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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홍콩의 벤처이야기 “캘리포니아 냉장고” 4
대한민국 최초 중공 시장 (No Frost Type) 냉장고 수출실화
향암 | 2019-07-04 12:03:1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4. 품질보증

우연인지 냉장고 중공수출 첫 수주하자 노보특 대리는 과장으로 진급되었다. 1985년 11월 1일자이니 입사일자인데 1978년 11월 6일로 입사 후 7년이 걸린 셈이었다. 노보특 과장은 홍콩지점 사무실에서도 서울 본사에서도 공장에서도 개선장군 같았다. 날마다 기분이 좋았고 행복감도 자신감도 회복되는 듯하였고 애사심과 애국심이 더욱 분발하고 있는 듯하였다. [역시 실적이 인격이구나.]라고 여겨졌다.

이때부터 홍콩지점장은 가능성이 있거나 계약 상태에 이르는 모든 거래의 모든 수주 과정을 인콰이어리 접수부터 매주 업무회의에서 공개하게 하고 인정하며 상담보고서를 받아 확인하고 계약서 사본에 결재인을 찍어 담당자와 지점장이 날인하고 원본은 거래선과 담당자의 서명만으로 진행하게 하여 모든 세일즈 단계를 보고하고 허락받고 진행하게 철저한 관리와 사전 결재 방식을 주관한다.

노보특 과장은 홍콩지점에 발령 받기 직전인 1984년 말에 기대하였던 과장 진급이 안되었다. 아니 가전수출부에 다섯 개의 과로 가전 1과, 2과, 3과, 5과와 부품수출과까지 5개 과가 있었는데 각 과마다 과장 진급할 대리들이 있었고 모두 진급이 안된 것이었다.

노보특 대리의 과장 진급을 위해 수출 단위가 커서 수출 실적 금액이 부품수출과 보다 많은 미국시장의 냉장고와 대양주시장의 부품수출 업무까지 포함해 가전수출 5과로 옮기게 해 주었지만 과장 진급은 안되었다.

부품수출과에서 일할 때에는 TELEX실도 선적관리과도 은행에 대금결재 해결하는 수출관리과도 한결같이 금액의 크기 우선으로 일을 한다면서 미루거나 몇 번씩 찾아가게 했는데, 미국시장의 냉장고 수출을 맡고 보니 그들이 찾아오는 것이었다.

‘바쁘셔서 아직 선적의뢰서를 작성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그냥 말씀만 해 달라’고 하며 선적관리과의 담당사원이 책상 위의 서류들을 뒤적이며 가져가는 것이었다.

당시 노보특 대리는 그런 것을 참 안타까워했다. 똑같은 일을 하고 티끌 모아 태산이 수출 실적인데 무시 받고 차별받아야 하는 현실 때문에 근무 사기를 상처받기도 했다.

그래서 가전수출부는 모두 풀이 죽어 있고 분위기가 어수선하였다. 노보특 대리는 부장에게 다가가서 “부장님, 심려하지 마세요. 저는 괜찮습니다.”라고 하니, 새로 부임한 복 부장은 어이없어 하면서 “웃기는 녀석이네. 진급 안 된 사람이 거꾸로 부장을 위로해? 야, 너 해외출장 다녀와라.” 하는 것이었다.

“제가 미국 담당인데 지금은 12월초라 X-Mas 시즌으로 들어가기에 모두 업무 종료하고 휴가를 떠났을 텐데 어떤 바이어를 만나고 올까요?”하고 노보특 대리가 되물으니,“상관없어. 아무 데나 자네가 갈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에 열흘 다녀와~! 내가 관리부에 얘기해둘 테니 지금 올라가 봐. 내일 당장 떠나라.”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로 해외출장 품의서를 작성하여 과장과 부장 결재까지 받아 관리부에 가보니, 다른 때 같으면 왜 출장을 가야 하느냐? 왜 그 호텔에서 자야만 하느냐? 비행기에서 자고가면 안되느냐? 등등의 질문과 제한을 제시하던 관리부장이 아무 말없이, 부하들에게 “모두 퇴근하지 말고 전원 책상 서랍을 뒤져서 현금으로 여기 노보특 대리에게 출장비 가불해주고 자네는 당장 여행사에 가서 여기 이 일정대로 항공권 받아 가지고 와서 전달해주고 퇴근하라.”고 지시하는 것이었다. 노보특 대리는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비서실 출신 복 부장님의 끗발이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출장일정이 성탄절 연말을 관통하는데 한국-호주-미국-캐나다-한국이었고, 문제는 미국 비자도 없었고 그래서 출발 일정대로 발행된 비행기표를 받았을 뿐 각 거래선과 텔렉스로 일정 확인도 못했고 더구나 관할 지점에는 연락도 제대로 못한 채 TELEX를 기안해 맡기고 노보특 대리는 다음 날 비행기를 타고 말았다. 1984년 12월 5일 수요일, 아침에 그렇게 비행기는 한국 땅을 이륙했다.

