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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 ②
김종익 | 2016-03-22 13:02:4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이 글은, 『세카이』 3월호에 실린 글을 중역한 것이다. 일본어 제목은 ‘負け戰’이다. 그러니까 ‘패배하는 싸움’ ‘지는 전쟁’ ‘패전’ 정도의 의미이다. 나는 ‘패전’으로 옮겼다.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반도, 강대국에게 민족의 운명을 의탁한 한반도, 전쟁 경험이 권력 투쟁의 도구로 이용되고 그 도구가 강력하게 현실을 규정하는 한반도, 그 땅에 사는 자들에게 그녀(그녀들)이 묻는다. 너희는 전쟁이 뭔지 아느냐고… 이 번역글은 분량이 길어 4편에 나누어 게재합니다 - 역자 주


패전 - 2015년 노벨 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Svetlana Alexievich
1948년 우크라이나 출생. 국립 벨라루스 대학 졸업 후, 저널리스트 길을 걸었다. 민중의 시선에  서서, 전쟁 영웅 신화를 허물어 버리고, 국가의 압박에 계속 저항하며 집필 활동을 이어왔다. 이 글은 2015년 12월 8일, 스톡홀름의 스웨덴 아카데미에서 행한 수상 기념 강연을 완역한 것이다. 국내에 번역된 저작으로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세컨드 핸드 타임』『체르노빌 목소리』 등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동요하게 된 테어도어 아도르노는 “오시비엥침4) 이후, 시를 쓰는 건 야만이다”라고 썼습니다. 제 스승인 알레시 아다모비치5)도 또한(여기에 은사의 존명을 감사의 마음과 함께 모십니다), 20세기의 악몽에 대해 소설을 쓰는 짓은 모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꾸밀 수 없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제공할 수밖에 없는, ‘문학 그 이상’이 필요하다,  증인이 스스로 말해야만 한다고. 니체의 말을 떠올려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예술가도 현실을 참고 견딜 수는 없다, 현실을 ‘찬양할’ 수는 없다고 진술합니다.

제가 늘 어려움을 겪는 일은, 진실이라는 것이 단 한 사람의 심장, 두뇌에는 다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 진실이란 뭔가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많이 있어 다양한 모습으로 세계에 흩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생각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 자신에 관해서, 문학으로 써서 남긴 것보다 많은 것,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제가 하는 일은 어떤 일일까요? 저는 일상적인 감정, 생각, 말을 모으고 있습니다. 제가 살아가는 시대의 생활을 모으는 거지요. 제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혼의 역사, 혼의 일상적인 면입니다. ‘거대 역사’가 보통 간과하거나 주목하지 않는 측면입니다. 말하자면 제가 다루는 것은, 보지 못하고 넘긴 역사인 거지요. 그것은 문학이 아니고, 다큐멘터리라는 의견을 몇 번이나 들었고, 지금도 그렇게 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문학이란 도대체 어떤 것을 가리키는 걸까요?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현대의 우리는 이전보다 빠른 속도로 생활합니다. 내용이 형식을 규정하고, 파괴해 바꿔 버립니다. 모든 것이 자신이 있던 해변을 떠납니다. 음악도, 회화도. 다큐멘터리에서도, 말이 다큐멘터리의 틀을 넘어서 분출합니다. 사실과 픽션 사이에 경계가 없어지고, 한쪽이 다른 한쪽으로 흘러드는 경우가 있는 겁니다. 증인이라고 해서 항상 공정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말하는 동안에 지어낸 이야기를 해 버리는 경우가 간간이 있습니다. 조각가가 대리석과 격투를 벌이듯이, 증인은 시간과 격투하기 때문입니다. 연기를 하면서 창조하는 거지요.

