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모곡(思慕曲) -박원순을 사모하는 노래
두견 기자 | 등록:2020-07-31 14:20:41 | 최종수정:2020-07-31 14:27:47


사모곡(思慕曲)-박원순을 사모하는 노래


어제 어둠이 내린 하늘에 검은 구름이 코팅한 것처럼 번들거렸다. 장맛비마저 적시지 못하고 그 위로 흘러내릴 정도였다. 잠시겠지만 비가 그쳤다. 우산을 들고 나와 농로를 걷는데, 나뭇잎이 요란하게 울어댔다.

하지만, 나는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중이다. 여기가 어디쯤인지 알 수 없다. 박원순 시장 사후 기운을 차리려 해도 왜 이렇게 마음이 산란한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나의 나날이다. ‘성추행’을 저질러놓고 죽음을 택함으로써 2차 가해를 했다는, 김재련 변호사와 여성단체들. 애도를 표하는 것도,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침묵하는 것도, 증거를 요구하는 것도, 심지어 변호사에게 질문하는 것도 죄라며 …… 나를 숨 쉬지 못하게 하고 있다.  

1.

내가 박원순 님을 안 건 꽤나 오래됐다. 두서 해 전쯤에 30년을 격해 처음 봤는데, 대뜸 내 국가보안법 사건 얘기부터 꺼냈다. “내가 변호 맡았잖아.” 하면서 호탕하게 웃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님의 얼굴에 흐르는 천진난만한 장난기, 자유로운 정신을 보여주는 푸른 청년의 눈빛, 뭔가 어색해도 굴하지 않는 유머, 끝없는 촌놈기질, 질그릇 같은 소탈함, 일상과 여가를 중시하는 여성적 감성, 그리고 유창하지 않는 그 특유의 어투……. 붉은 포승줄에 묶였던 나를 소환해내서, 막 김매다 나온 얼굴로 반가워하는 게 놀랍고 기뻤다. 서울시장 이전에 인권운동가 박원순이기 때문에 국가한테서 인권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지금도 그 시절의 인권운동가여야 할 것 같은, 그래야 자연스러울, 싱싱할 그가, 부재한 시간, 내 가슴에 긴 터널을 뚫어 놓은 것이다.  

“너 빨갱이지?” 하며 재판도 없이 이 강산을 피로 물들였던 제노사이드! 영화화된 <남영동1985>, <1987> 외에 셀 수 없는 ‘빨갱이사냥과 고문’이 국가보안법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다.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이어받아 대한민국 1,2,3,4,5공화국을 거쳐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는, 대표적인 반인권 악법이다. 박원순처럼 1,185쪽에 달하는 학술서적까지 출판하면서 이론과 실천 양면에서 이처럼 철저하게 ‘국가보안법’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없다. 그가 저술한 <<국가보안법 연구 1, 2, 3>>만으로도, 박원순은 기념비적인 존재다.

게다가, 박원순은 여성인권에도 최전선에서 싸웠다. 전두환 시절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을 맡아 승소했고, 서울대에서 일어난 ‘성희롱사건’을 법정에 올려 승소함으로써 ‘성희롱이 범죄가 된다’는 사실을 여성운동사상 처음으로 법률로서 확인했다. 이렇게 그는 여성인권 불모의 시절에 성범죄 피해에 관한 여성의 법적 지위를 한 차원 끌어올렸다. 한국여성단체연합회에서 주는 ‘여성운동상’(1997)을 수상했다. 

나는 당신을 ‘영원한 인권운동가’라고 다시 불러야겠다. 내가 박원순 님의 ‘사모곡’을 쓸 자격이 있는지 자문하기 전에 성서 한 구절이 떠오른다.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말해야 할 사람들이 잠잠하다. 아니, 말을 하긴 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말한다.

“성추행이 사실이면 나도 박 시장을 비난하겠다. 그러나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고, 아무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 의문을 제기하는 것마저 2차 가해라고 하면 어떻게 박 시장은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가. 더욱이 사망으로 공소권 없음이 되지 않았나. 적어도 내가 아는 박 시장은 그럴 분이 아니니 팩트, 실체에 접근해서 진실을 밝히자. 그래야 나도 박 시장에게서 자유로울 수 있겠다.” 등등. 

