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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척살
[조선역사 에세이] - 52 합병비화, 야밤에 고마쓰를 찾아간 이인직
김갑수 | 2017-01-05 14:01:5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척살
“산은 칼, 물은 날, 구름도 쉬지 못한다”
[김갑수의 조선역사 에세이] - 52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이미 이완용 내각을 만들어 정미7조약과 군대 해산을 강행한 이래, 의외로 거센 조선인들의 의병 투쟁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의병이 불길같이 일어나고 있는 남한 지역 대토벌 작전을 전개해 10만에 가까운 조선 인민을 학살해 가고 있었다.

빈농의 아들로 출생하여 하급 무사의 양자로 성장한 이토 히로부미의 출세욕과 업적욕은 끝이 없었다. 그는 한성에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설립한 것으로 한국 병탄 작업은 완료되었다고 여겼는지, 한국의 사법권을 빼앗는 각서 체결은 후임 통감 소네 아레스케에게 맡기고 해외로 눈을 돌렸다.

그는 러시아 재무상 코코프체프와 회담하기 위해 전용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는 본국의 유력한 차기 총리대신이었다. 운요호 사건을 유발하여 강화도 조약을 맺게 함으로써 닫혀 있었던 조선의 문호를 연 것도 그였다. 그러고 보니 조선 병탄은 자초지종 그의 업적이었다.

이토는 좋게 말해 학구파였다. 그는 조선을 효과적으로 병합하기 위해 치밀한 연구를 한 사람이었다. 그는 일본 학자들을 불러 조선의 규장각 서고를 조사시켰다. 그러고는 고대부터 조선말에 이르기까지 한일 관계를 기록한 책들을 추려냈다. 그는 ‘규장각폭서목록’이라는 것을 만들어 수많은 귀중본들을 동경제대로 옮겨 연구하도록 했다. 그는 한일 병합의 당위성을 역사적으로 입증하려 했던 것이었다.

이제 그가 조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한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스스로 대견했다. 어린 시절 촌숙에서 어렵게 공부하던 일, 젊었을 때 남보다 앞서 미국에 가서 연수 받던 일 등이 떠올랐다. 그는 자신의 지나온 삶의 궤적을 선명하고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모두가 주도면밀하게 계산된 삶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곧 닥칠 자신의 죽음은 가상조차도 못하고 있었다.

대일본제국 조선 통감의 전용 열차가 기적을 올리며 하얼빈 역내로 들어섰다. 일장기와 러시아 국기가 바람 타는 꽃밭처럼 요동쳤고 군악대의 밴드 소리가 무지개처럼 퍼져 올랐다. 초겨울 일본군대 원수의 제복에는 유달리 금장 단추가 많은 듯했다. 그는 빨간 머플러에 감색 가죽 부츠를 신고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정숙한 자세로 천천히 발을 옮겼다. 러시아 군대의 사열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의 옆으로는 러시아 재무상이 있었고. 그의 뒤로는 하얼빈 총영사와 궁내대신 비서관, 그리고 유력 기업인들이 따르고 있었다.

사열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웬 일본인인 듯한 사람 하나가 환영 군중의 틈새를 비집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은 너무도 태평하고 느렸기에, 누가 보아도 그것은 그저 조금 앞으로 나와 통감 각하의 얼굴을 좀 잘 보려고 하는 것 이상이 될 수 없었다.

이토가 사열의 마지막 병사에게 먼발치서 눈길을 주고 돌아서려던 순간이었다. 아까 일본인이라고 생각했던 청년이 권총을 뽑아든 모습을 경호 군인이 얼핏 보았는가 싶었는데, 이내 통감이 쓰러지는 동시에 총성이 사람들의 고막을 때렸다.

안중근은 사수 중의 명사수였다. 그의 총알은 통감의 급소에 명중했다. 또한 안중근의 침착성과 기민성은 도저히 사람의 것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소용돌이 중에도 세 번씩이나 방아쇠를 더 당겨 통감의 급살을 확인했음은 물론, 세 명의 수행 관리에게까지 중상을 입혔다.

