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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홍콩의 벤처이야기 “캘리포니아 냉장고” 3
대한민국 최초 중공 시장 (No Frost Type) 냉장고 수출실화
향암 | 2019-07-01 13:20:2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3. 성사

서로 눈은 눈을 보고 있었지만, 미스터 챠우의 손가락은 타자된 계약서를 가리키듯이 두드리고 있었다. 마치 중국차를 마실 때에 고맙다는 인사를 목례 대신에 손가락으로 하듯 오른손 둘째와 셋째 손가락 끝으로 톡톡 두드리듯이 계약서 종이를 계속 두드리고 있었다.

그러나 노보특 대리는 소리 내는 손가락을 안 보고 미스터 챠우 눈만 똑바로 바라보며 잠깐 생각된 것은 분명히 계약서에 대한 질문을 하기 전에 기선제압 하려고 자신을 째려보듯이 바라보는 것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한번도 이 거래선과의 상담 내용을 보고하지도 못했었고, 비록 본사의 보장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이미 계약서도 사전 결재 받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저 타자된 가격에 대해 문제를 제기 받으면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단념하거나 공개하여 정식으로 품의를 받아야 하는데 그런 사고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이를 악물고 눈에서 눈물이 나오고 피가 흐르게 될지라도 눈을 감지 않겠다고 작심했다.

상대는 60대의 노신사, 나는 30대의 파릇파릇한 청춘이 아니던가? 아무리 내 눈이 왕방울처럼 커서 표면적이 넓어 공기와의 접촉 면적이 많다고 하여 눈물이 쉽게 말라 급성 결막염이나 안구 건조증이 생긴다 해도 눈을 절대로 감지 않겠다고 말이다.

한참동안 그렇게 정지된 두 사람의 눈동자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정말로 눈이 아파왔다.

기차통학과 눈싸움

노보특 대리는 그 순간 고등학교 시절에 기차통학할 때를 연상했다. 시골에서 먼 논둑길을 걸어와 기차역에 도착하면 숨 가쁘게 기차에 올라타던 김상옥이라는 통학 친구가 있는데 오늘 기차가 출발하면서부터 서로 마주 앉아서 눈싸움을 해보자고 하는 것이었다.

눈싸움에는 사람이 이긴 사람에게 짜장면 한 그릇 사주기로 말이다. 그러자고 했다.

기차가 출발했다. 차창으로 매순간 풍경이 바뀌고 반사되어 서로의 눈동자에 비지고 있었으나 반응할 수가 없었다. 기차는 첫 중간역에 멈췄다가 다시 출발했다. 노보특은 짜장면 한 그릇 값이 아깝다는 생각은 이미 사라지고 눈알이 빠질 것 같은 느낌과 함께 혼자 전쟁을 하고 있었다. 눈은 떠서 마주 앉은 친구를 보고 있었지만 사실은 혼자 자기 눈알을 어찌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던 셈이다.

그래서, “그래, 내가 졌다. 짜장면 사주마”라고 소리 지르며 “지독한 자식~!”이란 말을 내뱉으니 그 친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난 안 아팠을까? 네 눈은 이미 갈등과 함께 번민의 파동이 넘쳐서 너만 감으면 난 이긴다고 여기어 감을 수가 없었다” 고 말하는 것이었다.

순간 노보특은 깨달었다.

그렇지! 나만 아픈 게 아니고 저 녀석도 아픈 것이었지. 왜 내가 그 생각을 못하고 혼자 고민하다 스스로 눈을 감게 되었나? 를 곱씹으면서 이른바, 끈기나 뚝심을 더 키울 수 있던 자신을 상기하면서 말이다.

잠시 후에 미스터 챠우가 숨을 한번 길게 들이쉬고는 눈을 아래로 자연스럽게 내려보듯이 계약서를 보면서 “Robert, is this the best price?”하며 묻는 것이었다.