김포공항을 떠나 태평양 하늘에 접어 들다

그런 출장인데 다행히 호주에서는 Compressor거래선의 환영 속에 도착했으나 한국은 눈 내리고 꽁꽁 얼어붙은 겨울인데 호주는 아스팔트가 녹는 여름날의 성탄절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된다. 그러니까 가장 성수기에 Compressor 세일즈맨이 출장 나온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었다.

호주의 Anlin Enterprise라는 Compressor바이어는 판촉 지원 출장으로 여기고 환대하는 것이었다. 온 김에 노보특 대리에게 자동차로 호주일주 판매캠페인 행사를 하는데 동행하여 Compressor주문량을 증가시켜보자고 하기에 미국과 캐나다 출장 일정이 정해져 있어 그렇게는 안된다고 말하고 미국 비자도 없는 사정을 얘기하며 미국 비자를 시드니에서 받을 수 없겠냐고 했더니 걱정 말라고 하였다.

다음 날 시드니 시내의 미국대사관에 함께 가서 뭐라고 말하니까 인터뷰도 없이 여권에 10년짜리 미국 복수비자를 받아주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새벽 4시부터 미국대사관 앞에 줄을 서서 비자를 신청하면 1년짜리 단수비자를 주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서울의 겨울을 뒤로하고 시드니에 내렸더니 여름이었는데 다시 시드니의 여름을 뒤로하고 미국과 캐나다로 날아가는데 하늘에서 본 땅은 온통 하얗고 꽁꽁 얼어 있는 설산이었다.

미국 시카고는 경유지인데 잠시 공항에 머물 때, 공장의 MOTOR설계실 전 과장의 친척이라서 수출 성공일화를 여러 번 들을 수 있던 시카고지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파나마 지점장 시절에 상상전자 최초 CTV 세일즈맨이었다는 성공실화를 여러 번 들었기에 진짜 시장개척전문가로 흠모하던 터라 공항에서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전화 걸었던 것이다.

마침 시카고지점장이 사무실에 있었기에 통화가 되었다. 갑작스러운 위로출장(?)이라서 연락을 미리 못 드렸고 일정대로 토론토로 간다고 했더니, 가봐야 시기적으로 만날 바이어도 없을 테니 그냥 시카고 공항에서 나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아마 토론토 지점장은 이미 휴가를 떠났을 것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본사 확인 없이 임의로 변경하면 오해가 생길 수 있으니 그냥 목소리만 듣고 가겠습니다.”라고 통화를 끝냈다. 그때 시카고에 내렸으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 하며 더러 생각해본다. 아마 노보특 대리가 미국 담당이었으니 미국으로 발령이 났을까~?

눈 덮인 Canada를 떠나며 Toronto 상공에서

다시 비행기로 국경을 넘어 캐나다 토론토에 내리고 보니 눈이 사람 키 보다 높게 쌓일 정도의 날씨였고 지점도 업무 종료하고 휴가를 가야 하는데 이렇게 출장을 나오면 어떻게 하느냐?며 상담은 고사하고 서두르지 않으면 한국에 돌아가는 비행기가 모두 1월 5일 이후라야 김포에 갈 수 있다는 토론토 지점장의 말을 듣고 서둘러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공항에서 대기자 상태로 애 태웠지만 다행히 며칠 앞당겨 X-Mas이전의 12월 중순에 한국으로 돌아오고야 만다.

그 미국 출장도 노보특 대리의 가족에게는 당황스러웠는데 갑자기중공향 냉장고 수출상담 세일즈 엔지니어로 차출되어 홍콩지점에 기약 없이 머물게 되었다. 그때에 본사 가전수출5과의 최석봉 과장이 전화를 걸어와 “미국 담당이 홍콩에 마냥 있으면 어떻게 되겠어? 정식으로 발령을 받고 홍콩에 나가야 한다.”고 알려주어 바로 본사로 들어왔다.

