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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홍콩의 벤처이야기 “캘리포니아 냉장고” 8-3
대한민국 최초 중공 시장 (No Frost Type) 냉장고 수출실화
향암 | 2019-07-22 06:25:5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8. California Refrigerator
加利福尼亚电冰箱

4) 임종

공장의 손운국 이사를 HS가 수행하여 홍콩과 대만 출장을 나오게 되어 있었다. 홍콩시장도 대만시장도 자가브랜드의 판매가 시작되었고 공급물량은 모자라도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냉장고 제조본부장에게는 고무적인 출장이었다. 새옹지마인가? 겨우 안정을 찾은 듯한 노보특과장의 일상에 뜻밖의 슬픈 소식이 날아 든다.

며칠 전에 고향의 아버지께서 전화를 걸어오셨다.
“너의 어머니가 위독한데 큰아들 가족을 보고 싶다고 한다. 모두 한국으로 들어오라”고 하셨다.

그래서 노보특과장은 “아버지 회사의 높으신 분이 홍콩에 모레 도착하며 이어서 대만 출장을 함께 가야 합니다. 지금 한국에 갈 수가 없습니다.” 라고 말씀드렸다.

다음날 다시 아버지께서 다시 전화를 걸어오셨다.

“네 어머니가 마지막이라고 힘들면 너만이라도 한국에 들어와 달라.”는 것이었다.

노보특 과장의 어머니는 암이라는 지병이 있었지만 그 때는 방사선 치료로 암은 나았다고 했는데 옛날의 의술이 지금과는 엄청난 기술차이가 있어서 방사선 조사량이 과다하여 후유증으로 피부 조직을 와해 시키게되어 그 고통으로 진통제를 손에 쥐고 살아야 했다. 그래서 견디다 못해 좋다는 서울의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고 노보특은 아예 집에 가지 않고 중구에 있는 회사까지 서대문구에 있는 병원에서 출퇴근을 하면서 잠을 자더라도 두 시간마다 일어나 어머니의 배뇨상태를 기록하며 정성으로 어머니를 낫게 하고자 했다.

그 때가 여름이었고 아내가 낮에 병원으로 갈아 입을 옷을 가져오고 시어머니 병 간호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데 노보특 대리가 퇴근하면 어머니 간호를 하면서 아침마다 병원 공중 화장실에서 씻고 옷을 갈아 입고 출근을 하던 때였다. 그렇게 14일이 경과된 날에 담당과장 의사가 수술을 해드리겠다고 마취실에 모셔 갔는데 그리고는 집도할 과장 의사가 원장님을 모시고 Conference회의를 열었다고 했다.

모든 자료와 계획을 청취한 원장께서 “이 병원은 자네 개인 것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이 환자는 자네가 모험을 해보려고 하는 것 같은데 십중팔구 수술이 끝나도 이미 피부조직이 정상이 아니어서 봉합이 안될 텐데 그래도 하겠느냐? 자네가 실수하면 이 병원의 명성과 모든 의사의 명예가 땅에 떨어지는데 자네가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라고 질문을 하시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는 그 답을 못했다고 하면서 대단히 죄송하지만 수술을 취소하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제 수술도 곤란하니 집에서 편안히 모시라고 했는데 예고한 6개월을 넘기고 3년이 지나도록 무탈하였던 것은 당시 노보특 대리의 세치 혀로 마취 대기실에서 모시고 나오면서 ‘엄마, 밤 사이에 기적이 일어났는가 봐요. 과장 의사가 아침에 모든 진찰 자료를 가지고 원장님과 함께 회의를 열었는데 수술 안 하고도 지낼 수 있다고 했대요.’라고 말씀드렸더니 바로 노보특 대리의 어머니는 ‘거봐라, 내가 그랬잖아, 수술할 필요 없다고 했잖아. 의사들 보다 내 병은 내가 더 잘 알아. 어서 집으로 가자.’라고 하셨다.

수술직전에 수술을 포기한 담당과장 의사의 말을 듣고 어머니를 그렇게 안심시키고 고향으로 모시었고 수시로 편지와 전화로 그리고 녹음테이프를 만들어 드리고 아버지의 녹음 답장을 받고 하며 큰아들 노릇하면서 외국에 주재하게 되어 이젠 못 볼 줄 알았으나 그래도 냉장고의 중공수출 덕분에 본사 출장을 가게 될 때에는 아픈 어머니가 서울까지 오셔서 그렇게 라도 잠시 잠깐 서로 얼굴 보고 왔는데 마지막이라고 하니….

