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 CMS후원
2017.11.25 07:20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세계  |  미디어  |  칼럼  |  서팡게시판  |  여행게시판
 
칼럼홈 > 전체

역사를 바꿀 수 있는 100권의 책 15
김갑수 | 2017-11-15 08:55:5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사화와 반정, ‘당파성론’이라는 이름의 식민사관

조선왕조는 518년 동안 존속한 당대 세계 최장수 왕조였다. 우리보다 역사가 길고 왕조가 더 많았던 중국의 경우 최장수한 왕조의 수명이 300년을 넘지 못했다. 그런데 식민사관에서는 조선왕조의 수명이 길었다는 것까지 부정적으로 말한다.

도올 김용옥이 ‘조선왕조는 임진왜란 때 망했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의아했던 적이 있다. 물론 도올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위정자들이 보인 무능과 보신주의를 비판하려고 하다 보니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또한 그는 당시 우리 민족이 당했던 수모에 분기가 탱천해서 그런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말은 동기의 순수성에 비해 비역사적이고 비논리적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일단 우리는 무엇이든 수명이 남달리 길었으면 거기에는 무언가 비결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국가건 사람이건 남달리 오래 산다는 것은 건강하지 않고서는 안 되는 일 아닌가? 예컨대 100세까지 장수한 아버지가 죽었을 때, “우리 아버지는 너무 오래 사셨어. 환갑 지나서 당뇨가 왔을 때, 또는 80세 넘어 이빨이 다 빠졌을 때 돌아가셨어야 했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조선왕조 건강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를 댈 수 있지만, 조선이 임진, 병자 양란을 거치고서도 동아시아 선진국으로서의 체모를 오래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 중의 하나로 나는 성종대에 결성된 청요직 연대를 든다. 청요직 연대는 16세기 이후 군신공치의 새장을 열어 조선의 정치에 합리성을 투여했을 뿐 아니라, 위정자 집단을 끊임없이 도덕적으로 긴장시켰기 때문이다.

조선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9대 성종(1469 ~ 1494), 10대 연산군(1494 ~ 1506)과 11대 중종(1506 ~ 1544)까지의 75년 시기는 대단히 중요하다. 이 기간에 세 번의 사화가 일어났고 첫 번째 반정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사화와 반정의 시대』(역사비평사, 2015) 저자 김범은, “조선시대를 임진왜란을 중심으로 전·후기로 나눌 경우 경국대전이 완성되고 진통 끝에 국왕 – 대신 - 삼사의 정립구도가 자리 잡은 건국 1백여 년 뒤의 이 3대 75년 간의 치세가 조선후기까지 관통하는 제도의 토대를 놓은 시기다”라고 말한다.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인 저자 김범은, 『사화와 반정의 시대』에서 조선시대의 사화(士禍)에 대해 대단히 합리적으로 말한다. 우리는 흔히 사화라고 하면 치정이 얽힌 궁중 암투극이거나 훈구 - 사림 간의 대립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일단 이런 관점은 고루하고 상투적이다. 그리고 이런 관점은 여러분이 동의하건 말건 식민지시대 조선사편수회의 것이며, 요즘의 흥행영화나 텔레비전 사극 등과도 비슷한 것이다.

사화와 반정을 당파싸움과 무관하게 보는 관점은 최근 들어 식민사관에 영향 받지 않은 신진학자들 사이에서 점차 공유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조선왕조의 군신공치 체제는 당대 세계적으로 보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진보적인 정치체제였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탄압 받지 않은 진보는 없었다. 당대의 청요직들에게는 분명히 단순한 관료의 범위를 넘어서는 면이 있었다. 그들은 국가의 관료라기보다 나라 전체의 도덕성과 진보주의를 견인하는 교사(敎師)로서의 역할을 자임했다.

