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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홍콩의 벤처이야기 “캘리포니아 냉장고” 13
대한민국 최초 중공 시장 (No Frost Type) 냉장고 수출실화
향암 | 2019-08-02 08:57:2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3. 해남도

다음 날 출근해서 홍콩지점장께 서울의 출장 결과와 미스터 응으로부터 비롯된 중공수출중단을 염려할 사항을 보고했다.

홍콩지점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역적이 안 되려면 주문 취소 없이 모두 실어 내고 취소불능 신용장에 의한 Clean Nego. 서류작업을 본사에 시키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지점장은 주문취소하면 역적이라고 생각했나보다. 입으로만 말하고 냉장고 공장에 전화도 못 걸면서 말이다.

“수입자가 신용장 결제할 돈이 없다면 클린네고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지금부터 일대 일로 확인해서 중공의 대금결제와 무관하지 않은 주문은 우리 스스로 취소시키겠습니다.”라고노보특과장은 보고했다.

회사는 발칵 뒤집어졌다.

모두 홍콩지점의 노보특과장의 최종 중공향 냉장고 주문처리대책보고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거래선에 ‘우리가 입수한 정보로는 지금부터 중공은 냉장고 수입결제 대금 송금을 중단한다.’라는 정보를 제공하는 전화를 걸었고 취소 여부를 묻는 질문이 텔렉스나 팩스로 나갈 터이니 오늘 내로 답이 없으면 모두 취소된다고 했다.

그렇게 처리하는 과정에서 공장은 아우성이었고, 거래선들은 모두 조용했는데 조용하지 못할 거래선이 두 군데 있었다.

하나는 로얄패밀리를 동원해서 오퍼를 받았던 금사종 사장이고 다른 하나는 상상전자 해외본부 싱가포르지점장을 역임한 OB선배로서 싱가포르고압무역공사를 경영하는 은당진 사장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홍콩에 있는 홍콩지점 동료이었던금사종 사장이나 다행히 금사종 사장은 이미 100% T/T송금을 받았으니 문제가 없어 물건만 홍콩에서 전달하면 되므로 괜찮다고 했다.

그러나, 은당진사장은‘내가 얼마동안 공들여 기다린 오퍼 받아 이제 겨우 2,000대의 첫 선적을 목전에 두고 있는데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은당진 선배님, 지금 그런 말씀으로 집착할 때가 아닙니다. 중국으로부터 수입대금을 못 받으면 대신 결제할 수도 없잖아요. 이미 돈 받지 않았다면 포기하세요.”라고노보특과장이 간곡히 당부를 해도 자기가 책임질 테니 취소시키지 말라며 그렇다면 해외본부장을 만나러 한국에 라도 들어가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은 선배는 해외본부장을 따로 잡고 있고 믿고 있었던 것이 드러난 셈이었다. 그리하여 불안을 남긴 채 은 사장의 냉장고 2,000대는 생산되어 연말에 선적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은 사장은 이 냉장고 2,000대의 중공 수출 불발로 싱가포르 고압무역공사가 망하게 된다. 그 까닭은 재정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겹치기도 했겠지만 냉장고 2,000대는 40Ft x 20 Container인 셈인데 홍콩 항구 도착 6개월 후에는 이 화물의 홍콩 CY보관료가 물품 값을 능가할 즈음 상상전자는 수출대금회수 대신에 전량을 한국으로 회수하여 색상이 한국에서는 사용되지 않던 녹색이라서 농촌에 특판 하고자 반송 즉, SHIPBACK하기에 이르렀고 은 사장은 HJ해운에 보관료를 물어주는 것 만으로도 부담이 커서 회사가 망하게 되었다. 상상전자와의 거래가 유지되지 못하게 되었고 정확하게 일 했던 노보특과장으로 하여금 많은 심리적 부담과 불명예를 남겨 주게 된다.)

회사는 상황이 바뀌었다.