그는 러시아 관리와 군인들에게는, 잠깐 놀라게 했을 뿐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았다. 총을 내던진 안중근은 환히 웃더니 대한제국만세를 외치고는 러시아 헌병의 수갑에 두 손을 디밀었다.

“산은 칼이고 물은 날이어서 구름도 처참하여 쉬지 못한다.”

폭력에 유린되는 조국을 이렇게 표현했던 안중근은, 자신이 이토를 죽인 이유를 열다섯 개나 법정에서 제시하면서 죽는 날까지 의연함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합병비화, 야밤에 고마쓰를 찾아간 이인직

1910년 8월 어느 날 밤이었다. 조선통감부 외사국장 고마쓰는 관저 응접실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가 침실로 옮겨 왔다. 그는 잠옷을 꺼내 입으려다가 그냥 침대 옆에 걸쳐놓았다. 장마가 일찍 끝난 조선의 날씨는 유달리 뜨거워서 늦은 밤까지 더위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는 속옷 차림으로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게이오의숙을 나온 후 미국 예일대학을 거쳐 프린스턴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고마쓰는 바야흐로 본격적인 출세 가도의 정점에 있었다. 다행히 그는 주색을 밝히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밝히지 않는 게 아니고 관심이 없었다.

그는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그 기능을 거의 잃어버린 듯했다. 그는 요정 회식이 있더라도 일을 핑계로 가급적 참석을 안 하거나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것이 데라우치에게 성실한 관리라는 인상을 준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오늘도 송병준으로부터 그가 새로 낸 요릿집 청화정에 초청을 받았지만 고마쓰는 단호히 거절했다. 송병준은 일진회를 움직여 작년 연말에 이미 일한합병청원서를 내놓고 있는 사람이었다. 일진회는 이토 통감이 안중근에게 죽자 기회가 왔다는 듯이 합병의 시급성을 공공연하게 거론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완용 내각이었다.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이완용은 일진회의 합병론에 제동을 걸고 있었다. 그는 대신회의를 열어 합병청원서를 각하하도록 했고 대한협회나 국시연설단 등을 동원하여 일진회의 청원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었다.

 그 날 밤은 너무 더웠다. 막 침대에 누워 잠이 들 듯하던 고마쓰는 전화벨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현관 수위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웬 일인가?”
“조선인이 찾아와 뵙자고 합니다.”
“이 밤에 누구야?”
“이완용 총리가 보낸 사람이라고 합니다.”

야밤에 비밀 내방한 조선인은 얼굴에 온통 땀을 흘리며 응접실에 앉아 있다가 고마쓰가 들어서자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를 했다.

“고마쓰 교수님. 이렇게 직접 뵙게 되어 기쁩니다.”
“지금 날 교수라고 불렀습니까?”
“예. 저는 동경정치학교에서 선생님의 강의를 들은 제자입니다.”

그는 명함을 꺼내 고마쓰에게 건넸다. 그는 이인직이었다. 만세보 주필을 하면서 신소설 <혈의 누>를 연재하기도 한 문인이었다. 그는 신극 단체인 원각사 대표를 하다가 지금은 조선 총리대신의 비서로 있었다. 그는 청강생으로 정치학교의 강의를 수강했으니 고마쓰가 자신의 은사라는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지금 총리대신 각하께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십니다.”

이인직은 다시 이마의 땀을 닦았다. 아무리 보아도 그는 조선인의 골상과는 조금 달라 보였다. 얼굴 윤곽이 옹졸했고 입술이 얇았다. 행색도 초라해 보이는 오십 가까운 중늙은이였다. 조선 총리대신은 어째서 이런 사람을 비서로 쓰는지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계속 말씀하시오.”
“큰일에 대한 교수님의 고견을 듣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이인직은 일한병합 문제에 시중 여론이 매우 시끄러워졌다고 말했다.