그들은 작은 일 하나도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고, 도덕적 명분 앞에서는 연령이나 위계질서도 거의 중시하지 않았다. 그들이 시종일관 추구한 것은 고원한 사(士)의 이상을 현실정치에 적용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는 어김없이 반발과 탄압이 수반되는 것 또한 역사의 이치에 속한다.

『경국대전』의 완성(1485년)은 성종대의 가장 중요한 업적이었다. 이로써 삼사를 비롯한 주요 관서들의 기능은 국법에 보장된 불가침의 영역으로 편입되었으며 청요직들의 역할은 헌법적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국왕이 조정력을 행사하면서 대신과 삼사가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체제가 형성된 것은 조선 전기 정치의 중대한 변화이고 진전이었다.
저자 김범은 1970년생이며 학부부터 박사까지 고려대학교에서 수학했다. 1970년생이면 사학자로서 신세대에 속한다. 또한 비서울대 출신이라는 것은 최소한 조선사 연구에서는 이점이 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서울대 출신 사학자는 전대(前代) 경성제대 일본 식민사학자들의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화를 출신배경이 다른 훈구파 대 사림파의 단순 선악대립구도로 봐서는 안 된다. 조선사회는 혈통과 가문 등이 공고하게 짜여진, 상상을 초월하는 인맥사회였다. 사림파 거두로 알려진 조광조나 김종직도 명문거족 출신이었고 훈구파 거두 양성지와 후손들은 사림파로 분류될 수도 있다. 훈구와 사림은 서로 얽혀 있었다.”(김범)

훈구 대 사림의 2분법은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훈구와 사람은 뒤섞여 있었다. 젊어서 삼사에 재직하다가 나이가 들면 대신으로 올라서는 것이 정상적인 과정이었다. 조선의 역사를 훈구 대 사림의 선악 2분법으로 보는 것은 조선의 주류(훈구)를 부도덕한 가해자로 만들고 조선의 비주류(사림)를 도덕적인 피해자로 만들어 놓은 일제 식민사관과 맥이 닿아 있다.

이 책에서는 “삼사의 언론활동 규제를 둘러싼 권력투쟁이야말로 조선시대 500년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키워드의 하나”라고 말한다. 이 책은 바로 ‘삼사라는 중요한 관서가 그 기능을 현실 정치에 구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과 결과를 살피고 그 의미를 밝혀 놓았다.

성종은 재위 말년에, “지금은 두 마리의 호랑이(대신과 대간)가 서로 싸우는 것과 같으니, 참으로 아름다운 풍습이 아니다”라고 개탄했다. 청요직 연대의 부상은 도덕정치의 이상에 다가선 의미 있는 발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권력의 다른 두 축인 국왕과 대신들에게는 불편과 불만을 낳게 하였다. 성종 다음의 임금 연산군은 이런 현상을 이해할 역량이나 용납할 의사가 없었다. 16세기 ‘왕과 사의 충돌’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화와 반정은 하나의 진보적인 제도가 아무리 권위적으로 문서화됐다고 하더라도(경국대전) 그것이 현실적으로 착근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격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대단히 유용한 역사적 소재가 된다. 사화와 반정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앞서 김범이 지적했듯이 조선이 중기와 후기를 이어가며 장구한 세월 동안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핵심 비결 중의 하나였음이 분명하다.

사화와 반정을 훈구 대 사림의 권력투쟁이나 폭군의 난행 정도로만 치부해서는 결코 올바른 조선사관을 가질 수가 없다. 네 번의 사화와 두 번의 반정이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중에서 최소 세 번의 사화와 한 번의 반정은 진보적이고 선진화된 헌법과 강상이 정착하는 과정에서 치러야 했던 희생이었다.


100년 만에 드러난 미일제국의 음습한 비밀외교

1905년 미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사상 최대 규모의 외교사절단을 아시아에 파견했다. 일행 80여 명이 샌프란시스코 항을 출발한 것은 그 해 7월 5일, 이 사절단에는 당시 미 육군장관 태프트(루스벨트의 후임으로 27대 대통령이 됨)를 비롯하여 상원의원 7명, 하원의원 23명 및 다수의 군인과 민간관료가 포함되어 있었다.