나는 이 지성인들의 말에 백 번 천 번 동의한다. 그러나 박 시장을 존경하고 사랑했던 사람들이 취할 ‘도리’로는 뭔지 미흡하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인 만큼 ‘도리’ 운운하는 고풍스러운 교훈질 따윈 치워놓자. 아무튼 나는 ‘돌’이므로 <어느 돌멩이의 추모곡>이라도 불러드려야겠다!

언론에 뿌려진 김재련 측의 무수한 말들이 어느 하나도 박원순 님을 죄의 구렁텅이에 빠뜨리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증거능력이 허약하고, 사실은 없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박원순 님의 결백을 호소하려는 생각은 없다. 그의 죄 없음을, 무결함을 호소하는 게 박 인권운동가를 되레 불편하게 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엄밀한 팩트체크는 합리적인 도덕군자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나 같은 돌멩이에겐 과분하며, 솔직히는 거기에 휩쓸리고 싶지가 않다. 보면, 국가보안법을 패지하지 않고서 그 법에 악용됐다고, 마치 팩트체크만 하면 악법이 아닌 양 소란을 피우는 건, 나 같은 피해자 눈엔 색[빨갱이]인지감수성이 떨어지는 일이고, 제 꾀에 제가 넘어가라고 쳐놓은 적폐의 그물에서 노는 격이다.

나는 박원순 님이 (가족은 제외하고) 자기 곡조를 들어줄 단 한 사람도 곁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 백아라는 거문고 명인이 있었다. 백아는 자기 곡조를 알아듣는 종자기 앞에서만 거문고를 탔다. 어느 날 종자기가 죽어서 자기의 연주를 들어줄 사람이 없게 되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어버리고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 여기서 유래된 말이 ‘백아절현’이다.

박원순은 거문고 줄을 끊어버린 것이다. 그의 노래를 그토록 섬세하게 듣던 ‘종자기’가 아무 데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종자기야. 종자기야.” 두 눈에 눈물을 흘리며 소리쳐 부르나, 보이지 않고 나타나지 않았다. 이승을 떠나는 날, 인권운동가 박원순의 곡조를 들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 같다. 걱정만 할 뿐, 의심을 거둘 증거를 내놓으라고만 할 뿐 온전히 그의 곡조에 취해서 듣고는 저린 다리를 끌고 일어나 술상을 내올 종자기는 없었다.

“종자기야. 너는 어디에 있느냐?”

박원순과 함께 했던 그 많던 ‘싱아’(여성운동가들)는 어디로 갔는가? 정작 너희가 박원순을 모른다는 말이냐. <남원산성>의 한 구절처럼 ― “설마 설마 설마 섯설마? 제일 천하낭군이지 니가 내 사랑이지.” 했던 너희가! 땀에 젖은 러닝셔츠와, 간이침대와, “자기가 재면 혈압이 내려간다?”는 사랑스런 유머 들을 정녕 사거한 박원순을 다시 찌르는 비수로 사용하겠다는 것인가? 그런 메마른 성인지감수성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기꺼이 확인사살 공모에 가담하는 성인지감수성의 그 불모성은 공포 때문이 아닌가? 나는 너희의 공포를 보았다.

<<패왕별희>>를 보면, 문화대혁명 때 인민재판 장면에서 패왕이 공리를 손가락질하며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 전날까지도 공리는 남편 패왕이 자기를 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떨며 버리지 말라고 애원한다. 패왕은 나를 뭘로 아냐며 화를 버럭 낸 얼굴로 믿으라고 안심을 시켜준다. 그러나 패왕은 배신을 했고, 공리는 목을 맸다. 이런 배신은 공포 때문에 일어난다. 나는 너희의 공포를 보았다. 이니셜 B를 쓰는, 적폐세력 두목이 “의리도 없는 새끼들.” 하고 침을 뱉으며 비웃는 모습이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패왕이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었다.”고 공포에 질려 소리 지르는 그 장면에 민주당 28명 여성의원 전원이 오버랩 된다. (여기서 추미애 장관은 국회대정부질의에서 박원순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는 통합당 의원의 협박을 거절했기 때문에 빠져야 한다.)