즉각 “Of course. (물론입니다)”라고 말했더니 알았다는 듯이‘끙!’소리를 내면서 오늘은 그냥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가격은 더 이상 언급되지 않을 것이라는 수확을 거두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첫 냉장고 수출계약 단가와 수량은 말없이 침묵 속에서 눈싸움으로 결정된 셈이었다.
집에 돌아왔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회사에 상담보고도 없이 계약서 초안에 대한 사전 결재도 없이 비록 서명은 없었지만 계약서 초안까지 외부에 전달되었고 그 금액이 실로 엄청났기 때문이다. 비록 본사와 공장과는 연락을 했지만 과연 중공향 첫 냉장고 수출을 가능하게 해낼까…?

다음 날 출근해서도 이런저런 인콰이어리를 확인하는 지점장 주간점검회의를 했지만, 신용장이나 사전결재된 계약서도 없으니 말도 못하고 지점장의 질책을 또 감수해야만 했다.

그런데 주간회의 분위기는 뜻 밖에 금사종 대리와 지점장이 먼저 충돌되었다. 주재원들이 밤늦게까지 상담록도 정리하고 본사에 보내야 할 보고서도 정리하느라 늦게 끝나지면 함께 한국식당에 가서 식사겸 소주도 마시게 되는데 실적이 없으니 예산도 없다는 식으로 본사 송금이 부족해서 회의비로 올린 영수증을 다 돌려주고 공동부담 형식으로 돈을 걷어내라고 하자 1인 지점으로 있었던 금사종 대리가 ‘한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회사 주재원들은 점심식사도 회사 비용으로 하는 게 홍콩의상황인데 점심값도 자기가 먹으니 자기 돈으로 지불하고, 회의비도 자기가 먹은 셈이니 자기 돈으로 지불하라고 한다면 너무 하는 것 아니냐’고 항의를 한 것이다.

그 말 속에는 지점장은 매일 점심 약속이 있다면서 회삿돈으로 경비 정리하면서 자기가 참석하지 않은 주재원들의 요식성 경비는 각자 부담이라고 한다면 불공평하다는 뜻이 포함된 것이다.

“금사종 대리는 혼자 있을 때 그렇게 경비정리 했나? 지금은 내가 지점장이니 내 방침대로 하기 바란다.”라고 못을 박아 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꼬여졌는데, “노보특 대리, 자네 요즘 뭐하고 다니는 거야? 왜 상담보고도 없고 도대체 뭐 하러 회사에 나오는 거야? 그동안 그 많은 인콰이어리는 다 어찌됐는지 왜 중간보고가 없는 거야?”

“예, 그것이 인콰이어리를 가지고 와서 상담하고 냉장고 리플릿을 받아 가지고 가서는 연락이 없습니다. 전화해도 전화를 안 받거나 그 회사직원들이 사장은 중국에 출장갔다는 말들만 합니다. 그리고 본사도 지점장님도 제가 보고하는 상담 내용은 콩으로 메주를 쑤어도 믿을 수 없으니 L/C를 가지고 얘기하라고 해서 상담보고도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노보특 대리가 답변했다. 이어서“그동안 받은 인콰이어리들이 모두 믿을 수 없게 되어 마치 공중분해 된 것 같습니다.”라고 말을 보태자 홍콩 지점장은 눈을 더 크게 부릅뜨며 노보특 대리를 노려보더니 “너 지금 날 가지고 놀아! 공중분해라고? 네가 어떻게 공중분해라는 말을 내게 하는 거야? 무슨 근거로! 이제 보니 입으로만 일하는 사람이군. 있으나 마나 한 인간이네!”라고 버럭 화를 내버리더니 실망한 탓인지 그렇게 회의를 끝내 버리는 것이었다. 노보특 대리는 참으로 속이 많이 상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학교도 군대도 회사도 항상 모범적으로 우수한 성적과 성실한 태도를 인정받았었는데 홍콩지점 발령을 받게되면서 새롭게 만난 홍콩지점장은 예전에 만났던 상상전자 내 다른 선배들과는 사뭇 달랐다.