다시 냉장고 수출을 살려야 한다는 분위기가 되어 꺼진 불도 다시 보듯이 작은 인콰이어리들을 다시 살피라는 명령같은 부탁이 공장에서 빗발치고 있었다. 언제는 국내판매만 해도 충분하니 수출은 안 해도 된다거나 단일 모델아니면 생산성이 나쁘다며 거절한 공장은 물론 인맥이 넘쳐서 본사에 10% 더 가격을 준다는 주문이 밀려 있다는 가전수출부도 모두 조용했다.

그래서, 가전수출부 금충복 부장과 냉기사업본부 냉장고 설계실복국성 실장이 한 조가 되어 홍콩지점과 함께 신규거래선 확보 차 과연 냉장고 공장이 있기나 한 걸까? 라고 여겨지는 중국의 가장 남단에 있는 해남도로 냉장고 수출 상담 출장을 나오게 되었다.

해남도는 SANYA와 광서성은Countifarm과 그리고 북경에는 CITIC을 만나보는 일정이었다.

때는 1989년 1월 21일 토요일. 본사 출장자인 금충복 부장과 복국성실장은 하필 홍콩지점장과 같은 대학과 상상그룹 입사동기라서 전날 밤에 그렇게 세 동기가 홍콩에서 만나기 쉽지 않았기에 홍콩지점장의 각별한 대접과 성공을 부탁받고 저녁식사도 마침 한국으로 출장가는 길에 홍콩에 온 싱가포르 고압무역의 은당진 선배까지 함께 하였다. 지점장과 손님들은 모두 같은 대학의 동문들이었다.

다음 날, 그렇게 토요일 낮에 홍콩 카이탁 공항에 세 사람이 당도했는데 비행기는 시간이 되었는데도 Check-In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알아보니 목적지인 해남도 해구공항에서 아직 비행기가 홍콩공항에 오지 않았고, 일기 불순으로 어제는 결항을 했지만 오늘은 결항하지 않고 지연되어 운항될 거라고 하여 낮 12시경에 출발하는 항공기 운항시간 1시간 10분 정도의 거리를 마냥 홍콩 공항에서 기다리게 되었다.

오후 6시가 다 되어 짐을 부치고 비행기 안에서 또 한참을 기다리다가 이륙을 했다. 
 

CA336 from HONG KONG TO HAIKOU (Boarding Pass & Guide)

도착된 해남도 해구공항의 날씨 역시 매우 흐린 상태였고 습기도 많았다. 노보특과장은 우기라서 그런 것으로 생각했다.

예정시간보다 6시간 정도 늦게 도착했기에 부지런히 상담 장소인 SANYA산야까지 다시 6시간을 자동차로 달려 가도 자정이 넘게 되어 기다리는 바이어에게 미안하게 될까봐 저녁 식사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서둘러 자동차를 출발시키려고 하는데, SANYA 안내자가 일기가 안 좋으니 상담을 내일로 미루고 잠을 자고 갈 것이냐고 물었다.

진행은 노보특과장이 하지만 상급자가 두 명이나 있었기에 물으니 복국성 실장은 상상맨이 출장에 날씨를 가리냐며 그대로 가자고 했다.

HAIKOU 시내를 벗어나는데 30분 정도 걸렸는데, 이제 장장 6시간 정도를 일직선 같은 2차선 도로로 가로등도 없는 밤길을 달려야 하는데 노보특과장의 눈에는 정말로 부슬부슬 내리는 비도 아니고 안개도 아닌 날씨에 가로등도 없는 밤길에 여러 대의 트럭이 서로 맞부딪쳐서 이미 길 바닥에 나자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불안하다고 여기었는데 앞의 왼쪽에는 운전사, 오른 쪽에는 안내자가 앉아 있었고, 뒷좌석 좌우에는 두 부장과 실장이 앉고 중앙 좌석에는 노보특과장이 겨우 자리하고 있었는데 앞의 자동차 속도계를 보니 108Km/Hr이었다.