제가 관심을 기울여 온 대상은 ‘중요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중요하지 않은 ‘중요한 사람’”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시련이 인간을 중요하게 만드니까요. 제 책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사람’ 자신이 자신의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에 관해 이야기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중요한 이야기’도 언급하게 됩니다. 우리 신상에 뭐가 일어난 것일까, 뭐가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라는 사실은 아직 충분히 깨닫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정확히 말할 필요가 있겠지요. 처음에 최소한 뭐가 있었던 것인가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렇게 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아직까지 자신의 과거를 직시하는 일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에서, 사또프가 스따브로긴과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무한 속에서…이 세상의 마지막에 만났습니다. 그런 말투는 집어치우고 인간답게 이야기해 주시길! 적어도 한 번이라도 좋으니 인간다운 목소리로 이야기해 주세요.”

4) 폴란드 도시 이름. 오시비엥침은, 폴란드 남부에 위치한 도시로 인구는 약 43,000명이다. 크라쿠프 서쪽으로 5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오시비엥침의 독일어 이름인 ‘아우슈비츠’는 제2차 세계 대전 때 만들어진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5) 1927~1994년. 벨라루스 작가. 대표작으로 『빨치산』 『하티니 이야기』 등이 있다.

저는 증언해 주시는 분들과의 대화도, 대체로 이런 식으로 시작합니다. 물론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 속에서 이야기하는 것이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이야기가 나올 리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인간의 영혼에 도달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영혼은, 20세기의 미신, 편견, 기만, TV, 신문으로 덕지덕지 덮여 오염되었기 때문에.

여기서 제 자신의 일기 몇 쪽을 읽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세월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사상이 어떻게 죽어 갔는지…, 제가 어떤 식으로 그 자취를 좇은 것인지 소개하기 위해.


1980~1985년

전쟁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왜 전쟁일까? 우리가 군사적인 인간이기 때문이겠지. 항상 싸우든가 전쟁 준비를 하든가 어느 쪽을 벌이고, 주의해서 보면, 우리는 매사를 군사적으로만 생각한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그래서 인간의 목숨이 이렇게까지 싸구려처럼 되어 버린 것이리라. 모든 것이 전쟁 중에 있는 것 같다.
의문을 품은 일부터 쓰기 시작했다. 전쟁에 관해 또 한 권….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일까?

어느 취재 여행에서 만난 여성은, 전쟁 중에 위생병이었다고 한다. 그녀가 얘기해 주었다. 겨울에 부대가 라도가 호를 건널 때, 적이 알아채고 공격해 왔다. 말도 사람도 모두 얼음 밑에 잠겼다. 한밤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녀는 부상을 당한 듯한 사람을 붙잡고 강가까지 끌고 갔다고 한다. 그녀의 이야기.
“내가 끌어당기고 있던 사람은 흠뻑 젖어 벌거숭이였어요. 입었던 옷이 벗겨지고 말았구나, 라고 생각했었지만, 강가에 도착해 보니 내가 끌어당기고 있던 것이, 상처를 입은 커다란 철갑상어였다는 걸 알았어요. 나는 한동안 욕설을 마구 내뱉었어요. 전쟁이니까 인간이 고생하는 건 어쩔 수 없다 해도, 짐승이나 새 심지어 물고기까지 무엇 때문에 고생해야만 하는 것인가로.”