“아버지 제가 말로써 어머니를 안심시켰듯이 이번 고비를 아버지의 말씀으로 넘겨주세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시었다.

나는 분명히 전했다. 네 어머니가 죽기 전에 맏아들인 너를 보고 싶다고 했는데 너는 회사 일로 들어올 수 없다고 하니 아버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구나.”

그러나. 아버지의 이런 말씀과 노보특과장의 그런 대답이 대만 출장 일정으로 두고두고 천추의 한이 될 줄은 노보특과장은 그때에는전혀 상상을 하지 못했다.

홍콩에서는 그날 본사 출장자로 냉장고제조본부장인 손운국 이사가 나오자 마자 중아무역공사의 미스터 챠우를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예정대로 손 이사와 HS가 홍콩에 당도했고, 바쁜 일정을 위해 중아무역공사는 저녁이 아닌 점심을 초대했다. 점심자리에서 그 간의 협력에 대해서 서로 인사와 덕담을 주고받더니 미스터 챠우가 “그래도 우리가 이렇게 홍콩에서 다시 만났으니 남자끼리 술 석잔은 하고 헤어져야 하지 않겠느냐?”며 Hennessy X.O. 병을 따는 것이었다.

모두 둥글고 볼록한 브랜디 술잔의 밑에만 깔리는 정도의 전통적 방법의 브랜디 석잔을 생각했는데, 미스터 챠우는‘바쁘실 텐데 큰잔으로 마시고 빨리 끝내자’며 큰 맥주잔에 브랜디를 가득 채우는 것이었다.

손운국 이사는 노보특과장을 바라보면서 이런 경우가 어디 있느냐며 어이없어 하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노보특과장이 귓속말로 “본부장님, 저도 처음 보는 광경인데 지난 번에 공장에서 품질보증각서를 서명하듯이 기왕지사 웃으면서 대작하시지요. 오후 상담은 홍콩 대리점을 방문하는 것인데 본부장님은 불참하게 해드리고 호텔에 모실 것이니 쉬시기 바랍니다. 그대로 회사를 위해 대작하시지요.”라고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정말로 브랜디를 가득 채운 맥주잔으로 Bottoms-Up을 석잔이나 거듭거듭 다 비웠다.

그 다음 날은 대만의 대리점을 방문하고 서울로 돌아가는 일정이라 노보특과장도 홍콩에서 대만까지 동행을 했다.  

대만 일정을 마치고 오후에 서울로 손 이사와 HS를 전송하고 홍콩으로 돌아가기 전에 비행기 시간이 남아 Galaxy Brand 냉장고 OEM거래선을 방문하여 창고내부를 둘러보고 있는데, 상상 물산 대만지사에서 거래선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상상물산 대만지점 이세찬 지점장의 목소리였다.

“노보특 과장, 본사에서 연락이 온 게 있는데 우선 홍콩으로 돌아가지 말고 우리 대만지점 사무실로 와주세요.서둘러 오지 않아도 되니까 일마치는 대로 말입니다.”하는 것이었다. 

노보특과장은 무슨 일일까 하면서 설마 어머니께 안 좋은 일이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사무실에 당도하니 상상물산 대만지점장이 전해준 말은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는 것이었다. 이미 회사가 준비를 해서 가족이 홍콩에서 내일 아침 비행기로 대만을 경유하여 서울로 가게되며 그 비행기를 대만에서 만나 서울에 도착하면 김포공항에 서울의 성 과장이 마중을 나오니 오늘 밤은 대만에서 잘 보내라는 것이었다. 순간 오래전에 들었던 노래가 떠올랐다.

어머님-이학춘 노래/1971

해 뜨고 달이 뜨고 보고 픈 어머니
이 세상 어디 가도 잊지 못할 사람
사나이 굳은 맹세 입술을 깨물며
성공에 그날만을 다짐을 하고
오늘도 어머님을 그리며 웁니다

그 옛날 그렇게도 날 위해 고생한
이 세상 어딜 가도 찾지못할 사람
지금은 나홀로 떠나와 있지만
언젠가 어머님과 만날 날 만을
오늘도 두 손 모아 기다린답니다.

“아~어머니가~! 어머니께 기적은 더 안일어나셨구나.”하며 그 밤을대만에서 통곡과 뜬눈으로 새우고 다음 날 아침에 TAIPEI 공항에 가니 홍콩에서 날아온 비행기에서 아내와 아들들이 나타났고 모두 함께 서울로 이동했다.