가전수출부문 오화동 이사는 중공의 특별정보에 의해 1월 초에 급히 홍콩에 출장을 함께 가게 했는데 마치 노보특 대리가 홍콩에 대기상태로 있지 않으면 냉장고 수주가 어려워진다고 여기었는지 바로 가전수출부의 홍수웅 대리를 홍콩지점에 노보특 대리와 교체해서 대기조처럼 출장 내보내고 서둘러 노보특 대리를 홍콩주재원으로 발령을 내어 부임하게 했기에 노보특 대리의 가족들은 여러 가지 준비 부족과 당분간 이별도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그때는 가정보다 회사가 먼저였다. 그리 되어 1985년 3월 1일 일요일에 홍콩에 부임한 셈이다.

그런데 세일즈맨에게는 실적이 인격인지라 모두 기다리는 냉장고 중공수출성사에 매일매일 피가 마르는 스트레스를 견디고 있던 중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홍콩에는 주재원이 되기 1년 전에 동남아 출장도 다녀갔었고 1985년 초에는 상상전자 최초로 에어컨 수출 계약도 잭슨JACKSON과 할 수 있었기에 미스터 잭슨이라는 또 다른 바이어가 있었다.

그분의 호의로 홍콩장기비자를 한국에서 신청하고 비자 획득할 때까지 홍콩에 입국할 수 없는 것인데 다행히 홍콩 카이탁KaiTek 공항 여권 심사대를, 한국 영국대사관에 홍콩장기비자 신청한 도장 날인한 여권 페이지에 착륙 직전에 살짝 침을 발라 붙어 있게 해서 여권페이지 넘길 때에 넘겨져 들키지 않고, 무사히 통과했더니 중공향 냉장고수출 신용장 받기 전에는 한국에 들어갈 생각 말라고 상관인 홍콩지점장은 말을 바꾸면서 억지명령을 주장하였다.

당시 노보특 대리는 그걸 지켜야 했기에 다시 홍콩에서 출국하지 않도록 도움을 청하니 Mr. Jackson잭슨 영감님은 호의를 다해줘 해결되게 되었다. 잭슨 영감님은 이민국에 친척이 근무하니 가능한 길을 찾아보겠다고 하고는 ”홍콩수입상 JACKSON 회사에 꼭 필요한 한국의 상상전자 세일즈 엔지니어가 홍콩에 서비스해주려고 입국했는데 장기비자를 받기 위해 다시 한국에 안 가고 현지 홍콩에서 장기비자를 취득할 수 있게 해 달라”는 편지를 써서 서울에서 장기비자 신청 근거가 된 제반 공증 서류를 첨부하여 이민국에 제출하니 매우 합리적이고 합법적으로 홍콩에서 기다리며 장기비자를 받게 해주었다.

참으로 감사했던 일이었다. 물론 그 잭슨 영감님은 원래 금강전자 백색가전 OEM 바이어였는데 금강전자가 9개월을 끌면서 진행한 에어컨 프로젝트를 약속을 어기고 다른 회사로 공급결정이 내려진 때에 냉장고 상담을 위해 만나게 된 노보특 대리로부터 상상전자에도 에어컨이 있다는 말에 즉석 주문하면서 상상전자의 홍콩시장 최초OEM거래선이 되었고 상상전자의 최초 에어컨 수출이 실현되게 해준 셈이다. 그래서 나중에는 상상전자와 냉장고는 물론 에어컨과 세탁기까지 모두 거래를 하게 된 셈이었다.

GME브랜드로 가전제품들을 냉장고를 시작으로 에어컨, 세탁기 등을 수입하게 되었으나 회사는 그런 홍콩시장의 거래 실적은 눈에 안 들어왔다. 중공시장은 당연히 OEM BRAND도 환영이지만 물량 규모가 달라 의미가 그러했다.