그래서 시속 80Km/Hr로 내리라고 하니, 운전사가 그러면 도착이 두 시간 더 걸린다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라도 속도를 줄이라고 말을 할까 말까 하면서 미처 말 못하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미쓰비 신형 지프밴이라는 새 자동차가 좌우로 휘청거렸다.

어~! 하고 소리를 내고 있는데 자동차가 길바닥에서 좌우로 뒤뚱거리더니 길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기를 두번하더니 정면에 전봇대가 보이었다.

순간 노보특과장은 “아~내가 저 앞 유리창 밖으로 튕겨 나가나 보다.”라고 생각하는 찰나, “아~! 나는 여기에서 이렇게 지금 죽을 수는 없다.”라고 여기면서 이를 바드득 갈며 어금니를 꽉 물었는데 우당탕탕 하면서 순간에 노보특 과장의 머리에서는 고속영사기가 도는 것 같았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내와 아들들의 얼굴이 나타나면서 자동차가 왼쪽 길가의 전주를 들이 받고 옆으로 돌더니 그대로 세 바퀴를 뒤집히며 구르는 것이었다.

다행히 노보특과장은 모든 것을 본 대로 들은 대로 기억할 수 있는 정신이 있었으나 자동차가 전주를 들이 받는 순간 우측 앞 좌석 의자의 목받침에 오른쪽 어깨를 부딪치게 되어 마치 대각선으로 심하게 충격을 받은 찌그러진 두부처럼 되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자동차는 오른쪽으로 자빠져 있었다. 먼저 누워진 상태에서 왼쪽 앞문을 열고 운전수가 뛰쳐나갔다.

이어서 SANYA사의 안내자가 운전사 쪽 문을 밀어 올리며 기어 나갔고, 뒷좌석 좌측의 금충복 가전수출부장도 문을 열고 나갔다.

문제는 노보특과장이 숨을 못 쉬기에 말을 할 수 없었고 손짓으로 내보내 달라고 하니 먼저 나간 금충복 부장이 “노보특과장 죽는다.”라고 외치며 끌어 내주었고 이어서 깔려 있던 복국성 실장이 기어 나왔다.
그 순간 노보특 과장은 어제 저녁식사 시간에 싱가포르에서 서울로 출장 가는 길에 홍콩에 들러, 마침 서울에서 출장길에 오른 금충복 부장과 복국성 실장과 함께, 구룡 영빈관 한식집에서 저녁 먹을 때에 신나게 군대이야기를 한 은당진 선배의 얘기중에 군대 훈련 중에 경험한 것으로 안전사고에서 사람은 물리적인 충격을 받고 정신이 있다면 눕지 말고 앉아 있어야 하며 단전에 힘이 모아지면 죽지는 않고 발가락이 움직이면 척추는 다치지 않았다는 그 말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래서, 노보특과장은 손짓으로 자신을 좌불상을 안아 옮기듯이 들어서 길가 산 아래 고랑으로 이동하게 했다.

거기에서 아까 차가 부딪칠 때에 영화 스크린처럼 지나갔던 가족들을 떠올리며 평소 장모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늘 일이 잘 안되고 답답할 때에는 마음 속으로‘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불러 보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나서 그렇게 읊조리기를 열 일곱 번째 읊었을 때에 한번에 숨이 터져 나왔다.

그때 노보특과장은 소리쳤다.“저 안 죽어요. 우선 자동차에 불이 날지 모르니 가방을 꺼내세요.”하고 넘어진 자동차를 보니 옆으로 고랑 위에 누워있었다.