심지어, 통합당의원들은 ‘사망으로 인한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가 종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번 사건까지 소급적용하는 <박원순 피해자보호법>’을 발의했다. 이게 제정신인지. 인류의 최대 업적인 ‘근대 인권사상’ 위에 성립된 근대법을 이렇게 무력화시켜도 되는지. 대한민국이 통째로 ‘마녀사냥’의 중세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는지.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민주주의체제 자체를 거부하는 ‘원님재판’[앙시앵레짐]을 진정으로 호출하고 있는지. ‘무죄추정의 원칙’이나 ‘사망으로 인한 공소권 없음’이 거추장스러운 법률적 수사로만 보이는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는 터널에 갇혀있다. 이 칠흑어둠을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도 없다. 숫제 희망 따위는 내게 없었다.

“종자기야. 너는 어디에 있느냐?”

도처에서 나는 배은망덕한 브루투스, (정의를 내세워) 밀고한 유다, (그의 생을 존경한다면서) 세 번 부정한 베드로 들을 보게 됐다. 결국, 여성의 성 결정권을 엄마처럼 보호 감독하려는 양, 너희가 입에 올린 ‘권리’는 ‘권력’이었다. 그렇지 않니? 그 권력은 ‘여성의 권리’가 아니라 너희의 ‘권력욕’이었다. 물론, 그것[권리로 분장한 권력욕]에 연쇄된 너희의 ‘공포’를 나는 보았지. 그래서 당신들의 양가감정도 내가 알지. 공포로부터는 ‘페미니즘’이 너희 눈을 가리고, 권력욕으로부터는 ‘인기’가 너희의 입을 비틀어놓은 것을. 약자를 위해서?! 피해자를 위해서!? 누구한테 그 말을 믿으라는 거니. 너희를 대표하는 김재련 변호사가 박근혜 치하에서 어떤 짓을 했는지 모르는 거야? 설마 설마 설마 섯설마?

2.

종자기가 사라진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었다. 그러나 백아가 아닌 나 돌멩이는 거리의 악사로서 거문고를 탈 수밖에 없다. 나, 무명의 연주자는 고인이 된 박원순 님에게 굴원의 <<이소>> 한 토막을 들려 드리고자 한다.

나는 굴원을 좋아해서 가끔씩 찾아 읽는데, 박원순 시장의 자살 소식을 듣고 내 마음에 즉시 떠오른 시인이 굴원이다. 신료들의 모함을 받고 유배를 당해 비통한 심정으로 지은 시가 <<이소>>[이별과 근심]인데, 시의 후반에 옥룡이 끄는 봉황수레를 타고 ‘하늘 문’(천문)을 향해 떠나면서 이런 충정을 토로한다.

“꿇어 앉아 옷섶을 단정히 펼치고 진심을 아룁니다. 저는 정도를 따랐기에 한 치의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길은 멀고 아득해도 나는 하늘과 땅에서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찾습니다.”

천문의 문지기는 그를 막아서며 바라보고만 있고 굴원도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돌아가기 전에 “세상이 혼탁해 이익에 따라 휩쓸리니, 아름다운 빛을 가리고 시기질투 하는 것만 좋아하는가.”라고 읊조린다. 굴원은 답답한 심정으로 무당 영분을 찾았다. 점을 쳐달라고 하니, 영분이 말한다.

“정말로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대를 그리워하겠소? 넓고 큰 천지를 생각하오. 어찌 이곳에만 아름다운 사람이 있겠소? 주저하며 의심 말고 멀리 떠나시오.”