김포공항에 마중 나온 성 과장은 상주용 검정 양복을 세탁소에서 빌렸다며 가져왔고 김포공항에서 강남 고속버스터미널로 이동하는승용차 안에서 옷을 갈아입고 고속버스로 네 시간을 달려 고향 군산에 도착하니 그저께 밤에 그렇게 태풍이 요란했고 어제도 비가 많이 내렸는데 큰아들이 나타난 이 시간에는 해가 떴다며 큰누이 동생이 서럽게 오빠 왔다고 어머니의 시신을 붙잡고 대성통곡을 하는 것이었다.초상을 치르고 어머니 유품을 정리하다가 가슴이 미어지는 두 가지를 노보특 과장은 발견한다.

하나는 매일 진통제로 복용한다는 어머니를 위해 홍콩에서 소염진통 효과와 간을 튼튼하게 해 준다는 중국 복건성FUJIAN 장주ZHANGZHOU 특산품 편자황 ‘片仔癀 PIEN TZE HUANG’을 사드렸는데, 너무 비싸고 돈이 모자라서 한 갑을 못 사고 네 알만 사다 드렸는데, 두 알만 잡수시고 두 알이 남아 있던 것이었다. 

 漳州片仔癀

사드린 지가 언제인데 그렇게 아파하면서도 비싼 것이고 큰아들이 사준 것이라고 아끼다가 못 드시고 돌아가신 것 같아 눈물이 더 나왔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는 것은 오라고 해도 못 온다는 큰아들이 보고싶고 꼭 보고 잡고 걸리고 걸려서 통증의 신음과 울음 섞인 목소리 녹음을 해 두셨는데“보특아보특아 내 아들 보특아~! 너는 어찌 엄마가 죽게 생겼다는데 오지 못하는 회사를 다니는 것이더냐? 밥은 제 때에 잘 먹고 다니는 것이더냐? 하도 많이 아파서 아무리 참고 참으려해도 네가 출세할 때까지 참을 수 없어 이 엄마는 이제 저 세상으로 갈라고 한다. 부디 훌륭한 사람 되고 엄마 없으면 불쌍할 네 아버지 잘 모시고 넷이나 되는 동생들도 네가 잘 보살펴주기 바란다. 엄마는 네 아버지한테 시집와서 널 첫아들로 낳아 사랑받고 호강하며 잘 살아왔다. 부디부디 건강하고 우리 큰며느리랑손자들이랑 모두 잘 살아라.~(울음 소리와 신음 소리)”거의 녹음은 노보특과장의 아버지께서 말리는 소리와 함께 끝나 있었다.

노보특 과장은 숨이 멎는 듯했다.

“아~내가 바보였구나.”라는 자책만 끓어올랐다.
그렇게 초상을 치르고 홍콩으로 돌아온 노보특과장은 비록 몸은 아버지와 동생들과 떨어져 있지만 3년상을 치르기로 하고 양복 가슴에 노란 상장 달고 출근을 했고 여전히 업무상 고객이나 출장자들과 음식점은 물론 유흥장소에도 그렇게 상장을 붙이고 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업무는 날로 발전하고 있었지만 항상 바쁘고 고단하고 여유가 없듯이 손님이 많아졌고 신용장 접수와 선적 통지를 챙겨야 하는 것이 주 업무가 되었다.

이런 모습을 홍콩에 오신 장인께서 발견하시고 효자라고 칭찬하시며 “향암(香庵)”이란 당호(堂號)를 지어 주셨다. 홍콩에 잘 살고 있으라고…!!!

노보특은 너무도 서러운 감정이 사그라 들지 않아서 그 마음을 한 장의 편지로 적듯이 글을 써서 회사 사보의‘우리들의이야기’에 기고를 하게 된다. 사연이 특이해서 그랬는지 해외지점의 기고라서 채택해줬는지 산문부문 수작으로 채택되면서 실리게 된다. 사모곡이라는 제목으로~!

사모곡(思母曲)

노보특/과장-홍콩지점

“미스터 노보특, 전화 받으세요.”

지난 8월 28일 오후 5시, 타이완 출장을 마무리 할 즈음에 바이어의 창고를 돌아보고 막 사무실에 들어와 앉은 순간 건네 받은 전화는 늘 염려하던 나의 어머니의 투병의 끝을 알리는 죽음의 전달일 줄이야.....