일행 가운데는 루스벨트의 딸 21세의 엘리스도 들어 있었다. 그녀는 세속 언론들에게 관심의 표적이 되어 있는 ‘스타’였다. 루스벨트는 ‘제국의 항해’, 즉 임페리얼 크루즈(imperial cruise)를 통해 향후 수세대에 걸쳐 아시아 정책에 깊은 영향을 미칠 중대한 정책들을 비밀리에 진행시켰다.

『임페리얼 크루즈』(제임스 브래들리, 프리뷰, 2010)는 제국주의 미국의 음습한 비밀외교의 실상을 100년 만에 폭로한 책이다. 저자는 당시 미 외교 사절단이 이동한 ‘제국의 항해’ 코스를 딱 100년이 지난 2005년에 직접 답사하면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미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알려진 것과는 달리 집단수용소를 만들어 고문과 민간인 살육을 자행했으며 하와이, 쿠바, 필리핀 같은 약소국을 강점한 백인우월주의자이자 전쟁광이었다. 그는 엥글로 섹슨 문명이 동에서 서로, 즉 유럽에서 미국으로, 그리고 미국에서 태평양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이상한 신념을 가진 인종주의자였다.

조선의 운명을 결정한 카스라 태프트 밀약은 바로 루스벨트의 ‘임페리얼 크루즈’가 성사시킨 핵심 공작 중 하나였다. 조선은 그 해 11월 17일 일본과 을사늑약을 체결했다. 1905년 여름, 도쿄와 워싱턴 사이에는 비밀 메시지가 태평양 해저 케이블을 통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미 육군장관 태프트는 일본 총리 카스라와의 극비 회동에서, 일본이 아시아 대륙으로 확장해 들어가도 좋다고 허용하는 비밀 협정서에 서명했다. 미국 대통령이 상원의 승인 없이 다른 나라와 조약을 맺는 것은 헌법에 위배되는 일이었다. 루스벨트는 일본과 비밀협상을 벌이는 동시에, 당시 전쟁 중이던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서 ‘정직한 중개자’ 역할을 자임했다.

결과 두 교전국은 그 해 여름 포츠머스평화조약을 맺게 된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1년 뒤 루스벨트는 미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노벨위원회는 이 비밀협약에 대해 몰랐던 것 같다. 미일 사이에 음습하게 오간 이 비밀외교 전문은 루스벨트가 사망할 때까지 극비로 묻혀 있었다.

조선의 고종은 1876년 문호를 개방했고, 첫 서방 수교국으로 미국을 선택했다. 고종은 미국이 열강의 침략으로부터 조선을 보호해 줄 것을 기대했다. “우리는 미국을 형님과 같은 나라라고 생각하오.” 고종은 미 국무부에 이런 말을 전했다. 그는 루스벨트가 조선에 공명정대한 외교정책을 펼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워싱턴에서는 고종이 짐작도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당시 루스벨트는 일본에 “나는 일본이 대한제국을 지배했으면 좋겠다”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그러나 그의 딸 엘리스가 조선에 와서 조미 우호를 위해 축배를 든 지 2개월도 되지 않아 엘리스의 아버지는 서울 주재 미국 공사관을 폐쇄했고 조선을 일본군대에게 맡겨 버렸다.