도대체 뭣이든 보고하면 화부터 내는 것이었다. 물론 실적이 우선적으로 중요하다지만 사람을 못 믿어서야 어떻게 함께 일할 수 있을까염려되며 앞날이 아득했다.

회사가 해보지 못한 부품수출을 실행시키고 열심히 스스로 해외거래선을 편지로 개척하고 한국까지 찾아온 해외거래선들도 정성으로 상담하여 인도네시아에 최초로 BOX FAN금형과 FAN MOTOR를 싱가포르 지점장과 함께 뜻을 맞춰 수출했고 필리핀 CONCEPCION GROUP에 상상전자 최초로 냉장고 공장에 Compressor를 수출했고 이어 서울에서 처음 만나는 중동의 레바논 거래선CHALIAN BROS로부터 냉장고 수리용 Compressor를 연간 계약하며 수출을 시작했고 (몇달 안 지나 중동전쟁 발발로 L/C를 받은 것만 몇차례 선적하고 중단되었지만)그리고 필리핀의 Concepcion그룹과 이집트의 New Dalia 그룹에도 상상물산과 협력해서 냉장고 생산용 Compressor 수출을 처음으로 성공시켰었다.

노보특 대리는 그렇게 항상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고 칭찬을 들으며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 보다는 어렵다고 외면하는 일도 해냈고, 해서는 안 될 일은 안 하지만, 어려운 일은 기어이 해냈는데 중공시장을 뚫어야 하는 당면과제와 함께 실적이라는 멍에 때문에 사람 취급을 못 받는 현실에 스스로 자신에게 분노가 끓어올랐으나 홍콩지점장은 대리급인 자신보다 몇 배의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라 생각하며 나무랄 때마다 살아있는 부처 생불(生佛)로 여기기로 작정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렇게 열심히 했고 잘 해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함께 공장에서 고생하며 10.26사태에 헤어진 아픔을 기억하면서 노보특 사원과 함께 근무했던 동료와 선배들 덕분이었다.

상상전자 부품사업본부 Motor(전동기)수출은설계과 전과장이 Compressor(압축기)수출은 생산과 명 과장이 친형제처럼 발 벗고 나서 주었기에 가능했고 그런 영향은 나중에 냉장고 수출시에도 공장의 다른 사업부 부서에까지 전달되고 상호 경쟁이 아닌 서로서로 도와주려는 분위기가 한 몫을 했다고 여긴다.

10.26사태 후 공장에서 해외본부 가전수출과에 파견되어 부품수출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에 노보특 사원은 잊을 수 없는 몇 사람의 선배가 있었다. 가전수출과에 파견와서 알게 된 것은 가장 바쁘게 일하는 것으로 보이는 금동강 사원이었다.

하루는 금동강 사원이 “노보특 씨, 지금 뭐해? 나 지금 공장에 다녀와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 텔렉스를 못 보내고 가니 이것 좀 대신 보내줄 수 있을까?” 하면서 맡겼던 것은 UL 규격을 받으려고 견본을 미국 지점에 보냈다는 SHIPPING ADVICE이었다. 그러면서 참고하라고 기존 파일을 하나 건네 주고 나갔다.