그러니까, 달리던 자동차는 속이 텅 빈 강관전주를 운전사 쪽으로 빗겨진 각도로 받는 순간에 차가 180도 회전하여 자동차 꽁무니가 산 비탈에 닿은 채로 과속으로 인하여 옆으로 굴렀고, 아스팔트 도로 바닥이 아닌 산 비탈과 고랑 위의 흙더미에 걸쳐서 굴렀기에 충격이 모두 흡수되었고, 그래서 유리창도 안 깨어지고 한 사람도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고속으로 질주하던 자동차에 불도 나지 않았던 천운의 사고 현장이 보였다.

그 어둠 속에서 어떻게 어디에서 사람들이 나타나는지 잠깐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었고, 그 중에 누군가가 앰블런스를 불러주었다.

그 앰블런스는 한국의 시내버스 같은 것이었고 보건소라고 시골에 있는 곳을 가보니 마구간 같은 곳에 전기불도 없이 마취도 안하고 사람을 수술한다고 째고 있었다.

가전수출부 금충복 부장은 도저히 이런 곳에 노보특과장을 맡길 수는 없다며 그 시내버스 같은 앰블런스를 타고 우리 나라 도립병원같은 해남도 해구 시내에서 가장 큰 병원에 도착하게 했다.

당직 의사가 한참 있다가 나타나서 X-Ray를 찍어보더니 늑골이 두 개 정도 금이 갔는데 별 문제없겠다며 특별히 외국인이라고 일백 명을 소독할 수 있는 옥도정기 한 병을 공짜로 주겠다는 것이었다. 아플테니 발라 보라는 것이었다. 그대로 일행은 이동해 해구시의 HAIKOU호텔로 체크인 했다.

운전사는 바이어가 제공한 차량의 직원이라서 산야시에서 기다리던 바이어가 해구시로 오고 있다고 알려주는 것이었다.

당시 양국의 정보기관과 공안부 특별허가를 받고 입국한 외국인이 그런 사고나 부상을 당하게 되고 그것도 중국인의 실수로 판명된 경우에는 초청한 단위는 물론 그 일을 저지른 중국인은 곤욕을 치룬다고 했다.

그래서 운전사는 자기가 많이 다친 것도 모르고 그 날 밤에 늦게까지 노보특 과장을 위해 뛰어다녔다. 그러나 그는 다음 날에 병원에 입원하고 말았다.

충돌하는 순간에 운전사 쪽이 전주에 부딪쳤기에 핸들 아래 구조물이 차내로 들어오면서 운전사의 무릎 정강이를 많이 다치게 했던 것이었다.

노보특 과장이 운신을 못하고 있으니 뼈를 다친 것 같다고 쿵후 유단자를 불러왔으나 노보특 과장은 손을 대지 못하게 하였다.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그러니까 자정이 지나 2시가 다 되어 산야에서 달려온 바이어 SANYA팀이 호텔에 당도하였고 노보특과장은 앉을 수도 없고 서지도 못하는 자세로 양측을 만나게 하고 마치 중매쟁이처럼 소개하고는 그래도 서로 상담을 해보라고 심지어 마오타이백주로 건배 제의까지 하는 제스쳐를 보여주고 방에 돌아왔다. 그러나 누울 수가 없었다. 혼자 누었다가 일어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새벽3시까지 앉아 기다리고 있으니 일행이 돌아왔다. 아파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얼마나 충격이 심했던 것인지 삼소나 강력밀폐식 PVC여행가방 안에 차곡차곡 포개어져 있던 양복 호주머니에서 황토가루가 한 주먹만큼씩 나왔다.

충격 순간에 그 가방이 조개처럼 입을 벌렸다가 다시 닫힐 때에 황토 먼지가 흡수되어 그리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지금 살아있지만 몸뚱어리의 오장육부도 그렇게 충격을 받았을 거라고 여겨졌다. 그렇게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아침에 일어나 회의를 했다.

