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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의 고전소통] 人物論 인재는 크기에 따라 용도가 다르다.
이정랑 | 2021-02-10 14:02:1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사안 謝安】 넓은 도량으로 황실의 안전을 수호하다.

사람의 그릇에는 크기가 있다. 사람을 쓸 때는 그 사람의 그릇 크기를 먼저 살펴라!

중국인들은 위진(魏晉), 시대의 기풍을 선망해마지않지만 이를 본받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남조 송나라 때 유의경(劉義慶)이 편찬한 『세설신어 世說新語』 「아량 雅量」에는 위진, 시대 선비들의 대범하고 넓은 도량을 집중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가장 특출한 사람이 바로 사안(謝安)이다.

사안은 매사에 평온하고 두려움 없는 성품으로 겉으로도 놀란 표정을 짓는 일이 없었다. 한번은 친구들과 함께 바다에 배를 띄워 유람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광풍이 몰아치면서 집채만 한 파도가 덮쳐왔다. 배가 곧 뒤집힐 듯 이리저리 심하게 흔들리자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사색이 되어 뱃전을 꼭 움켜잡고서 꼼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안은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태연하게 풍랑을 향해 노래를 불렀다. 뱃사공이 역시 풍류를 아는 사람이라 사안이 심한 풍랑속에서도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는 있는 힘을 다해 계속 노를 저었다. 그러나 풍랑은 갈수록 거세졌고 뱃사공은 다른데 신경 쓸 겨를 없이 노를 젓는 데만 열중했다. 모두가 더는 뱃놀이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체면 때문에 돌아가자는 말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사안이 나서서 평소와 다름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이런 날씨에는 배를 몰고 놀러 갈 만한 데가 없을 것 같소”

뱃사공은 그제야 뱃머리를 돌려 노를 젓기 시작했다. 뭍으로 무사히 돌아온 후 사람들은 모두 큰 위험에 직면해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사안의 태도에 찬탄하며, 장차 나라의 시비를 다스리는 데는 사안만 한 인물이 없다고 여기게 되었다.

동진 영강(寧康) 원년(373), 간문제(簡文帝) 사마욱(司馬昱)이 세상을 떠나고 효문제 사마요(司馬曜)가 즉위하자 오래전부터 대권을 노리던 대사마 환온(桓溫)이 병력을 이동시키고 장수들을 파견하는 등 무력시위를 하면서 황권을 탈취할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는 병력을 이끌고 신정에 진주했다. 신정은 경성 건강의 근교에 성벽을 등지고 강가에 자리한 군사와 교통의 요충지였다. 환온의 대병력이 이곳에 도착하자 자연히 조정에서는 이를 두려워했다.

당시 이부상서 사안과 시중 왕탄지(王坦之)는 조정의 신망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왕탄지는 전에 환온의 정권 탈취를 저지한 바가 있기에 그에 대해 적지 않은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일전에 간문제는 유조(遺詔)를 작성하게 하여 과거에 주공이 섭정했던 선례에 따라 대사마 환온에게 나라를 다스리게 하겠다고 밝히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내 아들에게 황위를 잇게 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는 경이 그 자리를 차지해도 좋을 것이오.”

왕탄지는 조서를 읽고 나서 격분하여 간문제의 앞에서 조서를 찢어버리고 나서 말했다.

“천하는 선제(宣帝.-사마의)와 원제(元帝.-사마예)의 것인데 폐하께선 어째서 사사로이 권력을 나눠주시는 겁니까?”

이 말에 생각을 바꾼 간문제는 다시 왕탄지에게 지시를 내려 “모든 국사를 대사마에게 보고하되 옛날에 제갈량과 왕도가 어린 황제를 보좌했던 선례에 따르도록 하라.”라고 조서의 내용을 고치게 했다. 이리하여 환온은 황제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었다.
이제 환온이 병력을 이끌고 진주하자 황실의 조정과 민간에는 의견이 분분했고, 특히 환온이 병력을 이끌고 온 것이 어린 황제를 폐위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왕탄지와 사안을 주살하기 위한 것,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를 전해 들은 왕탄지는 놀라움과 두려움에, 좌불안석이었다.

하지만 사안은 달랐다. 그는 전혀 두려움이 없었고 표정도 평소와 다름없었다. 실제로 사안은 서정대장군 환온의 사마(司馬)로 초빙되어 간 적이 있었다. 환온은 사안의 능력을 인정했지만 그를 권력 찬탈의 최대 장애물로 생각했다. 과연 이번에 환온이 진주한 것은 기회를 잡아 왕탄지와 사안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다. 얼마 후 환온은 사람을 보내 왕탄지와 사안 두 사람을 신정에서 만나보고 싶다는 제안을 해왔다.

왕탄지는 환온의 전언을 듣자마자 사안을 찾아가 대처 방안을 의논했다. 사안은 여전히 안색조차 변하지 않은 평온한 모습이었다. 살신의 화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표정이었다. 왕탄지가 말했다.