그러나 노보특 사원은 SHIPPING ADVICE가 뭔지 언제 어떻게 보내는 것인 지를 설명 들은 바 없었다. 그렇게 다른 파일도 보고 사전도 찾아보며 어떻게 흉내라도 내야 할 텐데 공연히 틀릴 것 같고 잘못되면 안 된다고 여겨서 그렇게 이러 지도 저러 지도 못한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침에 나갔던 금동강 선배가 오후에 서둘러 들어왔고 그것 내보냈느냐고 묻기에 “사실은 SHIPPING ADVICE가 뭔지 모르고 잘못할 까봐 아직 못하고 있다.”고 하니 “아이구 미안하네요. 내가 너무 바빠서 미처 설명도 안 하고 부탁을 해서 얼마나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했냐.”면서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 마음씨를 가진 금동강 선배가 주무사원이라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바로 금충복 당시 가전수출과 과장이었다. 수출업무는 기본이 영어 사용인데 비록 노보특 사원이 어릴 때부터 스스로 영어 단어를 외우고 고등학생 시절에는 영국과 해외펜팔도 오래 나누었고 늘 미국 영화 보기를 좋아했고 대학시절에 고향 군산에 미군 공군부대가 있어 AFKN의 TV를 자주 보았고 따로 휴대용녹음기를가지고 다니면서 ENGLISH 900같은 회화교재 TAPE를 반복적으로듣고 심지어 공장의 전동기 생산과에 근무하면서도 점심시간이 되면 공장이 확장되어 식당이 비좁아져 도시락을 각 생산과로 배달받아사무실에서 점심을 먹을 때인데 5분만에 도시락을 잽싸게 먹고 정문 가까이에 있는 공장본부까지 달려가서 45분 영어회화를 수강했다 해도 그 실력이 오죽했을까~!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금충복 과장이 TELEX 기안을 해오라고 하면 끙끙 앓듯이 한영사전과 영한사전을 번갈아 보면서 같은 과의 주무사원인 금동강 사원에게 물어보기도 하여 작성을 해서 결재를올리면 한 장의 TELEX기안지에 중요한 단어가 반복적으로 나오면 안된다고 가르쳐줬다.

그런데 노보특 사원의 기안지에는 같은 단어가 세 번 나타났다고 지적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단어를 가리키더니 이 단어의 뉴앙스를 설명해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과장님, 제가 사전 찾아가면서 겨우 영작한 것인데 뉴앙스까지 물으시면~?”하고 노보특 사원이 대답을 하면서 금충복 과장의 얼굴을 바라보면 금충복 과장은 바로 고개를 푹 숙이는 것이었다. 나중에 사원면담 시간에 설명해주기를 “내가 일부러 나무라는 것이다. 다른 사원들도 사실은 영어를 잘 못하고 그런 영작 요령도 서툴고 더구나 단어의 뉴앙스를 설명하지도 못한다. 일부러 Shakespeare의 작품을 읽었는지 물어보며 결재를 할 때도 있다.

내가 그렇게 노보특 사원을 나무라야 그들이 공장에서 파견 나왔다고 괜히 영어실력으로 노보특 사원을 무시하지 못하게 울타리를 쳐주는 것이니 서운하게 여기지 말고 열심히 일해서 좋은 인재로 거듭나라.”고 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제발 눈 좀 작게 뜨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결재나 면담할 때 자기 보다 노보특 사원의 눈동자가 너무 커서 고개를 들 수 없다고 부탁하듯 말했다.

또 한 분의 고마운 분은 바로 가전수출부 부장이었다. 노보특 사원이 해외본부로 파견되던 날 부장이 되었고 해외 출장 중에 공장에서 기술자 5명을 파견형식으로 지원받게 되어 원격으로 보고를 받고 귀국해서 자리를 만들어주고 금충복 과장에게 업무 편성을 지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는 가격에 관한 TELEX는 부장 결재라서 금충복 과장이 그렇게 까다롭게 TELEX 기안을 결재했지만 부장 결재를 받아야 TELEX를 발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결재를 받고자 부장앞에 서있게 된 노보특 사원은 부장의 특별한 지시와 교육을 받게 된다.

“SHIPPING ADVICE에는 무슨 내용을 내보내느냐?”고 부장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노보특은 순발력과 기억력을 발휘에 계약내용을 통지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계약서 양식을 가져와 보라고 해서 영문으로 이미 인쇄된 CONTRACT양식을 갖다 드렸다.

그랬더니 계약서 양식을 뒤집어 보라고 했다.

거기에는 정말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작은 활자크기의 문장들이 가득했다. 부장님은 노보특 사원에게 그걸 읽어봤냐고 물었다.

“아니요!”라고 답하니 바로 엄격하게 명령을 내리는 것이었다.

“자네 오늘 밤에 집에 돌아가거든 그걸 다 읽고 내일 아침에 전 부서원을 집합시킬 테니 그 내용을 설명해보게!”라고 하는 것이었다.