당시 현장을 지켜본 한 미국 외교관은 마치 ‘침몰하는 배에서 도망치는 쥐들처럼’ 미국이 조선을 버리고 도망쳤다고 표현했다. 미국은 일본의 조선 통치를 승인한 첫 번째 나라였다. 고종이 보낸 밀사들이 일본의 만행을 중지시켜 달라고 간청하자, 루스벨트는 조선은 이제 일본의 일부분이니 앞으로는 도쿄를 통해서 탄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루스벨트는 조선을 배신함으로써 아시아 대륙에 대한 일본의 영토 확장 계획을 결정적으로 지원했다. 그리고 수십 년 뒤 또 다른 루스벨트 대통령(프랭클린 루스벨트)은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행한 비밀협약과 인과관계를 가지는 엄청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1905년 이래로 미국은 아시아에서 네 차례의 큰 전쟁을 치렀다. 그러나 한 세기가 지나도록 루스벨트의 비밀 사절단에 대한 진실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역사의 그늘 속에 가려져 있었다. 그 비밀외교 행각의 의미는 ‘미국은 좋은 나라’라는 신화를 지키기 위해 감춰지고 무시되었던 것이다.

미국 사우스 다코타 주 블랙힐스 마운틴 러쉬모어에는 ‘큰 바위 얼굴’이 있다. 이곳은 관광객이 넘쳐난다. 여기에는 만국기가 휘날리는 가운데 네 명의 미국 대통령 얼굴이 거대한 화강암 바위에 조각되어 있다. 초대 조지 워싱턴, 3대 토마스 제퍼슨, 16대 에이브러햄 링컨 그리고 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이다.

1904년의 러일전쟁에서 미국과 영국의 일본 지원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 결정적 요인이었다. 이 책과 별도로 미국의 역사학자 캐럴 쇼(Carole C. Shaw)가 2007년에 출간한 『외세에 의한 조선 독립의 파괴』는 루스벨트가 러일전쟁 당시 일본의 전쟁 비용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의 사업가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사실을 밝혔다.

일본에 전비를 지원한 자본가들은, 미국의 유대인 은행가 제이콥 쉬프 외에도 앤드류 카네기를 비롯하여 존 피어몬트 모건 등 미국과 영국의 재벌이었다. 미국이 조달한 일본의 전쟁 비용은 약 7억 엔(현재가 14조 원 상당)에 이르렀다. 한국에서 활동한 선교사의 2세 캐럴 쇼는, 100여 년 전 우리(미국)가 ‘공공의 선’이란 미명하에 작은 나라(조선)의 국권에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생각해 보라. 미국인 한 사람으로서 사죄의 뜻을 표하고 싶어 이 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카스라-태프트 밀약 시 두 사람은 어떤 이야기를 나눴던가? 카스라는 조선 정부의 잘못된 행태가 러일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해괴한 주장을 폈고, 태프트는 조선이 일본의 보호국이 되는 것이 동아시아 안정에 직접 공헌하는 것이라고 화답했다. 영국도 그 해 8월 제2차 영일동맹을 맺어 일본의 조선 지배를 승인했고, 대신 일본은 영국의 인도ㆍ버마 등의 지배를 두둔했다.

루스벨트는 전투기 조종사이던 막내아들이 1918년 프랑스 공중전에서 전사하고, 큰아들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전사함으로써 1차대전과 2차대전에 각각 아들 하나씩을 잃은 아버지가 된다. 아무튼 루스벨트는 딸 엘리스에 이어 아들 둘까지 자기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희생시킨 셈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 루스벨트가 미국인들에게 존경받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살인무기를 걷어치우고 당장 이 땅을 떠나시오”

“처음에 우리가 국적을 밝히라고 하자 놈들은 아무 거리낌도 없이 성조기를 띄우며 거만하게 나왔습니다. 아마 미국이라면 감히 어쩌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천만에, 놈들은 오산했습니다. 우리 7명의 해병은 번개같이 배에 날아들어 순식간에 80여 명의 적들을 모두 체포했던 것입니다.”(1968년 미국 함정 푸에블로호를 제압한 조선 병사의 회고)

