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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항쟁의 위대함은 ‘자주’에 있었다
갑오년 동학항쟁의 의의와 간과되는 것들
김갑수 | 2016-12-30 14:49:5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동학항쟁의 위대함은 ‘자주’에 있었다
[김갑수의 조선역사 에세이] - 48


“동학당은 술과 여자를 탐하지 않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등의 규율이 있고, 당원들은 그것을 잘 지켜 조금도 농민을 해치는 일이 없었다. 그들이 마을에 들어올 때는 잡다한 물건이라 할지라도 그에 맞는 현금을 주고 사서 상업적으로 약간의 이익을 주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하여 백성들 사이에서는 자못 평판이 좋다. 농민군의 이런 행동원칙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동학봉기 당시 일본 <동경일일신문> 기사)

전봉준을 필두로 한 동학군의 군기는 중국 모택동의 인민혁명군을 방불케 하는 수준이었다. 아니 동학군의 시기가 중국인민혁명군보다 40년 이상이나 앞선 것이니 둘의 순서를 바꿔 말해도 무방할 것 같다.

동학군은 행군 시 논밭의 작물을 밟지 않았으며, 노인이나 어린아이가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것을 보면 얼른 다가가서 대신 들어다 주었다. 그들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마을에 들어가 밥을 강요하지 않았으며, 닭 개 돼지 등에 손을 대지 않았다. 특히 노인과 부녀자에게는 더욱 깍듯이 대했다.

나는 언젠가 동학항쟁은 중국 태평천국항쟁(1860년 전후)과 의화단항쟁(1900년 전후)의 양면성을 다 갖추고 있다고 진단한 적이 있다. 동학항쟁에는 태평천국의 민중성과 의화단의 종교성이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다 동학항쟁은 중국인민혁명의 높은 도덕성까지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그 위대성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동학항쟁이 중국인민혁명과 다른 것이 있다면 이념과 체제에 대한 사색이 견고하지 못한 점이었다. 물론 이것은 19세기라는 시대적 한계와 관련될 것이다.(그리고 다른 점을 또 하나 든다면 담배까지 금한 것이다. 모택동과 그 동무들은 담배를 무척 즐겼으니까. ㅎ)

동학군의 4대강령은 다음과 같다. 여기에는 보국안민과 척왜척양의 정신이 서슬 파랗게 표현되어 있다.

-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말고 가축을 잡아먹지 말라.
- 충효를 다하여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라.
- 왜놈을 몰아내고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는다.
- 군사를 몰아 서울로 쳐들어가 권귀들을 모두 없앤다.

하지만 나는 이보다 더 중요한 동학항쟁의 위대함은 자주정신에 있다고 본다. 최제우·최시형 등이 중시한 것은 ‘평등’이었지만 전봉준이 중시한 것은 ‘자주’였다.

최제우는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이라고 하여 ‘나의 마음은 너의 마음’이라고 했지만, 전봉준은 법관을 향하여, “너희는 나의 적이요, 나는 너희의 적이라. 내 너희를 쳐 없애고 나랏일을 바로잡으려다 너희 손에 잡혔으니 너희는 나를 죽일 것뿐이요 다른 말은 묻지 마라.”라고 일갈했다.

전붕준은, ‘도 없는 우리나라에 도학을 세우고자’ 했으며 ‘좋건 그르건 남의 나라 도학만을 추세하고 의뢰하는 것’을 경멸했다.

“외방에서 들어온 유불선이나 서학에 대해서는 말이 없고 우리나라에서 주장하는 동학만을 배척하는 것은 무슨 뜻이냐? 동학은 자국의 소산이라서 싫다는 것이냐? 사람은 곧 하늘이라고 하니 그 뜻이 싫어 금하는 것이냐?” (전봉준 ‘공초’에서)

평등과 자주의 문제는 진보의 영원한 숙제가 아닌가 한다. 평등을 중시한 최시형, 손병희 등은 자주를 우선시한 전봉준을 과격하거나 무지하다고 여긴 것 같다.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 되면 못 가리”

이것은 갑오, 을미, 병신년 절호의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나라를 구할 수 없다는 뜻의 동학 노래로서 언어유희(linguistic fun)를 이용한 세련된 혁명가요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최시형 등은 전봉준 무리를 과격하거나 무지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실제를 들여다보면 전봉준의 식견이나 문장은 최시형 등의 것보다 단연 높은 수준에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동학항쟁은 오늘의 진보에게까지 의미심장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갑오년 동학항쟁의 의의와 간과되는 것들

다른 해도 그렇듯이 갑오년은 60년에 한 번씩 도래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갑오년에는 유달리 중대한 사건이 많았다. 1894년 갑오년에는 동학농민항쟁이 발발했다. 더 거슬러 올라서 1474년 갑오년에는 조선의 헌법 경국대전이 간행되었다. 경국대전의 간행은 조선역성혁명의 완성을 의미한다. 동학항쟁은 경국대전 간행 420년 후에 발발했다.