노보특 사원은 순간 긴장했고 말을 못하고 있었다.

그 때에 부장님은 결재 받으려고 올린 TELEX DRAFT 맨 위에 필기체로 멋지게 휘갈겨 이렇게 쓰는 것이었다.

“Teaching is the best learning!”

그리고는 금동강 사원에게 큰 소리로 지시하는 것이었다.
“자네들 내일 아침에 이 사람이 교육하는 것을 모두 경청하도록 해!”

그리고는 노보특 사원에게는“나도 공장에서 올라왔고 이렇게 공부하는 것이야. 남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사실 자기가 제대로 배운 셈이 되는 것이다. 지금이 좋은 청춘이다 힘 내라!” 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에는 못 들었지만, 안 부장님은 금동강 사원에게 별도의 지시를 내렸음을 다음 날 아침에 알게 되었다. 노보특 사원은 퇴근해서 집에 가면 거의 자정이 다 되고 다음 날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부지런히 준비하고 전철을 타면 본사에 8시 30분에 도착하는 일과에서 잠 안자고 공부하기에는 너무 피곤했다. 그래서 그 날 밤에 몇 줄 읽고 사전을 찾다가 잠이 들고 말았었다.

아침에 회사에 도착하니 부장님의 지시를 받은 주무사원 금동강 선배가 모두 회의실로 모이게 하고 말하였다.

‘여러분 각자 준비한 대로 발표하세요.”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노보특 씨, 많이 걱정했지요? 발표는 우리가 하라는 말씀이 있었네요. 우리가 나누어서 공부해온 것을 설명할 테니 들어보고 본인이 공부한 것과 비교해서 이해를 하면 됩니다. 긴장을 풀고 느긋하게 공부합시다.”하였다. 정말 모두 고마운 사람들로 기억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노보특 대리는 속으로는“제발 10,000대만 되어라 10,000대만 되어라~!” 하면서 “이 냉장고 10,000대만 주문받으면 이 지긋지긋하고 억울한 설움 떨쳐내고 아예 회사를 그만 둘 것이다”라는 각오와 함께 이를 악물었다.

모든 신경은 중아무역공사에 건네 준 계약서에 있었는데, 회의석상에서는 홍콩지점장으로부터 그 험한 질책을 들었지만 이제는 들어도 입을 다물어야 했고 그저 그렇게 유구무언으로 있었다.

지점장 회의가 끝 난 후에 홍콩지점에 먼저 주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가 곧 본사로 복귀하게 될 금사종 대리가 말을 걸어왔다.

지점장이 회의실에서 나무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상상그룹사 전원이 함께 터진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실정으로 회의실 대화는 남들에게 잘 안 들려도 사무실에서 지시하거나 대화하는 음성 속에는 서로 감정이 들어 있는 것 같아서 지점장은 노보특 대리가 고집이 세다고 여길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상관의 지시에 안 따르는 것으로 느낄 수 있으니, 공장에서 직냉식 냉장고를 개발하던 말던 우선 해달라는 대로 부하로서 담당자로서 직냉식 냉장고 개발 필요성 보고서라도 써주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유는 지나치게 상관과 뜻이 안 맞는 것처럼 비쳐 진다면 내용과 무관하게 불이익을 당할 수 있어 해주는 말이라고 했다.

저녁 때에 중아무역공사의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를 않았다. 참으로 초조했다.
노보특 대리는 사무실에 홀로 남아서 낮에 금사종 대리가해준 조언을 떠 올리면서 <중공향 냉장고수출 부진에 따른 대책 보고서>를 쓰기 시작했다.

퇴근 후 혼자 남아서 [중공향 냉장고수출 부진에 따른 대책 보고서] 작성한 노보특 대리

내키지 않는 내용이기도 했지만 상황과 사유는 잘 써내려 갔는데 대책으로 직냉식냉장고를 개발해야 한다는 부분에서는 도저히 손이 움직이지를 않았다.

