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언론, 아직도 바뀔 때 안 됐느냐
눈 좀 똑바로 뜨고 살자
이기명 기자 | 등록:2020-08-07 11:32:59 | 최종수정:2020-08-07 11:35:29


“난 아무 일도 안 했다. 난 가만히 있었다.”
 
“바로 그것이 죄다.”
 
가만있었던 것이 죄가 되어 처형당한 사람은 누구인가. 나치 점령 당시 부역했던 프랑스 언론인들이다. 나치에 협력해 처형당한 수많은 프랑스 지식인 중에서도 언론인은 가중 처벌됐다. 드골은 언론인들의 나치 협력을 가장 추악하고 악랄한 반역으로 규정하고 가차 없이 처형했다.
 
왜 드골은 언론인들을 중죄로 다스렸을까. 언론은 정의의 상징이었다. 언론인은 존경의 대상이었다. 언론은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어떤가. 한국의 언론인은 어디에 있는가. 대한민국 언론은 지금 어디에 존재하는가.
 
한국의 기자들이 가장 수치로 알고 있는 호칭은 ‘기레기’다. 누가 작명을 했는지는 모르나 참 기가 막힌다. ‘기자 쓰레기’를 줄여서 ’기레기‘라 부르는 것이다. 몹시 화가 났을 것이다. 그러다가 이제는 그냥 넘어간다. 왜 넘어갈까. 스스로 자인하기 때문인가. 불행이다. 비극이다. 슬프다.
 
넌 어떠냐. 넌 얼마나 깨끗하냐. 수도 없이 용서를 빌었다. 지금도 다시 빈다. 과거에 내가 저지른 그 많은 잘못을 다시 엎드려 빈다.

(이미지 - 채널A 영상 캡처)

■미몽에서 깨어나라. 한국 언론
 
검언유착의 주인공인 이동재가 요즘 한국 언론의 대표처럼 느껴진다. 이동재처럼 유능한 기자가 어디 있는가. 그 많은 단독(특종)을 해냈다. 검찰은 이동재의 특종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게 한국 언론의 모습이다.
 
모든 기레기들이 이동재를 감싸기 위해 혈안이다.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 없다는 기자들의 목소리는 모기 소리다. 솔직하게 물어보자. 기레기들은 정말 창피한 줄 모르느냐. 창피도 본능이다. 벌거벗으면 부끄러운 게 본능이다. 오늘의 한국 기자들은 벌거벗고도 수치를 모르느냐. 그러면서도 기자 대우를 받으려느냐. 남의 수치도 내 수치로 알고 얼굴이 붉어지는 게 인간이다.
 
“선생님. 한국의 기자가 수천 명입니다. 그중에 어떤 애가 없겠습니까. 별의별 녀석이 다 있습니다. 선생님이 칼럼에도 쓰셨죠. 촌지 받아 들고 ‘애걔 겨우 요거야’ 하며 흔들던 기자 얘기 말입니다. 그런가 하면 거금과 이익을 거절해서 감동했던 기자 말입니다. 지금도 있습니다. 많습니다.”
 
슬프다. 훌륭한 기자들을 많이 알고 있다. 데스크의 압력을 뿌리치고 싸우는 젊은 기자. 중앙일보에서 북을 울리던 기자. 동아투위, 조선투위 기자들. 그러나 문제는 나라를 망치는 기자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부정하는가.
 
신문 6개월 봐주면(물론 공짜) 돈 준다는 각서까지 받아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해서 포상금 120만원 받아 민언련에 기증한 경험도 있다. 조선일보다. 아직도 그런 신문들이 있다. 기자들이야 그런 짓을 안 한다. 그러나 경영자들이 왜 모르겠는가.
 
‘이 먹자는 장사’(속담. 장사는 이익을 얻기 위한 것)라고 이해를 해 준다고 해도 왜곡과 음해 허위 날조 기사를 보면 기자는 고사하고 사람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검언유착이라고 이동재가 걸려들었지만 스스로 이동재가 되고 싶은 기자가 하나 둘이겠는가. 마치 검찰을 자기가 쥐고 흔드는 것처럼 큰소리치는 기자들이 있다. 그들이 주고받는 거래는 사회정의를 병들게 하고 정의로운 검찰을 썩은 검새로 전락시킨다. 그런 기자와 검사를 보며 국민이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애국심이 생기겠는가.
 