미스터 챠우는 특별사항이라며, 현재 한국과 중공이 외교관계가 없기에 중공 땅으로 바로 선적될 수가 없어서 홍콩에서 컨테이너를 바꿔치기 방식으로 환적하게 되는데 이 비용이 만만치 않으며 비용 보다도 꼭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며 당부를 거듭하는 것이 있었다. 포장은 Neutral Packing으로 일체의 한국 원산지 관련 근거가 나오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즉, 한국제품이라는 것이 드러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서 한글로 된 신문지 조각이라도 그 컨테이너나 포장 상자에서 나타나면 절대로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제품은 무국적 원산지의 상태로 수입되나 실제로는 중공에는 미국제로 소개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노보특 과장은 “아니 어떻게 원산지도 속이고 그게 그렇게 통용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미스터 챠우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홍콩에서 중공으로 들어가는 컨테이너는 일부러 이스라엘에 가지 않았던 미국 선박 회사의 컨테이너로만 수배해서 컨테이너를 바꿔치기하는 환적을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때, 노보특 과장이 이의 제기를 했다.

“엄연히 한국제인데 어떻게 미국제라고 할 수 있냐?”고 하였더니 미스터 챠우는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것이니 한국제 흔적이나 표시가 없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표도 없을 수는 없으니 브랜드를 미제처럼 보이게 지어 달라는 것이었다.

아니~? 미제가 아닌데 미제로 소개하고 그것도 모자라 미제 냄새 나게 이름까지 지어 달라고~? 노보특 과장은 기분이 묘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기왕지사 고객만족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잠시 머뭇거리다 CALIFORNIA가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미스터 챠우는 큰아들 프랭키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미스터 프랭키는 [쨔리푸니아加利福尼亚]라고 읊조리더니 좋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상상전자의 첫 중공 수출 냉장고 Brand는 California가 되었고, 냉장고 수입품이 북경에 도착되는 시기에 맞춘듯 석 달쯤 후에 북경 천안문광장 건너편에 California Noodle이라는 식당이 개업하여 100미터의 줄이 서게 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나중에 노보특 과장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LA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 사람들이 국수를 좋아하느냐고 물어보니 그렇지는 않다 하여 그럼 국수가게가 없다는 것이냐고 물으니까 국수가게보다는 햄버거 가게가 많다고 하기에 지금 북경에는 캘리포니아 국수가 대인기라고 했더니 껄껄걸 하며 웃기만 하는 것이었다.

노보특 과장은 공장에 팩스로 포장상자 디자인을 직접 도안해서 공장의 냉장고설계실 오구광 대리에게 보내주면서브랜드로고라고 California를 필기체로 멋지게 해보라고 당부해 두었다. (나중에 공장에 가 보니 필기체 도안에 자신 없다고 대문자 CALIFORNIA로 포장상자까지 만들어져 있었다.)

공장에서는 원산지 표시도 흔적도 없어야 한다는 Neutral Packing 포장이라 하더니 왜 등록도 안 된 이런 상표를 우리가 붙여야 하느냐고 시간도 부족하니 브랜드로고 없이 이름 없는 BLANK BADGE만 부착하면 안 되냐 고 반문하는 것이었다.

노보특 과장은 그 동안 얼마나 냉장고 중공수출을 목 말라 했는데 이제 와서 무슨 이견이냐며 고객의 요구이니 그대로 하고 상표등록은 바이어가 책임질 것이므로 걱정 말고 납기나 잘 지키기나 하라고 쐐기를 박았다.

시간은 흘러, 1985년 11월 17일, 상상전자는 홍콩 중아무역공사의 미스터 챠우를 선적 전 품질검사를 겸한 바이어로 드디어 초청 한국에 처음으로 도착하게 되었다.

미스터 챠우는 부인과 큰아들을 동반했고 가족과 함께 서울 중심 남산아래에 있는 S호텔에 머물게 하였고, 해외본부 쇼룸에는 Welcome Board에 회사 이름과 함께 그 아래에 미스터 챠우 이름도 나타나게 하였고 공장에는 현수막으로 ‘축! 홍콩 중아무역공사 냉장고 수출!’이라고 표현했다.

이때는 동반 주재원은 호텔이 아닌 자기 집에 자게 되어 있어 서울에 집이 없는 주재원은 여기저기 신세를 지게 된다. 밤늦게 거래선과 헤어졌다가 다음 날 새벽에는 호텔로 가야했다.

그래도 그 덕에 친척집에서 신세 지며 노보특 과장은 고향에서 상경하신 부모님도 상면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이런 사정이 해외주재원 본사 출장 규정에 반영되어 거래선 동반 출장시에는 주재원도 바이어와 같은 호텔에 머물게 된다.