“당신은 지금 조선 사람인 우리가 조선에서 침략행위를 한다고 떠벌리고 있습니다. 도대체 지금 당신은 어디에 와서 누구와 마주앉아 있는지나 알고 함부로 입을 놀려대고 있는 것입니까? 이곳은 미국이 아니고 조선의 판문점입니다. 당신들은 우리가 초청해 온 손님도 아니며 우리나라에 찾아온 관광객도 아닙니다.
당신들은 우리나라에 불법적으로 기어든 침략자입니다. 당신들은 20년이나 우리나라의 절반 땅을 강점하고 조선의 통일을 가로막으면서 민족 분열을 강요하고 있는 조선 인민의 불구대천의 원수입니다. 우리는 당신네 미국에 가서 20년은 고사하고 단 하루도 강점한 일이 없습니다.”
- 미측 수석대표가 조선을 ‘야만인, 침략자’로 규정하는 발언을 하자, 조선 측 박종국 대표가 대답한 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으로 ‘이문항’이라는 사람이 있다. 미국명 ‘제임스 리’로 활동한 그는 1968년부터 1994년까지 26년 동안 정전위원회 유엔군 수석대표 특별고문을 지냈으며 미국정부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은 보수인사다. 이규항의 증언이 담긴 저서 『JSA 판문점』(도서출판 소화, 2001)에 의하면, 그의 주요 임무는, ‘정전협정 조항과 합의정신 및 목적, 과거 사례들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유엔사령부에 제공함으로써 유엔 측의 실수를 예방하는 일’이었다.

1966년 4월 군사정전위원회 분석관직을 맡은 그는 군사정전위원회 작전과에서 만든 지도에서 NLL을 발견하고는 곧 확인 작업에 들어간다. 그는 주한 미 해군사령부에 가서 기록을 뒤져 NLL을 찾아낸다. 결과 NLL은 남북군사분계선이 아니라 UN 사령부가 1958년 설정한 ‘작전통제선’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이는 결국 NLL은 정전협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유엔사의 일방적인 통제선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NLL이 정전 직후 유엔군 사령관 클라크가 그어 놓은 북방한계선이라는 기존 학계의 견해에도 구멍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문항이 확인한 그 기록에 ‘2급비밀’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NLL이 매우 일방적으로 그어진 경계선임은 물론 북측이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어진 유엔사 ‘내부지침용’이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1960년 비밀 해제로 표면화됨.) 처음에는 NLL이란 것이 있는 줄도 몰랐던 북측은 이를 인지하게 된 후 여러 차례 NLL의 불법성을 제기하다가 유엔 측이 협의를 회피하자 서해 5도의 항해로를 보장하는 새로운 해상분계선을 일방적으로 선포하게 된다.

이처럼 『JSA 판문점』은 미 함정 푸에블로호 사건은 물론 NLL의 진실에 대해서도 알려주는 책이다. 역설적이지만 저자가 유엔사 측 인사이기에 오히려 더욱 신빙성이 높다.

1968년 1월 23일 미국 첩보함 푸에블로호는 승무원 83명을 태우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접 해안에서 임무 수행 중, 조선군 초계정 4척과 미그기 2대의 위협을 받고 나포되었다. 이때 1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당했다. 미국은 사고 지점이 원산 해안 기점으로 12마일을 벗어나는 공해라고 주장하며 승무원의 송환을 강력히 요구하는 한편,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와 제7함대의 구축함 2척을 출동시켰다.

미국 해군 함정이 외국군에게 나포된 것은 미 해군 역사 106년 만에 처음 일어난 사건이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참석한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격노했다. 그들은 푸에블로호 나포사건을 미국에 대한 전쟁행위로 간주하고 핵공격까지 불사하여 보복하겠다고 공언했다.

당시 미 국방장관 클락 클리포드(Clark Clifford)에 따르면, 나포사건 보고를 받고 나서 미 행정부에서 보인 즉각적인 반응은 평양을 핵무기로 공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핵공격 주장은 시간이 흐르면서 철회되었다.