차분해지려고 이를 악물고 가슴을 누른 채 그 밤을 어머니 곁이 아닌 TAIPEI에서 자고 다음날 부지런히 나섰다. 비행기와 고속버스에 실려 태풍 빌라도 잠들어 준 8월 29일 저녁 7시에야 어머니가 그토록 기다리는 집에 당도했다. 어머니께서는 가만히 누워만 계셨다. 큰아들인 나를 지극히 사랑하고 염려해주고 그토록 보고싶다고 찾았던 어머니는 거기 그냥 눈감고 있었다.

바라보는 나의 눈에서는 동생들의 오열에 얹혀서 감추지 못할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큰아들을 불러 달라고, 수 없이 부르다가 포기한 채, 아버지만을 곁에 둔 채 어머니는 고통을 끝내셨다고...임종도 못하고, 어머니의 부름에 얼굴조차 보이지 못한 나의 몸이 지금 눈 뜨지 못하는 어머니의 얼굴위로 눈물만을 흘리고 있다니.....

“어디서 뭣하다 이제 왔니?”
“중국에서 중국사람들하고 상상전자 냉장고 수출하려고 상담하느라 늦었습니다.”
‘밥은 꼬박 꼬박 먹고 다니고, 술을 조심해라.”
“건강합니다. 저는..... 보다 잘 해드리지 못한 죄 많은 자식의 손을 잡아 주세요.”

마지막 한 마디, 그 말씀을 못들은 나는 그 날 이후로 새벽마다 어머니와 만났다 헤어지는 아쉬움의 꿈을 계속하게 되었다.

生老病死

죽음을 붙잡을 수야 없지만, 내게 다가온 현실은 가슴을 메이게 했다. 오랜 투병의 고통에서 벗어나 하늘나라로 가신 것인가?

유명한 병원의 의사들조차 기적의 삶이었다고 했던 어머니는 안녕히 가신 것인가? 죽으면 그만이구나.

어머니는 저 세상에 가셔서도 아들을 걱정하며 잘되라고 염려하실 텐데, 나는 이 세상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상상전자에 입사했을 때 좋아하셨던 어머니,과장이 되었다고 기뻐하셨던 어머니, 상상전자에서 더 일 잘하라는 그 말을 못하고 가신 것일 것이다.

30년의 남편과 자식들 뒷바라지로 얻은 병으로 손자 한번 제대로 업어 주시지 못하고 떠나신 어머니, 아들은 건강히 잘 있답니다. 부디 더 걱정하지 마시고, 편히 잠 드세요.

어머님을 못 잊는 자식의 마음을 한 장의 편지로 받아주세요. 어머님을 다 못뵌 아들의 유감을 적은 편지를 영전에 바칩니다.

가는 길은 하나인데!

86년 9월 홍콩에서 큰아들 드림.

상상브랜드 냉장고 50리터가 미니바용으로 100%공급된 홍콩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그래도 열정 덕분이었는지 돌아가신 어머님의 굽어 살핌이 있었는지 맡은 일은 잘 이어졌고 가슴에는 어머니의 임종도 못한 장남인 데도 뻔뻔하게 삼베 상장을 붙이고 가전수출 세일즈 활동을 열심히 하였기에 홍콩의 최고급 Business Hotel인 The Mandarin Oriental에 상상브랜드 냉장고가 Mini Bar용으로 전 객실에 100% 상상브랜드 홍콩대리점 TAILAM을 통해서 납품되는 경사와 함께 홍콩 일간지에도 그 사실이 기사화되어 노보특 과장의 얼굴 사진과 함께 기사가 본사 홍보팀의 허락을 받고 실렸는데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그 홍콩신문이라도 보셨더라면 무척 좋아하셨을 텐데, 그렇게 효도하고 싶어도 받을 분이 안 계시게 되는 시간차가 있나 보다.

중국시장도 홍콩시장도 그리고 대만시장도 백색 가전은 수출이 잘 되고 있었다. 특히 냉장고는!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공급능력이 부족할 정도이니 주문이 안정되는 만큼 품질개선은 물론 생산성 향상과 함께 매출과 이익 모두 상승세였다.

모든 세일즈맨들이 그렇게 열심히 시장 개척하고 거래선 발굴하고 고객관리를 감동적으로 하고 있지만 특히 홍콩 지점의 노보특 과장은 해외본부 가전수출부는 물론 공장과 거래선에도 한번 뱉은 말은 기어이 지키는 사람으로 각인되고 있었다. 냉장고는 SELLER MARKET이었던 시절이었다.

때 맞추어 본사 가전수출부의 성 과장을 어머니 초상 때에도 고마웠고 본사의 상황과 내년도 상황을 서로 숙의하기 위해 홍콩으로 출장을 나오도록하였다.

