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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음악가 정율성의 삶과 예술가의 윤리 - ⑥ (마지막 회)
김갑수 | 2016-03-11 14:08:0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겨울을 나면서 내 가족 중의 한 사람이 정율성 관련 논문을 썼다. 나는 약간의 의견을 개진했고 최종 퇴고를 도왔다. 그런데 서양음악 학술지에서 게재를 거부한 반면 가장 전통 있는 국악 학술지에서 흔쾌히 수용하여 게재했다. 논문 심사위원 중의 한 사람은, “너무도 재미있는 역사에 남을 논문”이라고 말했다.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몇 회로 나누어 올린다.

음악가 정율성의 삶과 예술가의 윤리

목차

Ⅰ. 머리말
Ⅱ. 성장·출정과 선비윤리
Ⅲ. 의열단·조선혁명간부학교와 사회주의
Ⅳ. 민족윤리와 이념윤리의 조화, <5월의 노래>
Ⅴ. 연안, 인민혁명과 조국의 독립
Ⅵ. 개인윤리와 사회윤리의 불화, 정풍운동
Ⅶ. 맺음말

Ⅶ. 맺음말

1945년 8월 15일 미일전쟁이 종결되고 18일 후인 9월 2일 중일전쟁이 종결되었다. 여기서 또 한 차례 정율성의 예술가 윤리가 시련을 겪는다. 그는 이미 중국혁명에 간부로 참여 중인 중국 여인과 결혼했고 자라나고 있는 아이까지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조국 행을 선택했다. 물론 이것은 조선의용군에게 부여된 명령 사항이기도 했지만 중국 혁명 수뇌부와 절친한 정율성으로서는 귀국보다는 중국에 남는 선택을 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해야 그는 보다 유리한 창작 환경을 얻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 정율성은 조국을 선택했다. 다만 그가 선택한 조국은 부모와 고향이 있는 남쪽이 아니었다. 그는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고 있는 북쪽을 선택했다. 이것은 정율성이 끝내 개인윤리와 함께 사회윤리도 포기하지 않았음을 말해 주는 방증이 된다. 대신 그는 남쪽에 있는 어머니를 모셔와 마지막까지 함께 살았다.

2015년 9월 3일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중국 전승절 70주년 행사에서 정율성의 음악이 울려 퍼졌다. 이 날 행사에는 총 30곡이 연주되었는데 그 중 3곡이 정율성의 것이었다. 그의 음악은 이미 2008년 북경올림픽 개막식에서도 연주되었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때 평양순안공항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군부대 사열 중에 연주된 곡도 정율성의 <조선의용군행진곡>이었다. 정율성은 2005년 중국 전승절 60주년에 신중국 건국 100인의 영웅 중 6번째에 이름을 올렸다.

정율성이 작곡한 <연안송>과 <연수요>는 여전히 중국 인민들에게 애창되고 있다. 음악의 도시라고 하는 중국 하얼빈에는 안중근 기념관이 건립되기 전부터 정율성 기념관이 있었다. 그의 고향 전남 광주에서는 해마다 정율성 음악제가 열리고 있다.

다만 이러한 화려한 후세의 각광이 예술가로서 정율성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 이것은 그가 속했던 중국이 세계적 강국으로 부상하지 않았더라면 아예 벌어지지도 않았을지 모른다는 가정도 얼마든지 성립된다. 결국 정율성의 후세 각광은 그가 선택하고 추구한 사회윤리가 힘을 얻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가 후일 대성했다고 해서 예술가로서의 윤리적 승리를 거두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북으로 귀국한 정율성에게 닥친 시련과 중국으로 돌아간 뒤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겪은 더욱 가혹한 시련을 언급하지 않았다. 이것들은 정율성이 연안에서 겪은 정풍운동으로 인한 시련과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이에 대한 논의는 다음에 쓸 논문으로 유보함을 밝힌다.

대신 이 글의 체계적인 완결을 위해 정율성이 연안에서 태항산으로 행군하다가 겪었던 작은 사건을 하나 소개하기로 한다. 1942년 8월 연안을 떠난 조선의용군이 태항산으로 가는 길은 험한 2,000리 길이었다. 이미 중국의 대음악가로 입신해 있던 정율성은 조선의용군의 병사 대열에 들어 있었다.

정율성의 부대는 황하에서 김두봉 일행과 조우했다. 상해에서 조선 청년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그의 딸 해엽의 얼굴이 보였다. 정율성은 상해에서 그녀와 몇 차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해엽보다도 정율성을 더욱 감격시킨 또 하나의 얼굴이 있었다. 문명철(김일곤의 중국명)이었다.

“명철아, 너 살아 있었구나!”
두 청년은 누가 먼저일 것도 없이 부둥켜안았다.
“중국 최고의 작곡가가 바로 너라니, 처음에는 정율성이라는 이름을 몰랐는데, 알고 보니 상해 여관방에서 의열단 대기하면서 함께 지냈던 유대진(정율성의 가명)이가 바로 정율성이라고 해서 얼마나 좋았던지. 요즘 우리 부대에서도 네 노래를 배우고 부르느라 난리도 아니다.”

하지만 두 조선 청년은 이후로 함께 하지 못했다. 문명철은 김두봉 일행이 연안까지 가는 데 호위병으로 차출되었다. 그리고 문명철은 1943년 4월 14일 팔로군과 함께 전선 활동을 하던 중 일본군의 포위망 속에서 전사했다. 29세의 나이였다.

정율성의 친구 문명철은 사회윤리에 투신했다. 이와 달리 정율성은 사회윤리에 모든 것을 다 걸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정율성이 사회윤리보다 개인윤리를 더 중시했다고는 볼 수 없다. 다만 그가 문명철처럼 되지 않은 데에는 예술이라는 특별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창작은 률성 동지에게 생명의 한 부분으로 되어 조건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그는 종래로 중단한 적이 없었다.” (정율성 부인 정설송의 회고)

이처럼 그는 타고난 예술가였다. 부도덕한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것은 사회윤리도 아니며 정치윤리는 더욱 아니다. 이것은 보편적인 인간윤리에 속한다. 세상 모두에게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정율성은 그렇게 받아들였다. 예술은 좋은 것과 결합되어야 한다. 예술의 근저에는 지혜와 선(善)이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예술은 나쁜 것을 경멸하지만 한 번도 악의 승리를 제재할 수는 없었다.

이처럼 예술가는 승리한다고 해도 예술가가 추구하는 목적이 승리를 거두는 것은 아니다. 정율성은 예술가의 윤리를 훌륭하게 수행했지만 그가 추구했던 윤리가 승리를 거둔 것은 전혀 아니다. 정율성은 평생작 360곡을 남겼다. 그는 1976년 12월 7일 예술가로서의 삶을 마쳤으며 그의 유해는 북경 교외 팔보산혁명공묘에 안장되었다.

▲중국 북경 팔보산 혁명공묘에 잠든 정율성 선생의 묘지. 묘지에는 ‘인민음악가 정율성 지묘’라는 글과 비문에는 전라남도 광주 출생이라고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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