“총리께서는 지난 해 하얼빈에서 이토 공이 한인 악한의 총에 돌아가신 후 병합이 화급히 시행되리라 보고 여러 준비와 고려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통감께서 아무 언질도 안하셔서 일이 어렵게 되었다고 하십니다. 지금 내각이 5적신, 7적신 소리를 듣는데 과연 이보다 더 친일 내각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시며 매우 침울해 하십니다.”

고마쓰는 이인직을 상대로 대화를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이인직은 이완용의 속마음까지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인직과 대화하는 것은 이완용을 직접 상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판단이 섰다.

이완용은,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조건을 일본이 내면 자기는 사직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자신이 사직하면 조선에게 변명할 여지도 없으며 일본에게도 등을 돌리는 일이므로 자신은 망명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탄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총리께 어떻게 위로해야 좋을지 모르던 차에 마침 교수님과 면식도 있어 고견을 듣고자 온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도와 드리면 되겠는지 말씀해 보시지요.”
“교수님은 중대사를 소상히 아실 만한 요직에 계시니 조선이 어떤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창문을 통해 조금 선선한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고마쓰는 흥분을 자제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는 내심으로 ‘병합 담판의 서막이 열리고 있고 내가 그 주역이 되고 있다.’는 희열감을 느꼈다.

이인직은 일본 종교인 천리교 신자였다. 그의 정신세계는 거의 일본화되어 있었다. 그는 마침내 고마쓰가 기다리던 말을 해 왔다.

“병합의 형식을 알고 싶습니다.”
“내가 아는 바만 말하겠소. 병합은 결코 압제의 형식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전승국과 패전국의 관계가 아니라는 겁니다. 한국의 원수는 일본 왕족의 대우를 받게 되며 그 유지를 위해 충분한 세비를 지급할 겁니다. 또한 내각의 대신은 물론 다른 대관들에게도 공·후·백·자·남의 영작을 수여하고 세습재산을 줄 것입니다.”

이인직은 고마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만 하면 이완용도 충분히 만족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므로 병합은 오히려 한국의 치안과 민복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세계의 대국인 일본의 일부가 되고 한국인은 일본제국의 신민이 됩니다. 이것은 정복이 아닐 뿐더러 외국 병합의 예와는 그 취지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요컨대 분란이 끊이지 않는 한국이 질서 있고 높은 문화 국가에 오르는 것이므로 병합으로 인해 조선이 망한다는 생각은 기우에 불과합니다.”

그 날 밤 이미 자정이 지났지만 고마쓰와 이인직 두 사람은 아주 기묘한 역사관에 일치된 견해를 보이며 서로를 추켜세우게 된다. 주로 이인직이 말하고 고마쓰가 동의하는 대화 방식이었다. 그들에게 병합은 그리 놀랄 만한 대사건이 아니었다.

원래 조선은 삼한 시대부터 역성혁명이 빈발했다고 그들은 말했다. 오히려 병합보다 바람직하지 못한 정복도 조선에서는 이미 여러 번 있었다고 했다. 예컨대 신라 김씨 왕조는 고려 왕씨 왕조에게 정복되었다. 왕씨 고려는 500년 후 이성계에게 망했다. 이때 이성계는 고려왕을 폐하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500년이 지났다고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대외관계를 보더라도 조선은 시종 중국에 예속되어 명·청조로부터 책봉을 받아서 왕이 되었다. 이씨는 중국 왕을 천황폐하라 부르고 중국은 이씨를 조선왕 전하라고 불렀다. 그런데 청일전쟁으로 일본은 조선을 구출했다.

그러므로 일한병합을 아무리 나쁘게 보더라도 종주국을 청에서 일본으로 바꾸는 정도라고 그들은 말했다. 게다가 일본은 청국보다 선진국이니 조선의 위치는 이제 격상되는 것이라는 데에 그들은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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