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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의 고전소통] 人物論 부드러움으로 강경함을 제압하다.
이정랑 | 2020-10-23 08:44:0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인상여 藺相如] 인내와 지혜 용기를 두루 갖춘 보기 드문 인재

중국에 ‘한보 양보하면 하늘과 바다가 열린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우리의 일과 생활 속에는 양보가 승리의 중요한 계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 진심으로 양보한 것이건 아니면 작전상 후퇴이건 간에 어차피 한 번 양보한 사람은 직장이나 관직에서 훨씬 운신의 폭이 커지기 때문, 이다. 중국 역사에서 이처럼 한보 양보하여 하늘과 바다를 열었던 전형적인 예가 바로 염파(廉頗)와 인상여(藺相如)이다.

▲인상여(藺相如)/ⓒmugam20 블로그캡쳐

조(趙)나라 말기, 초나라는 진(秦)나라의 장군 백기(白起)에게 패하여 영도를 잃고 천도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제(齊)나라는 연(燕)의 장군 악의(樂毅)에게 패하여 세력을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에 빠져 있었다. 진은 갈수록 강대해져 나머지 여섯 나라(전국시대 한(韓), 위, 조, 연, 제, 초 나라를 말함)에 비해 월등한 우세에 있어 조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나라는 결단코 진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당시 조나라는 무령왕(武靈王)의 개혁을 통해 국가의 기반을 견고히 다지는 한편, 대장군 염파와 재상 인상여가 힘을 합쳐 부국강병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었다. 염파와 인상여의 협력이 없었다면 조나라도 오래전에 사라졌을 것이다. 이 때문에 사마천은 『사기 史記』에서 이 두 인재의 이야기를 「염파인상여열전 廉頗藺相如列傳」이란 제목으로 서술하여 높이 평가했다.

염파가 대장군이 된 것은 야전에서 세운 전공이 뛰어났기 때문이고, 인상여가 재상이 된 것은 두 차례의 중대한 외교 업무를 무사히 완수했기 때문이었다. 진은 여러 차례 조를 공격했으나 한 번도 정벌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고, 특히 대장군 염파는 도저히 공략할 수 없었다. 이에 진왕은 다른 방법으로 조를 치기로 마음먹었다. 진왕이 택한 방법은 조와 거짓으로 화친을 맺은 다음 외교적 수단을 이용하여 조나라를 수세로 몰아간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기원전 283년, 진은 조가 초나라의 희귀한 보물인 화씨벽(和氏璧)을 손에 넣었다는 소문을 듣고 사신을 보내 진의 성지(城池) 열다섯 채와 조의 화씨벽을 바꾸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이는 사실상 선전포고에 가까운 위협이었다.

조나라로서는 화씨벽이 아깝기보다는 진나라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공연히 속임수를 부리면 국가 위신을 손상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했다. 그렇다고 화씨벽을 넘겨주지 않을 때 진이 이를 구실로 군사 공격을 해올 수 있기에 조는 진퇴양난에 처하게 되었다. 바로 이때 환관의 우두머리인 무현(繆賢)이 자기 집에 인상여라고 하는 문객이 있는데 지모와 용기를 겸비하고 있으니 그에게 대책을 구해보는 것이 어떠하냐고 제안했다. 뾰족한 대책이 없던 조왕은 그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조왕이 물었다.

“진왕이 성 열다섯 채와 우리의 화씨벽을 바꾸자고 하는데,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소?”

인상여가 대답했다.

“진은 강하고 조는 약하기 때문에 거절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럼 진이 화씨벽을 차지한 다음에 약속대로 성지를 내주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오?”

“진이 제시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조가 사리에 어긋나는 것이지만, 만일 진이 화씨벽을 받고도 성지를 내주지 않는다면 이는 진이 도리를 그르치는 것입니다. 두 가지 경우를 비교해볼 때 후자가 더 나을 것 같습니다. 만약 사신으로 보낼 만한 사람이 없다면, 제가 나서보겠습니다. 진왕이 성을 우리에게 내어준다면 화씨벽을 진나라에 넘겨줄 것이고, 성지를 내주려 하지 않는다면 다시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인상여가 언변이 좋을 뿐만 아니라 일 처리도 주도면밀하다는 무현의 말에 조왕은 그를 사신으로 보내도록 결정했다.

진의 소양왕(昭襄王)은 궁중에서 인상여를 접견했다. 진왕은 기분이 좋아 편한 자세로 앉아 있었고 인상여는 두 손을 모아 화씨벽을 바쳤다. 진왕은 너무나 기뻐하며 이리저리 뜯어보다가 이를 황비와 궁녀들에게 보라고 건네주었다. 모두가 감탄을 금치 못하며 진왕에게 축하의 인사를 올렸다. 아무도 아래쪽에 서 있는 인상여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한참이 지났지만 진왕은 열다섯 채의 성지를 조나라에 넘겨주는 문제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인상여는 진왕이 속임수를 쓰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먼저 계책을 준비하여 입을 열었다.