노보특 과장은 바이어 수행자로 홍콩주재발령 후 처음으로 본사 출장을 하게 된 셈이었고 공장에서는 함께 일하였던 인연으로 모든 사람들이 반갑게 개선장군처럼 맞이해주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할까? 노보특 과장이 홍콩에서 일을 잘하게 되자 홍콩지점장의 지시로 가족들을 홍콩에서 모두 만나게는 되었으나 당초에는 노보특 과장이 서울에 들어가 가족과 함께 나오는 것으로 되어 있었기에 부모님도 뵐 수 있었겠지만 미뤄지면서 결국 못 다녀가고 가족만 나오게 됐다.

그것도 전격적으로 결정되는 바람에 서울에 있던 큰며느리와 손자들이 밤중에 군산에 왔다가 잠도 못자고 다음 날 비행기를 탄다고 서울로 돌아가는 바람에 시어머니인 노보특 과장의 어머니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큰아들도 못보고 며느리와 손자들을 내보내는 충격을 받아 울다가 갑자기 앞이 잘 안보이게 돼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착용하게 되었음을 노보특 과장이 이번 출장에서 서울까지 아들 보러 올라오신 어머니의 모습에서 발견하게 된다.

누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회사일이 원인이 되었기에 노보특 과장의 부모는 아들이 회사 일로 고생하며 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게 된다.

 CALIFORNIA 브랜드로 준비된 포장상자(냉장고 주문은 녹색인데 생산전이라 백색으로 준비했다)

그런데 공장 견학을 마친 미스터 챠우가 이상한 질문과 제의를 하는 것이었다. 와 보고 싶었던 한국에 처음 방문했고 훌륭한 회사와 훌륭한 공장을 보게 돼 영광이나 이런 회사에서 왜 그런 반칙을 하는 것이냐며 던진 질문은 왜 제품 Leaflet은 40Ft Container적재량이 96대인데 지금 와서 98대라고 하는 것이냐는 것이었다. 제품이 바뀐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리플렛은 참고용이고 이미 Subject to change without notice 라고 표기도 된 만큼 사양은 통지 없이 개선될 수 있고 제품 치수가 동일하고 중량이 같은데 왜 그런 의심을 하는 것이냐며 오해라고 노보특 과장이 설명하자, 미스터 챠우는 어디에 무슨 근거로 그것이 같은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느냐? 며 특별시험을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노보특 과장이 다시 냉장고설계실 복국성 실장과 함께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하면서 냉장고의 가로-세로-높이 등의 치수와 Net Dimension과 Gross Dimension도 똑같은 것으로 제품 및 포장 치수를 확인해주고 역시 Net Weight는 동일하고 Gross Weight만 조금 차이 나는 것으로 리플렛과 같은 셈이라고 설명을 해도 미스터 챠우는 그런데 어떻게 96대 실린다는 것이 98대 실리게 되겠는가 라며 뭔가 조작이 있다는 것이었다.

노보특 과장은 조작이 아니라 한쪽 모서리를 조금 손보는 포장상자 완충재 품질개선과 실리는 방법을 조정하여 Container안에 2대가 더 실릴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미스터 챠우는 특수 시험으로 증명되지 않으면 선적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고 만다.

참으로 난감하고 황당한 순간이었다. 최초 수출이라 기존의 적재량보다 더 실어서 덩치 큰 냉장고 수출이 사실상 공기수출처럼 부피가 큰 화물이 되기에 해상 운임에서 조금이라도 원가를 개선하려고 냉장고 설계실에서 연구한 끝에 2대를 더 싣게 되었다며 오늘 아침까지 실험을 했다고 좋아라 했지만 문제는 사전에 이런 추진계획을 공장에서는 바이어는 물론 노보특 과장에게도 알려주지 않았었다.

그래서, 노보특 과장은 평소 허물없이 지내던 설계실의 오구광 대리에게 일을 어찌 이렇게 하는 것이냐고 탓하니까 오구광 대리는 오늘 아침까지 컨테이너에 적재해보고 확신을 가져 막 보고된 사항이라고 해명을 하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계약 시에 언급된 내용과 다르고 실제로 적재량의 변화로 원가 개선의 오해를 받게 되었고, 이는 중공의 북경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날 일이었기에 미스터 챠우의 주장을 외면할 수 없었다.

더구나 하고 싶은 대로 검사시험 해보고 이해 안 되면 선적을 못 하겠다는 것은 주문취소를 의미하는데 10,000대의 냉장고를 어디에다 팔 수도 쌓아 둘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노보특 과장은 냉장고설계실 복국성 실장께 말씀드렸다.

