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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방우영을 추모하는 한심한 언론
방우영 조선일보 상임고문을 언론인으로 추모하기 어려운 이유
임병도 | 2016-05-09 11:53:0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조선일보 1면에 나온 방우영 조선일보 상임고문 부고기사 ⓒ조선일보

조선일보 방우영 상임고문이 사망했습니다. 방우영 상임고문의 죽음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는 ‘64년 신문인생’, ‘64년 신문 외길’, ‘밤의 대통령 방우영’등의 제목으로 그를 추모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놓고 본다면 방우영 상임고문을 추모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언론인이라면 그의 죽음을 추모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언론인으로 올바르게 살았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방우영 조선일보 상임고문을 언론인으로 추모하기 어려운 이유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신문은 기자들에 맡겨라? 조선일보 기자 대량해직’

조선일보는 5월 9일 한 면을 거의 할애해서 ‘기자와 울고 웃은 64년… 신문의 거인이 잠들다’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조선일보 방우영 상임고문의 추모기사입니다.

조선일보는 제목부터 방 고문과 기자와의 관계를 말하더니, ‘신문은 기자들에 맡겨라’가 방우영 고문이 실천한 원칙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진짜 그럴까요?

1974년 12월 18일 조선일보는 ‘편집권 침해’를 이유로 기자협회 부회장인 외신부 백기범 기자와 문화부 신홍범 기자를 전격 해임합니다. 백 기자와 신 기자는 1974년 12월 17일 4면에 실린 유정회 소속 전재구 의원이 집필한 ‘허점을 보이지 말자’라는 기사가 외부 청탁 때문에 실렸고, 결론 부분이 일방적인 입장에서 보고 있으므로 부당하다는 뜻을 편집국장에게 전달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권력의 언론통제는 1972년 10월 유신체제의 성립으로 노골적인 탄압으로 치닫고 있었다. 중앙정보부를 비롯한 수사기관에서 나온 사람들이 편집국에 끊임없이 드나들면서 기사를 빼라, 넣어라, 줄여라, 키워라 하며 간섭 통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이런 저런 구실을 잡아 사건을 만들고는 기자나 신문사의 간부를 연행하여 공포 분위기 속에서 폭력을 가하는 일이 되풀이되었다. 신문사의 편집국은 질식할 것 같은 공포 분위기 속에 휩싸였으며 기자들은 좌절감과 무력함 속에서 타율적인 신문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

1974년 ‘10.24 자유언론실천 선언’이 발표되기에 이르는데, 이 선언을 계기로 언론의 자유를 확보하려는 기자들의 운동은 구체적인 실천단계로 들어가게 되었다. ‘선언 대회’를 갖는 것에 머물지 않고 1단 기사라도 보도하는 실천운동으로 나서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조선일보 기자들은 편집국 내에 ‘언론자유수호특별대책위원회’를 만들어 그날 그날 제작된 지면을 검토하고 보도해야 할 뉴스를 어떻게든 실어 보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보도해야 할 기사가 빠졌으면 그 경위를 밝히고 이를 기어코 독자에게 알려 보려고 하였다.” (조선일보 해직기자 신홍범.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자유언론, 내릴 수 없는 깃발’. 두레 1993년 P116)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로 1974년 기자들 사이에서는 자유언론을 지키자는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조선일보 기자들은 유신을 홍보하는 내용이 조선일보가 지녀야 할 공정성과 균형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했습니다. 조선일보는 공정한 언론을 지키겠다는 기자를 ‘위계질서를 무시한 하극상 행위’로 몰아 해고했습니다.

▲1975년 3월 11일 회사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고 있는 조선일보 기자들 ⓒ민언련

백기범, 신홍범 두 기자의 부당해임에 편집국 기자들 백여 명이 ‘자유언론 선언 운동에 대한 억압이니 파면을 철회하라’며 철야농성을 벌였습니다. 조선일보 김윤환 편집부국장이 회사 대표로 나와 석 달 안에 두 기자를 복직시키겠다고 약속했지만, 석 달 뒤에도 파면은 철회되지 않았고 보도 통제 또한 계속되었습니다.

조선일보 기자들은 1975년 3월 6일에 사측을 규탄하는 선언문을 발표하고 무기한 신문 제작 거부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결국 조선일보는 기자의 1/3 정도 되는 33명을 모조리 해임했습니다.

<조선일보 기자들의 결의문>
1. 우리는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기자 본연의 사명을 다할 것을 다짐하면서 언론 자유의 쟁취를 위한 역사적인 대열에 전 사우들이 함께 참여할 것을 촉구한다.
2. 백기범, 신홍범 두 기자의 부당 해임을 즉각 철회하라.
3. 10·24 선언 이후 기자들의 자유언론 실천 노력을 외면하고 백·신 두 기자의 복직에 대한 약속을 저버린 편집국장을 비롯한 편집국장단은 인책 사퇴하라.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기자, 언론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기자를 해임한 사람은 당시 조선일보 사장이었던 방우영입니다. 조선일보의 가장 큰 재산이 인재라고 했던 사람이 기자의 1/3을 쫓아냈습니다. 그는 신문을 기자에게 맡긴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소중한 인재를 버린 인물에 불과합니다.


‘부정선거를 보도했다가 탄압을 받은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방우영 상임고문이 재정 독립해야 언론의 자유가 있다는 경영 정신을 내걸었다고 말합니다. 언뜻 들으면 맞는 얘기 같습니다. 그러나 방우영이 말하는 재정 독립은 정권과 결탁해 얻어진 산물에 불과합니다.