“화씨벽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 진면목을 아무렇게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제가 여러분께 시범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진왕은 아무 생각 없이 화씨벽을 다시 인상여에게 건네주었다. 화씨벽을 받아든 인상여는 곧장 대전 한가운데 있는 기둥으로 달려가 고래고래 악을 쓰면서 진왕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대왕께서는 이 화씨벽을 얻기 위해 조왕에게 사자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조나라 대신들은 진이 국가의 예를 무시하고 신의를 잘 지키지 않으면서 자국의 강대함을 믿고 몇 마디 거짓말로 화씨벽을 차지하려 한다면서 하나같이 이를 대왕께 보내주려 하지 않았지요. 그러나 전 일개 백성도 신의를 지키는데 하물며 일국의 군주이신 대왕께서 신의를 저버릴 리 없다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하찮은 화씨벽 하나로 진과 조의 우의를 해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지요. 제 말을 들은 조왕은 닷새 동안 목욕재계하신 후에 친히 조당에 가서 국서와 화씨벽을 가져다가 제게 건네시면서 진나라에 갖다주라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공경과 예의를 갖춘 태도입니까! 그러나 제가 진나라에 와서 벽옥을 대왕께 바쳤으나 대왕은 여전히 예를 갖추지 않고 벽옥을 함부로 궁녀들에게 보여 주고 있으니, 이는 조나라를 욕되게 하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또 성지를 넘겨주는 문제에 관해서는 언급조차 안 하시는 걸 보니 그럴 뜻이 없으신 것으로 간주 됩니다. 그래서 전 화씨벽을 도로 조나라로 가져갈까 합니다. 지금 화씨벽이 제 손안에 있으니 강제로 빼앗으려 한다면 저는 이 화씨벽과 함께 머리를 기둥에 부딪쳐 자결하고 말 겁니다.”

말을 마친 인상여는 당장이라도 부딪칠 기세로 노기등등하여 거대한 기둥을 노려보았다.

그의 돌발적인 행동에 놀란 진왕은 혹시라도 화씨벽이 깨질까 두려워 당장 사과하면서 사람을 시켜 지도를 가져오게 한 다음 성지 열다섯 채를 골라 조에 넘겨주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인상여는 이런 조치가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님을 알아채고는 또 다른 계략을 준비했다. 인상여가 말했다.

“대왕께서 화씨벽을 그렇게 좋아하시니 조나라로서는 이를 헌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조왕은 비옥을 바치기 전에 닷새 동안 목욕재계하여 극진한 공경함을 표했습니다. 마땅히 대왕께서도 닷새 동안 목욕재계하셔야만 화씨벽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진왕은 달리 대응할 방법이 없어 순순히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숙소로 돌아온 인상여는 치밀하게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부하에게 평민의 옷을 입혀 백성으로 변장하게 한 다음 샛길을 통해 몰래 화씨벽을 도로 조나라로 돌려보낸 것이다.

닷새 후에 진왕은 조정에서 성대한 의식을 거행하고 화씨벽을 건네받을 준비를 서둘렀다. 진나라 조정에 들어간 인상여는 두 손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진은 목공(穆公) 이후로 이미 많은 제왕이 나라를 이어왔으나 단 한 분도 신의를 지키는 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속임수에 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에 화씨벽을 이미 조나라로 돌려보냈습니다. 조는 약하고 진은 강한 나라인 만큼 대왕께서 진심과 성의를 중시하여 열다섯 채의 성지를 조에 넘겨주어야만 화씨벽을 얻으실 수 있습니다. 지난날 맹명시(孟明視)는 진(晉)을 속였고 상앙(商鞅)은 위(魏)를 속였으며 장의(張儀)는 초(楚)를 속임으로써 오명을 얻었지요. 저는 대왕께서도 조를 기만했다는 오명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화씨벽을 다시 조나라로 돌려보낸 것입니다. 대왕을 속인 것에 대해서는 제게 죄를 물으셔도 좋습니다!”

진왕과 대신들은 인상여의 말에 몹시 분개했지만, 구구절절 맞는 말이라 반박할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인상여는 조금도 두려워 않는 기색이라 그를 죽인다 해도 별다른 효과는 없고 자신의 악명만 높아질 것이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인상여를 놓아주고 진의 관용을 과시하는 동시에, 조의 화씨벽을 결코 빼앗으려는 의도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것만이 현명한 방법일 것 같았다. 인상여는 결국 진에게 아무런 구실도 주지 않은 채 화씨벽을 갖고 조나라로 돌아왔고 조의 명성과 발전에 큰 공을 세우게 되었다. 이때부터, 인상여의 명성은 전국에 알려졌다.