푸에블로호 나포 다음날(1968. 1월 24일) 판문점에서 조미협상이 열렸는데, 스미스 제독(미측 수석대표)은 “나포 당시 위치는 16마일 밖 공해상, 선박과 승무원을 즉각 석방 송환하라, 불법 나포 행위를 사과하라, 그리고 손해배상 청구를 받아들여라, 사보타주 암살 행위 등으로 평화를 위태롭게 한 후과에 책임져야 한다.”라고 큰소리쳤다.

미국은 사건 직후 세 척의 항공모함을 조선 연안으로 출동시켰고 전략폭격기를 서태평양에 배치하였다.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를 앞세운 미 해군 구축함과 전함 16척이 울릉도 남쪽 50마일 해상에 정박하였고 미 공군기 372대가 출격태세를 갖추었다. 미국은 '쿠바 미사일 사태'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 행정명령을 발표하여 공군 예비역 1만 5,000명에게 긴급동원령을 내렸다. 그러나 조선은 미국의 핵전쟁 위협에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다시 NLL에 관한 논의로 되돌아 가보자. 이해를 돕기 위해 문답식으로 정리해 본다.

문 1) NLL은 정전협정의 산물이다?

답: NLL 즉 북방한계선은 육지에만 있지 바다에는 없습니다. 바다 경계선에 대하여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데에 동의했다(Agreed to disagree)’는 문장이 있을 따름입니다. 정전협정에서 정해진 선은 한강 하구 인근까지입니다. 한국전쟁 정전 당시 유엔사령관 마크 웨인 클라크는 서해 5도(백령·대청·소청·연평·우도)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북한 황해남도 해안을 봉쇄하는 선(일명 클라크라인)을 임의 설정해서 유엔의 승인을 받으려 했지만 국제법상의 문제가 있어 승인이 거부됐습니다.

또한 정전 협정문에는 ‘어떠한 봉쇄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어서 클라크라인은 그나마 시효가 자동 소멸되지요. 이후 ‘북진통일’을 외치는 호전적인 이승만 정부가 정전협정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고 우려한 유엔사는 1956년 비밀리에(3급 비밀) 내부 방침으로 북방한계선을 설정해 놓았을 뿐입니다. - 유엔사 특별고문 이문항(제임스 리) 『JSA 판문점』

문 2) 북한이 한동안 NLL에 대해 아무런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었다?

답: 일단 북한은 처음에는 NLL이 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그러다 해군력이 정비된 1956년부터는 자기 영해라고 판단되는 지점에서 조업 중인 남한 선박을 나포해 갔습니다.(이때 고향이 북한인 어부를 제외하고는 돌려보냅니다. 배도 수리해 주고 물고기도 실어서)

아무튼 이것은 북한이 NLL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됩니다. 이후 남측이 NLL을 표면화시키자 북한은 1973년부터 해상경계선에 대한 새로운 협상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유엔사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협상하면 불리하다고 판단했거나 아니면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겠지요.)

1999년 단독으로 서해 5도의 출입항로를 축소하여 보장하는 조선해양군사분계선을 발표합니다. 이렇게 되자 남측의 영해와 북측의 영해가 겹치게 되지요. 이 겹치는 부분에서 한·미군이 총포사격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북의 주장이고 이것이 바로 연평포격의 원인이 됩니다.(북한 황해도 부포리에서 연평도 사이의 거리는 불과 10km)

문 3) 북한은 1959년 판 『조선년감』에서 NLL을 군사분계선으로 인정했다?

답: 이것은 남한 정부 발표를 남한 신문이 보도한 내용일 뿐입니다. 조선년감 254쪽 황해남도 지도에는 기호화된 군사분계선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백령, 대청, 연평 상단에만 표시가 있을 뿐이지 우도 서쪽에서 백령도까지 이어져 있는 선이 아니므로 NLL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문 4) 북한이 수해물자를 NLL선상에서 접수했으므로 NLL을 인정한 셈이다?