기술적으로 시장의 요구나 주문 가능성의 근거도 없이 직냉식으로 후퇴해야 한다는 보고서 내용에 펜이 손과 마음을 따라 주지를 않았다. 그래도 2매의 보고서를 나름 분석표와 동향 보고서 등을 추가해 작성하고 퇴근했다.

포장마차도 없는 홍콩인지라 한국 식당으로 옮겨 가족도 없이 인질 잡혀오듯 발령 받아 첫 주문이라도 수주해야 가족 출국을 건의하겠다는 지점장의 억지에, 지점장은 가족이 이미 와 있으면서 부하에게는 어찌 그렇게 하는 것이냐고, 묻지도 따지지도 못하고 소주잔과 씨름만 해야 했다.

그렇게 그 밤의 길고 긴 시간은 어김없이 지나서 새 날이 밝았다. 출근해서 다시 중아무역공사에 전화를 했다.
“굿 모닝”이라고!
미스터 챠우는 아무 일 없었듯이 “굿 모닝!” 이라고 답하는 것이었다.
“계약서는?”하고 묻자,
“벌써 잊었느냐?”며 기다리라고 하는 것이었다.

당시 업무관행은 계약서를 사전 결재 받고 사본은 회사에 보관하고 원본은 결재권자가 미리 인감도장을 찍는 것이 아니고 손으로 서명하여 주면 담당자가 거래선을 만나서 Counter Signature를 받아오는 형식이었는데, 그러니까 담당자는 서명할 수 없었는데 중국인은 반드시 만나서 얘기한 사람이 서명해야 한다고 하여서 홍콩지점장 이름이 아닌 노보특 대리의 이름이 서명란에 표시되어 제시된 것이다. 이것도 상당한 오해나 지적사항이 될 수 있는데 비밀리에 계약 성공을 위하여 사전에 허락받을 수는 없었다.

이후 상상전자는 중국인들의 상거래 관행으로 받아들이고 사전결재는 업무 규정대로 사본에 내부 결재를 먼저하고 원본은 만나서 상호 서명을 하게 하나 담당자의 이름으로 서명하게 계약서 취급관행을 수정한다.

노보특 대리는 여전히 매일아침 문안 전화를 걸면서, 그후로 한 보름이 더 지났을까…? 어느덧 홍콩의 날씨는 찌는 듯한 여름을 만나게 되었다.

저녁 때, 미스터 챠우가 회사에 들러 달라 했다. 지난 번과 같이 모든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계약을 하자고 하며 미스터 챠우가 먼저 만년필을 꺼내 서명을 했다.

노보특 대리는 가슴이 뛰었다.
그러나, 침착하게 공급자란에 서명하고 물었다.

신용장은 언제 받게 되냐?고…신용장은 은행에 있다고 했다.“아,물론 은행에 있겠지만 우리 회사 앞으로 된 신용장 사본이나 신용장 번호가 쓰여진 신청서 사본이라도 언제 주겠느냐?”고 물었다.

미스터 챠우가 계약서에 서명한 만년필을 집어넣으면서 말했다.

“지금까지 잘 기다렸는데, 벌써 더 기다릴 수 없겠는가?”라며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노보특 대리는 속으로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저녁이나 먹으로 가자고? 도대체 언제까지 참고 숨죽이라는 말인가? 벙어리 냉가슴 앓듯 병이 나게 생겼고 온몸의 기운이 파김치가 익듯이 축 처지는 나를 누가 돌봐 준다는 말인가?”하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식당에 둘러앉았다. 미스터 챠우의 부인, 큰아들 그리고 새로 뽑았다는 여비서까지… 그리고 영국 유학중이라는 둘째 아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고 인사시키는 것이었다. 행복해 보이는 가족이었다.

미스터 챠우는 “오늘은 첫 계약을 했으니 건배를 해도 되겠구나~! 하면서 프랑스산 Hennessy X.O를 한 병 들더니 코르크Cork 마개를 따는 것이다. 보기는 했지만 별로 마셔보지 않았던 프랑스의 고급 브랜디가 아닌가? 몇 잔을 돌려 마시니 열기가 올라왔었다.