그러나 인상여를 놓아주었다고 해서 진이 여섯 나라의 합병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지난 2년 동안 진은 조의 성지 두 곳을 강탈했고, 바로 1년 전에는 조를 침공했다가 별 성과 없이 돌아간 적도 있었다. 진왕은 이처럼 장기적인 소모전을 펼치느니 우선 일시적으로 조와 화친을 맺고 다른 나라들을 전부 합병한 후에 다시 조를 멸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기원전 279년, 진 소양왕은 조 혜문왕(惠文王)에게 사신을 보내 민지에서 회맹(會盟)을 갖자고 제안했다. 조왕은 초 회왕(懷王)이 진과의 화친에 나섰다가 희생물이 되었던 전례 때문에, 두려워서 나가지 않으려 했으나, 그랬다가는 진왕에게 무시당할 소지가 있다며 설득하는 염파와 인상여의 말을 듣기로 하였다. 혜문왕은 결국 인상여를 대동하여 민지로 나가면서 염파에게는 국내에 남아 태자를 보좌하게 했다. 그러자 평원군(平原君) 조승(趙勝)이 말했다.

“진의 제의에 응하시려면 반드시 5천의 정예 병력을 대동하는 동시에 대량의 군마를 3천 리 밖에 대기시키셔야 합니다.”

이에 조왕은 대장군 이목(李牧)에게 정예 병력 5천 명을 골라 자신을 따르게 하고 평원군에게는 수십만의 대군을 이끌고 그 뒤를 따르라고 지시했다.

염파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조왕에게 간청했다.

“이번 회맹은 길흉을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민지까지는 왕복 스무날이 걸릴 것이고 사흘 동안 회의를 한다고 해도 한 달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그때까지 대왕께서 돌아오시지 않는다면 지난날 초나라가 당했던 것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으로 보고 태자를 군주로 세워 진이 함부로 조를 넘보지 못하도록 처리토록 하겠습니다.”

혜문왕도 그의 생각에 동의했다. 곧이어 염파는 혜문왕의 출정에 대비하여 치밀한 준비를 서둘렀다.

조왕과 진왕은 민지에서 만나 술잔을 나누면서 천하 대사를 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의기가 투합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술이 얼큰해지자 진왕은 술을 핑계로 농담하듯 입을 열었다.

“듣자 하니 조왕께서는 음악에 정통하시다 하던데, 저를 위해 비파를 한 곡 연주해주실 수 있겠소이까?”

조왕은 거절할 수가 없어서 굴욕감을 삼키면서 말없이 비파를 연주했다. 진왕은 그 자리에서 사관에게 이 일을 기록하게 했다.

“모년 모월 모일에 진왕이 조왕과 주연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조왕에게 비파를 연주하게 했다.”

조왕은 화가 나서 얼굴이 달아올랐다. 조나라가 망한 것도 아닌데 진은 조를 속국으로 대하고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비파를 연주하게 한 일을 역사에 기록한다는 것은 조로서는 이만저만한 치욕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조왕은 분을 삭이면서 보복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때 인상여가 기와를 한 장 들고 진왕에게 다가가 말했다.

“듣자 하니 대왕께서는 격파술이 뛰어나시다고 하던데 조왕을 위해 이 기와를 한 번 깨뜨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진왕은 대로하여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진왕의 호위병이 나서서 인상여를 죽이려 했으나 그의 호통에 놀라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인상여가 얘기를 계속했다.

“대왕의 군대가 아무리 강대하다 해도 이 자리에선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대왕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진왕이 못하겠다고 버티자 인상여가 다시 다가가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진왕은 하는 수 없이 손으로 기와를 격파했고, 인상여는 그 자리에서 조의 사관에게 이 사실을 기록하라고 명했다.

“모년 모월 모일에 진왕이 조왕을 위해 손으로 기와를 격파했다.”

진나라의 대신들은 진왕의 체면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곧장 도발할 생각으로 말했다.

“조왕께서는 성지 열다섯 채를 진왕께 바쳐 장수를 축원하는 것이 어떻소이까?”

인상여가 즉시 말을 받았다.
“그럴 것이 아니라 진왕께서 함양성을 조왕께 할양하셔서 장수를 축원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처럼 쌍방은 연회가 끝날 때까지 치열한 외교 전쟁을 펼쳤다. 진이 줄기차게 공격을 해댔지만, 인상여는 끝까지 맞받아치면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진은 아무런 우세도 보이지 못했고 게다가 변경에 조의 대군이 집결하여 만반의 전투준비를 하고 있다는 첩보를 접하게 되자 함부로 경거망동할 수도 없었다.