답: 옹색한 논리이지요. 게다가 북한은 남한이 제시한 NLL지점을 수정제의하여 NLL보다 남쪽 지점에서 물자를 접수했습니다.

문 5)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 ‘새로운 합의를 이룰 때까지 <쌍방이 관할해 온 구역을 인정한다>고 했으므로 NLL은 새로운 합의 때까지 유효한 것이다?

답: 이것은 단순 저돌적인 군인, 기자, 교수, 진중권 등이 잘난 체하면서 내세우는 주장입니다. 여기서 <쌍방이 관할하여 온 구역>을 NLL이라고 하는 것은 아전인수식 해석입니다. 쌍방관할구역은 NLL이 아니라 북한에는 황해도 인접해안이고 남한에는 서해 5도 인접해안일 뿐이지요. 나머지는 공해이고요. 이것은 북한이 시종일관 NLL을 인정하지 않았음을 상기하면 자명해지는 논리입니다.

문 6) NLL을 지키기 위해 장병들이 목숨을 바쳤고(박근혜), NLL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며(이명박) NLL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지켜야 할 안보의 생명선이다? (문재인)

답: 몇 차례 무용한 해전과 포전으로 목숨을 바친 것은 남북한 장병 양쪽 다입니다. 이것을 지키려고 목숨을 걸다가는 결과는 전쟁으로 치닫는 길밖에는 없겠지요. 공동평화개발구역으로 만들어 해주-인천- 개성을 연결하는 번영의 삼각지대로 승화, 발전시킨다면 그 얼마나 좋겠습니까?

다시 푸에블로호 이야기로 돌아간다. 당시 미국 대통령 존슨(Lyndon B. Johnson)은 베트남전쟁에서 고전하고 있던 미국이 한반도에서 또 다른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 나머지 그가 처음으로 취한 조치는 소련에게 조선이 푸에블로호 선체와 승무원들을 돌려보내도록 압력을 넣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부탁을 받은 소련은 조선에 푸에블로호 선체와 승무원들을 돌려보내라는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조선 측은, “우리나라의 자주권을 침해하고 우리나라 영해에 들어와 정찰행위를 감행한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우리의 법에 따라 처리되어야 한다. 올 때에는 제 마음대로 왔지만 돌아갈 때에는 절대로 제 마음대로 돌아가지 못한다”라고 말하며 소련의 압력을 매몰차게 거절해버렸다.

결국 사건 발생 11개월 후 미군 육군 소장 길버트 우드워드는 미국 정부를 대표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해 침입 및 첩보 행위를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함과 동시에 깊이 사과하는 문서에 서명함으로써 조선 측은 미군 승무원 82명과 유해 1구를 송환했다.

훗날 미국 대통령 존슨은 조선에 대해 “조선은 이상한 나라다, 소련의 말도 전혀 먹히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겼다.

끝으로 푸에블로호 당시 조선 측 박종국 대표의 추가발언을 들어 보자.

“진짜 살인 악한과 20세기 야만의 탈을 쓴 두 발 가진 야수인 야만족을 당신이 보기를 원하면 거울에 당신의 몰골을 비추어 보도록 하시오. 우리 속담에 미친개가 달을 보고 마구 짖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 같은 격언은 지금 제멋대로 떠드는 당신과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월남에 끌려가서 개죽음을 당하는 미국 청년들이 ‘존슨 죽여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소? 남조선 인민의 보복과 징벌이 무섭거든 모든 살인무기를 걷어치우고 당장 이 땅을 떠나시오.”

참고로 미측 대표 스미스 제독의 부친 스미스 해병대장은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을 하도 많이 죽여서 ‘미친 스미스(mad dog smith)’라는 별명이 붙었던 인물이었다. 박종국 대표가 ‘미친 개’ 운운한 것은 아마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table=c_booking&uid=520 









      



모바일 기기에서도 댓글 작성이 가능하도록 보완하였습니다. (현재 아이폰 기기까지 테스트 완료하였습니다.)