동학항쟁은 스러져가던 조선역성혁명의 기운을 되살려낼 수 있는 마지막 사건이었다. 그러나 당대의 최강국 미국 영국 프랑스에 종속적으로 야합한 일본제국주의는 우리 민족의 위대한 혁명의 기운을 무력으로 붕괴시켰다.

동일한 뿌리에서 나온 종교와 혁명이 서로 길이 엇갈린 것은 비단 동학만은 아니다. 루터의 종교개혁과 토마스 뮨처의 농민혁명 사이의 관계도 유사하다. 항쟁의 과정에서 최시형과 전봉준의 길은 달라졌다. 최시형이 혁명에 반대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래도 그가 동학 경전을 보존한 공로는 따로 인정되어야 한다.

갑오년 고부에서 발발한 민중봉기를 ‘동학란’이라고 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또한 ‘갑오농민전쟁’이라고 하는 것도 석연치 않다. 동학은 농민이라는 특정 계급성분이 주도한 전쟁은 아니다. 그 운동에 참여한 사람은 신분이나 직업이나 계급으로 규정키 어려운 다중이었다.

“북한의 학자들이 굳이 ‘농민’을 고집하는 이유는 동학혁명에 참여한 사람들을 프롤레타리아 무산계급의 혁명역량을 아직 갖지 못한 봉건질서 속의 농민으로 규정해야만 직선적 발전사관을 정당화할 수 있고 후대의 공산혁명을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김용옥, 『도올심득 동경대전』)

매천 황현과 면암 최익현은 곧은 절개와 추상같은 의지를 몸소 실천한 전형적인 조선의 선비였다. 우리가 알듯이 황현은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절명시 4수를 남기고 아편으로 자결했으며, 최익현은 의병 항쟁하다가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대마도에 붙잡혀 가 옥중투쟁 끝에 아사했다. 우리는 두 분 죽음의 정황만으로도 그들을 새삼 우러러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황현이 저술한 『오하기문』을 보면 동학군에 대한 그의 시각은 적잖이 부정적이다. 또한 최익현과 더불어 의병항쟁을 벌이고 대마도까지 동행했다가 최익현 순절 뒤 거제도에 유배되어 단식사한 인물이 있다. 그는 임병찬으로서 그 역시 전형적인 조선의 선비였다. 놀라운 것은 임병찬이 젊은 시절에 동학대장군 김개남을 밀고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내 증조부 김재영은 황현·최익현처럼 명성 있는 선비는 아니었다. 그는 1894년 전라북도 고창 법지리에 살았다. 그에게는 스무 살 먹은 외아들이 있었다. 증조부는 벼슬도 하지 못했고 유달리 학문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광산김씨’로서의 체통을 소중히 여겼다. 그럼에도 그는 전봉준 휘하 동학군 접장으로 참여했다가 체포되었다.

김재영의 20세 외아들은 아버지를 면회 가서 오만한 일본 군인을 보고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호통을 쳤다가 그 길로 끌려 들어가 일주일 후 반신불수가 되어 나왔다. 그 20세에 반신불수가 된 사람의 아들이 바로 내 아버지인데, 내 아버지는 어려서 동리사람들에게, “김씨집 아들 젖도 안 뗀 것이 모를 심는다”는 소리를 들으며 성장했다고 한다.

이런 역사들을 회고하며 나는 복잡한 상념에 젖어든다. 먼저 당시의 동학군은 참 외롭고 소외된 존재였을 것이라는 상념이다. 지고한 인격을 갖춘 애국적인 선비들조차 그들을 백안시하지 않았던가? 지인이었던 임병찬에게 밀고 당한 김개남뿐 아니라 옛 부하 김경천에게 밀고 당한 전봉준 등은 그 죽음이 또한 얼마나 외로웠을까?

다른 또 하나의 상념은 그 시대에도 황현·최익현 같은 선비와 김재영·그의 아들 같은 두 부류의 사람이 이 땅에서 함께 숨 쉬며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을 단순히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적 용어로 정리하기에는 미흡한 그 무엇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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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먼데서  2016년12월31일 00시04분    
"평등을 중시한 최시형, 손병희 등은 자주를 우선시한 전봉준을 과격하거나 무지하다고 여긴 것 같다."
"동학군은 참 외롭고 소외된 존재였을 것이라는 상념이다. 지고한 인격을 갖춘 애국적인 선비들조차 그들을 백안시하지 않았던가? 지인이었던 임병찬에게 밀고 당한 김개남뿐 아니라 옛 부하 김경천에게 밀고 당한 전봉준 등은 그 죽음이 또한 얼마나 외로웠을까?"
두 문장을 뽑았습니다.
2014년이 동학혁명 2갑자이지요? 통진당 이석기 의원 등 8명 구속이 그 해에 있었지요?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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