두 차례의 중대한 외교전에서 인상여는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조나라의 존엄을 지키면서 진과의 각축에서 수세로 몰리는 것을 막았었다. 조왕은 인상여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해 염파보다 높은 상경(上卿)의 자리를 주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염파는 가는 곳마다 불평을 늘어놓았다.

“나는 조의 장수로서 전투에서 목숨을 걸고 큰 공을 세웠는데 혀만 가지고 공을 세운 인상여가 나보다 높은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오. 이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수치란 말이오.”

그러면서 인상여와 마주칠 때마다 모욕적인 언사를 뱉어냈다. 염파에게는 무장들이 창과 칼로 이룬 것만이 공로이지, 문신들이 지모를 이용하여 나라의 존엄을 보전하는 것은, 하찮은 일에 불과하다고 본 것이다. 게다가 인상여는 미천한 출신이라 그에게 폭언한다 해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인상여에게는 참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인상여는 이에 대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길을 가다가 멀리서 염파의 모습이 보이기라도 하면 얼른 가던 길을 돌려 그와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이런 상황이 오래 계속되자 인상여의 문객들이 더는 못 참겠다며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저희가 고향을 등지고 대인의 수하에 모인 것은 대인을 우러러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대인의 지위가 염파보다 높은데도 그를 두려워하시니 저희로선 정말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나약한 모습을 보이시면서 저희마저 수치심을 느끼게 하신다면 저희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인상여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차분한 태도로 물었다.

“그대들은 염장군과 진왕 둘 중에서 누가 더 두려운 존재라고 생각하시오?”

문객들이 고개를 기우뚱거리며 대답했다.

“물론 진왕이 더 두려운 존재이지요.”

“맞소! 진이 강하기 때문에 각국의 제후들이 호랑이처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오. 하지만 나 인상여는 그런 진왕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조정을 찾아가 마음대로 질책했던 사람이오. 비록 내게 대단한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염장군을 두려워할 정도는 아니란 말이오. 내가 염장군의 무례함을 받아주는 이유는 따로 있소. 강대한 진나라가 우리 조를 감히 침략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염장군과 내가 한마음으로 힘을 합쳐 진의 위협을 견제하고 있다고 믿기때문이오. 우리 두 사람이 서로 다투기 시작하면 이는 진에게 침략의 기회를 주는 것이나 다름이 없소. 내가 염장군을 용납하는 것은, 나라의 안위가 사사로운 원한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란 말이오.”

이 이야기는 금방 염파의 귀에도 전해졌고 인상여의 깊은 뜻을 알게 된 염파는 깊이 감동하고 부끄러움을 금치 못했다. 사실 염파 역시 정직하고 성실한 성격이라 한번 깨달은 바가 있으면 즉시 잘못을 고치는 인물이었다. 그는 잘못을 뉘우치는 자신의 진심을 알리기 위해 고대 의식에 따라 웃옷을 벗고 커다란 형구를 등에 지고서 인상여의 집을 찾아가 속이 풀릴 때까지 마음대로 때려달라며 대문 앞에 무릎을 꿇었다.
“형장을 맞는 것으로 죄를 씻고 싶습니다. 소인은 식견이 부족하고 마음이 옹졸한 인물이라 대인의 넓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매로 저를 다스려 주십시오.”

염파의 이런 모습에 인상여도 크게 감동하여 문밖에 나와 직접 그를 일으켜 세웠고, 이때부터 두 사람은 생사지교를 맺고 더욱 일심동체가 되었다. 진은 그 후로도 10년 동안 이 두 사람이 버티고 있는 조를 감히 넘보지 못했다.

부드러움과 겸양으로 강경함을 제압하는 것은, 하나의 술책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사상적 깊이와 도덕적 수양에서 결정되는 고귀한 품성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조건이 수반된다. 겸양을 베풀려면 넉넉한 지혜와 인품, 그리고 권위가 방패로 작용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는 외부의 힘에 밀려나기에 십상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조건은 겸양의 대상이다. 상대방이 어리석고 이치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겸양하지 않은 것이 바람직하다. 상대방이 우매하고 완고한 인물일 경우에는 겸양은 곧 도피가 되기 때문이다.

이정랑 언론인(중국고전 연구가,칼럼리스트)

경인일보/호남매일/한서일보/의정뉴스/메스컴신문/노인신문/시정일보/조선일보/서울일보 기자, 편집국장, 논설실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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