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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대표 33인’ 일대기를 탈고하고서
정운현 | 2018-10-30 11:59:0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지난 7월, 지인과 내년 3.1혁명 100주년 얘기를 하다가 우연히 ‘민족대표 33인’ 얘기가 나왔습니다. 3.1혁명을 거론한다면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을 빼놓을 순 없지요. 그래서 저는 33인에 대한 그간의 연구나 기록이 상당할 걸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찾아보았더니 33인에 대한 인물연구는 놀랍도록 미약했습니다. 1959년에 나온 오재식의 <민족대표 33인전(傳)>이 유일했습니다. 이후 33인에 관한 두 권의 책이 나오긴 했습니다만, 전부 33인의 재판기록에 관한 것입니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민족대표들이 인사동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갖는 장면을 그린 기록화. 사진 속의 인물 가운데 위쪽 2명 가운데 왼쪽은 손병희, 오른쪽은 한용운으로 추정된다. 손병희 왼쪽의 푸른색 양복차림은 최린으로 추정된다.

오재식의 책이 나온 1959년은 제가 태어난 해입니다. 이것도 인연인가 싶어 결국 제가 나서기로 했습니다. 지난 7월부터 시작해 꼬박 넉 달 걸려서 초고를 마쳤습니다. 책으로 나오면 단행본 한 권이겠으나 실은 민족대표 서른 세 분의 일대기를 담고 있습니다. 33인 모두를 따로따로 자료를 찾고 확인하였습니다.

집필을 끝내면서 드는 제 소감은 3.1혁명은 하늘이 도왔다는 생각입니다. 우선 3.1거사의 계획, 진행과정에 수많은 사람이 관련돼 있었으면서도 거사 전까지 비밀이 누설되지 않은 점이 저는 제일 경이롭습니다. 일이 되려니 조선인 형사가 뇌물을 받아먹고 독립선언서 인쇄를 눈감아준 것도 그렇고요.

33인은 천도교 15인, 기독교 16인(장로교 7, 감리교 9), 불교 2인 등 전부 종교인들입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 국내에는 종교, 학생단체 외에 여타 세력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경술국치 후 해외로 망명했거나 아니면 일제의 탄압으로 해산을 당하였기 때문입니다. 유림 측에도 연락은 갔었으나 미온적이었고요.

17인의 만기출옥 장면. (동아일보, 1921.11.5)

7인의 가출옥 장면. (동아일보, 1921.12.23)

33인 가운데 몇 분이 특별히 기억납니다. 우선 김창준 목사는 해방 후 월북하여 북한정권에 참여하였으며, 6.25 때 납북된 오화영 목사는 평양 애국열사릉에 안장돼 있습니다. 독립선언서 인쇄를 책임졌던 옥파 이종일 선생은 영양실조로 별세하였습니다. 33인 가운데 변절자가 3인(정춘수, 최린, 박희도) 나온 사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초고는 ‘33인유족회’를 통해 연락이 닿는 후손들에게 보내 검수를 받으려고 합니다. 혹여 초고에 오류가 있다면 바로 잡고 또 유족들의 의견을 들어 타당한 내용은 본문에 반영할까 합니다. 책이 나오고 난 뒤에 이러쿵저러쿵 왈가왈부하는 것은 보기에도 좋지 않을뿐더러 60년 만에 나온 책이니 정성을 다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집필 기간 동안에 성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33인의 예심에서 내란죄가 적용됐으나 조선인들의 반발을 우려하여 죄목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바꿔 비교적 낮은 형을 선고했다. 33인 가운데 최고형은 손병희 등 8명이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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