“명백하게 이는 우리의 실수이고 해상운임 절감의 이득은 우리가 취하게 되는 것이므로 고객의 요구대로 특수 시험에 응해주자”고. 그랬더니 복국성 실장은“좋다!”고 했다.

미스터 챠우는 우선 냉장고를 저울에 달아보고 싶다고 했다. 중량 계측 결과 견본과 리프렛은 같은 중량이었다.

미스터 챠우는 거듭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수량이 더 실리는데 어찌 치수도 무게도 같느냐? 는 것이었다. 노보특 과장은 같은 제품이니 같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더니, 이번에는 대각선 낙하 시험을 해보겠다는 것이었다.

냉장고 높이만큼 높은 곳에 매달아서 순간적으로 떨어뜨려서 찌그러지는 가를 시험하겠다는 것이었다. 냉장고 한 대가 부서지게 되는 것이며 떨어뜨려 찌그러지지 않는 냉장고가 어디에 있겠냐? 면서 공장직원들이 웅성거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노보특 과장이 큰 목소리로 한 마디 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회사 역사 이래 처음으로 우리가 갈 수 없는 중공 땅에 그것도 10,000대나 되는 엄청난 수량을 수출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진행과정이 순조롭지 못했고 우리가 늘 하던 방식으로 적당히 우리들끼리 알아서 하듯이 진행되었기에 이런 일을 감수해야 합니다. 모두 좋은 인상으로 진지하게 이분이 주장하는 것을 들어주고 좋은 결과를 가지고 수출합시다.”라고 말하자 모두 조용해졌다.

이어서, Hoist와 Chain과 도르래가 준비되었고 1.5m 높이에 매달았다가 떨어뜨려 보았다.
냉장고는 쿵! 소리를 냈지만 찌그러지지 않았다. 노보특 과장은 미스터 챠우에게 이제 마음이 놓이느냐고 물으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더 무슨 시험을 해보고 싶으냐고 물으니까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소화전 함을 발견하고는 저 안에 도끼가 있을 테니 그 도끼로 이 냉장고 옆구리를 찍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무게는 같아도 날씬해졌다고 생각되기에 냉장고가 더 실리는 것이 아닌가를 생각해서 혹시 냉장고 캐비닛의 내용물이 부실해졌는지 시험해보겠다는 것이었다. 지나친 염려이고 억지 주장이었다.

그래서, 노보특 과장은 물었다.
“미스터 챠우! 믿고 기다리라던 것이 이렇게 의심받는 것이냐?”고 말이다.

“모든 것이 사전에 상의 되고 통지되었다면 의심하거나 불안하지 않으나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상황이고 이런 것이 내가 Robert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고 공장에서 일하는 방식이 의심을 안 할 수 없게 하므로 막지 말고 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노보특 과장이 빨간 소화전 함으로 다가가 도끼를 꺼내 들고 왔다.

모두 숨 죽이고 노보특 과장을 째려보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노보특 과장은 숨을 한 번 크게 쉬고 기도하듯이 힘 차게 냉장고 옆구리를 내려 찍었다. 냉장고에 박힌 도끼 손잡이를 눈짓으로 미스터 챠우에게 뽑아보라고 했다.

미스터 챠우가 냉장고로 다가와서 도끼자루를 꺾어 올렸다. 도끼 날이 빠져나온 자리에는 누런 솜사탕처럼 우레탄 발포가 잘 되어 있었다. 미스터 챠우의 얼굴이 조금 펴지는 듯했으나 또 새로운 제안을 노보특 과장에게 하는 것이었다. 오늘 이렇게 세 가지의 시험을 하게 해주어 고맙지만, 이 사실을 문서로 달라는 것이었다. 무슨 문서가 더 필요하냐고 물으니, 품질보증 10년의 각서를 달라는 것이었다.

아니 전자제품의 품질 보증은 1년인데 무슨 10년이냐고 반문하니, 기본 성능 품질은 1년이지만, 적재량 변경으로 인한 냉장고의 구조와 구성물의 품질은 10년동안 문제가 안 생긴다는 내용의 편지를 냉장고 제조사업부장 명의로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지금 이 순간에 노보특 과장이 No! 라고 하면 지금까지의 노력은 모두 허사가 되며 이 많은 냉장고와 여러 관련자들의 입장이 어찌될 것인 가를 연상했다.