“환 장군이 이번에 병력을 이끌고 온 것은 길조보다 흉조가 더 많은 것 같소. 지금 우리 두 사람을 신정에서 만나고 싶다는데, 그를 만나러 갔다간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소.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소!”

사안이 말을 받았다.

“우리는 나라의 봉록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니 나라를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할 것이오. 진나라 왕실의 존망이 우리의 대응에 달린 것 같소이다!”

말을 마친 사안은 왕탄지의 손을 잡고 함께 문을 나서 곧장 신정으로 갔다. 조정의 많은, 신하들이 두 사람과 동행했다.

신정에 이르자 사안 일행은 거대하면서도 엄숙한 환온의 군영을 보고는 조금씩 긴장하기 시작했다. 환온의 군영으로 들어가자 꽤 명망 있는 대신 몇 명이 환온의 미움을 살까 두려워하며 멀리 앉아있는 환온을 향해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올렸다. 그러고 나서도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너무나 초라하고 가련해 보였다. 왕탄지도 온몸에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억지로 발걸음을 떼며 간신히 환온의 면전으로 다가가 예를 올렸다. 하지만 사안은 여전히 느긋한 태도였다. 그는 편안한 걸음으로 환온에게 다가가 전혀 비굴하지 않은 태도로 입을 열었다.

“명공께선 별고 없으신지요.?”

환온도 사안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처럼 태도 하나 변하지 않는 데는 놀랐다. 사안의 너무나 태연한 모습에 오히려 환온이 두려움을 느낄 지경이었다.

“아주 좋소! 자 사대인, 어서 앉으시오!”

사안은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이때 왕탄지와 다른 신하들은 거의 넋이 나가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었다. 사안이 화제를 바꿔가며 여러 가지 얘기를 늘어놓자 환온의 모사들은 그의 의중을 알 수 없어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때, 사안은 좌우를 유심히 살펴 벽 뒤에 무사들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간파해냈다. 이제 자리를 파할 시간이 되었다고 판단한 사안은 슬며시 몸을 돌려 빙긋이 웃으며 환온에게 말했다.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들으니 제후가 덕을 갖추고 있으면 주위 사람들이 그를 돕고 지켜주기 때문에 굳이 사방에 자신을 방어할 조치를 마련하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한데 명공께선 어찌 된 일로 벽 뒤에 무사들을 숨겨두셨습니까?”

이는 환온에 대한 직접적인 풍자였다. 당황한 환온은 얼떨결에 궁색하게 둘러댔다.
“오랫동안 군중에 있다 보니 습관이 되어 그렇소. 갑자기 돌발적인 사태가 벌어질 때를 대비하는 것이지요! 사대인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당장 물러가게 하겠소이다.”

사안은 환온과 반나절이나 더 환담했다. 그의 편안하면서도 당당한 태도에 압도당한 환온은 끝내 그를 해치지 못했다. 반면에 왕탄지는 몸이 뻣뻣하게 굳어 한마디의 말도 못 했고, 사안과 함께 건강으로 돌아왔을 때는 온몸이 땀으로 젖어있었다.

얼마 후 환온은 중병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자를 보내 조정에 구석(九錫-천자가 공이 큰 황족이나 신하에게 주었던 아홉 가지 특혜)을 요청했다. 반복되는 그의 재촉에 못 이겨 사안은 이부랑 원굉(袁宏)으로 하여 기안을 올리게 했다. 글재주가 뛰어난 원굉이 일필휘지로 초안을 작성해 올렸으나 사안이 계속 사소한 꼬투리를 잡으며 다시 쓸 것을, 지시 한 달이 지나도 초안이 완성되지 못했다. 글재주는 뛰어나지만, 정치를 몰랐던 원굉은 이를 이상히 여겨 몰래 복야(僕射) 왕표지(王彪之)를 찾아가 원인을 물었다. 왕표지가 말했다.

“그대 같은 문재(文才)에게 사 상서(尙書)께서 글의 수식을 따질 이유가 어디 있겠소! 이는 환공의 병세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기에 그의 목숨이 오래가지 못할 것을 알고서 고의로 기안의 비준을 미루시는 것이오.”

원굉은 그제야 사안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처럼 사안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시간을 버는 책략을 썼다. 결국, 환온은 야심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8만의 병력으로 백만에 가까운 대군을 전투 없이 물리치고 환온의 야욕을 잠재움으로써 동진 황실의 안전을 지켰던 사안의 넓은 도량에 후대학자들은 그저 멀리서나마 그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다.

이정랑 언론인(중국고전 연구가,칼럼리스트)

경인일보/호남매일/한서일보/의정뉴스/메스컴신문/노인신문/시정일보/조선일보/서울일보 기자, 편집국장, 논설실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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