‘이놈의 나라 빨리 망해라’ 술 취해 고함을 지르는 광경을 한두 번 본 것이 아니다. 재벌들은 장사꾼이니 이재용인들 별수가 있겠냐만, 그래도 사회정의를 구현한다는 기자와 검사가 손을 잡고 썩어 문드러진다면 이 나라가 갈 곳은 어디란 말이야. 애국심이 지극해서가 아니라 그냥 이 나라에 태어난 백성으로 눈물이 난다. 기레기 검새들은 사람이 아니냐.
 
시비 걸 태면 걸어라. 이명박 박근혜가 대통령 할 때도 쌍욕을 퍼부었다. 나라 상감님도 없을 때는 욕을 한다. 윤석열이 독재와 싸우라는데 지금 정권이 독재냐. 씨가 먹는 소리를 해야 한다. 요즘 하는 짓거리를 보면 정치를 하고 있다. 누가 말리는가. 그러나 정치를 하려면 총장 옷 벗고 해라. 당당하게 해라.
 
권력을 가진 자가 그걸 멋대로 행사하면 안 된다. 기자들이 쓸 수 있는 권리를 남용하면 미친놈이 흉기를 휘두르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기레기들은 자신이 휘두르는 흉기의 모양이 안 보이느냐.
 
■언론이 얼마나 쎄냐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인간처럼 결함이 많은 동물도 없다. 다만 반성할 줄 아는 동물이기에 만물의 영장이다. 그렇다면 반성이 없으면 무엇인가. 가장 사악한 동물이 되는 것이다. 오늘의 기레기 언론이 그렇고 검새들이 그렇다. 점점 나빠지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검언유착을 속으로 인정하지 않는 언론은 없다. 취재수단이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정의가 있어야 한다. 유시민을 옭아 넣으려는 모략 음해가 어떻게 정의가 될 수 있느냐. 조국 교수의 가족을 풍비박산 만신창이를 만들어 놓은 게 어떻게 정의가 될 수 있느냐. 언론도 자신들의 행위가 정의롭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렇게 배우지 않았다.
 
그들 자신도 괴로울 것이다. 오물통 속에서도 보석은 변하지 않는다. 인간의 양심 역시 같다. 오물통 사회에서 살아가자면 도리가 없다고 체념을 했는지 모르지만, 그 고통은 잘 안다. 기레기들과 대화를 해보면 그들의 아픔을 안다. 내가 옛날 느끼던 고통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벗어나야 한다.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기득권을 버리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도 안다. 버리는 희열은 더 크다.
 
기레기와 검새들이 얼마나 똑똑한가. 둘째가라면 통곡할 똑똑새 들이다. 이들이 왜 세상 사람들의 욕을 못 듣겠는가. 그들은 다 듣고 세상에 비난이 옳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들과 속 털어놓고 얘기하면 이해도 하게 된다. 다만 동의를 할 수는 없다. 왜냐면 정의는 지켜야 정의이기 때문이고 그들이 표면적으로 내 세우는 삶의 목표도 정의이기 때문이다. 46억의 시세차액을 챙긴 야당 원내대표도 입에 달고 다니는 것은 정의다. 이름 밝히랴. 어떠냐. 기레기들과 검새들은 세상을 바꾸는 데 앞장 설 용기가 없느냐.
 
세상이 바뀌면 또 거기에 붙어서 안락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선배들이 있다. 하지만 그 인간의 마음을 헤아려 보자. 어느 사람이 그 인간을 사람으로 취급하겠느냐. 개돼지로 생각한다. 그렇게 인간은 처신이 중요한 것이다. 기자님 검사님 하고 앞에서 손바닥 비빈다고 존경하는 줄 아는가. 속으로는 열두 번 씩 개XX 소리를 할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 기레기들아. 검새들아. 이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오라. 존경받는 이름으로 세상을 떠날 생각은 없느냐.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