굴원이 답한다.
“세상이 혼탁해 사람을 어지럽게 하는데 누가 나의 좋고 나쁨을 살피겠습니까? 사람마다 좋고 나쁨에 대한 기준이 다른 건 있지만 저 당파를 이룬 사람들만은 유독 특별납니다.  …… 위로 올라가려고만 하니 그 향기로움을 어떻게 퍼뜨릴 수 있겠습니까? 시속이란 본시 대세를 따르는 것이니, 잘못 흐르고 있다고 하여 누가 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시의 종장에 이르러,
“이제 그만하리! 이 나라에는 알아주는 사람 없으니 고국에 무슨 미련을 두리. 훌륭한 정치를 함께 할 사람이 없으니 나는 ‘팽함’(彭咸)이 있는 곳으로 가리라.”    

‘팽함’은 은나라의 현자로 굴원이 찾는 롤 모델[미인]이었다. 그니까 자기를 알아줄 ‘종자기’였다. 미인을 찾지 못한 굴원은 결국 멱라수에 몸을 던져 자결한다.
“종자기야. 너는 어디에 있느냐?”
아, 박원순의 외침이 귓가를 떠나지 않는구나!

3.

나는 거문고를 타면서 노래한다. 박원순 님과 내가 만나는, 시구를.

길을 살피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서성이다 돌아가렵니다.
수레를 돌려 왔던 길로 돌아갑니다.
더 먼 곳에서 길을 잃어버리기 전에 말입니다.
난초가 자라는 물가의 언덕에 말을 풀어놓고
산초나무가 우거진 언덕으로 달려가 잠시 쉬렵니다.

아 그런데 나는 남았고 그는 떠났다. 나의 님은 떠났다.

연잎을 마름질해서 상의를 만들고 연꽃을 이어 하의를 만듭니다.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는, 이 마지막 음성이 들린다.
나는 술대 쥔 손을 거두며 거문고를 물렸다. 터널 속을 걷고 있는 나는 이미 님의 종자기가 되었음을 알았다. ‘아아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님을 위해 타는 내 곡조를 들어줄 종자기는 어디 있는가?

4.

거문고는 깊은 소리를 내는 충(忠, 글자가 마음의 중심을 잡은 형상)의 악기다. 나와 악기가 잘 맞는 걸 보면 나는 충심이 강한 편인 듯하다. 그런 나를 비웃는 자 천지 부지기수일 터다. 봉건적인 인간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희망 없는 터널 속을 걷는, 일(一) 돌멩이에 불과한 자가 무슨 말이 두렵겠는가! 오호라 좋아, 봉건적 의리조차 없는 ‘레이디 앤 젠틀맨 들’의 삐까번쩍한 교양표 스피커를 묵묵히 견디어 낼 수만 있다면 되는 게지. 그 허영의 시장에서 내 무슨 낙을 더 볼 일이 있겠다고.

끝으로 밝힐 게 있다. 내가 이만큼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사모곡’을 노래한 것은 지인한테서 메일 한 통을 받은 덕이 크다. 지인은 어둠 속에 잠겨 있는 내 ‘권리’ 의식을 깨웠다. 그는 ‘근대적 인간 권리’가 무엇인지를 원천적으로 묻는 것에서 메일을 시작했다. 김재련 변호사와 여성단체가 ‘2차 가해’와 ‘성인지감수성’을 들이대며 마치 교리문답을 하듯 성결 검사를 강요하는 것에 분노했다.

“너 빨갱이지?”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데 공감했다. 신학이 된 페미니즘의 감시 하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얼마나 퇴보적이고 반인권적인지……. 그가 보낸 장문의 메일은 이 같은 판 자체를 파괴해서 ‘근대적 인간 권리’를 제자리에 우뚝 세우자는 것이었다.

보자. 신자유주의가 횡행하면서 경제학이 모든 학문의 제국주의가 됐듯이, 페미니즘도 그렇게 되는 판이어서는 안 된다. 그건 추구해야 할 ‘권리’가 아니라 추악한 패권이다.

나에게 보낸 메일을 공개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지인에게 권했다. 그는 메일 원고를 잘 다듬어서 고인의 49제를 지내고 초가을쯤에 세상에 알리기로 했다. 평생을 인간의 권리를 위해서 싸워온 인권운동가 박원순의 해원(解冤)을 위하여!

두견