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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음악가 정율성의 삶과 예술가의 윤리 - ④
Ⅳ. 민족윤리와 이념윤리의 조화, <5월의 노래>
김갑수 | 2016-03-04 08:19:0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겨울을 나면서 내 가족 중의 한 사람이 정율성 관련 논문을 썼다. 나는 약간의 의견을 개진했고 최종 퇴고를 도왔다. 그런데 서양음악 학술지에서 게재를 거부한 반면 가장 전통 있는 국악 학술지에서 흔쾌히 수용하여 게재했다. 논문 심사위원 중의 한 사람은, “너무도 재미있는 역사에 남을 논문”이라고 말했다.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몇 회로 나누어 올린다.

음악가 정율성의 삶과 예술가의 윤리

목차

Ⅰ. 머리말
Ⅱ. 성장·출정과 선비윤리
Ⅲ. 의열단·조선혁명간부학교와 사회주의
Ⅳ. 민족윤리와 이념윤리의 조화, <5월의 노래>
Ⅴ. 연안, 인민혁명과 조국의 독립
Ⅵ. 개인윤리와 사회윤리의 불화, 정풍운동
Ⅶ. 맺음말


Ⅳ. 민족윤리와 이념윤리의 조화, <5월의 노래>

앞에서 언급했듯이 정율성은 의열단 중앙부의 신임을 받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는 본격적인 공작 임무 대신 비교적 한직에 속하는 전화국 도청 임무를 부여받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의열단은 민족주의 성향을 경시하면서 공산주의 이념을 더욱 중시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조선민족의 독립이 우선이냐 프롤레타리아혁명이 우선이냐의 문제는 당시 중국 관내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이 직면했던 최대의 갈등이었다. 대체로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던 사람들은 조선의 독립을 우선시했고 공산주의 성향이 강했던 사람들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우선시했다. 이것은 달리 표현하여 민족윤리와 이념윤리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김산을 만난 것은 정율성의 삶에 또 하나의 심원한 영향을 미쳤다. 김산은 공산주의자였지만 계급혁명보다 민족의 독립을 우선시했다. 이후 정율성은 김산의 소개로 비슷한 성향을 가진 중국인 라청(羅靑)을 만나게 된다. 조직과 동지들로부터 소외감을 느끼던 세 사람은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자주 어울리게 되었다.

“1936년 6월 장명(김산의 가명)은 내가 살던 남경의 한 어민의 집에 와서 한 달 정도 같이 지냈다. 현무호, 계명사, 중산릉 그 어디에도 장명, 정율성과 나 세 사람의 긴 한숨소리와 비가가 담겨 있다.” (라청의 말, 필자 요약)

김산은 정율성에게 광주봉기와 해륙풍에서 목격했던 조선 청년들의 참혹한 죽음 소식을 들려주었다. 김산이 들려준 소식의 요점은 왜 수백 명의 조선 청년이 조선의 독립이 아닌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을 위해 죽었느냐는 회의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국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 시대의 젊은이들은 중국을 버리고서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나름 최선의 사업을 도모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정율성은 나청의 제안으로 ‘5월문예사’에 가입한다. 창립총회에서 발기인 중의 하나인 중국인 추취도가 당시 중국의 사회상을 묘사한 시를 발표했다.

5월의 석류화 곱기도 한데
중화의 벽혈(碧血) 더더욱 아름답네
백성들의 원한은 누가 풀고
나라의 수치는 누가 씻으랴
시대의 청년들이여 용감히 앞으로 전진하세

정율성은 이 시에 즉흥곡을 붙였다. 이렇게 해서 창작된 노래가 <5월의 노래>였다. 정율성은 중국인들 앞에서 <아리랑>을 불렀다. 이후로도 그는 진보적인 젊은이들을 모아 노래강습회를 열었다.

이것은 조국의 독립을 우선시했다는 이유로 자기에게 소외의 시련을 안긴 사회에 정율성이 음악으로 대응한 최초의 사례가 된다. 그리고 이것은 일정한 성과를 냈다. 정율성의 음악은 이념을 우선시하던 사람들에게까지 감동을 주었던 것이다. 이로써 그는 민족윤리와 이념윤리의 갈등을 음악을 통해 해소하는 예술가의 윤리를 체득했다.

각주)

 #‎원래‬ 의열단은 동북 길림시에서 김원봉 등 13명의 창립단원이 주도하여 결성한 테러 단체였다. 그들은 암살과 폭파를 주요사업으로 설정했다. 1931년 9.18사변으로 비교적 후방이었던 만주에 최전선이 형성되게 되었다. 그런데 암살과 폭파는 최전선이 아닌 후방에서나 벌일 수 있는 일이었다. 의열단의 본거지가 북경을 거쳐 남경, 상해로 이동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공산주의 혁명이념이 강조되면서 집단무장투쟁을 위한 조선의용대가 결성되었다. 의열단이 모태가 된 조선의용대는 보다 전선으로 다가서는 화북 행을 결정한다. 집단무장투쟁에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던 조선의용대장 김원봉은 조선의용대를 최창익에게 맡기고 자기는 더 후방인 중경을 찾아가 임시정부에 합류했다. 그는 광복군 부사령관과 임시정부 군무부장을 지냈다. 봉오동 청산리 전투를 끝으로 대체로 우파는 테러투쟁을 지향했고 좌파는 집단무장항쟁을 선택하는 쪽으로 변화되었다.

‪#‎여기서‬ ‘관내’라 함은 중국 만리장성의 동쪽 끝 하북성 소재 산해관을 기준으로 서남, 즉 중국 내륙이다. 따라서 관외는 중국 동북 즉 만주 동북3성을 뜻하는데 1930년대 이후 관외 즉 동북에서는 중조연합군인 동북항일연군이 결성되어 무장항쟁을 이어간 반면 관내에서는 테러와 선전을 위주로 하는 항일투쟁이 이루어졌다.

‪#‎본명‬ 장지락, 김산은 미국 여류 님 웨일즈가 쓴 『아리랑』의 주인공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1923년 베이징에서 김성숙 등과 함께 공산주의 잡지인 월간 『혁명』을 발간하였다. 1925년에는 당시 중국 공산주의운동의 본거지였던 광주[廣州]로 가서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1926년 분파주의를 청산하고 통일된 운동을 주도하기 위하여 김원봉 ·김성숙 등과 함께 조선혁명청년연맹을 결성하였다. 또한 민족주의자들과 함께 민족독립당을 조직하였다. 1927년에는 중국인들과 함께 광둥[廣東] 코뮌 건설에 참여하였으나 3일 만에 중국 국민당의 공격을 받아 해륙풍 소비에트로 철수하였다. 1929년 해륙풍 소비에트마저 국민당 측에 점령되자 그곳에서 탈출하였다.

그 후 조선인의 중국 공산당 입당을 주도하다가 1930년 11월과 1933년 4월 2차례에 걸쳐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는데, 2차례 모두 곧 석방되자 일본의 스파이로 의심받아 중국 공산당에 다시 가입하지 못하였다. 1936년 상하이에서 김성숙과 함께 조선민족해방동맹을 결성하였다. 그 후 연안[延安]에 가서 군정대학에서 가르쳤으나, 1938년 중국공산당에 의해 반혁명죄와 간첩죄로 처형되었다. 45년 뒤인 1983년 복권되었다.

#‎라청은‬ 중국 항일투사 겸 음악인인데 정율성을 여러모로 도와주었다. 1976년 정율성이 북경에서 급서했을 때 임종했다. 1937년 당시 그도 김산과 마찬가지로 체포되었다가 출옥했기 때문에 당 조직으로부터 의심을 받는 처지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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