노보특 대리는 술 기운을 빌려 다시 물었다. 처음 만났던 기억과 사무실에 갔을 때에 방 한 칸에 두 개의 간판을 본 것과 거래시작에 대한 가르침을 주어서 정말 배우려는 자세로 따르고 노력하였으며 이렇게 계약까지 하였으나 막상 신용장 근거 없다면 보고도 못하고, 보고를 못하면 생산 자재 준비로 납기 준수가 염려되므로 지금 바로 신용장이 열리는 시기라도 부디 알려 달라고 말을 했더니, 미스터 챠우가 노보특 대리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쥐고 있던 젓가락을 포장했던 종이를 조금 찢어 계약서에 서명했던 그 만년필로 무슨 알파벳과 숫자를 적어서 건네 주는 것이었다.

“그 간 정말 수고했고 우리는 노보특만을 믿으니 계약서대로 차질 없길 바라면서 이렇게 신용장을 준다.”라고? 이것이 신용장이라니? 젓가락 종이에 쓰여 진 숫자를 어떻게 보고하란 말인가?

미스터 챠우는 그 뜻을 눈치챘는지 허허허~!!! 웃으면서 말하였다.

“사실 요즘 중국 사업이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데 계약서에 서명하고 사무실을 떠나기 전에 은행에 전화로 신용장을 열라고 했다”고 하면서 “노보특이 하도 애타고 있기에 여기 식당에서 은행에 방금 큰아들 프랭키가 전화를 걸어서 신용장 번호를 이렇게 받아 적어주는 것이니 이제 맘 놓고 한잔 하고 자고 나면 내일은 회사에 신용장 사본이 9시 정각에 팩스로 받게 될 것이며 원본은 은행으로 당도할 것이라.”고 했다.

아무튼 그 날은 술 기운을 빌려서 젓가락 종이 증거라도 받아 두고 서로 술도 마신 셈이었다.

다음 날, 출근해서 가슴 졸이며 9시 정각에 TELEX실에 새롭게 설치된 FAX기 앞에 서 있다가 조용히 밀려 올라오는 팩스종이의 머리에 적혀 나오는 숫자와 어젯밤의 젓가락 종이의 숫자를 맞춰보고는 두 주먹이 절로 불끈 쥐어 졌다.

그리고, 노보특 대리가 서명한 계약서에 결재인 찍고 신용장 사본과 늘 양복 안 주머니에 가지고 다닌 사직서 날짜를 고쳐 결재 파일에 함께 넣고 홍콩지점장께 면담 신청을 했다.

“이제 제가 없어도 거래선이 생겼으니 회사는 소원대로 냉장고 수출을 하게 되었으며, 그 동안 무능한 부하 데리고 속도 많이 상했을 터이니 차라리 홍콩 앞바다에 빠져 죽게 되는 것 보다 서울에 가서 수박장사를 하는 것이 낫겠습니다”라고 말을 했다.

그러나, 홍콩지점장은 노보특 대리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결재파일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더니 계약서와 신용장을 쥐고 천장까지 닿을 듯이 펄쩍 뛰면서 회의실을 나가가다 사직서를 그 자리에서 찢으면서 말하였다.

“너 이 계약 책임질 수 있어? 지금까지 한 마디 보고 없이 일을 한 까닭은 이해할 수 있겠는데 계약된 근거는 있어?”라고 물었다.

노보특 대리는 모든 것은 문제가 없으니 본사로 복귀시켜 달라고 했다. “복귀 좋아하네. 자네가 없으면 누가 일을 해!”라고 말하고는 홍콩지점장은 신이 나서 큰소리로 본사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계속>

향암 (香庵)

홍콩 2B1 Limited 회장
홍콩 A-Dragon Corporation 창업, 1989.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과학기술산업융합 최고전략과정 수료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SPARC 수료 논문 [출판시장의 변화와 전자책의 미래연구] 발표로 장영실상 수상, 2018.8.

필명: 향암香庵~작품속 가명 노보특 (Robert영어이름 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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