다른 출장에서는 기병 중대 위생병의 이야기를 들었다. 전투가 벌어졌을 때, 그녀는 폭발로 땅이 움푹 파인 곳까지 독일 병사를 끌고 갔다. 그런데 독일 병사라는 걸 알았던 때는 구덩이에 도착했을 때였다. 한쪽 발이 날아가서 피가 방울방울 떨어졌다. 적이잖아! 어떻게 하지. 위쪽에서는 아군이 죽어 가는 데! 그래도 그녀는 그 독일인에게 붕대를 해 주고 나서, 다시 기어 나왔다. 이번에는 러시아 병사를 끌고 왔다. 러시아 병사는 의식을 잃고 있었는데, 의식을 회복하자 기어이 독일 병사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독일 병사 쪽은 의식이 돌아오자, 기관총을 들고 러시아 병사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녀는 기억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한 사람의 뺨을 후려치고, 그리고 또 한 사람의 뺨도 후려치고 싶었어요. 우리 발은 피투성이로, 피가 뒤섞여 있었어요.”
이것은 내가 몰랐던 전쟁이었다. 여자의 전쟁. 영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한쪽 진영이 다른 한쪽 진영을 영웅적으로 죽이는 이야기도 아니다. 여자들의 통곡이 기억에 남아 있다.
“전투 후, 벌판을 돌아다니면, 모두 쓰러져 있는 거죠…. 모두 젊고 너무 멋있고. 쓰러져 하늘을 노려보고 있다. 적도 아군도 모두 가엾고….”
이 ‘적도 아군도’라는 말을 듣고, 나는 내 책이 어떤 책이 될지 알았다. 전쟁이라는 것은 살인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토로하는 책이 될 것이다. 여자들의 기억에 그렇게 각인되어 있는 거다. 조금 전까지 싱글거리며 웃거나 담배를 피우고 있던 사람이, 이제는 없다. 여자들이 가장 빈번하게 말하는 것은 사람이 사라지는 일, 전쟁에서는 모든 것이 얼마나 재빨리 무로 돌아가 버리는가, 라는 것이었다. 인간도, 인간의 시간도. 그렇다, 열일고여덟 살에 지원해 전선으로 간 젊은이들은, 다른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았다. 죽을 각오였던 거다. 조국을 위해 죽는다. 그리고 스탈린을 위해 죽는다. 그런 말을 역사에서 지워 없앨 수는 없다.

책6)은 2년 동안 출판되지 않았다. 고르바초프가 등장하고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되기까지.
“당신의 책을 읽은 사람은 누구라도 전쟁에 나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져 버리는 거지요. 당신이 묘사하는 전쟁은 무서우니까요. 어째서 영웅이 나오지 않는 겁니까?”
검열관이 지침을 내렸다. 나는 영웅 같은 건 찾지 않는다. 내가 쓰는 것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았던 증인이나 참가자들이 얘기해 준 역사인 것이다. 그들은 누구로부터도 어떤 질문도 받지 않았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위대한 사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리는 모른다. 전후 곧바로 다른 사람이 전쟁은 이러했다고 얘기했다 해도, 몇 십 년이나 했다면, 다른 식으로 말하게 된다. 물론 뭔가가 바뀌는 것이다. 기억 속에서 자신의 전 인생을 깊이 파고들기 때문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전쟁의 세월을 어떻게 보냈던가, 무엇을 읽고 무엇을 목격했던가, 누구와 만났던가. 무엇을 믿었던가. 그리고 행복한 것인가 불행한 것인가. 다큐멘터리라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이니까, 우리와 함께 변화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가 믿어 의심하지 않는 것은, 1941년 전시에 지원했던 그 여자들 같은 저런 사람들은 이제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저것은 ‘붉은’ 사상이 가장 번성했던 시대였다. 러시아 혁명과 레닌 시대보다도 더욱 심했다. 전쟁에 ‘승리’한 일이 수용소의 존재를 덮어서 숨겨 와서 지금에 이르렀다. 나는 저 여자들이 어쩔 수 없이 좋았지만, 스탈린 이야기를 그녀들과 할 수는 없었다. 전후, 입을 열어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용기 있는 여자들이 몇 량이나 편성된 열차에 실려 시베리아로 보내진 일에 대해서도. 시베리아로 송치되지 않은 여자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입을 닫았다.

“우리가 자유를 누렸던 순간은 전쟁 때 뿐. 전선에 있었을 때 뿐”이라고 얘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의 주된 자원은 고통이다. 석유도 가스도 아닌 고통인 것이다. 늘 손에 넣을 수 있는 유일한 것. 왜 우리의 ‘고통’을 ‘자유’로 변환할 수 없는 것일까? 고생해도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일까?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나는 늘 탐구하고 있다. 표트르 차다예프7)는 옳았다. 그는 러시아는 기억을 갖지 못한 나라이며, 전면적인 건망증의 공간이어서, 비판이나 반성을 견딜 수 없는 유치한 의식밖에 지니지 못했다고 주장했었다. 위대한 책은 발밑에 팽개쳐져 있다.<계속>

6)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를 이르는 말.
7) 1794~1856년. 러시아 철학자. 『철학 편지』를 저술했으며, 러시아의 후진성을 예리하게 비판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1001&table=ji_kim&uid=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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