닉네임  비밀번호  106615  (스팸등록방지:빨간숫자만입력)

 [1/2]   민폐  2017년11월15일 18시34분    
목적과 수단의 엿바꾸어먹기 갑수의 괘변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땅에 태어낫다
우리는 민족자존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땅에 태어낫다

목적과수단의 일심동체 완벽체 극과극은 통하나니 넘 둘이 잘어울린다

근데말이외다
갑수못지 않은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 기자가 이런 기고문이 실엇다

트럼프 보아라
우째든 미 지원아래 작금의한국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안에
경제적으로 성공과 더불어 정치적으로 사람사는세상 민주주의를 이루어 세계의 표상이
되고있다 이에대해 미국 자부심 자긍심 가져도 좋다

그렇다
강대국 미국대통령 트럼프가 세계에 대해 가져야할 인식은 엄포,협박이 공포조성이 아니라
한국을 롤 모델로한 선도자적 역활인것이고,
그것이 진정한 미국의 힘임을 명심해야할것이다라고 말이다

그렇다
우리내적의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외교활동에서 보듯이 이젠 세계가 저이,경제,문화적으로 사람대접해 주고있다

갑수 생각해 보시게
5천 만년의 역사속에서 과연 우리네 역사가 존재 하엿는지 말이다
그놈의 하늘 찌를 기개 허풍 말고
객관적 팩트로 말이다
(14) (-10)
 [2/2]   빙시  2017년11월16일 00시00분    
정은이 옆에서 똘마니 할 사람이 여기서 뭐 하는고..?
책좀 읽었다고 자랑하는가 당장 핑양으로 가시오
(14) (-9)
                                                 
학생인권 존중한다는 교총 왜 학생...
                                                 
역사를 바꿀 수 있는 100권의 책, ...
                                                 
왜 당신은 계란을 바위에 던지시나...
                                                 
공기업 적자, 정치인-자본-관료의 ...
                                                 
“한미 미사일 지침 폐기한다” 송...
                                                 
[번역] 북한 핵 긴장이라는 환상 -...
                                                 
[천안함] 정보공개청구 거부에 따...
                                                 
文 ‘정체된 견고함’ 安 ‘불안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징계 청원...
                                                 
이국종 교수는 ‘김종대’가 아니...
                                                 
천안함의 진실을 지킨 사람들과 박...
                                                 
‘민족대표 33인’ 백용성 스님 죽...
                                                 
능소능대한 검사들
                                                 
누가 글로벌 인재인가?
                                                 
유권자, 즉 국민이 ‘단일화’를 ...
                                                 
홍강철( 북한 생활에 정통한 전문...
                                                 
“근혜를 보면 그 아부지를 생각한...
                                                 
[오영수 시] 임
120044 문재인 정부의 위기가 다가온다
51580 이명박, 당신이 갈 곳은 감옥이다
44014 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이 “퇴...
39379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들으시오!
38331 그때는 쐈고 이번에는 못 쐈다?
29577 MB 페이스북에 ‘성지순례’ 행렬...
21944 나는 ‘모양주의’라는 말을 남용...
21783 [KAL858기 사건 30주기] ① 만들어...
20356 해경 253호 정장을 법정에 부른 이...
18189 디 애틀랜틱, ‘문재인 대통령이 ...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3 진미파라곤930호 (주)민진미디어 | 발행.편집:신상철 | 등록번호: 서울 아01961 | 발행일: 2012.02.15 |
이메일: poweroftruth@daum.net | 사업자번호: 107-87-60009 | 대표전화: 02-761-1678 | 팩스: 02-6442-0472 | 통신판매: 2012-서울영등포-0188호
회사소개 |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광고/사업제휴문의 | 기사제보 | 칼럼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