홍콩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중아무역공사를 방문했고 미스터 차우는 그 동안 서로 고마웠다는 인사와 함께 홍콩에서 만난 성 과장을 그냥 보낼 수 없는데 바쁘다고 하니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하여 상해요리 중국식당으로 노보특 과장과 미스터 프랭키랑 함께 네 사람이 갔었다.

아니나 다를까 미스터 차우는 그 자리에서 전에 손운국 이사에게 했듯이 성 과장에게 Hennessy X.O. Bottoms-Up 삼배를 제안하는 것이었다.

연속적으로 상담이 예정되어 있어 낮술을 곤란하다 했더니 그럼 딱, 한잔만이라면서 큰 잔으로 가득 담긴 브랜디를 서로 건배를 하고 말았다.

미스터 챠우는 상습적으로 그러는 것 같았다. 상대를 생각해주듯이 긴장을 풀게 하고는 낮 시간인데 양주인 브랜디로 원샷을 하여 기선제압을 하거나 깊은 기억 남기고 자기는 오후에 쉬는 것 같았다.

점심식사는 끝났으나 한 낮인데 두 상상 맨의 얼굴색이 붉은 색이었다. 그러나 이미 약속된 상상브랜드 홍콩대리점 TAILAM을 방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로 인사차 만나기로 했던 것인데 공교롭게 TAILAM은 다음 달 선적분의 주문이 이미 생산계획에 편성됐는데 신용장을 열지 않고 있었다.

지금 같은 호시절에 생산계획에 들어가 있는데 신용장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이라서 이미 노보특 과장이 세번이나 연락을 하고 부탁했는데 그 날도 열려 있지 않았음을 알게 된 성 과장의 눈꼬리가 갑자기 올라갔다.

성 과장을 처음 만나는 홍콩대리점 사장인 미스터 람은 상당히 당황스럽게 받아들인 것 같았다.

이 때에 노보특 과장이 분위기를 달랜다고 말하면서“TAILAM always did not open L/C on time.”이라고 말하였더니 갑자기 미스터 람의 얼굴색이 달라지는 것이었다. 뭐가 Always냐는 것이었다.

말꼬리 잡는 일이 생긴 것이다. 노보특 과장은 순간적으로 술을 마시고 상담에 왔지만 상담 시작할 때에 서울에서 홍콩에 출장 왔다고 중공거래선이 점심에 한 잔 하게 한 것이라고 양해를 구했지만 그래도 실례인지라 부드럽게 풀려고 한 것이 서로 신용장과 영어 단어로 기분이 충돌하는 순간이었다.

더구나 처음 보는 본사 성 과장의 존재를 의식해서 미스터 람도 변명을 지속하려고 했다.

노보특 과장은 ‘내가 배운 영어는 두 번 이상이면, 두 번부터는 Always라는 단어를 사용한다.’고 설명하니 미스터 람은 ‘그래도 그렇지 두 번과 세 번 그리고 항상이란 말은 다른 것이 아니냐?’고 하는 것이었다.

이 때에 성 과장이 ‘그러니까 신용장은 언제 열겠다는 것입니까?’라고 언성을 높여 물었다.

그랬더니 그 말도 거슬렸는지 상담이 끝나고 채 홍콩지점에 돌아오기도 전에 바로 홍콩지점장에게 상상맨은 그렇게 상담할 때에 술도 마시고 다니며 신용장 안 열었다고 다그쳐야 하느냐고 항의전화를 걸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홍콩지점 사무실에 도착하자 마자 꾸지람을 들었는데, 성 과장은 신용장이 매월 15일까지 안 열리면 생산 계획에서 뺀다고 하자, 그건 두 사람이 알아서 할 일이고 회사이름 들먹이며 그런 전화가 나에게 안 오게 하라.’고 지점장은 나무라는 것이었다.
(다행히 TAILAM은 다음 날 신용장을 개설했고, 나중에 노보특 과장과 만나서 서로 오해를 풀고 관계를 돈독히 했다. 물론 노보특 과장은 철저하게 약속을 지켰고, 그 다음부터는 TAILAM도 노보특 과장과의 약속을 지켜 냉장고 신용장부터 우선적으로 개설했다.) <계속>

향암 (香庵)

홍콩 2B1 Limited 회장
홍콩 A-Dragon Corporation 창업, 1989.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과학기술산업융합 최고전략과정 수료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SPARC 수료 논문 [출판시장의 변화와 전자책의 미래연구] 발표로 장영실상 수상, 2018.8.

필명: 향암香庵~작품속 가명 노보특 (Robert영어이름 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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