대한 길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아프가니스탄에 갈 때까지 나는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믿고 있었지만, 돌아왔을 때는 모든 환상에서 해방된 상태였다. 아버지를 만났을 때 말했다.
“아버지, 용서하세요. 아버지는 공산주의 이상을 믿도록 저를 키우셨죠.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가 바로 최근까지 가르치고 있던(내 부모는 마을의 교사였다) 소비에트 학생들이 타인의 땅에서 본 적도 없고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현장을 한 번이라도 목격했다면, 아버지가 말하고 있던 것은 모두 소용없다는 걸 분명히 알았을 겁니다. 우린 살인자인 거예요, 아버지, 알아요?”
아버지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해방된 사람들이 많이 돌아왔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한 청년이 내게 소리를 질렀다.
“여자 주제에 전쟁이 뭔지 안다는 거야. 책이나 영화처럼 인간이 전쟁에서 죽는다고 생각하는 거야? 책이나 영화라면 멋지게 죽겠지. 그런데 어제 같은 경우 머리에 탄환을 맞고 내 친구가 죽었지만, 10미터 정도 뛰어가 자신의 뇌수를 잡으려고 했어….”
7년 후, 바로 이 청년이 비즈니스로 성공해, 아프가니스탄에 관해 즐겨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는 전화를 걸어와서, 이렇게 말했다.
“왜 그런 책을 쓴 거야. 너무 무섭잖아?”
그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되고 말았다. 만연한 죽음 속에서 내가 만났던 그 청년, 20살로 죽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그 청년이 아니었다.
내 자신에게 묻는다. 도대체 전쟁에 관한 어떤 책을 쓰고 싶어 하는 거냐고. 총을 쏘지 않고, 타인을 공격하지 않는 그런 사람, 전쟁이 있다는 생각만으로 괴로워하는 그런 사람에 관해 쓰고 싶은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아직도 만난 적이 없다.<계속>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1001&table=ji_kim&uid=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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