그래서 공장장 즉, 냉장고사업부본부장인 손운국 이사께 면담 신청을 했다. 손운국 이사는 노보특을 반기면서 무슨 냉장고수출이 이렇게 요란 하느냐고 불쾌한 얼굴로 노보특 과장을 흘겨보았다. 노보특 과장이 말했다.

“본부장님, 이 일은 우리 회사의 실수입니다. 공장의 부주의입니다. 이 순간 본부장님께서 불쾌하시고 이렇게까지 수출하고 싶지 않다고 여긴다면 상상전자는 중공시장에 한낱 웃음거리로 남게 될 거고 이 실책의 열매는 고스란히 경쟁사인 금강전자(GGEC)가 따 먹게 될 것입니다. 10,000대를 공장에 깔아 두시렵니까? 아니면, 그래도 실어 내시렵니까? 금강전자와 똑 같은 치수와 용량의 간냉식 냉장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미스터 챠우를 여기까지 모시고 올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경쟁사를 이겼던 것입니다. 본부장님, 이것은 순간의 제스쳐입니다. 미스터 챠우는 아마 북경에 가서 이 보다 더한 노력으로 해명을 해야 할 것입니다. 어찌 하시렵니까?” 손 이사는 난감한 표정으로 노보특을 바라보며,  
“그럼 내가 어찌 해주어야 하겠는가?”라고 물었다.

노보특 과장이 정중하게 답했다.

“본부장님, 우리가 최선을 다 했고 모든 것은 조작된 것이 없고 투명하고 동일한 제품이므로 어떤 요구도 못 들어줄 이유가 없다고 여기시고 제가 간단하게 작성하는 영문 편지에 웃으면서 서명만 해주십시오. 그 뒷일은 그리고 이 편지로 인한 어떤 일도 절대로 발생되지 않게 제가 해드릴 것입니다. 기왕 지사 저를 믿으세요.”

“좋다, 자네 말 대로 하겠네” 라고 손운국 이사는 답을 했다.

노보특 과장은 즉시 백지에 “상상전자SSEC의 홍콩 중아무역공사에 수출선적되는 간냉식냉장고 SR-198은 계약된 사양과 동일한 제품으로 40Ft Container에 98대씩 실리어 공급된다. 본 제품의 구조적 구성품의 수명은 10년 사용을 보장한다. 상상전자SSEC 냉장고제조본부장 손운국 이사” 라고 영어로 작성해주고 타자를 치게 했다.

이내 미스터 챠우를 불러 손 이사와 나란히 앉게 하고 서로 악수를 나누면서 웃음으로 품질보증 각서를 전달하는 사진을 찍었다. 
 

모든 시험을 마치고 로보특 과장과 함께 쇼룸에서 사진 찍은 미스터 차우

그러나, 이 때에 관계된 사람들은 모두 그 후에 10년도 되기 전에 상상전자를 떠난다. 물론 중국 냉장고 수출도 불과 4년도 안되어서 결정적으로 천안문 사태 이후에 막을 내리게 된다. 그것도 자승자박과 자업자득의 실책으로 말이다. 통상적으로 해외주재원은 현지부임 후에 가장 가기 어려운 출장이 본사출장이다. 즉, 한국에 주재기간 중에 갈 수 있는 기회가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공시장의 담당자는 중공수출 선적 시 마다 수출검사를 이유로 한국에 출장 오거나 바이어가 초대받을 경우에 주재원도 동행하므로 나중에 노보특 과장은 중공 시장 신규거래선 개발수출에 의해서 거의 한 두 달에 한 번꼴로 본사를 드나들게 되어 홍콩지점 서울 특파원이냐는 농담도 나오게 된다. 덕분에 상상전자 냉장고공장 설계실의 업무처리 능력과 수준은 향상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이 일을 계기로 손 이사는 홍콩을 답방하게 되고 점심 시간에 맥주잔으로 Hennessy X.O를 미스터 챠우와 연속해서 석 잔의 Bottoms-Up 하는 또 한 번의 황당한 경험을 하게 된다. <계속>

향암 (香庵)

홍콩 2B1 Limited 회장
홍콩 A-Dragon Corporation 창업, 1989.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과학기술산업융합 최고전략과정 수료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SPARC 수료 논문 [출판시장의 변화와 전자책의 미래연구] 발표로 장영실상 수상, 2018.8.

필명: 향암香庵~작품속 가명 노보특 (Robert영어이름 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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