▲중앙정보부의 조선일보 중요논조분석 백서. ⓒ국정원진실위

1965년 1월 1일부터 1966년 4월 30일까지 중앙정보부가 분석한 조선일보 기사를 보면 반정부, 야당지에 가깝습니다. 정부와 여당의 정책을 비판한 기사가 120건이었고, 민심을 선동했다는 기사도 182건이나 됐습니다. 직접적인 반정부 및 여당을 비판하는 1면 톱기사나 사설도 19%나 됐습니다.

박정희 정권을 비판했던 조선일보가 왜 기자를 대량 해고하고 정부에 우호적으로 돌아섰을까요? 중앙정보부는 1972년 10월 1일부터 1973년 3월 4일까지 6개월간 조선일보에 광고를 게재한 94개 업체를 조사합니다. 중앙정보부는 조선일보에 광고를 게재하거나 계약된 광고주 9명 중 6개사 대표를 중정으로 소환해 1973년 3월 6일 광고를 취소, 중지하도록 조정합니다.

중정이 3월 6일 광고를 취소하도록 광고주를 압박한 이유는 1973년 3월 6일자 부정선거 관련 기사 때문이었습니다. 조선일보는 3월 6일 5판 7면에 5단 제목으로 ‘투표용지 위조 등 시인’,’선거인 명부도 거짓’ 등의 부산 선거 관련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는 1973년 2월부터 여당의 부정선거를 계속 다뤘고, 종로, 중구 선거구에서 무더기 표가 발견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부정선거 관련 기사를 내보내자 보통 50단이었던 조선일보의 광고는 박정희 정권의 압력으로 32단까지도 줄어 들었습니다.

지금의 조선일보와 비교하면 상상도 못할 일을 당시는 해냈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결국 광고 탄압 등의 압력에 굴복해 기자를 해고했고, 이후부터는 정권과 결탁하기 시작했습니다.


‘석유를 먹은 후 보류됐던 윤전기 도입’

방우영은 언론탄압에 굴복해 정권에 아부하고 정권을 위해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1년 가까이 보류됐던 윤전기의 도입입니다.

“한때 포항에서 석유가 나왔다고 신문들이 대서특필하고 국민들도 흥분한 적이 있었다. 박대통령이 신문사 사장들을 초대하고 모처럼 환한 얼굴로“이제 우리도 석유가 나오면 경제가 자립할 수 있다”며 기뻐했다. 김정렴 비서실장이 병에든 석유를 신줏단지 모시듯 들고 나와 박대통령 앞에 갖다 놓자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고 난 후 사장들에게 돌렸다.

제각기 안을 들여다보며 머리를 끄덕이는 가운데 내 차례가 왔다. 지난날 구닥다리 지프차를 몰고 다닐 때 고장이 났다 하면 입으로 휘발유를 빨아올리곤 해서 독특한 냄새를 맡은 경험이 있어 병에 든 액체를 손가락에 찍어 맛(?)을 보았다. 그저 남과 다른 모션을 해본 것뿐이다. 이 행동을 보고 있던 박대통령이 사뭇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어때 진짜 냄새가 나는가”고 묻기에 내친 김에“정말 진짜 같다”고 대답했다.

며칠 후 김성진 공보부 장관이 전화를 걸어와 1년 가까이 보류했던 윤전기도입을 대통령이 결재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알려왔다.” <조선일보 사보 ‘생각나는대로’ 방우영 조선일보 회장, 1995년>

박정희 유신독재가 물러나고 신군부가 장악한 5공화국이 들어섰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박정희처럼 언론통제 정책을 펼쳤는데, 첫째는 언론통폐합이고, 둘째는 ‘언론기본법’입니다.

언론통폐합의 시나리오가 담긴 ‘건전언론육성종합방안보고’에는 언론 전문가들이 참여했습니다. 당시 신아일보 발행인이었던 장기봉은 조선일보 방우영이 신문정비를 담당했다고 청문회에서 증언했습니다. 또한, 방우영 조선일보 사장은 ‘언론기본법’에 앞장섰던 인물입니다.


‘권력과 결탁해 승승장구했던 조선일보’

▲ ‘총을 든 난동자’라며 광주 상황을 왜곡한 1980년 5월 25일 조선일보, ‘인간 전두환’ 특집 기사를 통해 찬양한 1980년 8월 23일 조선일보.ⓒ조선일보

조선일보는 전두환 정권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광주 시민을 ‘총을 든 난동자’라고 왜곡 표현했고, 삼청교육대를 미화하기도 했습니다. 전두환 홍보를 위해 ‘인간 전두환’이라는 특집기사를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권력과 결탁한 대가로 조선일보는 나날이 성장했습니다. 언론통폐합으로 ‘동아일보’는 ‘동아방송’을 뺏겼고, ‘중앙일보’는 ‘월간중앙’의 등록이 취소됐습니다. 한국일보는 ‘서울경제신문을’을 뺏겼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뺏기기는커녕 오히려 ‘월간조선’을 창간하기도 했습니다. 1979년부터 100만 부 이상으로 급격하게 성장하기도 했습니다.

▲1988년 국회 문공위 언론관계청문회에 나온 방우영 조선일보 사장 증건을 위증이라고 반박한 동아,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 ⓒ한겨레신문

조선일보는 일제강점기 때도 유신정권 때도 전두환 5공화국 때도 일부 기자들이 참다운 언론을 위해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사주들이 권력에 굴복해 기자를 파면하고 정권에 아부하거나 진실을 왜곡하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친일하거나, 광고 수익을 얻기 위해 권력과 결탁한 사람을 참 언론인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방우영 조선일보의 상임고문을 신문사 사주라고 부르고, ‘보수 논조 정립’이라는 이상한 말을 갖다 붙여도 차마 그를 언론인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방우영 조선일보 상임고문의 죽음을 추모하는 언론사가 한심한 이유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table=impeter&uid=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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