다음 일정은 북경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는데 도저히 이대로는 갈 수 없겠다고 노보특과장이 말했다. 그러니까, 호텔 상담 결과 신설 냉장고 공장이란 것이 산야시에서 냉장고 SKD를 조립하는 수준이란 것이었기에 그 곳은 가지 않기로 했고 북경으로 갈 것인지 출장을 취소할 것인지를 두고 하룻밤을 더 보내기로 하였다. 노보특 과장은 축축한 해남도에서 끙끙앓으며 하루를 꼬박 앓았다.

다음 날 아침에 노보특과장은 도저히 출장을 안내할 수 없으니 꼭 지속해야만 한다면 두 부장님과 실장님께서 원래 계획대로 북경에 가시라고 했다.북경은 사실상 만리장성 관광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때는 너도 나도 중공땅 만리장성을 출장 길에 가보고 싶어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가전수출부 금충복 부장은 간부가 쓰러 졌는데 절대로 출장을 지속하면 안되고 어서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말 했으나 냉장고설계실 복국성 실장은 상상맨의 앞길에 후퇴는 없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날씨가 조금 좋아졌으니 차라리 오늘 당장 비행기를 타고 홍콩으로 나가자는 의견이 모아져 출장일정을 중단하고 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가지고 있던 항공권은 모두 내일 날짜의 것이었는데 일기 불순으로 결항된 항공편의 회복과정이라 질서가 엉망인 공항에서 환자가 있다고 재치 있게 우겨서 BOARDING PASS를 받아 비행기에 탐승했던 것이다.

노보특 과장은 움직이는 대로 온몸에 통증이 전기에 쏘인 듯이 번지었고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비행기는 떠나 홍콩 공항에 착륙하니 휠체어가 기다리고 있었다. 남들이 비행기에 내리자 마자 휠체어를 타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자신이 그걸 탈 줄은 생각해본 적이 없던 노보특 과장은 기가 막혔다.

해구공항 출발전에 홍콩지점에 전화를 걸어 알려주었지만 그런 사고임에도 홍콩지점장은 갈 때는 동기들이라고 잘 다녀오라고 했는데 공항에 나오지 않았고 지점장 차량도 공항에 오지 않았다.

두분 부장과 실장은 바로 홍콩 공항에서 한국으로 귀국했고 노보특과장은 홍콩의 어드벤티스트 병원에 입원을 했다.

노보특과장을 지원하는 여직원 MISS KAREN이 운전면허증이 있어 노보특과장의 집에 가서 노보특과장의 자동차에 아내를 태우고 마중나와 공항에서 노보특 과장을 태우고 홍콩 섬에 있는 병원으로 바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주해시의 백 사장 VCP 합작프로젝트 보고서를 서울의 언론에 보도하기 위해 중요한 원고를 본사에 인편으로 보낼 일이 있어서 최근에 홍콩지점에 충원된 미국여권 소지자로 특채 된 차수용 대리에게 지점장이 특임을 주어 서울로 가는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지점장 차를 타고 다른 곳으로 먼저 나가서 지점장 차량이 공항에 오지 못했다고 들었다.

그 날이 1989년 1월 23일이었다.

저녁에 노보특과장의 아내가 아이들까지 입원실에 데려왔는데 내가 너희들을 두고 중국 해남도에서 죽을 뻔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보특과장은 우선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의사의 지시가 있었지만 상황이 수출실적이 부러지는 상황이라서 병실로 거래선 파일을 갖다 두고 병원 전화로 바이어들과 연락을 시작하고 있었다.

맨 먼저 중아무역공사의 미스터 챠우 가족들이 달려왔다.

미스터 챠우는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면서 너무 걱정하지 말고 몸이나 챙기라고 했고 자기들 실적이나 대금결제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이어서 카운티팜의 미스터 탕도 다녀갔다. 이제 더 이상 냉장고 수입은 당분간 어렵겠다고 했다. 그리고 아무리 연락해도 연결이 안된 동성무역개발공사의 미스터 응이 한밤 중에 수염도 퍽 자란 초췌해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들려준 말은 이번 금수조치와 외환 송금 규제로 그간 중국에 반입했던 물품대금을 한 푼도 못 받게 되었다고 했다. 그 금액이 미화 320만불이라고 했다. 그럼 미스터 응은 어찌되느냐고 물었더니 망하게 된다고 했다. 가슴이 아팠다.

그런데 왜 그렇게 서울에서 100명이나 초대하는 마지막 만찬을 고집했는지 이해가 안되었다. 부자는 망해도 그리 망하는가 싶었다. 그렇게 홍콩 어드벤티스트 병원에 있는 동안에 회사는 교통사고를 숨기려 했었다.

그러나 홍콩교민들은 빠르게 소문을 듣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병문안을 와주었다. 홍콩지점장은 그것이 못 마땅했다. 우리 회사 간부가 출장 중에 다친 교통사고인데 왜 남들이 알아야 하냐며 지점장은 노보특 과장에게 전화까지 걸어와 병문안을 삼가 하게 하라고 했다.

같은 사무실의 관계사 주재원들은 일요일이나 늦은 밤에 병문안을 와서 그 동안 너무 무리했을 테니 이제 좀 쉬라면서 회사는 노보특 과장 없어도 돌아가니 본인 건강이나 챙겨야 가족들과 살 수 있지 않겠냐고 하며 병실에 있는 서류파일들을 치우고 그냥 쉬고 있으라고 하는 것이었다.

노보특 과장은 어깨도 아프고 온 몸이 쑤시었으나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걸 다행으로 그러고 있지만, 남들 눈에는 면도도 못하니, 원래 수염이 빨리 자라는 털보인지라, 그 모습이 보기 민망하였나 보다.

홍콩지점장은 주위에서 노보특 과장이 많이 다쳤냐고 묻거나 ‘면도도 못할 정도로 몸이 많이 상했나 봅디다’라고 위로 인사라도 하면 그 말이 그렇게 듣기가 불편했는지 지점회의 때에‘면도나 하고 사람들 만날 것이지’라고 했다고.

그 때부터 홍콩지점 사무실과 본사의 돌아가는 모든 상황은 이장봉 대리가 거의 다 실시간으로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입원하고 있으면서 치료도 되고 차차 나을 줄 알았는데, 병원은 갑자기 2월 6일이 음력 설인데 중국인들은 춘절이 대단한 명절이어서 병원직원들도 휴가를 가게 되어 식사도 공급이 안된다며 집에 가서 있다가 명절 지나고 다시 오라는 것이었다. 치료중인 환자를 내 쫓는 병원이 홍콩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보특 과장은 할 수 없이 2월 3일 금요일 낮에 집으로 퇴원했는데, 주위에서 더 걱정이 많았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피가 안 났을 경우에는 그냥 두면 안된다고도 했고, 과연 최고의 상상전자가 주재원의 교통사고를 어찌 다루는지 홍콩교민들의 관심 사항이라 고도 했다.

생각해보니 건강을 염려해서 1988년 8월 17일부터 술을 끊다시피 했는데, 이렇게 중상을 입었으니 이제 자연스럽게 술을 마실 수 없게 되어 덕분에 건강이 좋아지나 보다 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사고소식을 들으신 고향의 아버지는 “조상님 들이 너를 살렸구나. 네가 그대로 있으면 일과 술로 몸이 남아 나지 못할 것 같아 잠시 쉴 수 있도록 자빠지게 했으니 전화위복이 될 수 있게 마음을 다스리거라”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노보특 과장은 죽지 않고 살았음에 감사하면서 더 할 일이 있다는 하늘의 임무가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계속>

향암 (香庵)

홍콩 2B1 Limited 회장
홍콩 A-Dragon Corporation 창업, 1989.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과학기술산업융합 최고전략과정 수료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SPARC 수료 논문 [출판시장의 변화와 전자책의 미래연구] 발표로 장영실상 수상, 2018.8.

필명: 향암香庵~작품속 가명 노보특 (Robert영어이름 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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